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을까? 묘한 인연이었다. 스님을 꿈꿨고, 출가하고 싶었고, 고독이 좋았다. 한때 미대 진학을 원하던 소년은 스님만 그리기 시작했고, 목각으로 스님을 새기고 있었다. 교과서와 친해지기는 어려웠지만, 스님 이야기 나오는 책은 선뜻 구해 읽었다. 논에서 잡은 미꾸라지로 마련한 용돈은 불교용품 사는 데 썼다. 염주를 몸에 지니면 마음이 편안해졌고, 부여 고란사에 오르면 잔잔히 퍼져나오는 향냄새도 그렇게 좋았다.
소년의 머릿속은 온통 스님 생각뿐이었다. ‘어떻게 하면 출가할 수 있을까.’ ‘스님들은 어떻게 살까?’ 옛 절터를 찾아가 털썩 주저앉아 상념에 젖었고, 자율학습 시간에 훌쩍 나와 올라간 절에서 스님들 그림자를 눈에 담기도 했다.
그렇게 출가 인연이 무르익을 즈음, 소년은 우연히 한 스님을 뵀다. 스님은 된장 두 숟갈을 물에 풀고 시래기를 가위로 듬성듬성 썰어 넣고 끓인 된장국에 밥 한 공기를 후루룩 먹었다. 소년은 눈물이 날 정도로 신심이 일어났다. ‘저런 간소함이 배인 수행자의 모습이 내가 가야 할 길이다.’
봉화 청량사에서 행자 생활을 하던 소년은 해인사, 길상사를 거쳐 안동에 자리했다. IT 강국 한국에서 스마트폰을 먹통으로 만드는 왕모산에 암자 하나 짓고 정진 중이다. 소년은 이제 이렇게 불리고 있다. 안동 왕모산 삼소굴(三笑窟)의 ‘백구와 산스님’. 삼소굴에서 운산 스님과 한나절을 함께 보냈다.
손재주 남다른 ‘태양의 남자’
삼소굴로 향하는 길은 좁고 질척였다. 차 한 대 겨우 지나가는 시멘트 포장길이 끝나고 빗물에 젖어 미끄러운 흙길을 올랐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마중 나온 운산 스님 덕에 가까스로 암자에 올랐다. 스마트폰 안테나는 가물거리다 안녕을 고했다. 먼 길 나선 손님이 행여 길을 잘못 들까 염려한 스님의 얼굴엔 잔뜩 걱정이 서려 있었다. 백구 ‘똘이’가 스님 얼굴을 핥자 그제야 스님이 웃는다. “네가 내 얼굴을 만드는구나. 하하하.”
함께 웃다가도 스님의 손이 신경 쓰였다. 자꾸 시선이 머물렀다. 검은 손톱 중 몇 개는 깨져있었고, 피부는 태양에 그을려 억세 보였다. 사실 모든 이야기가 여기 담겼다. 2012년 봄, 스님은 지금의 삼소굴 터에 자리를 잡았다. 인연 있던 도반이 소개해 준 이 자리를 처음 본 스님은 한눈에 반했단다.
“집도 마당도 텅 비어 있었고, 산짐승 발자국 천지더라고요. 밤이 됐는데도 앞을 보니 마음이 확 터졌어요. 봉우리가 나(이곳)를 중심으로 앞에 펼쳐져 있었죠. 말 그대로 꽂혔죠. 내 인연 자리다, 죽어도 여기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내 땅 한 평도 내 집도 없지만, 단 하루도 후회한 적 없습니다.”
스님은 직접 마당의 땅을 고르고, 황소바람이 들이치는 집 벽에 흙을 발랐다. 마당 한쪽의 쉼터 오두막도, 참선방 삼소굴도 손수 짓고 현판을 만들어 달았다. 600m 떨어진 계곡에서 석간수를 끌어왔고, 임야도 개간했다. 스님에 따르면 한때는 6,000평 정도 일궜고, 지금은 500평 정도 밤낮으로 관리한단다. 목화, 고추, 들깨, 더덕, 오이, 참외, 수박, 마늘 등 온갖 작물을 재배한다. 특히 수확한 목화로 솜이불, 옷, 좌복을 스님 손으로 만들었다. 그뿐만 아니다. 된장, 고추장 등 여러 장류도 담가 마당 앞 독에 보관해뒀다. 나열하는 것도 숨찰 정도로 종일 바쁜 일상이다.
