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화미륵암 주지 보현 스님
뉴미디어 시대에 발맞춰 적잖은 불교 단체와 스님들이 유튜브에 뛰어들었다. 그중 화제가 된 유튜브 채널도 있다. 하지만 종교로 범주가 국한된 채널의 한계일까. 구독자 확장세가 더디다. 그래서 ‘요리9단 보현스님’ 채널의 약진이 더욱더 반갑다.
개설한 지 1년 만에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이 채널의 구독자는 24만 5,000명(2020년 11월 17일 기준)으로, 불교 유튜브 채널 중 개인 채널로는 가장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다. 비결이 무엇일까. 유튜버 보현 스님을 경기도 남양주 용화미륵암에서 만났다.
| 비밀 레시피로 요리하는 옆집 언니
“저는 음식 만들 때 무슨 재료 넣을까 미리 생각하지 않아요. 매 순간 식자재 본체가 필요로 하는 재료가 무엇인지 알아차리고 그것을 넣어주기만 하면 만족스러운 요리가 완성되죠.”
보현 스님의 요리 철학이 담긴 비밀 레시피. 이는 ‘요리9단 보현스님’ 채널의 성공 비결과도 맥락을 같이한다. 보현 스님은 유튜브 채널 개설에 앞서 대중의 요구사항을 알아차리고 이를 충족시킬 태도와 콘텐츠를 고민했다. 물론 이 고민은 현재진행형이다.
“제 채널 구독자의 30%만이 불자고, 나머지 70%는 기독교, 가톨릭, 혹은 무교예요. 불자는 제게 절에 앉아 기도하는 스님의 모습을 바랄지 모르지만, 나머지 중생들은 그렇지 않죠. 나보다 특출나고 잘난 사람 앞에서 편한 사람 있나요? 대중은 편하게 기댈 수 있는 옆집 언니 같은 사람을 바라지, 함께 있으면 어렵고 불편한 사람을 바라지 않아요. 그 기대에 부응해 깔끔하게 승복을 차려입은 모습 대신 고추장 묻은 바지 입은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요리 영상을 찍다 실수해도 굳이 편집하지 않고 그대로 내보내고요.”
처음 유튜브 소재를 선정할 때도 불교보다는 대중의 핵심 관심사인 ‘건강’과 ‘음식’을 염두에 뒀다. 그리고 스님의 능력 안에서 대중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콘텐츠에 대해 고민했다. 사찰음식은 가공 없이 원재료를 살린 건강식이지만 대중 입맛에는 밋밋하다. 반면 가공해서 대중의 자극적인 입맛에 맞춘 음식은 건강에 해롭다. 고민 끝에 보현 스님이 떠올린 사찰음식과 대중 음식의 접점은 발효음식이었다.
“발효음식은 식자재에 ‘발효’라는 색을 입혀 입맛을 돋우지만, 가공이 과하지 않아 대중이 먹어도 무해한 중도의 음식이라고 생각했어요. 불교와 대중과의 접점을 찾은 거죠.”
무려 239만여 조회수와 2,200여개 댓글을 기록한(2020년 11월 17일 기준) ‘물과 설탕 없이 오이장아찌 만드는 법’ 영상의 인기에 대해서도 스님은 가려운 데를 찾아 긁어줬을 뿐이라고 설명한다. ‘오이장아찌 쉽게 만들기’에 갈증이 있던 대중에게 비법을 공유해 공감을 얻었다는 것. 하지만 대중의 공감을 얻기 위한 스님의 시도에 불편한 시선을 보내는 이도 있다. 특히 (일반적으로 사찰에서 먹지 않는) 오신채와 까나리액젓 사용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 스님 편일 줄 알았던 불자들이 오히려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 수행자의 격을 떨어뜨린다는 이유였다.
