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은 어디서 올까. 어떤 이는 총구로부터 나온다고 하고 또 어떤 이는 돈이나 권력 혹은 명성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그런 노력이 얼마나 허망하게 끝맺음하는지는 인류의 역사가 잘 설명해 준다. 아마도 진정으로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려는 인간의 의지와 노력일 것이다. 과거의 전통과 영광을 재현하려는 데 역량을 낭비하거나 혹은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를 끌어와서 걱정, 근심하는 것이 아니다. 매 순간순간의 에너지를 포착하고 몰입하려는 시도가 의지와 노력이다. 그래서일까. 불교 수행자들의 수행은 전통을 불문하고 한결같이 바로 ‘지금 여기’에 집중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화두를 들든 호흡에 집중하든 가리키고 있는 것은 바로 ‘지금 여기’이다.
매 순간 오롯이 지금, 이 순간과 이 자리에 몰입했을 때 비로소 나와 세상을 새롭게 하는 순간이다. 우리는 어쩌면 늘 반복되는 수행, 반복되는 일상에서 매 순간을 놓치기 때문에 세상의 경이로움과 마주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빛의 화가’의 탄생과 인상주의
여기 수행자와도 같이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을 살다 간 남자가 있다. 바로 클로드 모네(Oscar-Claude Monet, 1840~1926)이다. 삶의 매 순간을 포착하며 치열하게 살다 간 이 남자는 산업혁명과 대혁명의 기운이 유럽을 휩쓸 무렵, 프랑스 파리에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다. 가수였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 모네는 어릴 적부터 예술가를 꿈꾸면서 자란다.
어린 모네는 학교에서도 선생님이나 친구들의 캐리커처를 능숙하게 그렸는데, 순식간에 인물의 특징을 잡아내는 데에 탁월한 재능을 보인다. 청년이 된 모네가 파리에 갔을 때만 하더라도 화가들은 이전 세대 거장들의 화풍을 모방하는 데 그칠 뿐 창의적인 작업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래서인지 모네가 또래의 젊은 신인 화가들과 교류하게 되는 것도 이때부터였다.
그 와중에 모네는 프랑스와 알제리 간의 전쟁(1861)에 참전했는데 장티푸스에 걸려 전역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한다. 당시 그림이라고 하면 사실적이고 세밀한 묘사, 정교한 명암법을 바탕으로 한 역사화, 종교화가 대세였다. 즉 성서와 역사나 신화 속 인물을 주제로 한 아카데미즘이 주류로 인정받고 선호됐다.
모네의 눈에 비친 당시 화풍은 창의성 없는 진부한 반복과 복제에 불과할 뿐이었다. 모네는 오랜 전통과 관습에서 벗어나고자 새로운 상상력과 시도를 이어간다. 모네는 집 밖의 자연으로 시선을 돌린다. 모네는 ‘빛의 화가’라고 불릴 만큼 야외의 광선 묘사를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을 캔버스에 담아내는 데 탁월한 재능을 선보인다.
급기야 사물 본래의 색채가 아닌 눈에 비치는 대로 그려내는 기법으로 ‘인상주의’라는 새로운 사조를 만들어 낸다. 모네를 비롯해 르누아르, 피사로 등 회화의 새로운 기법을 고민하던 이들은 19세기 당시 프랑스 주류 미술을 대표하는 살롱전에 번번이 출품을 거절당하자, 그들만의 전시회를 개최한다. 하지만 그들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주목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무시당하는 지경에 이른다. 그런데도 그들은 꿋꿋하게 자신들만의 방식을 고집했고, 자신들을 ‘인상주의’로 부르기 시작한다. 자연이 주는 순간적인 인상을 포착해서 아름다움으로 승화한다는 그들의 창의적 도전은 결국 ‘인상주의’라는 새로운 시대사조를 열었고, 그들에 의해 예술은 다시 진화하고 도약한다.
“ 내 운명은 자연의 법칙이나 자연의 조화를 그림에 표현하는 것이다. 그 이외의 다른 운명은 단 한 번도 갈망한 적이 없다.”
멈춘 듯한 화폭 안에 그린 순간의 변화들
모네는 그의 작품 <인상, 해돋이>(1872)를 통해 인상주의의 대표적 작가로 손꼽히게 된다. 지금은 인상주의 작품이 누구에게나 친숙하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수많은 비평가가 조롱과 비판을 담아 모네의 <인상, 해돋이> 작품을 깎아내린다. 비평가들은 모네에게 자연의 모습과 본질도 그리지 못하는 기본기도 모자란 수준이라고 조롱한다.
보는 이에 따라서는 거친 붓질로 대충 그리다가 만 그림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인상파들의 관점은 독특하다. 그들은 ‘빛이 곧 색채’라는 생각으로 빛을 통해 사물의 다양하고 깊은 아름다움을 찾아낸다. 아무리 익숙하고 오래된 사물일지라도 시시각각 달라지는 빛에 의해서 전혀 새로운 작품이 탄생하게 된다. 그래서 인상주의 화가들은 그 새로운 빛을 찾아서 실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캔버스를 들고 야외로 나가게 된다.
