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미륵사지 서탑에서 나온 사리장엄구 등 여러 불교 문화유산이 국가지정문화재가 될 전망이다.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는 국보로,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66과 『대불광불화엄경소』 권88, 『불조역대통재』 등은 보물로 지정 예고됐다. 또 영주 부석사 안양루와 범종각은 보물이 됐다.
문화재청(청장 최응천)은 10월 31일 백제 시대 공예품의 정수(精髓)라고 알려진 보물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를 국가지정문화재 국보로 지정 예고했다.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이 예고된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는 2009년 익산 미륵사지 서탑 심주석(心柱石, 탑 구조의 중심을 이루는 기둥)의 사리공(舍利孔, 불탑 안에 사리를 넣을 크기로 뚫은 구멍)에서 나온 유물이다. 639년(백제 무왕 40년) 절대연대를 기록한 금제 사리봉영기와 함께 금동사리외호 및 금제 사리내호, 각종 구슬과 공양품을 담았던 청동합 6점을 포함해 총 9점으로 구성됐다. 사리장엄구는 사리를 불탑에 안치할 때 사용하는 용기나 함께 봉안되는 공양물(供養物) 등을 통틀어서 이르는 말이다.
사리장엄구 중 금제사리봉영기는 얇은 금판으로 만들어 앞·뒷면에 각각 11줄 총 193자가 새겨져 있다. 좌평(佐平) 사택적덕(沙宅積德)의 딸인 백제 왕후가 재물을 시주해 사찰을 창건하고 기해년(己亥年, 639)에 사리를 봉안하며 왕실의 안녕을 기원한다는 내용이다.
그동안 『삼국유사』에서 전해진 미륵사 창건 설화에서 조성 연대와 주체에 대한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밝힌 계기가 됐으며, 사리장엄구 중에서도 가장 주목되는 유물로 평가받는다. 서체 역시 곡선미와 우아함이 살아있는 백제 서예의 수준과 한국 서예사 연구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사리장엄구 중 금동사리외호 및 금제 사리내호는 모두 몸체의 허리 부분을 돌려 여는데, 동아시아 사리기 중에서 유사한 사례를 찾기 어려운 독창적인 구조다. 전체적으로 선의 흐름이 유려하고 양감과 문양의 생동감이 뛰어나 기형(器形)의 안정성과 함께 세련된 멋이 한껏 드러난다는 평가다.
사리장엄구 중 청동합 6점 중 하나에는‘달솔(達率) 목근(目近)’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이로써 달솔이라는 벼슬(2품)을 한 목근이라는 인물이 시주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 명문을 바탕으로 시주자의 신분이 백제 상류층이었다는 사실과 그가 시주한 공양품의 품목을 알 수 있어 사료적 가치와 함께 백제 최상품 그릇으로 확인돼 희귀성이 높다. 녹로(轆轤, 그릇을 만들거나 문양을 넣을 때 사용하는 돌림판)로 성형한 동제 그릇으로서, 일부는 우리나라 유기(鍮器) 제작 역사의 기원을 밝혀 줄 중요한 사례로 보고 있다.
문화재청은 “석탑 사리공에서 봉안 당시 모습 그대로 발굴되어 고대 동아시아 사리장엄 연구에 있어 절대적 기준”이라며 “최고급 금속재료와 백제 금속공예 기술의 역량을 응집해 탁월한 예술품으로 승화시켰으므로 한국공예사에 뚜렷한 자취를 남긴 유물로서 위상이 높다”고 밝혔다. 이어 “7세기 전반 백제 금속공예 기술사를 증명해주는 한편 동아시아 사리 공예품의 대외교류를 밝히는 자료로서 역사·학술·예술적 가치가 매우 크므로 국보로 지정해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보물로 새롭게 지정 예고된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66과 『대방광불화엄경소』 권88는 모두 고려 11세기에서 12세기 동안 만들어진 불교 경전이다. 국립한글박물관 소장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66은 총 100권으로 구성된 『유가사지론』 중 권66에 해당하는 고려 11세기 자료이며, 해당 권차는 현재까지 발견된 사례가 없는 유일본이다. 『유가사지론』은 중국 당나라의 현장 스님이 한역한 경전으로, 미륵보살이 4개월간 매일 설법한 내용이 수록됐다.
