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아갈 수 없다.”
사회혁신 분야의 세계적 싱크탱크이자 공익재단인 영국 네스타(NESTA)의 최근 발표를 한 문장으로 줄인 말입니다. 네스타는 정치, 경제, 산업, 사회, 예술문화, 기술, 환경 등 여러 분야에서 코로나19 이후를 전망했습니다.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다 기술했는데,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나 격리의 연장은 더 가까운 가족 관계나 우정을 형성할 수 있고, 정신질환과 권태 등 부정적인 반응도 가져올 수 있다.’ ‘AI 원격 교육과 가상교실 그리고 재택 교육에 관한 관심이 지속될 수 있지만, 이 시스템에 탈락한 일부 학생에게는 교육 불평등을 초래한다.’
● 네스타는 추측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의 세계가 동전의 앞뒤와 같이 양면성을 띤 복잡한 사회구조와 삶의 방식, 사상을 확산시킨다는 예측은 거의 확실해 보입니다. 변화는 시작됐습니다. 일상은 이미 달라졌습니다. 손을 깨끗이 씻거나 소독하고, 마스크를 착용하며 일정 거리를 떨어져 앉거나 걷습니다. 재택 근무와 온라인 수업은 노동과 교육 환경을 바꾸고 있으며, 여행과 이동이 사라지자 지구 대기는 깨끗해졌습니다. ‘뉴 노멀(New normal, 새로운 일상)’의 일상화. 바로 ‘포스트 코로나’ 이야기입니다.
● 삶과 밀접하게 연결된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코로나19는 심리적·물리적 변화를 강요했습니다. 포스트 코로나의 양면성이 가져온 변화는 현실이었습니다. 부처님오신날 법요식은 연기됐고, 올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앞둔 연등회는 1980년 이래 40년 만에 취소됐습니다. 신행과 수행의 중심이었던 일상적 법회 역시 잠정 중단됐습니다. 집단적 성격이 강한 종교는 코로나19에 취약했고, 법회 중단의 초강수 거리두기는 사찰 경제 위축이라는 위협으로 다가왔습니다. 사찰 안에서 행해지던 수행과 신행도 부득이하게 비대면 정진 등 개인 수행으로 대체됐고, 대중 수행과 신행의 장점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반면 코로나19는 사회보다 느리게 흐르던 절집 시간의 속도를 앞당겼습니다. 천천히 가던 절집 시간은 사회 변화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한국전통과 불교문화를 지키는 미덕이었습니다. 이제 절집 시간은 4차 산업혁명의 파도에 올라탔습니다. 코로나19는 불교계에 유튜브와 AI(인공지능), VR(가상현실) 등 4차 산업혁명을 빠르게 이식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4차 산업혁명의 산물을 이용할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비대면 온라인 법회와 법문 중계, 불교대학 온라인 강의 등 전에 없던 풍경이 연출되고 있습니다.
● 우리는 또 코로나19와 마주했습니다. 정부 방침이 생활방역으로 완화되는 시점이었습니다.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19는 직원 8,000여 명에 이르는 국내 5대 병원의 확진자를 발생시키며 다시 한국 사회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코로나19는 독감처럼 껴안고 가야 하는 ‘일상적 질병’이 됐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포스트 코로나’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 몇몇 불교 단체에서 포스트 코로나를 준비하는 몇 차례 토론과 연찬회를 열었습니다. 우리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들어가는 방법을 찾으려는 노력이었습니다. 월간 「불광」 역시 주목했습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어떻게 예측하고, 또 뉴 노멀의 일상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한국종교와 불교, 사회, 사찰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리고 ‘코로나 블루’라는 우울증을 극복하는 마음방역과 셀프힐링 방법도 고민했습니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에 지혜를 담으려고 했습니다.
● 『사피엔스』의 저자이자 이스라엘의 미래학자 겸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말을 빌려 봅니다. 그는 ‘코로나 바이러스 이후의 세상’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폭풍은 지나갈 것이고 인류는 살아남을 것이지만 우리는 다른 세상에 살 것이다.” 오늘부터 우리는, 뉴 노멀을 일상으로 받아들여야겠습니다. 더 늦기 전에 말입니다.
글. 최호승(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