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悲로 자나깨나 전법하는 '불심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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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悲로 자나깨나 전법하는 '불심 프로그래머'
  • 최호승
  • 승인 2022.08.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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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초대석] 비로자나국제선원 주지 자우 스님
서울 서대문구 홍제천 곁 비로자나국제선원에서 자나깨나 전법을 궁리하는 자우 스님. 머리가 복잡하고 힘에 부칠 땐 안산 초록숲길을 포행하며 기운을 얻는다. 

부처님오신날이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다. 이메일 한 통이 왔다. 2주 간격으로 거의 거르지 않고 전시 소식을 보내는 곳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읽다 멈췄다. 제목이 심상치 않았다. 공부하는 비구니스님들이 서울에서 임시로 머무는 공간인 나란다수행관의 전세금 마련이 어려워 존폐 위기에 놓였다는 소식이었다. 메일을 보낸 주지스님의 글에는 초조함과 간절함이 있었다. 전화기를 붙잡았고, 약속도 잡았다.

일요일, 늦은 오후는 붙잡고 싶다. 부르지도 않은 월요일이 성큼 발을 밀어 넣는다. 카페 까루나(KARUNA)의 문을 열었다. 휴일 늦은 오후의 햇볕이 함께 밀려 들어왔고, 모르는 팝송이 흥얼거렸으며, 커피 향은 그윽했다. 카페 창밖으로 이따금 지나가는 사람들과 홍제천 그리고 초록 이파리들이, 카페 안으로는 불교 예술작품들이 시선을 붙들었다. 비로자나국제선원 주지 자우 스님이 시간의 침묵을 깼다. 

“어서 와요.”

학인스님들의 의지처 나란다수행관
그늘을 예상했지만, 밝았다. 다행히 급한 불은 껐단다. 전세이니만큼 언제 또 방을 빼야 할지 모른다. 전법을 목표로 지방에서 상경해 학업을 이어가는 비구니스님들의 임시거처가 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자우 스님뿐만 아니다. 이곳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전법의 꿈을 키워가는 학인스님들도, 이곳의 후원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나란다수행관은 그네들에게 꼭 필요한 의지처다. 

급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좀 어떠세요?
“주변에 좋은 분들이 계셔서 일단 해결은 했어요. 모금 운동도 하고 좀 빌리기도 하고…. 빚을 좀 졌네요.”

급한 불은 껐지만, 나란다수행관 같은 곳은 여전히 필요할 텐데요.
“그렇죠. 제가 느낀 어려움이 시작이었어요. 산에서 내려왔을 때 머물 곳이 없는 거예요. 은사스님은 산사에 계시지 그렇다고 도시에 방은 없지. 다행히 저는 2002년 국제포교 과정을 이수할 때 은사스님 소개로 삼각산 봉정암에 방을 얻어 영어와 경전 공부를 이어갈 수 있었어요. 그런데 이런 인연이 없는 스님들은 진짜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막막할 노릇이죠.”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한 대학생 새내기를 떠올리면 쉽다. 자취방 하나 구하기도 어렵고 설사 구했더라도 시간을 쪼개 아르바이트와 공부를 병행하다 보면 지치기 마련. 출가해서 전법에 원력을 세운 스님들도 다를 바 없다는 게 자우 스님의 말이다.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사례도 여럿이다. 운 좋게 학교 옆에 방을 구해도 월세 내려면 절에서 부전(副殿, 법당에서 향과 초를 올리고 마지, 불공, 염불, 재를 올리는 소임)이나 기도해서 보시를 받아도 월세 내면 생활비가 빠듯하다. 지방에서 수업이나 스터디가 있는 날 올라오면 승복 입고 모텔이나 찜질방을 전전하는 일도 있다고. 따가운 세간의 눈총은 모두 비구니스님의 몫으로 고스란히 돌아온단다. 

