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부처님의 일대기를 그린 뮤지컬 <싯다르타>가 개막해 불자들의 기대를 모았다. 불교를 소재로 다룬 영화<나랏말싸미>의 흥행 실패에 뒤이어 나온 공연이라, 독실한 불자들 사이에서는 이 공연의 성공을 간절히 바라는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다. 불자들의 간절한 바람은 이뤄졌을지, 왜 불교 콘텐츠는 기독교 콘텐츠에 비해 약세인지 뮤지컬<싯다르타> 프로듀서 김면수 대표를 만나 이야기 나눴다.
최연소 지점장에서 뮤지컬 제작자가 되기까지
‘농협 최연소 지점장’. 2008년 본격적으로 뮤지컬 제작에 뛰어들기전 김면수 대표를 17년간 수식했던 타이틀이다. 이 명예로운 타이틀을 버리고 어떻게 공연 제작자가 됐는지 묻자 수줍게 웃으며 “그냥 인연이닿아서”라고 답한다. 그는 우연한 계기로 공연 업계에 입문했다. 10년전 까지만 해도 문화예술 분야에 대해 무지 했는데, 서울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운영하던 고등학교 선배가 마케팅에 능통했던 그에게 뮤지 컬단장직을 제안하면서 뮤지컬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당시 뮤지컬은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은 장르던지라 그가 맡은 뮤지컬은 결국 흥행에 실패했고, 서울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당시 뮤지컬이란 장르가 너무 시대를 앞서 갔던 것 같습니다. 결과가 좋지 않아 그 뒤치다꺼리를 하다가 여기까지 온건데… 어떻게 보면 일이 잘 안 풀려서 뮤지컬 제작을 떠안게 된게 시작이지요.” 그는 현재 뮤지컬 제작사 ‘엠에스엠시’에서 뮤지컬 제작 총괄을 맡고 있다. 홍보, 마케팅, 자금 조달부터 창작자들이 창작에 집중할 수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까지 작품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나가기 위한 전 과정을 총괄하는 일이다. “아무리 작품을 잘 만들더라도 관객이 와서 봐주지 않고 수익이 나지 않으면 결국 실패한 작품이되니까, 책임감이 막중하지요.”
인연과 인연이 쌓여 만들어진 작품, 뮤지컬<싯다르타>
얼마 전 막을 내린 뮤지컬 <싯다르타>. 흥행 전적 없는 불교 소재 작품을 선택한 것은 뮤지컬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김면수 대표에게도 큰 도전이었을 것이다. 왜 하필 불교작품이었냐고 묻자 "이 역시 '인연과 인연들이 쌓여서'라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라며 멋쩍게 웃는다.“ 이때까지 부처님의 일대기를 다룬 뮤지컬이 없었어요. 있어도 굉장히 미약했고요. 반면 예수님은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라는 세계적인 작품이 있죠.” 말하자면, 그동안 기독교 소재 작품에 비해 불교 소재 작품이 적었기에 도전하는 정 신으로 <싯다르타>를 제작하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 이유고 진정한 인연은 따로 있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대학교 때 불교를 처음 접했다고 한다. 재수해서 동국대학교 행정학과에 입학해 필수 교양과목으로 불교학개론과 불교문화사 수업을 들었고, 2년간 예불 의무 참석이라는 기숙사 규칙에 따라 매일 새벽 예불도 드렸다. 대학을 졸업 하고 17년간 불교와 연이 없는 인생을 살았지만, 끊어진 듯보던 불교와의 인연은 뮤지컬 <싯다르타>를 제작하면서 다시금 이어졌다. “수많은 대학 중 동국대학교를 들어가 불교를 접하고 교리에 대해 알게 된 것, 높은 경쟁률을 뚫고 기숙사에 들어가 매일 새벽 예불을 드리 게 된 것, 수많은 업종 중 뮤지컬을 제작하게 된 것, 마침 불교 소재 뮤지컬이 없었던 것, 불교에 대한 지식이 있던 제가 부처님 일대기를 그린 작품에 도전하게 된 것, 이 모든 인연들이 쌓여 지금의 결과가 나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불교콘텐츠, 더많은 관심과 사랑받는 계기가 되길
