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주의자가 손해를 감수하는 이유
머리가 둘이고 몸이 하나인 새가 있었다. 아니 두 마리의 새가 하나의 몸을 공유하고 있었다고 해야 옳다. 한 마리(머리)의 이름은 가루다였고, 또 한 마리(머리)의 이름은 우바가였다. 어느 때 우바가가 잠들어 있는데, 가루다는 깨어 있었다. 마두가 나무에서 꽃이 한 송이 떨어지자 가루다는 생각했다.
‘저 맛있고 향기로운 마두가 꽃을 내 입으로 먹더라도 우리는 한몸이기 때문에 나와 우바가가 함께 기갈을 면하게 되고 기운을 얻게 되리라. 나와 우바가를 위해서 저 맛있고 향기로운 마두가 꽃을 먹어야겠다.’
가루다는 자신과 우바가를 위해 마두가 꽃을 섭취했다. 향기롭고 미묘한 기운에 잠을 깬 우바가는 가루다에게 물었다.
“내 배 속에서 맛있고 향기로운 기운이 올라오는구나. 어찌 된 일이냐?”
“네가 잠들어 있을 때, 내 머리 옆으로 마두가 꽃 한 송이가 떨어졌다. 이에 나는 이 꽃을 내 입으로 먹더라도 우리는 한몸이므로 너와 내가 함께 기갈을 면하게 되고 기운을 얻게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너의 단잠을 깨우지 않고 그 꽃을 먹었다.”
우바가는 화가 났다. ‘맛있는 것을 얻고서 내게 알리지 않고 혼자서 먹었단 말이지. 반드시 앙갚음해야겠다.’
어느 날 가루다가 잠들어 있을 때 홀로 깨어 있던 우바가는 가루다에게 앙갚음을 하기 위해 일부러 독초를 먹었다. 독초를 먹으면 자신도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가루다에게 앙갚음하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몸을 공유하고 있던 가루다와 우바가는 함께 죽고 말았다.
『불본행집경』에 등장하는 이 이야기에서 가루다는 붓다의 전생이고, 우바가는 데와닷따의 전생●이다.
바보 같은 이기주의자들은 우바가와 같다. 바보 이기주의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챙기고 남에게는 손해를 끼친다고 생각하지만, 남에게 손해를 끼치는 것이 자신에게도 손해라는 것을 잘 모르거나, 손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남에게 손해를 끼치고 싶은 욕망과 분노 때문에 자신에게도 해로운 일을 저지르는 것이다.
●『불본행집경』, 동국역경원, 427~428쪽.
승단을 분열시키기 위한 데와닷따의 제안
마가다국 사람들 사이에 데와닷따가 아자따삿뚜 왕을 이용해 스승을 죽이려 했다는 소문이 널리 퍼지자, 데와닷따는 설 자리가 없어졌다. 데와닷따의 야욕을 확인한 아자따삿뚜는 붓다에게 귀의했고, 데와닷따에게 음식을 보내는 일을 그만뒀으며, 웬만해선 거르지 않던 문안 인사도 하지 않았다. 데와닷따가 탁발을 나와도 마을 사람들은 음식을 보시하지 않았다.
궁지에 몰린 데와닷따는 자기 깐에는 신묘한 방안을 생각해냈다. 그는 붓다를 찾아가 말했다.
“부처님, 우리 승단이 커지면서 비구들이 점점 나태해지고 있습니다. 이에 저는 승가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다음과 같은 율법을 제안합니다.”
첫째, 평생토록 숲속에서만 생활하고 사원에서 살아서는 안 된다.
둘째, 오직 탁발을 통해 얻은 음식만을 먹어야 한다. 공양청을 통해 재가자의 집에서 음식을 먹는 것은 범계 행위가 된다.
셋째, 분소의나 남들이 입다 버린 누더기로만 가사를 만들어 입어야 한다. 재가자가 새 천으로 만들어준 의복을 입으면 범계를 저지른 것이다.
넷째, 나무 아래서만 머물러야 하고, 지붕이 있는 집에서 자는 것은 범계 행위다.
다섯째, 어떤 경우에도 고기와 생선을 먹어서는 안 된다.
언뜻 그럴듯하게 들리는 제안이었다. 데와닷따는 붓다의 반대가 있으면 그것을 이용해 이익을 챙겨보겠다는 심산이었지만, 결국은 이익이 아니라 치명적인 독이었다. 붓다는 데와닷따의 제안을 듣고 말했다.
