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통 세상은 전쟁과 대통령 선거 얘기뿐이다. 도심 포교의 일선에 있는 소승은 이 주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소용돌이 속에서도 산승들의 여유가 부러울 뿐이다. 하지만 한 생각 돌이켜보면 전쟁이 없던 시절은 인간사에 없었다. 이런 혼돈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았던 옛 스님들은 현실을 어떻게 대처해 나갔을까? 그분들의 상황대처법을 배운다면 더 현명하게 지금의 사태를 직시하고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대혜종고(大慧宗杲, 1089~1163) 스님은 금(金)나라와 대치하는 격변의 시대인 남송 때의 스님이다. 강원에서 지금까지도 교재로 사용하는 초학스님들의 선 지침서인 『서장(書狀)』의 저자이기도 하다. 『서장』은 대혜 스님이 당시 남송의 사대부들과 주고받은 편지글 모음이다. 사대부들의 선수행 관련 의문과 스님의 답변을 추린 편지글을 모아놓은 것이다. 스님은 당시 대표적인 주전파(主戰派, 전쟁을 주장하는 파)였다. 주화파(主和派, 전쟁을 피하고 평화롭게 지내자고 주장하는 파)인 재상 진회(秦檜, 1090~1155) 일파와 맞서다가, 16년간 귀양살이하게 된다. 이 힘든 시기에도 참선법을 지도하며 재가불자들의 수행의식을 고취하려 했다.
늙은이가 태어나자마자 야단을 떨어(老漢纔生便着忙)
미치광이처럼 일곱 걸음을 걸었네(周行七步似顚狂).
수많은 어리석은 남녀 속여 놓고는(賺他無限癡男女)
눈 부릅뜨고 당당하게 지옥으로 들어가네(開眼堂堂入鑊湯).
__ 대혜종고
나라의 명운이 다해가는 암흑의 시기에도 선(禪) 정신에 투철했던 스님의 기백이 보이는 선시다. 부처님에 대한 지극한 존경을 반어법(反語法)으로 표현했다. 진제의 진리 속에서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끼어들 틈이 없다. 광인(狂人)은 부처이고, 부처는 광인인 것이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어리석은 모든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서원을 할 수 있겠는가? 평범한 이는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부처는 광인이다. 더 달콤하고, 더 탐스러운 유혹은 중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보다 치명적이고, 보다 자극적이어야 중생은 관심을 보인다. 그래서 무색무취(無色無臭)인 불교를 포교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 힘든 일임을 소승은 통감하고 있다.
중생의 이목을 끌기 위해서는 속여야 한다. 속여서 같이 가야 한다. 대승보살의 운명이자 소명이다. 하지만 수행자 본인의 마음마저 속이면 안 된다. 늘 자신에게 당당하고 솔직담백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수행의 향기와 힘이 나온다. 대혜 스님의 당당함은 그곳에서 나온 것이다.
국민의 안녕과 국토의 보전, 그것은 실천이 결여된 언어를 통해서가 아니라, 행동으로만 이룰 수가 있는 것이다. 보현보살의 행원력(行願力)은 중생의 세계 속에서는 적극적인 실천 행동만으로 시현(示顯)되는 것이다. 중생의 안락과 평온을 위한 일이라면 지옥행도 스님을 막을 수 없다.
대혜 스님은 스승인 원오극근(圓悟克勤, 1063~1135) 스님의 평생 역작인 『벽암록(碧巖錄)』 목판을 불태웠다. 수행자들이 문자에만 빠져 선의 정수를 등지고 있음을 안타깝게 여겼기 때문이다.
대혜 스님은 자신이 처한 사회현실을 외면하지 않았다. 주전파와 뜻을 같이했던 이유는 외세 침략에 백성들이 풀처럼 스러지고 있음에도 그저 묵묵히 앉아, 선에만 몰두한다는 것은 선의 정신을 잃었다고 본 것이다. 사대부들의 참선 지도에 더욱 큰 관심을 가진 것은 일상에서 깨달음을 얻음으로써 자신의 삶은 물론 모순된 현실을 바꾸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그래서 스님에게는 현실을 도외시한 형이상학적인 선은 죽은 선[死禪]이다.
높은 언덕이나 육지에는
연꽃이 피지 않고(高原陸地 不生蓮花)
낮고 습한 진흙에서 이 꽃이 핀다
(卑濕淤泥 乃生此花).
『유마경』에서 보이는 이 선시는 대혜 스님이 이루고자 했던 세상이다. 전쟁의 참상 속에서도, 파당으로 분열된 혼돈의 세계 속에서도, 우리는 무너질 수 없다. 우리는 절망할 수 없다. 연꽃은 절망 속에서, 혼돈 속에서 피어나기 때문이다.
“날마다 경전의 글을 보니
옛날에 알던 친구를 만난 것 같구나.
자꾸 경 보면 참선공부
장애 있다 말하지 말라.
한번 보면 한 번 더 새롭기만 하네.”
위 시는 『서장』에서 보이는 유일한 여성인 태사장공(太師張公)의 부인인 진국태 부인의 선시다. 법명은 법진(法眞)이며, 두 아들은 남송의 조정에서 큰 벼슬에 오르게 된다. 이참정, 유보학과 함께 스님께 인가받은 『서장』의 3인방 중 한 분이다.
스님의 선에 대한 가르침은 승속과 남녀를 차별하지 않았다. 지금은 당연한 사실이 그때는 당연하지 않던 시절이었음에도, 스님의 가르침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었다. 불성에는 차별이 없다.
“태어남도 이러하고
죽음도 다만 이러하네.
게송을 남기거나 남기지 않는 것
무엇이 그리 대단한가?”
대혜 스님의 열반송에는 깨달음에 대한 한 조각 미련도 보이지 않는다. 스님의 육신은 활활 타오르는 불꽃과 연기 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중생이 집착하던 그분의 깨달음도 함께 사라졌다. 어디에도 깨달음은 없다. 하지만 있다. 얻으려고 하는 자는 얻을 수 없고, 보려고 하는 자는 볼 수 없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우리의 부력(富力)이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는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늘님께서 물으신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나의 소원은 오직 대한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물으시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다. 또 그다음 소원이 무엇이냐고 세 번째 물으셔도 나는 더욱 소리 높여 내 소원은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__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 중에서
러시아는 전쟁을 통해 총과 칼로 남의 나라를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문화의 힘으로 세계를 굴복시켜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생전 김구 선생님께서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기생충>이라는 영화에서 우리는 계층 간의 소외와 부의 편중을 세계인에게 말하고, <오징어 게임>이라는 드라마에서 세계인에게 가진 자들의 폭력성에 대해 경고하며, 생명의 존엄성을 일깨우고, 방탄소년단은 노래에서 절망하는 세계의 젊은이들에게 삶의 희망과 소중한 삶의 가치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대혜 스님께서 꿈꾸는 세상, 김구 선생님이 보고 싶었던 세상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중생의 안락과 평화, 이것이 그분들의 최종 목적지이며, 붓다의 목적지인 것이다.
석두 스님
1998년 법주사로 출가했으며 해인사 봉암사 등에서 20안거를 성만했다. 불광사, 조계종 포교원 소임을 역임했으며, 현재 봉은사 포교국장으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