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가결사체 선불장’이 6월 17일부터 24일까지 참선 리더 스님 양성 집중수행 프로그램 ‘선불장’을 문경 세계명상마을에서 진행했다. 학인스님 포함 비구·비구니스님 20명이 7박 8일간 집중수행에 참여했다. 일정 중 4일을 동행한 불광미디어가 금강, 각산, 마가, 월호 스님 등 지도법사 4명의 실참과 스님들의 정진을 4번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연골이 닳아 주사 맞으면서 목숨 걸고 왔다. 불조(佛祖, 부처님)와 은사, 시주의 은혜를 갚고 싶은 간절한 마음 들고 왔다. 간화선 선불장에 ‘리더십’, ‘아카데미’ 이름을 붙였다. 이 단어에 책임을 져달라. 은혜를 잊지 않겠다.”
찻물이 적당한 온도로 끓기도 전이었다. 선배스님이 결연함을 꺼냈다. 비구니 정혜 스님의 결연함은 다담(茶談) 공간의 공기를 뜨겁게 만들었다. 애초 ‘승가결사체 선불장’이 선불장(選佛場, 부처를 선발하는 도량)을 마련한 원력과 맥이 닿은 결심이었다. 선백(禪伯, 도를 갖춘 스님의 존칭)을 탄생시키겠다는 원력으로 시작한 선불장. 해서 방부(房付, 선방에 안거를 청함) 신청자 중 절실한 출가수행자 20명만 선발했다.
지도법사 금강 스님은 해맑게 웃어 보였다. “우리에게도 선불장”이라면서 “공부가 깊어지는 만큼 자비심이 차오르더라. 이만한 도량 이만한 간절함이 없다. 같은 출가수행자로서 함께 탁마하자”라고 결연함으로 달뜬 분위기를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찻잔에 너무 뜨겁지도 않고 미지근하지도 않은 찻물이 천천히 찼다. “온 우주를 생각하며 마시라”는 금강 스님의 말씀을 곁들인 차는 출가수행자들의 가슴을 적셨다. 팽주(烹主, 차를 끓여 손님에게 내놓는 사람)를 맡은 사미(비구계 받기 전 남성 출가자)의 얼굴에 미소가 퍼졌다.
오전 8시에 시작한 짧은 1시간의 다담 후, 선방 입구에서 목탁소리가 들렸다. 좌선이다. 가만가만 걸음으로 선방에 든 출가수행자 20명이 좌복에 앉았다. 6월 초여름의 태양이 대지를 달구기 시작했다.
| 합장이 기울어진다면 다시 세워라
“합장이 자꾸 앞으로 기운다. 어느 순간 초발심 같았다. 바로 세웠다.”
금강 스님의 수행 강의 첫마디다. 막 방선(放禪, 좌선 등을 마치고 쉼)한 출가수행자들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금강 스님은 수행해야 하는 이유를 운문암서 정진했던 자신의 일화로 설명했다.
“20명이 함께 살았다. 첫 철을 지내는데, 언행이 거친 스님에게 무의식이 작동해 멀리했다. 어느 날, 방선하고 나가보니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모두 빛나 보였다. 소나무만 좋아했던 ‘나’는 사라지고 없었다. 멀리했던 스님에게 미안했다. 마침 함께 포행하면서 고백하고 사과했다. 그리고 좋은 수행 도반이 되어 준 것에 감사의 말을 전했다. 알고 보니 그 스님도 내게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었는데, 말도 하지 않고 눈도 안 맞추니 ‘두고 봐라’하는 맘이 생겼단다. 좋아한 만큼 미움도 커지는 법이다.”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자신의 경험, 지식 등으로 분별해서 현상[상想]을 판단하고 차별한다는 이야기다. 수행으로 분별심과 상(想)이 생기기 전 지점으로 가면 자비심이 차오른다는 설명이었다. 화두(話頭)로 공부하는 간화선은 그 지점에 이르는 가장 효과적인 길이라고 금강 스님은 강조했다.
“화두는 의문 덩어리다. 역대 조사들의 선문답이 아니다. 역대 조사들의 선문답에 의문이 생기고 그게 덩어리가 되면 화두다. 구름(번뇌망상, 분별심 등) 위에서 구름을 내려다보면서 ‘아 이 구름을 내가 만든 거구나’ 할 수 있게 된다. 의문이 생기면 그 자리를 관찰하는 위빠사나와는 다르다. 간화선은 (구름을) 투과하고 투과하고 투과해 구름을 끊어내는 공부다.”
| 독참獨參, 시동부터 걸고 밟아라!
문경새재에서 속리산 쪽으로 흐르는 백두대간 줄기에 솟은 신령스러운 암봉으로 유명한 희양산. 1년에 한 번 부처님오신날에만 산문을 여는 조계종 종립특별선원 봉암사가 자리한 명산이다. 그 옆으로 문경 세계명상마을이 자리했다. 출가수행자들은 희양산 숲속을 걸으며 명상했다. 끊이지 않고 화두가 들리는 단계는 아닌 만큼 걷기명상으로 천천히 걸었다.
금강 스님이 지도하는 마지막 날, 백미는 수행 면담 시간이었다. 면담을 원하는 출가수행자 2명이 대기하고 다른 출가수행자는 입선에 들었다. 면담은 선문답처럼 머리 아프지 않았다. 출가수행자로서 갈피를 놓친 방향을 바로 잡는 시간이었다.
“잘 오셨습니다. 어떤가요?”
“행복합니다.”
금강 스님이 차를 우려 찻잔에 따랐다.
