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에세이 - 하루 여행] 역사 문화의 보고(寶庫)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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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에세이 - 하루 여행] 역사 문화의 보고(寶庫)를 가다
  • 양민호
  • 승인 2019.12.04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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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 성흥산성 ─ 사랑나무와 대조사

먼저 찾아간 곳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이자 <서동요>, <육룡이 나르샤>, <호텔 델루나> 등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한 성흥산성(옛 가림성) 사랑나무다. 일출이나 일몰 때 찾으면, 그냥 셔터만 눌러도 인생샷을 얻을 수 있다는 곳이다. 이른 아침 도착해 산성 아래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낙엽길을 사부작사부작 올랐다. 천천히 걸어도 10분이면 넉넉한 거리. 손잡고 오르기에 딱 좋을 높이(해발 240미터). 정상에 다다르니 입구에 아름드리 느티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 있다. 채 떨구지 못한 잔잎들을 매달고 선 나무, 한눈에 봐도 수령이 꽤 있어 뵌다. 함께 다정한 사진을 찍을 연인은 없어도, 잠시 나무 곁에 서서 포즈를 취해 본다. 나무의 숨결이 느껴진다. 저 멀리 겹겹의 낮은 산등성이와 마을과 평야가 소리 없이 펼쳐지고, 광활한 하늘과 대지가 마음으로 밀려든다. 한적함과 공허함 사이 어딘가, 내 안에 쌓이는 감정이 이 계절 아침 풍경과 잘도 어우러지는 듯하다. 내려가는 길에 샛길을 따라 잠시 대조사에 들렀다. 산성보다 고도는 낮지만, 좁고 가파른 경사 길을 타고 들어가는 터라 더욱 은밀한 장소처럼 느껴졌다. 단풍처럼 달린 색색의 연등을 따라 입구 계단을 오르니 작은 전각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그 아담한 공간에 유독 눈에 띄는 거대한 조각상, 보물 제217호 석조미륵보살입상이다. 겉보기엔 4등신에 가까운 신체 비율을 가진 큰 바위 얼굴 부처님, 못생긴 부처님이지만 편안함과 인자함이 그득하다. 바위틈에 자란 소나무도 그런 부처님 풍모에 감복했는지, 지긋이 가지를 내려 부처님을 감싸고 있다. 따사로운 햇살이 부처님 얼굴로, 나무 위로, 대지로 내리고 있었다.

INFORMATION

성흥산 둘레길이 잘 조성돼 있다. 대표 코스는 ‘솔바람길’로 덕고개에서 출발해 성흥산성 사랑나무를 지나 한고개까지 가는 길이다. 4.5킬로미터 남짓 거리로 완주까지 두 시간 정도 소요된다. 백미는 역시 사랑나무. 사랑나무 뒤쪽으로 넓게 펼쳐진 풀밭이나, 고려 개국공신 유금필 장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 뒤 팔각정에서 쉬어 가기 좋다.

충남 부여군 임천면 군사리 산1-1
(성흥산성)

부여군 충남 관광 안내소
041-830-2880

# 정림사지와 부소산 낙화암
점심나절 부여 시내로 들어섰다. 시내는 군청을 중심으로 주변에 많은 볼거리가 펼쳐져 있다. 북쪽으로 정림사지와 부소산성, 백마강 건너로 백제문화단지가 있고 동쪽으로는 국립부여박물관과 백제왕릉원이 가까운 거리에 있다. 시간상 다 둘러볼 수 없어 정림사지와 부소산 일대를 코스로 잡았다. 먼저 향한 곳은 정림사지. 입구를 지나자마자 연지 너머로 교과서에서 봤던 귀한 석탑(정림사지 5층석탑, 국보 제9호)이 눈에 들어온다. 검게 그을리고, 색이 바랜 석탑은 신라의 화려한 작품들과 달리 단아한 멋을 자아내고 있었다. 주변 나무들처럼 석탑에는 세월의 흔적이 가득 서려 있었다. 그 뒤로는 커다란 강당이 하나 서 있는데, 옛것이 아니라 새로 지은 건물이라고 한다. 안쪽 너른 공간에는 석조여래좌상(보물 제108호)이 자리잡고 있는데, 석탑과 마찬가지로 화마의 피해를 입어 형체가 많이 훼손돼 있었다. 두 보물이 이곳이 사지(寺址)임을 거듭 강조하는 듯했다. 비록 남은 것보다 사라진 것이 더 많은 옛터지만, 운치를 만끽하며 걷기엔 더없이 평온하고 아름다웠다. 바깥에서 경험하는 여백의 미란 이런 것이 아닐까 하며, 유유자적 한가로이 한때를 즐겼다. 정림사지를 둘러보고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백제역사유적지구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 일대를 돌았다. 백제의 수도 사비성이다. 그리 넓다고 할 수없는 산성 안쪽으로 삼충사, 군창지, 궁녀사, 사자루, 고란사 등 유적지가 많았는데, 그중 유명한 곳이 낙화암이다. 의자왕과 함께 삼천 명의 궁녀(후궁)가 몸을 던졌다는 설화가 깃든 곳. 낙화암을 제대로 구경하기 위해 인근 백마강 구드래 선착장으로 가 유람선에 몸을 실었다. 잔잔한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는 뱃머리에 서서 낙화암을 바라본다. 가파른 암벽에는 우암 송시열이 적었다는 ‘落花巖’ 세 글자가 남아 떠난 이의 넋을 기리고 있었다. 풍광 좋은 선상에서 맞는 강바람이건만, 어쩐지 처연함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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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소산 낙화암을 둘러보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부소산성(부소산문 혹은 구문)으로 들어와 낙화암(백화정)까지 올라서 주변 경치를 감상하는 것이다. 둘째는, 구드래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고란사 선착장으로 가며 낙화암 전경을 감상하는 것이다. 시간이 촉박하지 않다면, 두 가지 코스를 다 경험해 보길 권한다. 성인 기준 부소산성 입장료는 2000원, 구드래 선착장 유람선 탑승 비용은 왕복 7,000원, 편도 5,000원이다. 참고로 유람선은 따로 출발 시간이 없고 인원이 모여야 출발한다(7인승, 30인승).