고려 시대에 한문을 우리말로 번역해 읽을 수 있도록 치밀하게 토를 단 석독구결(釋讀口訣, 한문을 우리말로 풀어 읽을 수 있도록 문장 사이에 단 구결)이 표시되어 있어 국어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된다는 점, 이 구결을 통해 고려 시대 유식학(唯識學)에 대한 연구 수준을 엿볼 수도 있다는 점에서 불교학 연구의 귀중한 자료라는 평가다.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66과 함께 보물로 지정 예고된 『대방광불화엄경소』 권88은 총 120권으로 이뤄진 『대방광불화엄경소』의 권88에 해당하는 자료다. 1087년(고려 선종 4) 우리나라에 목판이 전래하면서 국내에서 간행되기 시작했는데, 이후 1424년(세종 6)에 일본이 여러 차례 대장경판을 요구할 때 다른 경판들과 함께 일본에 하사했다. 따라서 그 이후에 찍은 간행본은 국내에서 더는 찾아볼 수 없는 귀중본이다. 지정 예고 대상은 판본 및 인쇄상태로 보아 12세기에 간행된 것으로 보이며, 동일판본 가운데 유일하게 알려진 권차이다. 보존상태도 우수하고 조선·중국·일본 삼국의 불교교류 양상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는 게 문화재청의 설명이다.
종로도서관에서 소장한 『불조역대통재』 22권 14책도 이번에 보물로 지정 예고됐다. 원나라 승려 염상(念常, 1282~?)이 석가모니의 탄생부터 1334년까지 고승들의 전기(傳記)나 일화들을 시간순으로 엮은 책이다. 1430년(명 선덕 5) 다시 간행된 판본을 바탕으로 우리나라에서 새로 새긴 목판을 1472년(성종 3년) 인수대비(仁粹大妃, 1437~1504)의 발원으로 찍은 것이다.
성종(成宗)의 모친이자 인수대비가 왕과 왕자, 공주 등 왕실의 안녕과 장수를 위해 발원하고 간행했다. 전체가 남아 있는 완질본일 뿐 아니라 현재까지 국내에서 두 건만 확인돼 자료적인 완전성과 함께 희소성 또한 높다는 게 보물 지정 예고의 이유다.
국보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과 유네스코 세계유산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으로 등재된 영주 부석사에서 또 하나의 국가지정문화재, 보물이 탄생했다. 안양루는 국보 부석사 무량수전 앞에 위치한 팔작지붕의 문루이며 16세기 사찰 문루 건축의 대표적 사례다. 문헌자료에 의하면 ‘강운각(羌雲閣)’이라는 건물이 있었으나 1555년 화재로 소실됐고, 이후 1576년 ‘안양루’를 그 자리에 지은 것으로 되어 있다.
문화재청은 ▲사찰의 진입 방향을 꺾어 무량수전 영역에 진입하도록 배치한 점 ▲누마루 아래로 진입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점 ▲공포와 대들보의 구성 등에 조선 중기 또는 그보다 이전에 사용된 오래된 기법이 남아 있는 점 등을 고려해 보물로 지정했다.
안양루와 함께 범종각도 보물이 됐다. 영주 부석사 내에 자리하고 있는 종각으로, 팔작지붕 건물의 형식을 가진 18세기 중엽을 대표하는 종각 건축이다. 『청량산유록(淸涼山遊錄)』에 의하면 ‘범종각 내부에 쇠종이 있다’는 기록이 있으나, 19세기 이후 해당 범종의 소재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일반적으로 종각이 사찰 좌우에 배치되는 것과 달리 사찰의 진입 중심축에 위치한 점 ▲아래층 가운데 칸을 지나 계단을 거쳐 안양루로 통하는 형식인 점 ▲지붕의 포와 포 사이에 놓여 무게를 받치는 부재인 화반을 덩굴나무 모양의 파련초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점 ▲지붕 내부에 범종각 재건 당시 것으로 판단되는 단청이 남아 있는 점 등이 보물 지정의 이유다.
이외에도 중국 당나라 말기인 996년에 한악(韓鄂)이 편찬한 농업 서적 『사시찬요(四時纂要)』, 세조가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공신에게 내린 교서 중 경주손씨의 후손 손소(孫昭, 1433~1484)가 하사받은 교서 「손소 적개공신교서」, 이봉창 의사(1900~1932)가 일본에 대한 항쟁을 다짐한 국한문혼용 선서문 「이봉창 의사 선서문」 등 3건이 보물로 지정 예고됐다. 안동권씨 충재종택 경역 내 위치한 정자 봉화 청암정은 보물로 지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