“데와닷따여, 비구들은 자신의 건강 상태에 따라 숲속 은둔지나 마을 근처 승원에서 생활할 수 있다. 탁발을 통해 공양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공양청에 의해 대중공양을 받는 것도 괜찮다. 분소의든 재가자가 보시한 가사든, 삿된 욕망에 따른 것이 아니라면 무방하다. 나는 이미 비구들이 1년 중 8개월 동안은 나무 밑에서 기거하는 것을 허락했다. 비구들이 자신을 위해 잡은 짐승의 고기나, 잡는 것을 본 짐승의 고기나, 잡는 소리를 들은 짐승의 고기가 아니면, 고기도 먹는 것을 허락하였다. 데와닷따여, 그런 일에 마음 쓰지 말고 오직 바른 견해로 바르게 수행하는 것에 몰두하여라.”
만약 붓다가 데와닷따의 제안을 받아들여 엄격한 계율을 적용했으면, 불교는 세계적인 종교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붓다는 최대한 많은 사람이 불법의 바다에 들어와서 진정한 자유를 찾기를 바랐기 때문에, 지나치게 엄격한 계율은 곤란하다고 생각했다. 열반 직전에 붓다가 아난다 존자에게 소소한 계율은 폐지해도 좋다고 말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시대와 환경이 달라지면 지킬 수 없는 계율이 있다는 것을 붓다는 알고 있었다.
데와닷따는 고행을 좋아하는 인도의 수행자들이 강경한 수행 노선에 속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붓다가 고행도 쾌락도 아닌 중도를 통해 바른 깨달음에 이르는 훌륭한 방법을 가르쳤으나, 데와닷따는 오히려 ‘수행이란 모름지기 고행이어야 한다’는 초심자들의 고정관념을 자신의 명예와 이익을 위해 활용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가루다와 한 몸을 공유하고 있는 우바가가 가루다를 죽이기 위해 독초를 먹은 것과 같은 행위였다. 가루다와 우바가가 공유한 몸은 곧 승가와 다름없다.
데와닷따, 독자적으로 포살 의식을 진행하다
붓다가 자신의 제안을 거절하자 데와닷따는 오히려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젊은 비구들과 지혜가 부족한 비구들을 만날 때마다 말했다.
“고따마의 수행 방법으로는 궁극적인 진리에 도달하는 것이 요원하다. 우리는 더 강력하게 수행해야 한다. 그런데 고따마는 내가 주장하는 다섯 가지 율법을 거부했다. 이제 나와 함께 제대로 된 수행의 길을 가보지 않겠는가?”
이렇게 말하며 데와닷따는 출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초심자들과 수행에 진전이 없어 실망하고 있는 수행자들을 유혹했다. 그들은 강력하고 철저한 율법의 길에 대한 기대감으로 데와닷따를 따랐다.
데와닷따가 승단 분열을 획책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붓다는 데와닷따를 만나 조용히 타일렀다.
“데와닷따여, 그대가 하는 일은 옳지 않다. 승단의 불화를 야기하는 자는 1겁 전체에 지속되는 죄를 범한 것이 되어, 1겁 동안 지옥에서 온갖 고초를 겪을 것이다. 반대로, 불화하는 승단의 화합을 회복한 자는 1겁 동안 천상의 삶을 누리게 된다. 부디 승단의 분열을 획책하지 마라.”
그러나 데와닷따는 자신의 계획을 포기하지 않았다. 데와닷따는 거리에서 만난 아난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난다여, 오늘부터 나는 나를 따르는 비구들과 따로 포살 의식을 행할 것이다.”
독자적으로 포살 의식을 진행하는 자리에서 데와닷따는 말했다. “비구 고따마는 무집착으로 이끄는 다섯 가지 율법을 거부했소. 나와 나를 따르는 비구들은 우리를 진리의 길로 인도할 율법을 따를 것이오. 이 율법에 찬성하는 비구들은 나를 따르시오.” 주로 왓지국 출신의 500명의 젊은 비구가 데와닷따를 따랐다. 데와닷따는 그들과 함께 가야산으로 갔다.
이 소식을 들은 붓다는 사리뿟따와 목갈라나 존자를 불렀다.
“그대들은 어찌 그리 동정심이 없는가? 신참 비구들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음에도 만류하지 않았단 말인가? 어서 그들에게 가서 그들을 정신적인 파멸로부터 구하도록 하라.”
수다원이 된 5백 명의 비구들 되돌아오다
데와닷따는 추종자들을 모아놓고 강의하고 있었는데, 멀리서 사리뿟따와 목갈라나가 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500명의 비구가 자신을 따르는 것에 크게 고무돼 있었던 데와닷따는 젊은 비구들에게 말했다.
“비구들이여, 고따마의 상수제자 사리뿟따와 목갈라나가 이리로 오고 있다. 바야흐로 새로운 세계가 열리고 있음이다. 박수로 맞이해주기를 바란다.”
“어서 오십시오, 위대한 수행자들이시여! 이제 나와 함께 새로운 개념의 승가를 건설해보십시다.”