지난 8월 불교 영화로 불자들의 기대를 모았던 영화 <나랏말싸미>가 관객 100만을 넘기지 못하고 조기에 종영했다. 반면 기독교 콘텐츠는 분위기가 좋다. 뮤지컬 <벤허>의 경우 라이선스가 아닌 순수 한국 창작진들이 만든 창작 작품임에도 인터파크 예매 순위 1·2위를 다투고 있다. “아마 기독교에서 적극적으로 밀어주고 있을테지요. 그에 비해 불교계는 지원이 적은 편이 에요. 뮤지컬 <싯다르타> 역시 지원이 거의없다시피 해 부처님 일대기를 다룬 첫 뮤지컬임에도 홍보 단계부터 어려움을 겪었어요.” 뒤늦게나마 불자들 사이에 영화 <나랏말싸미>에 이어 뮤지컬 <싯다르타>마저 실패하면 앞으로 누가 불교 콘텐츠를 만들겠냐. 우리부터 관람하자’라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한다. 그래서 스님과 불자들이 단체 관람을 오고 사찰에도 관람을 독려하는 등 공연의 성공을 위해 많은 노력을 펼쳤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일단 수익이 나야 예술인들이 불교 쪽으로 와서 작업을 하지 않을까요? 뮤지컬 <싯다르타> 의 흥행을 계기로 많은 문화예술인이 불교 소재 작품을 만들게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공감을 통한 아픔의 치유
뮤지컬 <싯다르타>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태어나 성도하는 날까지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부처님 일생의 핵심이라 할 수있는‘신부를 맞이하던 날’,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를 결심한 날’, ‘숱한 유혹을 다 뿌리치고 성도에 이른 날’. 이렇게 세 장면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부처님 일대기를 다룬다고 하지만 엄히 말해 깨달음을 얻어 부처님이 되기 전 삶의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 다. 김면수 대표는<싯다르타>를 통해 종교적 가르침을 전달하기보다 부처님의 ‘인간으로서의 삶’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우리도 때가 되면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고 살지 않습니까? 그렇게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삶 속에서 어떤 결정적인 계기가 있을 때 고뇌하고 중대한 결정을 내리기도 합니다. 결정을 내렸다 하더라도 목표를 향해 가는 동안에 수많은 유혹과 갈등 요소가 나오고요. 그것을 끝까지 참고 목표에 도달한 사람도 있겠지요. 어찌 보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부처님의 삶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나아가 뮤지컬이란 장르를 좋아하는 젊 은관객들이 부처님의 발자취를 보면서 현재 자신들의 삶을 돌이켜 보고, 이를 계기로 삶의 방향과가치기준을 새롭게 설정하길 바랐습니다. 마음의 위안도 받고요. 앞으로도 현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뮤지컬을 만들어나갈 생각입니다.”
전 세계인의 마음을 아우를 때까지
김면수 대표는 이번 공연 성과를 바탕으로 전국 투어와 동아시아 순회 공연을 계획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싯다르타 작품을 업그레이드해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작품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구체적인 목표는 뮤지컬의 본고장 브로드웨이에 가서 한달 이상 장기 공연을 하는 것이다. 불교문화가 익숙하지 않은 서구권에서도 <싯다르타>가 통할 수 있을지 묻자 그는 “정신적 빈곤, 마음의 빈곤은 전세계인의 공통 고민”이라고 잘라 말한다. 그리고 부처님 일대기를 통해 전세계인을 아우를 수있는 보편적 가치를 전 할 수 있다고 답한다. “대학 다닐 때 불교학개론 수업에서 배운 삼법인의 ‘일체개고’는 제 평생의 삶을 지탱해준 가르침입니다. 인생 살면서 실패를 겪을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일체개고를 떠올리며 제게 닥친 고통을 인정하고 잘 극복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고통을 인정하는데서 고통을 극복할 수 있다는 이 소중한 가르침을 뮤지컬<싯다르타>를 통해 전세계인에게 전달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글. 허진
사진. 최배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