“게으름 부리지 않고 눈을 성성히 뜨고 정진하는 게 수행이죠. 스님마다 각자 처한 환경에서 하는데, 전 80% 이상 자급자족하기로 하고 여기 들어왔어요. 불자나 신도에게 손 안 벌리고 사는 방법이 아닐까 싶어서요.”
워낙 부지런한 성격인데 손재주(?)도 남다르다. 톱질과 망치질은 기본이다. 산에서 주워 온 쓰러진 나무가 삼소굴 공방에서 스님의 손을 거쳐 새집과 다탁으로 다시 태어난다. ‘시크릿 스팟’에서는 특별한 작업이 이뤄진다. 독학으로 배워 기타를 만든다! 스님을 꿈꾸지 않았다면 소년은 ‘미대 오빠’가 됐을지도 모르겠다. “손재주가 남다른 ‘태양의 남자’”라는 농에 스님이 멋쩍게 웃는다.
“사탕발림 자비는 가짜다”
사실 운산 스님은 고독을 즐기지 않는다. 새벽이면 산새들이 자연의 오케스트라를 연주하고, 함께 사는 개들도 하나둘 일어나 스님을 찾는다. 삼소굴에서 백구를 비롯한 ‘똘이’ 넷과 박새, 고양이들과 더불어 산다. 스님에겐 ‘가족’이다.
백구 ‘똘이’가 사냥개 혈통 황구 ‘똘이’에게 허리를 물렸을 땐, 부풀어 오른 허파의 공기를 밤잠 설쳐가며 주사기로 뺐다. 백구와 황구가 싸울 때 떼어놓으려고 휘두른 막대기에 백구의 한쪽 눈이 맞아 실명하기도 했다. 스님은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멧돼지에 받혀서 배가 찢어져 피 흘리는 흑구 ‘똘이’를 들쳐 안고 한 손으로 곡예 운전하며 산길을 내려가 정신없이 병원에 가기도 했다.
접근하기 힘든 새들도 스님 앞에선 무장해제다. 오두막에서 차 한 잔 마실 때 견과류나 씨앗을 뿌려 두면 날아와 거리낌 없이 쪼아 먹는다. 스님의 어깨든 머리 위든 내키는대로 앉는다. 새집에 구렁이가 들어가 새끼들을 다 잡아먹었을 땐 마음이 너무 아팠다. 자연의 섭리지만 스님은 그렇게 구렁이가 미웠단다. 지금은 구렁이가 닿지 않게 특수 장치(?)로 막아뒀지만, 구렁이에게 슬그머니 또 미안해지는 스님이다. 이들은 독선(?)에 사로잡혔던 스님을 일깨운 스승이자 도반이기도 하다.
“생사가 따로 없는데 죽음은 슬퍼할 일도 아니라고 여겼어요. 초월한 듯한 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죠. 여기서 산짐승들과 교감하고 호미질하면서 살다 보니 말짱 허튼 생각이더라고요.”
스님의 이야기를 끊고 싶지 않았다. 고독과 가족을 키워드로 시작한 대화는 수행자의 자세라는 소참법문으로 이어졌다.
“부처님 말씀에 물방울 하나에도 삼천대천세계가 있다고 합니다. 현미경 같은 카메라로 들여다보면 그 물방울 안에 부화한 아주 작은 치어, 미생물들이 다 있죠. 미물들과 처지를 바꿔 생각하려고 합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논리로 인간 외 생명은 다 밟혀 죽어도 괜찮고, 빌딩 지으려고 자연을 훼손해도 좋고, 짐승은 인간의 먹거리여도 되는 건가요? 수행자가 이 논리 안에서 산다는 게 견디기 힘듭니다. 우리의 작은 숨결과 입김에도 보이지 않는 미물이 멸합니다. 알게 모르게 다치는 녀석들도 많을 거예요. 최소한 나를 위해서 생명체를 학대하지 말자는 거죠.”