충남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부소산성 / 부소산문 041-830-2884

# 만수산 무량사
부여 여행의 마지막 코스 만수산 무량사로 향했다. 오후 4시가 넘어 해가 산머리로 기울었지만, 다행히 볕이 드는 시간에 절에 도착했다. 천왕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서는데, 의외로 절 안이 소란했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인부들 서넛이 나무를 베고 있었다. 극락전 뒤에 있는 큰 나무 중에 병들고 죽은 것을 정리하는 듯했다. 커다란 고목들이 잘려나가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지만, 어차피 나고 죽는 것이 만물의 삶이니 이생이 다했다면 어서 빨리 다음 생으로, 더 나은 생으로 이어가길 바랐다. 극락전 아미타삼존불 앞에 서서 합장하고 나무를 위해 기도했다. 그러고 나서, 본격적으로 경내를 돌며 곳곳에 있는 문화재를 구경했다. 무량사에는 볼 게 많았다. 천왕문 옆에 세워진 당간지주(지방문화재 제57호)부터 시작해 석등(보물 제233호), 오층석탑(보물 제185호), 극락전(보물 제356호), 미륵불괘불탱(보물 제1265호), 매월당 김시습
영정(보물 제1497호) 등 보물만도 여러 점이다. 이중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김시습 영정. 원래는 우화 궁(선방)에 있던 것을 영정각을 새로 지어 봉안했다고 하는데, 그림 속 표정이 어째 심상치 않다. 심술이 잔뜩 난 표정이랄까. 왜 그럴까 싶어 찾아봤더니,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하자 벼슬을 버리고 무량사에 은거한 매월당이 자기 초상화를 그리고선 평하길 “네 모습 지극히 약하며 네 말은 분별이 없으니 마땅히 구렁 속에 버릴지어다”라고 했단다. 아마 주군을 보위하지 못한 자신의 무능을 자책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런 심정이 반영된 초상이 아닐까 싶었다. 절을 나와 일주문 밖에 있는 부도전에 들렀다. 매월당 부도탑 앞에 서니 서슬 퍼런 호통이 들리는 듯했다. ‘뭐, 큰일 했다고 탑까지 세웠느냐!’고. 곧고 굳센 절개가 아직도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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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사 일주문은 앞뒤로 편액이 걸려 있다. 주자서체(朱子書體)라는 독특한 필치로 통도사 범종루, 설악산 신흥사 사천왕문, 여주 신륵사 심검당 등의 편액을 썼던 차우 김찬균(此愚 金瓚均) 서예가의 작품이다. 앞쪽에는‘만수산 무량사’라는 절 명칭이, 뒤쪽에는 ‘광명문’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유심히 보면 양쪽 편액 오른쪽 위 귀퉁이에 대한민국 지도가 그려져 있고, 그 안에 ‘일체유심조’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무량’, ‘마음’, ‘광명’을 연결 지어 여러 가지로 뜻을 헤아려 보는 것도 재미다.

충남 부여군 외산면 무량로 / 무량사 041-836-5066

글.
양민호
사진.
최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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