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캠퍼스가 문을 닫았다. 강의실, 동아리방, 기숙사 모두 폐쇄됐고 학교는 온라인 강의로 수업을 대체했다. 대학 운영만큼이나 힘들어진 건 대학교 불교동아리들이다. 학생들을 모을 수 없으니 신입회원 모집은 물론 개강·종강법회도 제대로 열기 힘들었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도 ‘불동(불교동아리)’ 학생들의 결집을 이끌어 내는 지도법사 스님들이 있다.
전남대 불교동아리 ‘마음 쉬는 곳’ 지도법사 정응 스님 호출로 각지에 흩어졌던 학생들이 화순 용암사로 모였다. 서울지역 5개 대학을 지원하는 승가모임 ‘석림전법단’에서 국민대 지도법사를 맡고 있는 선우 스님도 서울 금선사 템플스테이로 학생들을 불러 모았다.
(*취재는 코로나19 감염 예방과 사회적 거리 두기를 준수했습니다.)
'마음 쉬는 곳' 정응 스님 전남대 불교학생회
| 다만 마음을 기다릴 뿐
정응 스님은 송광사 교무국장 소임 시절이었던 2018년 가을 충격적인 소식 하나를 듣게 됐다. 광주지역 대학교불교학생회 10곳 중 9곳이 문을 닫았고 남은 한 곳이 전남대라는 것이다. 정응 스님은 한달음에 전남대로 달려갔다. 3평 남짓한 동아리방에는 어두침침한 조명 아래 정리되지 않은 짐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누구라도 발길을 돌리게 만들 만큼 열악한 환경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활동하는 법우도 동아리 회장 단 한 명뿐이었다. 이대로라면 큰일 나겠다 싶었다.
“지역 내 영향력 있는 스님들을 일일이 찾아 후원을 부탁했어요. 여기에 불자 몇 분이 마음을 모으고 제가 자비를 보태 당장 동아리 방사 리모델링에 들어갔죠.”
스님은 현대적이면서도 포근한 카페 분위기를 동아리방 컨셉으로 잡았다. 불상은 물론 커튼, 컵, 옷걸이 등 소품 하나하나까지 직접 고르며 세세하게 신경 썼다. 은은한 조명을 설치하고 한쪽엔 커피머신도 뒀다. 청년이라면 누구든 편하게 와서 쉬었다 가는 공간이 되어주고 싶은 마음에 방사 이름도 ‘마음 쉬는 곳’이라 지었다. 스님은 교내 동아리 박람회장에도 나가 직접 신입회원 유치에 나섰다.
2019년 3월 22일, 새롭게 단장한 동아리방 입소식이 열렸다. 67명의 새로운 신입회원이 ‘마음 쉬는 곳’을 찾아왔다. 지난 몇 년간 신입회원이 1~2명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가히 놀라운 숫자였다. 단 한 명뿐이었던 불교동아리는 현재 100명이 넘는 회원들로 북적거린다.
“재작년에만 해도 동아리가 없어져 가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인원이나 주최하는 행사 규모 면에서나 교내 동아리 중 단연 으뜸이에요.”
2018년 동아리방을 지키던 그 한 명이었던 김승희(27·영어영문학과) 학생의 말이다. 작년에 동아리 회장을 맡아 가장 가까이서 동아리의 변화를 지켜봤기에 지금 동아리 모습에 더욱 감회가 남다를 터였다.
이런 괄목할만한 성과를 낸 비결을 스님에게 물었다. 스님은 명쾌하게 “종교 색채를 뺀 것”이라고 답했다. 종교동아리에서 종교색을 뺀다니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일까.
스님은 현재 동아리 회원 100명 가운데 불자는 16명뿐이고, 나머지는 무교 50명, 부모님이 개신교인 학생 20명, 가톨릭 신자가 15여 명 정도라 한다. 종교도 각기 다른 이 친구들이 현재까지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건 종교 특유의 엄숙한 분위기를 걷어내고 친구들 눈높이에 맞춰 친근하게 다가갔기 때문이라고.
대학원생으로 늦깎이 동아리 활동을 하는 강경석(44·대학원 미술이론과) 씨도 거들었다. “요즘은 모태신앙을 제외하고 청년들이 적극적으로 빠져드는 종교는 사이비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며 “불교에 이제 막 호기심이 생긴 아이들은 템플스테이 가서 108배도 체험해보는 등 일상 속에서 불교를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게 좋은 방향인 것 같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한서진(26·농업경제학과) 학생도 공강 시간 동아리방에 들려 잠깐씩이라도 스님과 차를 마시며 일상적인 얘기를 나누는 시간 자체가 정말 소중하다고 말했다.
