[테마 에세이] ‘청소수행’의 무량한 공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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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에세이] ‘청소수행’의 무량한 공덕
  • 홍사성
  • 승인 2019.02.26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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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의왕시 한 주택가에서 일어난 이야기. 고만고만한 단독주택이 양쪽으로 늘어선 주택가 골목길이 요즘 들어 갑자기 깨끗해졌다. 이전까지는 비닐도 날아다니고 쓰레기도 버려져있는 보통 골목이었다. 그러던 것이 지난해 가을 어느 날부터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마을 주민들이 나서서 청소를 시작한 것이다. 덕분에 골목길은 몰라보게 훤해졌다. 변화는 골목 중간쯤에 사는 어느 집에서부터 비롯됐다. 그집 주인아저씨가 골목청소를 몇 번 했는데 얼마쯤 지나자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 빗자루를 들고 나선 것이다.

이 일을 처음 시작한 ‘아저씨’는 몇 년 전 대학에서 정년한 어떤 교수님이었다. 이름은 방영준. 서울에 있는 한 여자대학에서 윤리학을 가르치던 불자 교수다. 정년 후 시간이 넉넉해진 방 교수는 그동안 못한 수행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가 택한 수행은 집에 있을 때 청소하고 설거지도 하는 청소수행. 본으로 삼은 것은 『증일아함 11권』 「선지식품」에 나오는 바보수행자 출라반타카였다. 경전에 따르면 출라판타카는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었지만 머리가 나빠 부처님의 설법을 기억하지 못했다. 실망한 그는 탄식하며 환속을 하려고 했다. 부처님은 그에게 새로운 수행법을 일러주었다. 아침저녁 기원정사 마당을 쓸고 외출에서 돌아오는 비구들의 발을 닦아주게 했다. 그때마다 비구들은 ‘쓸고 닦으라(拂垢除塵)’는 법문을 일러주었다. 하찮은 일을 마다않고 수행한 그는 마침내 마음의 번뇌를 쓸어내고 신구의身口意 삼업으로 짓는 나쁜 습관을 깨끗하게 닦아낸 끝에 존경받는 성자가 되었다. 이 이야기에 감동한 방 교수는 정년을 하자 출라판타카를 스승으로 삼아 자신도 쓸고 닦는 수행을 시작했다. 

방 교수가 청소수행을 시작하자 여러 가지 좋은 일이 생겼다. 우선 집안이 깨끗해져서 기분이 좋았다. 소설을 쓰는 아내는 가사노동에 빼앗긴 시간만큼 창작에 많은 시간을 쓸 수 있었다. 덕분에 지난해 출판한 소설집 『뻐꾸기 날리다』는 우수도서로 선정되었다. 부부관계도 훨씬 부드러워졌다. 기분이 좋아진 방 교수는 눈을 대문 밖으로 돌렸다. 그전까지 골목안 사람들은 겨우 자기 집 앞에 떨어진 쓰레기나 치우는 정도였다. 비닐봉지나 종이가 날아다녀도 모른 척했다. 집안 쓰레기를 내놓다 이런 사정을 살핀 방 교수는 옆집 앞집 쓰레기도 치웠다. 어떤 때는 옆옆집 앞까지 청소를 했다. 골목안 사람들은 처음에는 눈치를 보다가 언제부턴가 슬금슬금 나와서 인사도 하고 자기 집은 물론 남의 집 앞까지 청소를 했다. 동네사람들이 너나없이 아침저녁 청소를 하다 보니 골목은 깨끗해질 수밖에 없었다. 서울에서 나비 한 마리가 날개 짓을 하면 뉴욕에서 태풍이 된다는 ‘나비효과’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선진국과 후진국을 구분하는 기준은 골목길과 화장실의 청결상태라고 한다. 국민소득 3만 불이 넘어가는 나라는 우선 골목길이 깨끗하고 화장실에 냄새가 나지 않는다. 반대로 후진국으로 갈수록 골목길이 지저분하고 화장실 사정이 좋지 않다. 몇 해 전 중국 남부지방을 여행할 때 이를 실감했다. 고속도로는 잘 닦아놓았는데 간이휴게소 화장실은 용무를 볼 수 없을 정도로 악취가 고약했다. 길가에 버스를 세워놓고 실례를 했다면 상상이 가는지. 

불자들이 자주 독송하는 「천수경」에 깨끗한 공덕을 찬탄하는 ‘도량찬道場讚’이라는 게송이 있다. “도량이 청청하여 티끌과 더러움이 없사오니 / 삼보와 천룡과 선신들은 이곳에 강림하소서 / 내가 이제 묘한 말씀으로 이를 찬탄하오니 / 원컨대 자비를 베푸사 이곳을 지켜주옵소서(道場淸淨無瑕濊 三寶天龍降此地 我今持頌妙眞言 願賜慈悲密加護)”   

절이 됐든 집이 됐든 내가 사는 곳을 깨끗하게 하면 불보살이 강림한다. 반대로 지저분한 환경은 귀한 분들을 쫓아버린다. 찾아온 사람들이 코를 싸쥐고 돌아서면 좋은 인연도 떠나가게 돼있다. 왜 사람들이 조금 비싸더라도 백화점이나 고급식당을 찾아가겠는가. 깨끗한 곳에서 기분 좋게 쇼핑하고 식사하고 싶어서다. 어디든 편안하고 깨끗해야 사람들이 모인다. 모든 일이 다 그렇다. 사람들이 가보고 싶고 머물고 싶어 해야 좋은 일이 생긴다. 우리 절, 우리 집이 그런 곳이었으면 좋겠다.         

홍사성
불교신문 주필, 불교TV제작국장, 불교방송 상무를 역임했다. 불이상과 대원상, 포교대상 등을 수상했으며 저서로 『근본불교의 이해』,  『마음으로 듣는 부처님 말씀』, 『한권으로 읽는 아함경』, 『정법천하를 기다리며』 등이 있다. 현 불교평론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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