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초대석] 유물, 그 안에 담긴 시간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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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초대석] 유물, 그 안에 담긴 시간과 마음
  • 남형권
  • 승인 2019.12.04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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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장 배기동

유물은 긴 세월을 지나오며 그 모습이 바랬을지라도 우리에게 헤아릴 수 없는 무언가를 느끼게 한다. 끊임없이 만났을 눈빛과 손길, 수 없이 맞았을 날씨와 풍경, 유물은 우리가 보지 못한 어느 시대와 인간, 그 정신을 소환하는 힘이 있다. 전곡리 구석기 유적 발굴 현장에서 땀 흘리던 청년 배기동은 이제 백발 성성한 모습으로 국립중앙박물관을 이끌고 있다. 고고학 외길을 걸어온 그는 유물을 닮았다. 그를 만나 박물관과 우리나라 문화유산에 관한 생각을 들어봤다.

Q ─ 박물관, 어떤 곳입니까?
박물관은 지적 양식과 더불어 안식을 제공합니다. 세속적이면서 신성한 곳이기도 하죠. 유물을 잘 보존하고 연구하는 곳, 문화유산을 볼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인식을 넘어 생생한 콘텐츠의 보고가 박물관이라는 사실을 많은 분이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인류 진화와 함께 발전해온 박물관은 무엇보다도 실제로 보고 만지며 느낄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입니다. 아무리 디지털 기술이 발전해도 공간에서 본래 물건과 함께하는 그 순간에 대한 기억은 지속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게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는 거라고도 생각하고요. 만약사람이 모든 걸 머릿속에 담을 수 있다면 살기가 편할 텐데요. 그러지 못하기에 언제든 필요하면 찾아볼 수 있는 박물관이 생겨났고, 또 요즘엔 클라우드 컴퓨팅 같은 기술도 탄생한 게 아닐까 싶어요.

Q ─ 국립중앙박물관장으로서의 비전과 목표는 무엇입니까?
국립중앙박물관은 국가가 운영하는 곳인 만큼 많은 국민이 활용할 수 있도록 알리는 게 제 본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고고학자나 미술사가들만 찾아오는 게 아니라 누구든지 와서 즐길 수 있어야죠. 박물관에 편하게 찾아와 원하는 바를 얻어 가고 추억을 만드셨으면 좋겠습니다. 일상 속 고민이나 갈등도 해소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고요. 관람객이 시각적인 기억을 강화할 수 있도록 디지털 기술을 적용하려 애써왔는데, 앞으로 개개인에게 개별화하여 콘텐츠를 제공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스마트 박물관인데요. 어린이, 노인, 먼 거리에 있는 사람 누구든 각자 상황에 따라 적합하게 콘텐츠를 즐길 수 있도록 맞춤형으로 다가가는 것이죠. 또한 실감형 콘텐츠를 통해 관람객들에게 새로운 관점과 재미를 제공해드리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고구려 고분벽화의 경우, 공간 자체를 완전히 재구성해 애니메이션과 VR을 삽입하고 관람객들이 새롭게 이해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지요. 또 박물관 장소가 가진 의미나 공간 자체가 주는 쾌적함에도 신경 쓰려 합니다. 좀 더 편안하고 안락한 공간으로 조성하고 개별 유물에 대한 집중도가 높아질 수 있도록 할 예정이에요.

Q ─ 어렸을 때부터 학교에서 문화유산이 중요하다고 배우는데요. 문화유산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우리 문화유산은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그 시대 사람이 만들고자 했던 욕망과 희망, 시간과 노력이 담겨 만들어진 것이죠. 그중에서도 선택되고 사용된 게 지금까지 남아 있고요. 박물관에 남아 있는 수백 년, 수만 년을 거쳐 온 유물이 가지고 있는 시간의 아우라는 그 무엇도 당할 수가 없습니다. 전시실에 들어가서 보면 후줄근해 보여도 자꾸만 눈길이 가죠. 어떤 유물이 만들어지기 전 의도, 만들어진 경로, 사용된 이력, 발굴되고 박물관에 전시되기까지 전 과정에 들어 있는 인간의 마음. 이걸 온전히 느끼기 시작하는 순간 빠져들게 됩니다. 거기서 과거 여러 콘텐츠를 탐색하며 연구하게 되고 창의적인 생각이 일어나
고요. 현재 삶의 가치에 관한 고민으로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Q ─ 누군가는 훌륭한 백자를 봐도 “하얀 그릇이네” 하고 지나쳐버릴 수 있지 않을까요. 안목을 키워나가는 법은 무엇인가요.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으로서 저도 고민하는 부분입니다. 전시된 유물과 자신이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게 박물관의 역할이니까요. 똑같은 사물을 보더라도 어린이, 노인, 전문가 등 모두 다를 수 있습니다. 상황과 환경, 지식 하나하나를 일일이 설명하기보다 유물을 눈앞에 두고 포괄적으로 그 분위기 속에서 맥락을 이해하며 기억하게 만드는 통합적인 교육이 자연스레 안목을 키울 수 있다고 봅니다. 자유롭게 뛰어놀다가 스스로 찾아다니며 보고 느낄 수 있는 경험의 축적들, 흥미 지점을 발견하고 몰입해 터득해 나갈 때 안목이 발전하는 것이죠. 박물관의 역할이자 운영 기술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Q ─ 국립중앙박물관장이 되기까지 고고학을 전공하고 외길을 걸으셨습니다. 계기와 과정들이 궁금합니다.
고고학은 우리나라에서 역사도 오래되지 않았고 그야말로 무모한 일이기도 합니다. 전 어렸을 때부터 무엇이든 모으는 습관이 있었어요. 어머니한테 야단도 많이 맞았죠. 쓰레기통을 뒤져서 모으기도 했으니까요. 무언가를 끊임없이 모아두고 보려는 성격이 박물관 일과 관련을 맺게 되었나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학부 시절 ‘삼국시대 등자’로 논문을 썼는데 한국 고고학 대부이신 삼불 김원룡 선생님께 칭찬을 받았어요. 대학원까지 공부가 이어지게 됐습니다. 이후 삼성 호암미술관 학예연구원으로 3년 정도 일하게 됐는데 그때도 선생님이 추천해주셨죠. 덕분에 말수가 많지 않고 홀로 연구 기질이 충만하던 제가 시야를
넓히고 사회성도 기르게 된 듯합니다. 미국 버클리에 유학 갔다 돌아왔는데 무엇보다도 제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이 된 사건은 전곡리 구석기 유적 발굴이었습니다. 서구 중심적이던 구석기 문화 인식을 뒤엎은 큰일이었죠.

