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4일, 이날은 달랐다. 관음재일, 지장재일, 초하루법회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비구, 비구니스님을 비롯한 사부대중이 눈을 감고 합장했다. 이날은 달랐다. 국화를 즐기던 시민들도 형형색색 국화가 아닌 흰 국화를 마음에 담았다. 이태원에서 벌어진 참사에 생을 달리한 꽃다운 청춘을 애도하는 국화였다. 이날은 서울 조계사가 달랐다. 조계종이 이태원 참사로 희생된 156명의 영가를 추모한 위령법회를 봉행했다.
범종 소리가 차가운 늦가을 오후의 하늘을 갈랐다. 사부대중이 흰 국화를 영가들 앞에 공양하고, 향을 살랐다.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을 비롯해 중앙종회의장 정문, 호계원장 보광, 포교원장 범해 스님 등 주요 기관장 스님들과 중앙종무기관 및 산하기관 교역직, 전국비구니회, 조계사, 봉은사 등 수도권 주요 사찰 주지스님과 신도들이 참석했다. 윤석열 대통령 내외도 자리했다.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윤석열 대통령 내외와 함께 이태원 참사로 꽃다운 나이에 생을 달리한 영가 앞에 향을 사르고 추모의 꽃을 공양했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 딸을 가슴에 묻어야 하는 유가족의 슬픔에 위로를 전하는 한편 타국 땅에서 희생된 외국인 영가와 그 가족들에게도 애도를 전했다. 그러면서 깊은 사과의 말씀을 올리고, 영가와 유가족을 위한 지원 및 사회적 책임을 약속했다.
진우 스님은 “우리 기성세대들은 사회적 참사가 있을 때마다 재발 방지를 되뇌어 왔지만, 그 약속을 또 지키지 못했다”며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토로했다. 특히 “국민의 생명보다 더 소중한 가치는 없다. 물질적 이익보다 생명과 평화가 소중하다는 확고한 인식이 바로 서야 한다”며 “추모의 시간이 지나면 재난 안전 시스템의 근본적인 재설계로 국민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하는 사회 안정망을 더 촘촘히 구축해 가야 할 것”이라고 경책했다.
영가를 추도하는 말이 이어졌다. 진우 스님은 “49일간 마음을 편히 하여 속히 이승으로 돌아와 생의 봄을 맞이하고 영생의 꽃을 피워주길 부처님 앞에 간곡히 발원한다”며 “이태원 참사 희생 영가들에게 제불보살님의 보살핌이 함께 하시길 간절히 간절히 기원한다”고 추도했다.
위령법회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은 책임을 통감한다며, 참사 후 처음 ‘죄송한 마음’이라는 표현으로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너무 비통하고 죄송한 마음”이라는 윤 대통령은 “슬픔과 아픔이 깊은 만큼 책임 있게 사고를 수습하고 무엇보다 다시는 이런 일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큰 책임이 저와 정부에 있음을 잘 알고 있다”며 “저와 정부는 다시는 이런 비극을 겪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조계종 어산어장 인묵 스님을 비롯해 어산종장 화암, 도피안, 동환 스님이 죽은 사람의 영혼을 달래는 위령의식을 집전했다. 이어 전국비구니회장 본각 스님이 사부대중의 마음을 모아 발원문을 읽어 내려갔다.
“온 국민은 함께 통곡합니다. 한 사람의 생명도 아까운 지금 대한민국은 너무나 많은 생명을 일순간에 떠나보냈습니다. 누구의 허물을 탓하기에 앞서 우리 모두는 부처님 전에 참회합니다. 이제 저희 모두는 몸과 입과 마음으로 나날이 공덕을 쌓는 국민이 되어 이태원에서 희생된 꽃다운 영가들과 그 외에 슬픈 많은 영혼이 다 함께 고통을 여의고 즐거움을 얻도록 모든 공덕을 회향합니다. 일순간에 유명을 달리한 영가들이 두려움과 원망을 내려놓고 부처님 자비광명에 안기어 극락세계로 길 떠나길 기도합니다. 생명을 존중하고 서로를 다독이는 나라로 거듭나기를 부처님 전에 발원합니다.”
위령법회에 참석한 대중이 합장했던 두 손에 서린 온기로 흰 국화를 움켜쥐었다. 하나둘 차례로 영가들 앞에 흰 국화를 공양했다. 그리고 다시 두 손으로 합장하며 영가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했다. 그들의 위로와 애도 그리고 추모, 발원이 온기로 전해지길 바랐다.
1월 4일, 늦가을 오후의 바람이 스산하고 찼다. 그러나 이날, 이 순간은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