한 번은 30대 초반의 비구니스님이 자우 스님을 찾아와 하소연하더란다. 그 스님은 지방에서 매주 올라와 수업을 들어야 하는데 3만 원, 5만 원 여관방을 옮겨 다니며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어느 날이었다. 여관을 나오면서 문득 후회가 밀려들었다. ‘지금 여기서 내가 뭘 하고 있지….’ 스님은 자우 스님에게 “포기하고 싶다”라고 고백했다. 아쉬운 대로 비로자나국제선원 지하의 선무도 수련 공간을 내어줬다. 공부는 공부대로 하고 소임은 소임대로 살고, 갖은 오해를 받으니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번아웃이 올 수밖에 없는 여건이다. 

여간 힘든 조건이네요.
“그나마 출가해서 세운 전법 원력이 굳건해서 버티긴 해요. 하지만 건강에 무리가 오기도 하는데, 제가 아는 선에서 박사학위 마치고 암이 발병해서 입적한 비구니스님이 세 분이나 돼요. 누구나 원력을 갖고 출가하는데 그 마음이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웠어요. 최소한의 여건이라도 만들고 싶었죠. 버겁지만 나란다수행관을 시작했고, 이렇게 유지하는 이유에요.”

2018년 자우 스님은 불쑥 전세를 냈다.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홍제천 곁에 있는 비로자나국제선원 지척에 빌라를 계약, 나란다 1수행관, 2수행관으로 이름 붙였다. 어찌어찌 전세 대출 외 돈을 빌려 낡은 내부까지 수리해 비구니 학인스님들의 방부를 들였다. 비로자나국제선원 사중 일을 도와달라는 요청은커녕 쌀과 김치 등 각종 음식과 음식 재료도 공양했다. 지금까지 나란다수행관을 거쳐 간 비구니스님만 25명. 석사와 박사과정을 마친 비구니스님들이 어린이·청소년, 장애인(농인) 등 여러 분야에서 부처님 법을 전하고 있다. 지금도 7명의 비구니스님이 나란다수행관에서 전법 원력을 다져가는 중이다. 자우 스님은 온전한 나란다수행관 건축을 꿈꾼다. 

자우 스님은 후배스님들의 전법 원력을 오롯이 지켜서 그네들도 밝게 웃길 바란다. 

비悲로 흐르는 비로자나의 전법 원력
비로소 자우 스님의 원력이 언뜻 보였다. 원력의 시작은 어디서부터일까? 강원도 영월의 작은 시골에서 자란 스님은 6남 1녀 중 셋째 딸이었다. 어려운 처지인 사람을 챙기시던 어머니 손 잡고 절집을 드나들었지만, 결정적 불연은 원주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 찾아왔다. 학교에서 배운 세상과 다른 불교, 그동안 알고 있던 불교가 아닌 불교를 만났다. 

운명은 우연처럼 찾아왔다. 법웅사 고등부법회에서 법사의 『반야심경』을 강의를 들었다. 법사는 이렇게 물었다. “자, 여기에 기와와 도자기가 있다고 하자. 이게 같을까? 아니면 다를까? 같습니다.” 형상이 다른데 도무지 같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법사의 설명은 이랬다. 

“기와를 쪼개고 쪼개서, 도자기를 쪼개고 쪼개서 분자 상태로 만들면 어떨까요? 더 분해할 수 없을 정도까지 쪼개면, 본질은 같아요. 현상과 형상에 얽매어서 사물을 판단하지 마세요.”

절하고 기도하는 어머니 옆에서 지루하게 느껴지는 불교와는 달랐다. 과학과 수학을 좋아하던 소녀는 “불교는 과학”이라고 확신했고, 그렇게 불교라는 다른 세계로 빨려 들어갔다. 

