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량 주변 나지막한 산속을 붉게 물들이던 꽃무릇도 시들어가고 아침저녁 귀뚜라미 울음소리에 가을이 깊어 가고 있다. 또 이렇게 문득 한 해의 끝자락에 서서, 이루지 못한 일들 앞에서, 아쉬워할 것이다. 항상 이런 상황이 되면 누군가는 ‘산다는 것은 이런 거야, 뭐 그런 거지’라며 ‘이런 것’, ‘그런 것’이라는 단어에 한 해의 시간을 함축시킨다. 아쉬움과 고단함을 묻어 버린다. 어쨌든 그런 세월의 뒤안길을 돌아보면 참 다양한 빛깔과 향기가 떠오른다. 길거나 짧은 인연들이 스쳐 지나갔다. 현재라는 시간 그 위에도 오가는 인연들이 있다.
| 생명의 끈을 잇다
몇 해 전이었다.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게시판에 눈길이 머무는 글이 올라왔다. 내용으로 짐작건대 몸을 쉽게 움직일 수 없이 아픈 청취자라고 생각했다. 늘 안타까운 사연을 읽고 나면 마음이 무겁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잠시라도 힘이 되고 힐링이 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되도록 역할에 더욱 전념하는 것 같다. 청취자들 사연을 자세히 살피게 된다. 행여 참여가 뜸하면 ‘혹시 아픈 게 아닌가? 집안에 무슨 일이 있나?’ 염려된다. 그러면 방송이 끝날 즈음 잠시라도 축원을 올린다.
건강이 좋지 않던 이 애청자 사연을 읽을 때면 더 마음이 애잔했다. 방송에 의지하며 생명의 끈을 붙잡듯 하루하루 견디는 느낌을 받았다. 이름 한 번 더 부르고, 이 시간을 함께하는 애청자들이 응원하니 힘내라고 격려했다. 애청자 마음의 끈을 방송으로 붙들기도 했던 시간이었다. 진행자와 애청자 마음이 통해서였을까. 그 애청자는 자포자기했던 생명의 끈을 다시 붙잡기 시작했다. 퇴원해서 남편 도움으로 겨우 일어나고 생활하다 갑자기 의식을 잃고 다시 병원 신세를 졌지만, 끈기 있게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도 어렵게 소식을 전해왔다. 그래도 종일 친구 같은 울림 방송에 의지하며 힘을 내고 있다는 소식에 진행자 모두 쾌유를 빌고 또 빌었다. 그 애청자가 사는 마을로 위문 공연을 가자는 계획까지 세울 정도로 방송 제작진들도 함께 아파하고 염려하며 쾌유를 빌었다.
놀라운 변화를 목격했다. 어느 날 올라온 사연을 보니 요양병원보다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었다. 입술을 깨물고 견디는 심정이 글에서 느껴졌다. 일어나기도 어려웠던 분이 강아지와 함께 짧은 산책도 한다는 내용은 큰 변화였다. 햇살이 잘 드는 집 앞 데크에 빨래를 널었다는 소식도 있었다. 건강한 사람은 몇 분이면 될 일이지만 빨래를 널고 걷는 시간이 얼마나 길었을까…. 또 반나절은 누워서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하지만, 힘든 육신을 움직이며 재활하는 간절함이 절절히 느껴졌다.
또 어느 날은 손편지를 보내왔다. 그 편지를 쓰기 위해 몇 시간을 서서 쓰다 쉬고 다시 쓰기를 반복했다고 했다. 의자에 앉지도 못하고 서서 글을 쓰는 게 얼마나 고된 일인가 싶어 맘이 짠했다. 이 애청자의 의지를 모르는 사람은 왜 그렇게 힘든 일을 하는지 크게 와닿지 않을 수도 있겠다. 필자에게는 투병하는 애청자이자 불자인 그녀가 생명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가 보여 더 애틋하게 다가온 인연이었다.
| 멀티미디어 전법
2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고, 그 애청자는 생의 끝에서 일어섰다. 애청자 내외가 서울에서 병원 정기검진을 받고 방송국 스튜디오를 방문했다. 당시 생방송을 하던 프로그램에 깜짝 출연했고, 힘든 시간을 함께한 진행자와 청취자들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울림이 저를 다시 살게 해 줬어요.”
비록 의자에 앉지는 못했지만, 스탠딩 마이크 앞에 서서 대화를 나누는 부부를 보면서 진행자의 한 사람으로서 감회가 남달랐다. 작지만 위대한 깨달음도 발견했다. 세상에는 아픔을 겪는 사람이 많은데, 누군가의 격려와 응원이 한 생명을 살린다는 점이다. 요즘 애청자 부부는 아픈 추억만 있는 집을 떠나 새집으로 이사를 준비 중이다. 부디 새집에서 다시 만들어갈 삶이 건강하고 지혜롭길 바란다. 신심도 더 돈독해지길. 더불어 울림 라디오를 의지하며 삶의 끈을 놓지 않고 거듭 마음을 다잡고 재활에 온 힘을 다한 애청자에게 두 손 모아 고마움을 보낸다.
방송 포교는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TV를 시청하고 라디오를 청취하는 이들에게 구석구석 다가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사찰에서 스님과 재가자들이 하는 포교도 중요하지만, 이제 멀티미디어를 이용해 다양한 콘텐츠로 그 영역을 넓히는 일이 정말 중요한 불사가 됐다. 20~30년 사이에 멀티미디어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해왔다. 우리는 너무 소극적이지 않을까. 부처님이 마지막 자리에서 남긴 “방일하지 말고 성취하라”는 말씀을 되새겨본다.
진명 스님
시흥 법련사 주지. 1982년 청도 운문사에서 정심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84년 해인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1988년 범어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운문사 승가대학과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선학과를 수료했다. ‘(사)맑고 향기롭게’ 사무국장, 조계종 총무원 문화부장, 중국 북경 만월사와 대련 길상사 주지를 역임했다. 문화재청 문화재건축분과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현재 문화재청 무형문화재 위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