특히 모네의 작품 <산책>(1875)을 보면 야외에서만 느낄 수 있는 봄바람과 언덕의 초록빛이 잘 표현되어 있다. 이 작품에서 모네의 붓질은 강렬하고 거칠지만 따사롭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이 작품은 어느 화창한 봄날, 모네가 아내 카미유와 아들 장을 데리고 산책하러 나가서 그린 것이다.
바람은 무색이지만 빛의 도움을 받아 하늘과 구름, 언덕, 심지어 아내의 치맛자락에도 바람이 색채가 되어 묘사된다. 언덕 위에 피어난 꽃과 풀잎들이 크게 흔들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살랑대는 봄바람인 듯하다. 하지만 언덕에 서 있어서일까. 금방이라도 바람이 불어 부인이 손에 쥔 양산이 날아갈 것만 같다. 분명 언덕 위에서 바람이 불어대는 그 순간을 포착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모네가 뒤에서 불러 세웠는지 두 사람이 되돌아보는 순간이 더해져 그 찰나의 긴장을 더한다. 마치 순간이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순간이 영원으로 이어지는 듯하다. 이제 날씨마저도 모네의 손에 의해 색채가 되어 살아난다.
“지치고 고단한 사람들에게 수련이 흐드러진 고요한 연못을 바라보며 평온하게 명상에 잠길 수 있는 공간을 선사하고 싶다.”
모네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 바로 <수련(Water-lily)> 연작이다. 모네 예술 최후의 결정판이라고 할 정도로 그의 모든 예술적 역량이 이 작품을 통해 드러난다. 파리에 있는 오랑주리 미술관(Musée de l'Orangerie)이 <수련> 연작만을 위해 따로 전시관을 만들었을 정도이니, 그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이 연작은 중심 소재인 연못의 수련이 일몰, 구름, 버드나무 두 그루 등 다른 소재와 어우러져 다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림이 높이 2m, 총길이 87m에 이르는 타원형의 전시실을 가득 채운다. 그 타원형의 가운데에 앉아서 고개를 빙 돌려보면, 마치 수련이 가득 피어난 호수의 수면 위에 나 자신이 반쯤 잠겨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모네는 그의 생애 동안 총 250점의 수련 연작을 그릴 정도로 수련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그의 작품 속 수련이 사실 그가 파리 근교의 ‘지베르니’에 정착했을 때 공들여 가꾸기 시작한 대규모의 정원과 연못 속의 실물들이라는 사실이다. 그가 얼마나 정원을 조성하는 데 공력을 들였는지는 이 작품을 통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모네에게 주제는 수련이지만 그 수련이 주변 환경과 어우러져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모습은 매번 다르게 태어나고, 그의 강렬한 붓질과 화사한 색채 묘사로 전혀 새로운 그림이 탄생한다. 그가 그린 대부분 풍경화가 그렇듯이 수련 연작 또한 비슷한 구도와 장소에서 여러 차례 작업을 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같은 풍경일지라도 다른 시간, 다른 색채로 음악처럼 변주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같은 대상을 그렸는데도 매번 다 다른 감흥을 주게 된다. 실제로 그의 초기 수련 작품은 선명한 형태를 띠다가 나중에는 추상적인 인상을 준다.
“정중동(靜中動) 동중정(動中靜)”이라는 말이 있듯이, 연못 속 모든 것이 멈춰 있는 듯하지만, 연못에 비친 하늘과 구름, 꽃들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동시에 자연이 춤추는 듯 약동하지만 고요하다. 이처럼 그의 <수련> 연작을 감상하다 보면 익숙하고 평범한 일상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지금, 이 순간에 나를 둘러싼 여기 이 존재들은 얼마나 새롭고 귀한 존재인가. 매 순간 새롭게 깨어나고 춤을 추며 노래한다. 그것을 느끼고 깨달을 수 있는지 없는지는 바깥의 햇빛만이 아니라, 내 마음속 그것을 바라보는 눈빛에 달려 있다.
모네, 빛이 되다
이처럼 창의적인 도전으로 세상을 변화시킨 모네였지만, 모네 역시 당대에는 그다지 인정받지 못한다. 그의 사후,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에서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의 눈에 띄어 재조명받기 시작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모네는 사후에도 변화를 열망하는 후배 예술가들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에 대해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고 있다.
이 세상 누구보다도 빛을 사랑했고 빛을 통해 자연을 사랑하는 법을 깨달았던 모네였지만, 나이가 들면서 백내장을 앓게 된다. 점점 시력이 손상되면서 시야는 흐려졌고 색채 감별이 어려워진다. 요리사가 미각을 잃은 경우와 마찬가지로 화가에게 백내장이라는 질병은 사실상 사망 선고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모네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두 번의 수술을 감행하면서까지 예술혼을 마지막까지 불태우다 1926년 빛이 되어 세상을 떠난다. 그의 나이 86세였다. 모네는 백내장으로 더는 작업을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쇠약해지는 가운데 숨을 거둘 때까지 이 말을 되뇌었다고 한다.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시력을 다 잃기 전에 모든 것을 그려보고 싶습니다.”
보일 스님
해인사로 출가해 해인사승가대학을 졸업, 서울대 대학원 철학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박사를 수료했다. 현재 해인사승가대학에서 경전과 논서를 강의하며, 예술과 인공지능을 주제로 붓다의 지혜를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