출가 인연은 어떻게 찾아왔나요?
“스님들이 출가를 권했고, 가족들은 반대하고, 앞으로 인생의 방향은 결정해야 하고…. 할까 말까 고민만 하니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고 10년 후에도 이럴 것 같더라고요. 스님 소개로 청주 안심사에서 지장기도를 했어요. 절에 다녔지만 지장보살이 누군지도 모를 때였어요. 매일 2,000배하고 기도하면서 『지장경』을 읽기 시작했는데, 지장보살의 원력을 만났죠.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의 고통을 잠시라도 대신 받겠다. 잠깐이라도 쉬게 해주십시오’라는 구절을 읽고, 하염없이 눈물이 났어요. 전 작은 생채기에도 온몸이 아픈데, 지옥의 고통을 다 받겠다니…. 결심이 섰어요. ‘이런 삶을 산다면 후회가 없겠다!’ 저는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싶었거든요.”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직장 다니다 잠시 쉴 때였다. 영어에 관심이 많아서 영어로 불교를 가르친다는 연등국제선원에서 공부하며 일을 도왔다. 불현듯 눈 푸른 외국인 비구니스님 무진 스님이 출가를 권했고, 지장기도 하면서 읽은 『지장경』에서 지장보살의 원력과 인연이 닿았다. 자우 스님은 비(悲)에 눈을 떴다. 26살 때 일이었다. 

출가를 단행했다. 울산 가지산 석남사로 출가한다는 편지를 놓고 집을 나왔지만, 식음을 전폐한 어머니 소식에 돌아와야만 했다. 어머니의 청을 다 들어주며 지내다 서울에 가서 취직한다며 집을 나섰다. 그리고 은해사 백흥암에서 행자생활을 마치고 계를 받고, 공주 동학사 강원(승가대학)을 졸업했고, 다시 갈림길에 섰다. 출가의 인연, 출가수행자로서 받은 시주의 은혜를 어느 쪽으로 회향할지 결정해야 했다. 길 없는 길 위에 서기 전 떠났던 인도 성지 순례길에서 만난 기연으로 한국불교 세계화와 국제포교에 마음을 굳혔다. 

조계종의 국제포교 과정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대만 연수를 다녀와 스리랑카 캘라니아대학에서 불교학 석사를 마치고, 인도네시아에 있는 해인사 포교원 주지를 맡게 되면서 본격적인 국제포교를 시작하게 됐다.

비로자나국제선원은 우여곡절 끝에 탄생했다. 자우 스님은 “암 보험금을 종잣돈으로 시작했다”라며 웃었지만, 사연이 녹록지 않다. 지금이야 확장 이전 불사로 서울 홍제천 옆에 자리 잡았지만, 10년이 걸렸다. 2006년 보증금 2,000만 원에 월세 60만 원으로 시작했다. 

인도네시아에서 돌아와 부산 범어사 대성암 선방에서 잠을 안 자도 화두가 성성할 만큼 공부가 잘 되자 ‘3년 내 성불하겠다’라며 더 정진했단다. 무리했던 걸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고, 병원에서는 갑상선 암이라고 했다. 황망함에 정신없이 수술했고, 진단했던 의사에게 인수인계 받은 의사는 갑상선 암 3기였다고 했다. 수술은 잘 끝났고, 쉬어야 했다. 

지금은 괜찮으시죠? 
“네. 수술 후 쉬면서 국제포교를 연구할 공간이 필요했어요. 보증금 2,000만 원이 필요했는데, 암 보험금이 나온 거예요. ‘전법하라고 부처님이 주시는 돈이구나’ 생각했죠. 그렇게 구한 공간에서 치료도 받고 공부도 하는데 사람들이 ‘부처님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인등을 좀 해야 할 것 같다’ 등 점점 포교당으로 변해갔어요.” 

이름이 왜 비로자나국제선원인가요? 
“비로자나불은 법신불이잖아요. 자신이 법신인데, 그걸 모르고 살고 있어요. 각자의 법신을 찾는 일이야말로 이 시대에 가장 고귀한 일이며 모두에게 의미 있는 일이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래서 절을 운영한다면 꼭 '비로자나'를 넣겠다 했죠. 비로사, 비로암은 좀 이상했고(웃음), 국제포교할 거니까 국제선원이라고 했어요.” 