“은사스님에게 마삼근을 받았습니다. 호흡할 때 내 쉴 때 ‘마삼근…’하는데 제대로 하고 있는지요. 진전이 없습니다.”
“염화두(念話頭)는 나무아미타불 염불하는 게 더 낫습니다. 마삼근, 마삼근 되뇔 때 의문이 들어야 합니다. ‘부처가 무엇인가’라고 물었는데 ‘마삼근(麻三斤)’이라고 답했습니다. 어째서 마삼근이라 했는가?”
“의문은 드는데 진도가 안 나갑니다.”
“마삼근 했을 때, 저절로 의문이 생겨야 하고 딴 게 들어가면 안 됩니다.”
“머리로 헤아리면 안 된다는 말씀인지요?”
“가슴에 의문이 들어쳐야 합니다. 어째서 마삼근이라고 했는가. ‘아, 모르겠다.’ ‘정말 알고 싶다.’ 지금 알고 싶은 게 가득 차 있지 않나요?”
“꼭 그렇지 않은지도….”
“마삼근은 본래면목을 알고 싶다는 열망입니다. 삼세근이 아니에요. 왜 그렇게 했는지 헤아리는 게 아닙니다. 바로 본래면목을 드러낸 겁니다. ‘그런데 난 모른다, 알고 싶다’라는 간절함만 있어도 됩니다.”
“굳이 호흡에 맞추지 않아도 됩니까?”
“호흡 맞춰서 염하는 것은 자신이 스스로 믿지 못해서 그런 겁니다. 헤아리는 게 아니고 궁금함이 있어야 하는 거죠. 이 자체가 화두입니다. 마삼근이 화두가 아닙니다. 마삼근에서 일어나는 의문이 화두입니다. 말에 끄달리지 말아야 합니다. 부처가 마삼근일 이유가 없잖아요. 그냥 뱉었을 뿐입니다. 그렇게 답한 당신의 면목을 드러낸 것 뿐이지요. 부처를 정확히 이야기 했는데 내가 못 알아듣는 겁니다. ‘당신은 당신의 본래면목을 드러냈는데 난 모른다. 궁금하다, 알고 싶다.’ 여기에 (의문을) 둬야 합니다. 나를 못 믿어서 잊을까 봐, 딴생각 들까 봐 자꾸 마삼근 염하는데, 부를 때만 생각나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조금 와 닿는 것 같습니다.”
“자칫 의심은 안 들고 분심(憤心)만 들면 헛심만 쓰는 겁니다.”
“분심보다 의심이 먼저라는 말씀인지요.”
“분심은 엔진입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지요. 시동은 바로 의심입니다. 시동도 안 걸렸는데 너무 밀지 마십시오. 시동 한 번 걸어보세요.”
“조금 감이 잡힌 것 같습니다. 시동 한 번 켜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면담 중 찻잔이 세 번 기울었다. 출가수행자와 금강 스님은 서로에게 합장으로 맞절했다.
| 독참獨參, 개의 불성은 버려라!
시간표에 ‘수행 면담’이라고 적혔지만, 사실상 독참(獨參)과 제창(提唱)이다. 독참은 수행자가 스승과 일대일로 만나 화두에 대한 자신의 경지를 점검받는 제도로 입실(入室)이라고도 한다. 수행자들에게 선의 핵심을 알려주는 제창은 화두를 해결하려는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더러 면담은 누군가에게 선배스님과 나누는 인생상담이기도 했다. 출가수행자로서 주지소임을 맡아 절을 운영하는 책임자로서 고민을 털어놓고 위로를 받기도 했다. 화두를 받지 못한 출가수행자도 있었다. 절 일을 돕느라 공부가 늦은 스님이었다. “부처님 제자가 법을 알아야지. 모르고 무슨 중노릇하느냐”라며 공부를 다그쳤다. 여기저기 두드리고 다녔지만 입으로만 부처님 법을 떠들고 다니니 구업을 짓는 것 같더란다. 다른 방법이 필요했고, 선불장을 두드렸다.
“(간화선은) 여기가 처음입니다. 안 하던 거 하니까 좋은 듯 하지만 몸이 힘듭니다.”
“오늘 지나면 괜찮아집니다. 안 쓰던 근육을 써서 그래요.”
“어떤 화두를 잡아야 할지요?”
금강 스님이 또 차를 우렸다.
“무자 화두를 드세요. 한 스님이 조주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개에게 불성이 있습니까?’ ‘무(無).’ 개의 불성 유무는 이미 2,600년 전에 끝난 이야깁니다. 그걸 묻는 게 아닙니다. 답답하지 않나요? 불성을 묻는 겁니다. 자신의 불성을! 자신의 본래면목을 찾아야 하는데 개 핑계를 대면서 ‘당신의 불성을 한 번 보여주시오’라고 하니까 ‘무!’ 해버린 겁니다. 그 경지를 아시겠어요?”
“모릅니다.”
“모르면 의문이 생기는데, 그게 화두입니다. ‘무’라는 글자 써놓고 화두라고 하지 않습니다. 조주 스님의 ‘무’가 화두가 아닙니다. 어째서 무라고 했는가. 그 어째서를 자신의 경험과 지식으로 분별하지 마세요. 그 벽을 투과하십시오.”
면담 중 찻잔이 몇 번 기울었던가. 출가수행자와 금강 스님은 서로에게 합장으로 맞절했다.
문경 희양산 세계명상마을에 땅거미가 깔렸다. 3시에 시작한 면담은 6시간 넘게 진행됐고, 어둠이 내렸다. 면담 마친 수행자들은 다시 좌복에 앉았다. 희양산에 모인 눈 푸른 납자들이 선불장의 두 번째 밤과 화두를 부여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