“처음엔 이런 반응에 상처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만둬야 하나 고민도 했고요. 그런데 여기서 멈추면 발전이 없을 것 같더라고요. 더 열심히 수행하라는 채찍이라 생각하고 있는 그대로의 제 색깔을 드러내며 유튜브를 통한 포교에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이제는 팬들이 많이 생겨서 처음 제 채널을 찾은 사람이 ‘스님이 왜 오신채와 액젓을 사용하냐’고 물어보면, 팬들이 ‘이건 사찰음식이 아니라 중생들을 위한 음식’이라며 저 대신 댓글을 달아줍니다(웃음).”
| 엉덩이 무거운 놈이 이기는 싸움
유튜브는 ‘엉덩이 무거운 놈이 이기는 싸움’이란 말이 있다. 구독자 100만 이상의 한 인기 유튜버는 ‘영상 100개를 올리면 그중 최소 하나는 대박이 난다’는 유튜브 세계의 법칙을 말하며 성공의 필요조건으로 꾸준함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 법칙은 보현 스님에게도 유효했다. 보현 스님 채널이 시작부터 탄탄대로는 아니었다. 스님이 처음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올린 고들빼기 담그는 내용의 영상은 3주 동안 단 5건의 조회수가 나왔다. 첫 영상인 점을 고려해도 처참한 성적이었다.
“조급해하지는 않았어요. 대중의 반응이 없어도 내가 하기로 마음먹은 일이고, 언젠가 해야 할 일이니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매일 영상을 촬영해서 올렸습니다. 하루에도 몇 개씩 올렸죠.”
기대하지 않았던 대중의 반응은 3주 뒤 선물처럼 찾아왔다. 영상 조회수와 구독자가 급증하며 채널의 물꼬가 트였다. 효자 노릇을 한 콘텐츠는 바로 처음에 올렸던 고들빼기 영상이었다. 3주 전 영상이 갑자기 인기를 끈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꾸준함의 승리였다.
‘1일 1영상’. 보현 스님이 스스로 다짐한 약속이다. 안정적으로 구독자가 늘고 있는 지금도 스님은 일주일에 편집자가 쉬는 하루를 빼고 매일 요리하는 영상을 1개 이상 올린다. 매일 새 영상을 기다리는 구독자들조차 ‘스님은 대체 언제 주무세요’라며 걱정하는 댓글을 올릴 정도로 ‘열일하고(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스스로 공을 낮추는 보현 스님이다.
“지금 누리는 인기는 내 힘으로 이룬 성과가 아니라 부처님 원력이 내 육신을 통해 실현된 결과라고 생각해요. 모든 게 부처님 뜻이니 구독자 수나 인기에 연연할 필요도 없죠.”
| 밭일도 유튜브도 ‘보현’의 실천행
보현 스님은 한 고령의 팬에게 연락을 받았던 일화를 소개했다. 보현 스님 채널 영상을 여는 인사말, “안녕하세요, 보현입니다!”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한다는 이 팬은, 영상 속 스님 따라 함께 웃고 울면서 소통할 수 있어 행복하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고 한다. 독거노인을 일일이 찾아가 봉사할 수는 없지만, 유튜브를 통한 비대면 소통으로나마 그들의 의지처가 되어줄 수 있다는 점에 되레 감사함을 느꼈다는 보현 스님이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잖아요. 든든한 의지처가 있어야 온전한 길을 걸을 수 있죠. 그 의지처가 꼭 불교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포교 목적으로 시작한 유튜브 채널이지만 종교를 떠나 많은 사람에게 중도의 음식인 발효음식을 소개하고, 마음 쉴 의지처가 되어주고 싶어요.”
인기에 연연하지 않지만, 많은 사람이 영상을 봐줬으면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더 나아가 영상을 본 사람들이 간접적으로나마 불교를 접하고 불교도 의지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주길 바란다.
“앞으로 계획이요? 내일은 내일에 맡기고 현재를 살 뿐이에요. 지금은 밭일하고 채소 씻고 반찬 만들고 김치 담그고 유튜브 영상 올리는 일이 내 수행이고 공부입니다. 제 법명인 ‘보현’도 원래 실천 수행을 하는 보살이잖아요. 이렇게 매일 실천행을 하다 보면 또 다른 원력이 생기는 때가 오지 않겠어요?”
마지막으로 고전하고 있는 불교 유튜버를 위한 조언을 부탁하자 보현 스님은 ‘유튜브를 보고 사찰을 찾아오는 구독자들이 나를 보면 안고 만지고 꼬집더라’는 엉뚱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런 애정표현을 할 정도로 스님을 편하게 여긴다는 뜻이었다. 언제든 편하게 기댈 수 있는 옆집 언니, 옆집 아저씨가 돼야 할 불교는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