불심 설계하는 프로그래머
2006년 시작한 비로자나국제선원은 자우 스님의 원력 비(悲)를 세상 밖으로 드러낸 도량이었다. 4년 만에 ‘어린이청소년중심도량’으로 선정되고, 3년 뒤인 2013년엔 스님이 ‘포교대상 원력상’을 받았다. 스님은 비(悲)를 더 확장했고, 지금의 비로자나국제선원 자리로 확장해서 이전했다. 눈에 띄는 공간은 1층 갤러리카페 ‘까루나’. 이름부터 자비희사(慈悲喜捨) 중 ‘남의 괴로움을 덜어주려는 마음’ 비(悲)를 뜻하는 팔리어다. 

카페 벽면에 불교미술작품이 걸리면 ‘까루나’는 갤러리의 화랑으로 변신한다. 전시는 2주에 한 번꼴이니, 40회가 넘었단다. 대관료는 일반 미술관의 10% 정도이지만 무료로 빌릴 땐 그림의 판매수익금을 6대 4로 나눈다. 

도량 1층에 카페를 만든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가정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보통 엄마가 기도하고 아빠랑 아이는 절에 오지 않는데, 엄마가 기도하는 동안 아빠랑 아이는 카페에서 편하게 차나 커피를 마시며 기다릴 수 있잖아요? 지역 주민들도 오가며 쉬어가는 쉼터도 될 수 있고. 잠깐 와서 쉬면서 스스로 다독이면서 치유하는 시간을 갖는 공간이면 좋겠어요. 그렇게 불교의 문턱을 낮추고 싶었죠.” 

단순히 음료만 마시는 공간이 아닌데요? 
“작가가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든 작품을 오래 두고 볼 수 없는 게 아쉬웠어요. 작가에 대한 예의도 아닌 것 같고. 일반적으로 전시관 대관은 비싸잖아요. 불교미술하는 가난한 젊은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는 기회를 주고 싶었어요. 그분들에게 보내는 작은 응원인 셈이죠. 언제든 와서 예약만 하면 갤러리카페 '까루나'에서 작품을 전시할 수 있어요.” 

몇 번의 갈림길에서 비(悲)로 방향을 잡은 자우 스님은 거침없다. 비로자나국제선원과 카페 ‘까루나’, 나란다수행관에 이어 성신여대 불교학생회 지도법사, 미래세대위원회 2기 위원 등 부지런히 비(悲)를 퍼 나른다. 청년들 고민을 상담하면서 괴로운 부분은 공감하고 좀 더 나은 인간으로 사는 방향을 알려준다. 

스님 표현대로 하자면 ‘불심 코딩(coding, 컴퓨터 프로그래밍)’이다. 어떤 전법 프로그램이든 프로그램을 경험한 이들이 불심을 발현하도록 정확한 명령어를 입력한 프로그램을 설계한다는 게 스님의 설명이다. 출가 전 스님이 직장에서 한 일이 컴퓨터 프로그래밍이었다는 사실은 안 비밀! ‘불심 코딩’은 여름에 하는 ‘영어 담마 캠프’가 대표적이다. 아이들이 절 곳곳에 숨겨진 보물을 찾으면서 절과 가까워지게 하는 게 그 예다. 훗날 자라서 그 절에 가면 당시 추억을 떠올리며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고, 그때 보물을 찾았던 전각의 이름과 불보살을 기억하도록 만드는 프로그램인 셈이다. 지도교사 30명 참가자 70명 등 100명이 참여할 정도로 인기다. 최근엔 캠프 비용 인상을 요청하는 곳이 있어 산사를 찾는 일은 접었지만, 여전히 비로자나국제선원에서 캠프를 연다. 스님은 절에서 아이들이 까르르 웃고 떠들면서 행복해하는 모습이 제일 좋단다. 

고군분투다. 그런데도 아직 종교는, 불교는 미래세대인 아이와 청년에게 멀게 느껴진다. 불교 문턱에서 서성이거나 머뭇거리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청했다. 스님은 망설임이 없다. 

“행복으로 가는 길은 부처님 가르침에 있어요. 뭐 하세요? 어서 오세요!” 

사진. 유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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