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제17대, 28대 총무원장을 역임한 태공당 월주 스님이 22일 금산사에서 법납 68년, 세수 87세로 원적하였다. 스님의 영결식은 7월 22일 오전 10시 금산사에서 조계종 종단장으로 진행된다.
분향소는 김제 금산사 이외에 조계사, 봉은사, 보문사, 도선사, 영화사, 진관사, 법룡사에 설치된다.
월주 스님은 두 번의 총무원장직을 역임하면서 조계종단의 자주화와 개혁을 위해 노력하였으며, 특히 1980년대 후반 이후 우리 사회에 태동한 시민운동을 이끌기도 하였다.
월주 스님은 1935년 전북 김제에서 출생하여, 1954년 금오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56년 화엄사에서 금오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받았다.
스님이 출가했을 무렵, 불교계는 종단 분규가 극심하였을 때이다. 1961년 스님은 분규로 혼란스러웠던 금산사 주지로 취임하였으며, 이후 영화사 개운사 주지를 역임하였다. 조계종단 종무행정에도 참여하여 총무원 집행부와 중앙종회의원을 역임하였다.
1980년 조계종 분규 와중에 제17대 총무원장으로 취임하였으나, 1980년 등장한 신군부에 의해 저질러진 10.27 법난 직후 퇴임하였다.
스님은 1980년 후반 한국사회에 태동한 시민운동의 어른으로 역할을 하였다. 1989년 창립한 경실련의 공동대표를 시작으로 1990년 공명선거실천시민연합 상임공동대표, 1996년 우리민족서로돕기 상임공동대표 등을 역임하면서 시민운동에도 발자취를 남기었다.
불교인권위원회 창립을 주도하였고, 이후 나눔의 집을 설립하여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또한 지구촌 공생회를 설립하여 아프리카 등 어려운 국가에 지원 활동을 전개하였다.
스님은 불교계 안팎으로 시민운동에 진력하다가 1994년 조계종 개혁 이후 총무원장으로 취임하여 조계종단 개혁을 이끌었다. 스님은 종단 개혁과 ‘깨달음의 사회화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조계종 원로의원으로 추대되었다.
시민운동과 종단 개혁을 이끈 스님은 국민훈장 모란장(2000), 무궁화장(2011)을 수여 받았으며, 2012년 만해대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월주 대종사 임종게
天地本太空(천지본태공)
一切亦如來(일체역여래)
唯我全生涯(유아전생애)
卽是臨終偈(즉시임종게)
喝!(할)
하늘과 땅이 본래 크게 비어있으니
일체가 또한 부처이구나.
오직 내가 살아왔던 모든 생애가
바로 임종게가 아닌가.
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