Q ─ 불교와의 인연이 있다면요.
고등학교 때 부산 불교학생회 회장을 했고 이후 서울대 불교학생회 활동도 했죠. 교리 공부를 열심히 한 편은 아닙니다(웃음). 다만 생활 속에서 불교 가르침을 많이 따르려고 노력해왔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추운 겨울이었는데요. 스님들께 좋은 말씀 하나씩 듣고 싶어 여러 큰 사찰을 돌아다녔습니다. 인생에 스승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통도사에 계셨던 경봉 스님을 특히 자주뵀습니다. 그때 경봉 스님이 써 주신 게 세속 오계였어요. 그때는 내심 다 아는 내용인데 이걸 써주시나 했는데 살다 보니 정말 중요한 가르침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또 한번은 ‘설후시지송백조(雪後始知松栢操) 사난방견장부심(事難方見丈夫心)’이라는 글귀도 받았습니다. ‘눈이 내린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르름을 알고, 큰일을 겪고 나서야 장부의 마음이 보인다’라는 뜻이죠. 고난이 닥쳤을 때 꿋꿋이 지킬 수 있는 큰 힘이 됐습니다.

Q ─ 작년 말부터 올해 3월까지 개최했던 전시 <대고려, 그 찬란한 도전>이 성황리에 끝났습니다.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은데요.

대고려전은 우리 역사를 주제로 한 전시회 중 17만 2천여 명으로 최다 관람 기록을 갖게 됐습니다. 저는 고대나 근대에 비해 고려에 관한 연구가 덜 알려져 있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고려가 우리나라 문화의 전성기라는 믿음도 있었고요. 당시 고려 건국 1,100주년 기념 이슈가 있었고, 여러분의 기획과 도움으로 고려전이 열리게 됐죠. 금속 공예, 탑, 청자, 금속활자, 불화 등 굉장히 풍부하고도 세밀한 문화를 통해 고려에 대해 다시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습니다. 다만 희랑대사와 제자 왕건의 만남을 계획하며 추진했던 남북 문화재 교류는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해인사가 소장한 보물 제999호 건칠희랑대사좌상 옆
에 북한이 소유한 태조 왕건상을 전시할 예정이었는데 오지 못했죠. 하지만 그 빈자리가 도리어 통일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저를 포함한 여러분들의 마음에 오랜 여운으로 남아 있을 듯합니다.

Q ─ 최근엔 <사명대사 유묵 특별전>을 개최했습니다. 

사명당의 경우 임진왜란 때 승병장이니 굉장히 전투적인 관점에는 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조금 문화적인 관점에서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명당은 어떤 상황에서건 대화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또 시를 쓰며 자신의 소회를 문학적으로 표현하기도 했죠. 훨씬 감성적이고 부드러운 면모가 많다는 걸 이번 전시 를 통해 느끼셨으리라고 생각합니다.

Q ─ 올해 12월부터 내년 3월까지 전시 <가야본성-칼과 현>을 개최한다고 들었습니다. 짧게 전시 소개를 해주신다면요.
가야 전시를 23년 전에 했었는데 지금과는 완전히 다르죠. 기록 자체는 여전히 많지 않지만 지난 30여 년 동안 부지런히 발굴해 유물 15만 점 정도가 들어오게 됐으니까요. ‘칼’은 철을 많이 생산했던 가야의 국력과 기술을 상징하고요. ‘현’은 우륵이 가야금을 만들었던 당시 가야 사람들의 정서와 감성을 표현합니다. 강한 국력, 예술의 부흥에도 불구하고 가야는 왜 망한 나라가 됐을까. 과거 역사에서 오는 메시지를 이번 전시를 통해서도 충분히 생각해 보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전시 가야본성-칼(劒)과 현(絃)

기간: 2019.12.03.~2020.03.01.
장소: 국립중앙박물관

글.
남형권
사진.
최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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