데와닷따는 두 장로에게 자신의 양옆에 앉기를 권했으나, 두 장로는 거부하고 다른 적당한 자리에 앉았다.
젊은 비구들을 향해 오래도록 열변을 토하던 데와닷따는 잠시 멈추고 사리뿟따와 목갈라나 존자에게 말했다.
“오래도록 강의했더니 몹시 피곤하오. 이제부터는 나를 대신해서 존자들이 비구들을 지도해주시오. 나는 잠시 등을 바닥에 대고 눈을 붙여야겠소.”
목갈라나 존자는 승가를 분열시킨 이는 지옥에 떨어져 엄청난 죄과를 치른다는 것을 신통력으로 보여줬고, 사리뿟따 존자는 피해야 할 것과 따라야 할 것을 설했다.
“비구들이 따라야 할 것은 엄격한 율법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오. 부처님은 고기를 먹는 것이 비린 것이 아니라, 욕망을 억제하지 않고 맛있는 것을 탐내며 부정한 생활에 어울리며 허무론으로 바르지 못한 행동을 하는 완고함과 어리석음이 비린 것이라 하셨소. 더 이상 바르지 못한 법에 속지 마시고, 감각을 지키고 다스리며, 바르고 솔직한 것을 즐기고, 집착을 떠나 고통을 버리는 길을 가기 바라오.”(『숫따니빠따』 「비린 것」)
사리뿟따 존자의 설법을 들은 비구들은 모두 수다원과를 증득했다. 성자의 반열에 든 그들은 데와닷따가 삿된 견해로 자신들을 유혹했음을 명확하게 깨달았다. 사리뿟따 존자와 목갈라나 존자는 500명의 비구와 함께 새처럼 하늘을 날아서 죽림정사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데와닷따의 때늦은 뉘우침과 때이른 죽음
500명의 추종자가 날아서 죽림정사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들은 데와닷따는 중병에 걸렸다. 그의 병은 아홉 달 동안 계속됐다. 그는 측근 제자들에게 말했다.
“부처님을 뵙고 싶다. 부처님을 뵐 수 있게 해다오.”
“스승님, 스승님은 건강하실 때 부처님을 원수로 생각하지 않으셨습니까? 저희는 스승님을 부처님께 모셔갈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제자들이여, 나를 파멸로 몰아넣지 마라. 나는 부처님께 악의를 품었지만 부처님은 털끝만큼도 나를 미워하지 않는다.”
데와닷따가 계속해서 간청하자 제자들은 데와닷따를 가마에 태우고 당시 붓다가 머물고 있던 기원정사를 향해 길을 나섰다. 이 소식을 비구들이 붓다에게 전하자 붓다는 “데와닷따가 참회한 것은 다행이지만, 그는 나를 결코 볼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기원정사 근처 연못에 이르렀을 때 데와닷따가 가마를 세웠다.
“잠깐, 여기서 목욕을 하고 가자꾸나.”
제자들이 가마를 내려놓자, 데와닷따는 가마에서 내려 두 발을 땅에 디뎠다. 그때였다. 갑자기 두 발이 땅속으로 꺼져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발목까지, 다음에는 무릎까지, 다음에는 가슴까지, 다음에는 목까지, 마침내 턱뼈가 땅바닥에 닿자 데와닷따는 땅 위로 다시 올라올 가능성이 없음을 직감했다. 그는 안간힘을 다해 게송을 읊었다.
사람 가운데 가장 존귀하신 분
신들 중의 신
인간을 가장 잘 길들이시는 분
모든 것을 알고 보시는 분
과거의 공덕으로 삼십이상을 갖추신 분
부처님께 아직 남아 있는 턱뼈와
아직 살아 숨쉬고 있는 목숨을 바쳐
귀의합니다 무념·응진 역, 『법구경 이야기 1』,
옛길, 2014, 303~304쪽.
『밀린다왕문경』에 따르면, 엄청난 죄업을 저질렀음에도 데와닷따는 출가의 공덕과 마지막 참회의 공덕으로 인해 십만 대겁이 지난 뒤에 앗티사라는 이름의 벽지불이 될 것이라고 한다.●
데와닷따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붓다를 배반했지만, 그것이 자신에게 이익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이는 오히려 이기주의자가 아니다. 그는 끝끝내 이익을 챙기지 못하고 데와닷따처럼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을 파멸시키고 말 것이다. 어리석은 이기주의자는 자신의 욕망과 분노를 살찌우는 것을 이익이라고 착각한다. 이기주의도 제대로 해야 이익을 챙길 수 있다.
●정안 엮음, 『밀린다왕문경』, 우리출판사, 1999, 142쪽.
동명 스님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아사리. 시인으로 20여 년 활동하다가 2010년 출가했다. 저서로는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제13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 산문 『인도신화기행』, 『조용히 솔바람 소리를 듣는 것』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