전남대 81학번 선배이자 지도교수로서 불교동아리를 16년째 지켜봤던 장춘석 교수(중어중문학과)가 말을 이었다.
“저도 불교동아리 출신인데요, 저 때만 해도 학생들 스스로 불교에 대한 열망이 아주 컸어요. 스스로 불교 공부하고 참선하는 학생이 많았죠. 그런데 지금은 시대가 많이 달라졌어요. 종교 인구가 전반적으로 줄어들고 있고 불교동아리도 한창 내리막길이에요. 그러던 와중에 마침 학생들과 친화력이 좋은 정응 스님이 오시고 승희 회장을 따라 임원진들이 열심히 활동해줘서 굉장히 좋은 성과가 났죠. 제가 지도교수로 있던 시기 중 가장 잘 되고 있어요.”
정응 스님은 이제 막 불교에 접근하는 친구들에게 신심을 강요하기보다는 흥미를 잃지 않도록 호기심을 자극해주고 길을 열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시대 청년들에겐 성적도 취업도 모든 게 다 경쟁이에요. 불안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경쟁에 지친 청년들에게 이곳에서만큼은 말 그대로 ‘마음 쉬는 곳’이 되어주고 싶었어요.”
스님은 불교는 철학적이고 과학적이고 논리적이라는 것, 본래 너희들도 불성이 있어서 노력하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려주려고 노력한다. 학생들에게 어떠한 강요도 하지 않는다.
“언젠가 부처님 가르침이 간절한 때가 올테니 사유는 각자 본인 몫으로 남겨두는 거죠. 사회로 나갔을 때 아니면 좀 더 빨리 여기서 그런 마음이 생기는 친구들도 있겠죠. 다만 저는 곁에 있으면서 때를 기다리는 거예요. 그전까지는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 함께 격의 없이 어울리면서 불교를 재미있게 얘기해 주려고요.”
'석림전법단' 선우 스님 국민대 불교학생회
| 존재만으로도 미소짓는
때 이른 더위가 찾아온 지난 7월, ‘템플복’을 입은 국민대 학생 10여 명과 지도법사 선우 스님이 서울 금선사 뒷산을 올랐다. 금선사가 내려다보이는 넓은 바위 테라스에 도착한 스님과 학생들은 시간을 잠시 붙들고 숲 명상을 시작했다.
“편안한 자세로 살짝 눈을 감아보세요. 깊은 호흡을 통해서 편안하고 고요한 상태로 머물러보세요.”
나무에 기대앉거나 바위에 걸터앉은 학생, 바위 위에 편안하게 누워 선잠이 든 학생, 그 위로 구름이 느리게 흘러갔다.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새소리가 잦아질 때쯤 스님이 나지막하게 말을 이었다.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들리는 이야기를 판단하지 말고 그냥 수용해보세요. 자연의 소리와 내면의 소리, 세상의 소음조차 모두 담아낼 수 있는 내 마음에 공간이 있음을 알아차려 보세요. 마음이 편안해지고 고요해지면 내 존재만으로도 미소짓게 될 거예요. 오늘 그 선물을 온전히 자신 안에 담아 가시길 바랍니다.”
전날 싱잉볼 명상과 스님과 즉문즉답을 한 학생들은 이튿날 새벽예불과 숲 명상 이후 108염주 만들기를 끝으로 1박 2일 동안의 템플스테이 일정을 모두 마무리 지었다.
| 종교에 얽매이지 않아 ‘좋아요’
서울 금선사에서 템플스테이 지도법사로 6년째 소임을 맡는 선우 스님은 석립전법단 단장 일윤 스님의 권유로 올해 초부터 국민대 불교동아리 지도법사를 일임하게 됐다. 국민대 불교동아리는 석림전법단이 지원하는 5개 대학 불교동아리 중 가장 많은 인원인 학생 60여 명이 활동한다. 하지만 올해 선우 스님이 새로 부임하자마자 코로나로 인해 학생들과 만나는 공식 행사가 줄줄이 취소됐다.
“6월 중순 종강법회마저 취소되면서 이대로 손 놓고 있어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임원진 학생 몇 명과 온라인 법회를 준비했어요. 이미 시뮬레이션까지 마쳤고 7월 중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해요. 그전에 서로 모이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 이번 금선사 템플스테이 자리를 마련한 거예요. 온라인 법회를 대비해서 미리 만나 눈 맞추면서 얘기라도 나눠봐야 친근감이 생기니까요.”
