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철학자의 사색] “하지만 괴롭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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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철학자의 사색] “하지만 괴롭지는 않습니다”
  • 김용규
  • 승인 2020.12.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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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을 어느 날 갑자기 오른쪽 무릎이 아팠다. 쪼그리고 앉는 것이 불편할 정도였다. 다리를 쭉 펴고 아픈 부위를 살펴보았다. 왼쪽 무릎보다 약간 부은 것처럼 보였다. 그 부위를 오른손으로 가만히 보듬어 만져보고 여기저기 지그시 눌러보았다. 특별히 아픈 지점이 느껴졌다. 어떤 성취를 위해 전날 좀 치열하게 몸을 쓴 것이 원인이겠구나 싶었다. 

한 이틀 쉬면 낫겠지 싶어 쉬었으나 서서 세 시간짜리 강연을 소화하자 통증은 더욱 맹렬해졌다. 하는 수 없이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맨눈으로 무릎을 살피더니 아픈 특정 지점을 단박에 찾아 눌렀다. “여기가 아프죠?” “예.” 짧은 대화 끝에 의사는 엑스레이 사진을 찍으라고 지시했다. 그의 지시에 따라 뼈를 드러내 보이는 사진을 찍었다. 결과는 금방 나왔다. “뼈는 아주 깨끗하고 좋습니다. 하지만 여기 무릎 부위의 근육에 물이 약간 차서 통증이 느껴지고 거동도 불편한 것입니다. 초음파로 정확한 부위를 보며 물을 없애는 주사제를 넣는 방식으로 치료하겠습니다.”

 

| 주삿바늘이 피부를 파고들 때

지시에 따라 치료실 침대에 누웠다. 의사는 초음파로 무릎을 훤히 들여다보았다. 의사가 보는 기계의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기계의 눈처럼 보이는 작은 장비를 왼손에 쥐고 무릎 근처에서 요리조리 움직이자 이내 물이 찬 자리가 드러났다. 간호사는 의사의 오른손에 아주 커다란 바늘의 주사를 건넸다. 그놈은 살다가 본 주사기 중 가장 큰 바늘을 가지고 있었다. 의사가 주사기로 무릎을 겨냥하자 몸에 긴장이 느껴졌다. 

눈을 감았다. 바늘 끝이 피부에 닿는 그 짧은 순간, 몸의 긴장은 절정에 달했다. 몸을 찌르고 들어오려는 바늘과 그 바늘을 거부하고 싶은 본능 사이 충돌이 몸을 긴장시키고 있음을 자각할 수 있었다. 순간 호흡이 멈춘 것에 가깝도록 짧아진 것도 느껴졌다. ‘바늘은 기필코 내 몸을 뚫고 들어올 것이고 나는 저것을 거부하지 못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 찰나적 순간이 마치 삶에서 마주하고 겪는 다양한 문제들과 한 모습인 것처럼 느껴졌다. 삶이 자신 뜻을 따라 움직여주지 않을 때, 특히 그가 아끼던 무엇인가를 대책 없이 잃거나 공을 들여온 것들이 진척이 없거나 허사가 될 때, 우리 마음은 괴롭다. 마음과 하나로 연결된 몸마저 여기저기 긴장의 신호를 보내다가 마침내 어딘가 지독히 아프게 되는 인과율의 축소판처럼 느껴졌다.

순간 긴장을 자각하는 내 안의 더 큰 내가 살아났다. 그는 내게 깊게 숨을 내뱉게 했다. 살갗에 닿은 바늘이 연약한 피부를 아주 천천히 뚫고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날카로운 아픔이 그 자리에 일어섰다. 하지만 오히려 날숨과 들숨의 리듬을 더 깊게 유지했다. 리듬 위에서 마음과 몸은 모든 저항을 내려놓고 바늘의 침투에 완전히 항복하고 있었다. 주삿바늘의 끝이 얕은 거죽을 뚫고 조금 더 깊은 곳의 단단한 살점을 통과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내 바늘, 그 금속성이 차갑다는 것이 느껴지더니 약물이 내 염증 부위로 퍼져나가는 느낌도 정확히 포착되었다. 

초음파 모니터는 무릎 부위가 알아채고 있는 그 상황을 정확히 중계하고 있었다. 제 역할을 다한 주삿바늘은 신속히 몸 밖으로 빠져나왔다. 의사가 주삿바늘을 내려놓자 간호사가 주사를 놓은 자리에 반창고를 붙였다. 손놀림이 능숙하고 민첩했다. 치료실을 나가려던 의사가 한마디 했다. “안 아팠어요? 바늘이 커서 이 주사 치료 겁내는 사람 많은데, 주사 참 편하게 맞으시네.” 의사를 향해 씽긋 웃었다. 그리고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아팠습니다. 하지만 괴롭지는 않았습니다.”

 

| 아픔을 괴로움으로 만들지 않기

삶도 그러하다. 날마다 크고 작은 통증이 주삿바늘처럼 우리를 뚫고 들어온다. 연약한, 삶이라는 살갗은 별다른 대책이 없는 경우가 많다. 살갗을 뚫고 들어오는 그 날카로운 바늘에 별다른 방비 없이 뚫려야 하는 순간마다 우리의 삶은 아프다. 바늘이 굵고 클수록 통증 역시 크고 무겁다. 생명은 모두 아픔으로부터 도피하려 한다. 통증을 회피하려는 것은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에게 새겨진 생존 본능의 발로이기 때문이다. 통증을 빠르게 감지하고 얼른 피할 수 있어야 제 목숨을 지켜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아픔(pain)을 괴로움(suffering)과 분리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는 있다. 다만 호흡하고 받아들이며 지그시 바라보는 힘만 있으면 된다. 이는 우리 안에 있는 큰마음이 갖춘 능력이다. 아픔을 괴로움으로 확장하지 않는 능력, 그 능력을 발휘할 때 우리는 통증 가득한 삶의 한복판에서도 더 높은 차원의 삶을 살 수 있다. 바로 ‘평화로운 삶’ 말이다. 

“나는 날마다 많이 아픕니다. 하지만 괴롭지는 않습니다.”

 

김용규
숲의 철학자. 숲을 스승으로 섬기며 글쓰기, 교육과 강연을 주로 한다. 충북 괴산 ‘여우숲’ 공간을 연 설립자이자 그곳에 세운 ‘숲학교 오래된미래’의 교장이며 ‘자연스러운 삶 연구소’의 대표다. 숲의 가르침을 통해 자신을 사랑하고 마침내 진정 타자를 
사랑할 수 있는 힘을 회복해가는 과정을 사람들과 나누고 있다. 저서로는 『숲에게 길을 묻다』, 『숲에서 온 편지』, 『당신이 숲으로 와준다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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