불교는 지혜와 자비의 종교라는데, 자비는 어디에 있고 과연 무엇일까. 스님의 소참법문이 계속됐다.
“가슴에서 눈물겹도록 체화돼서 나와야죠. 24시간 자비를 입에 달고 살아도 실제 자비는 1%도 발현되기 힘들어요. 미물들을 보고 우주를 보고 미물들의 소중함이 내 존재 가치와 똑같다는 진리를 온몸으로 느끼는 게 자비입니다. 호미질하다 지렁이가 잘려 죽으면 ‘넌 이렇게 잘려 죽을 존재는 아닌데…’ 미안하고 미안해요. 우리는 숱하게 이런 경우를 겪지요. 그럴 때 자신의 양심은 아파야 합니다. 새벽예불 전 도량석은 도량을 깨끗하게 하는 의식이지만, 목탁 두드리며 경내를 돌면서 새벽에 잠이 덜 깬 미물들이 혹시 밝혀서 죽지 말고 도망가라는 신호이자 자비입니다. 발우공양도 마찬가지예요. 발우에 담긴 소중한 음식들이 어떻게 내 앞으로 왔는지 곰곰이 생각하고 감사히 먹고 남기지 않는 거예요. 너도나도 자비입네 사랑입네 하면서 신자들을 가르치지만, 사탕발림 자비는 가짜입니다.”
생명의 소중함 알리는 유튜브
운산 스님은 길 끝에 암자 짓고 정진 중이면서도 세상 가장 핫한 플랫폼으로 세상과 소통한다. 유튜브 <백구와 산스님TV>이다. 촬영은 스님이 하고 영상 편집과 섬네일(thumbnail, 인터넷에서 작은 크기의 견본 이미지) 제작 등 기술적인 부분은 서울호서예전 유튜브 제작 계열 학생들이 재능기부하고 있다. 스님의 소통 콘셉트는 자비다.
“너와 내가 한 몸이라고 백날 떠들어봐야 공감하지 못한다”는 스님은 스마트폰 카메라의 시선을 삼소굴 일상 곳곳에 둔다. ‘이소 중인 새끼 딱새’, ‘백구와 동네 한 바퀴’, ‘야생꿩 장똘이’ 등 산짐승과 교감하는 시간을 보고 공감하는 구독자들은 자연스럽게 자비를 체험하게 된다. 채널에 업로드한 영상을 하나하나 찬찬히 보면 ‘사탕발림 자비’는 없다. 구독자들도 다 안다. 조회수가 67만인 ‘야생꿩이 발치에서 노니는 놀라운 광경! 장끼와 친구 되기’에 댓글이 증명한다.
“스님의 선한 마음씨가 고스란히 산새와 장똘이에게도 전해졌네요. 보는 내내 맘이 포근해지네요.”
“산천초목이 스님의 친구이자 가족이지요. 장똘이도 기분 좋게 맛나게 먹고 고마움을 벌써 느끼고 담엔 가족을 데리고 올 수도 있겠네요. 이심전심이죠. 살아 숨 쉬는 생명의 존귀함을 또 한 번 되새겨 봅니다.”
“생명 있는 존재는 소중합니다. 스님의 아름다운 마음 잘 보고 갑니다.”
“스님의 동체대비 마음을 미물들도 알아보는군요. 가슴이 훈훈합니다.”
유튜버이자 산스님 운산 스님은 산에 들에 산짐승과 함께 살어리랏다. 일상의 소소한 언행이 자비로 통했다. “순간순간 저와 맺어진 인연에는 선량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보살피고 공감하고 싶다.” 맑고 자비로운 도량석 같은 스님의 말이다.
사진. 유동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