학생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석림전법단에서 템플스테이 참가비 일체를 지원했다. 단체 프로그램을 자제하는 시기라 학생들이 모일까 걱정됐지만 다행히 기대 이상으로 호응이 좋았다.
송유진 학생(21·연극학과)은 불교동아리는 아니지만, 학교 커뮤니티에서 템플스테이 참가자 모집 글을 보고 같은 과 친구 셋과 함께 참여하게 됐다.
“가톨릭이 모태신앙이긴 한데 종교를 떠나서 템플스테이는 한 번쯤 체험해봐도 좋겠다 싶었어요. 프로그램 안에 예불시간이 있어 부담스럽다고 스님께 솔직하게 말씀을 드렸더니, 절은 안 해도 된다고 하셨어요. 그런 불교의 접근 방식이 제게 좋게 다가왔죠. 1박 2일 동안 종교에 얽매이지 않고 명상하며 힐링할 수 있어 즐거웠어요.”
곧 군대를 가는 불교동아리 회장 사경빈(21·산림환경시스템학과) 학생과 차기 회장직을 맡게 된 이호진(24·화학과) 학생은 템플스테이처럼 처음 불교를 접하는 친구에게도 열려있는 온라인 법회를 준비 중이다.
“청년들이 고민거리를 스님과 스스럼없이 나누는 형식의 온라인 법회를 조만간 진행할 거예요. 작년까지는 삼귀의, 사홍서원 등 기존 법회들과 똑같은 순서로 진행했었는데, 이번에는 딱딱했던 기존 형식을 탈피해서 불교를 어려워하는 친구들도 편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시도해볼 계획이에요.”
| 가능성으로 푸릇푸릇한 청년
선우 스님은 국민대 불교동아리 지도법사를 시작할 당시 가슴 속에 뜻 하나를 품었다. 종교를 떠나 국민대 모든 학생이 참여할 수 있는 명상 방을 교내에 따로 만들겠다는 것. 하루 15분씩 오롯하게 마음을 내려놓고 쉴 수 있는 공간을 학생들에게 꼭 만들어주고 싶다.
“즉문즉답 시간에 어떤 학생이 고민을 털어놨어요. 지금까지 성실히 공부해온 자신에게 휴식을 주려니까 막상 그 방법을 모르겠다는 거예요. 열심히 공부하는 방법만 배웠지 정작 자신을 위해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는 미처 배우지 못한 거예요. 쉬면 남들보다 뒤처질 것 같아 늘 불안해하며 뭔가를 끊임없이 하는 청년들의 현실이 안타까웠어요.”
스님은 지금의 청년들이 자신을 위해 삶의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세대라고 말한다. 돈이나 명예처럼 사회가 제시하는 가치를 좇지 않고 비교적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관점도 분명하다고. 스님은 이러한 청년의 성향이 불교의 핵심과 잘 맞닿아있다고 설명한다.
“나이가 들면 매너리즘에 빠져 살기가 쉬운데, 청년들은 자신의 삶에 ‘정말 나는 행복한가?’, ‘행복이란 무엇일까?’ 같은 살아있는 질문들을 늘 던져요. 청년들의 이런 생명력, 푸릇푸릇함이 불교와 일맥상통하죠. 불교의 핵심은 자기 삶의 생명력을 놓치지 않는 거니까요. 청년들의 질문에 가장 명확한 해답을 줄 수 있는 것도 바로 명상이고요.”
스님은 불교동아리 인원이 늘어나는 것보다 소수라도 깊이 있게 불교를 알아가는 쪽을 더 선호한다. 동아리가 잘 되고 안 되고는 후차적인 문제일 뿐이라고. 다만 한 사람이라도 불법을 자신의 삶으로 바르게 들여와 삶이 전환되고 행복해진다면 그뿐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의 에너지가 주변으로 퍼져나가게 될 것이라고.
“제가 이제껏 이해하고 체화한 불교는 일상에서 건져내는 생생한 진리 같은 거예요. 참 불법은 종교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불교동아리에서는 ‘불교를 믿어라’가 아니라 불법을 제시해 각자의 삶 속에서 지혜로운 안목을 기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할 뿐이라고 생각해요. 불법의 핵심은 자기 마음을 바라보는 것이고 이건 모든 사람한테 통용돼요. 불교동아리가 종교를 떠나 모든 이들에게 열린 공간이 되어야 하는 이유죠. 물론 그렇게 되기 위해서 저 역시 더 많이 깨어있고 늘 학생들과 함께 호흡해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