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글로벌 수행 놀이터’
자신만의 고유한 패션과 음악을 즐기는 ‘힙스터(hipster)’ 문화가 태동한 곳. 밤이 되면 클럽에서 젊음의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곳. 바로 국내외 청년들이 많이 찾는 관광 명소, 홍대다.
명실상부 핫플레이스인 이곳에 ‘명상’과 ‘게스트하우스’의 결합이라는 독특한 콘셉트 공간이 2022년 10월 본격적으로 문을 열었다.
홍대에 들어선 게스트하우스만 해도 200여 곳.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이곳은 숭산 스님의 손상좌이자 현각 스님의 제자 준한 스님이 도반 스님과 청년 스태프와 함께 운영하는 덕숭총림 수덕사 포교당 ‘홍대선원’이다. 영문 브랜드명은 ‘저스트비 템플(Just Be Temple)’.
홍보 플랫폼은 숙박 공유 사이트인 에어비앤비(Airbnb)와 인스타그램 단 2개뿐이지만, 국내는 물론 전 세계에서 다녀간 게스트만 해도 벌써 200명이 넘었다. 에어비앤비에 50개 넘게 달린 후기들은 “생각지도 못한 환대와 치유를 얻었다”며 하나같이 칭찬 일색이다. 도대체 이곳의 매력이 뭘까?
‘글로벌 수행 놀이터’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홍대선원(이하 저스트비)에서 주지로 있는 준한 스님을 만났다.
채식 포틀럭 파티와 ‘부디스트 웨이’
지난 12월 3일 저스트비에서 열린 제1회 ‘채식 포틀럭 파티(Veggie Potluck Party)’. 지하 1층에 들어서자 인종·나이·승속 불문 다양한 사람들이 큰 식탁을 둘러싸고 모였다. ‘Gimbab/Korea(김밥/한국)’, ‘Okonomiyaki/Janpan(오코노미야키/일본)’, ‘Mapa Tofu/China(마파두부/중국)’, ‘Tortillas/Mexico(또르띠야/멕시코)’, ‘Quiche/France(키슈/프랑스)’ 이름표를 단 전 세계 음식들. 다 함께 영어와 한국어로 공양게를 외운 뒤 정성스럽게 준비해온 자기 나라 대표 음식을 나눠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날 채식 파티 참가자 중 절반은 저스트비를 처음 방문했다. 인스타그램 광고를 보고 찾아왔다는 한 한국인 참가자는 “최근 동물권에 관심이 생겨 채식을 지향하게 됐다”며 “마침 홍대에 약속이 있는 김에 들렀다”고 했다.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온 인도인 커플은 “한국에서는 채식하기 쉽지 않다”며 채식 파티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왔다고 했다.
저스트비에는 채식 파티 같은 창의적인 프로그램이 많다. 일본에서 온 법여 스님의 소리명상, 현직 슈퍼모델이자 ‘저스트비 룩(look)’ 홍보모델의 요가, 전문 댄서의 프리댄스, 미술작가의 드로잉 수업이 다도, 좌선, 자율명상과 함께 열린다. 모든 프로그램은 무료(자율 보시)로 진행된다. 게스트하우스에 묵는 손님들은 물론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도 많다.
“저스트비 숙박 바우처 1,000장을 만들어서 2022년 연등회에서 나눠줬어요. 그때부터 외국인들이 하나둘씩 찾아왔죠. 아직 인테리어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았지만 2022년 9월 1일부터 4일까지 오픈 파티를 열었어요. 유명 DJ와 밴드가 자발적으로 참여했고 법회나 법문은 하지 않았어요. 말 그대로 진짜 파티를 연 거죠. 그렇게 찾아온 국내외 청년들이 입소문을 내고, 지인을 데려오기 시작하더라고요. 저는 매일 이곳에서 다양한 국적의 재밌는 청년들을 만나요.”
“재밌는” 다국적 청년들이 저스트비에 모이는 이유 첫 번째는 홍대입구역 도보 5분 거리에 자리한 접근성. 두 번째는 영어 의사소통에 자유로운 40대 젊은 스님들과 칠레·아르헨티나·뉴질랜드·한국 등 다국적 청년 스태프가 구성원이라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독특한 배경을 가진 준한 스님이 있어서다.
준한 스님은 중학생 때 유학을 떠나 미국 10위권 안에 드는 워싱턴대학교 건축학과에 입학했다. 학생회 회장을 맡고 장학금을 받으며 즐거운 학교생활을 보냈지만 불의의 교통사고를 계기로 삶과 죽음의 문제에 천착하게 됐다.
2000년 여름, 한국으로 들어와 화계사에서 안거했다. 발심한 뒤 ‘부처님의 제자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를 화두로 삼은 스님은 6개월간의 세계 일주 후 미국으로 돌아가서 당시 룸메이트이자 지금 저스트비를 함께 운영하는 백담 스님과 함께 ‘험블 마인즈 그룹(Humble Minds Group)’을 만들었다. 종교도 국적도 다양한 외국 학생들과 개조한 대학가 아파트에 모여 새벽부터 저녁까지 함께 생활하며 수행했다. 영어로 사홍서원을 하고, 숭산 스님의 챈팅북(chantingbook)을 읽고, 108배와 명상을 이어갔다.
“학생 신분이었지만 스님들처럼 하루도 안 빠지고 매일 수행했죠. 외국인들은 “I am a Buddhist(나는 불자다)”라고 하지 않고 “I follow Buddhist way(붓다의 방식을 따른다)”라고 많이들 말해요. ‘수행’에 대한 선입견은 없지만, ‘종교’에 대해서는 있는 거죠. 그때부터였어요. 국적을 초월해 채식하고 명상하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꿈을 가진 건.”
주말마다 진행했던 채식 포틀럭 파티가 점차 유명해지면서 준한 스님은 이것을 사업으로 확장하기로 마음먹었다. 전공도 건축에서 경영으로 바꿨다. 스님의 채식 프랜차이즈 사업계획서가 대학교 창업 클래스에서 1등을 하고 투자금도 받았다. 그길로 친구들과 함께 창업팀을 꾸렸다. 한창 사업개발을 하던 2005년, 현각 스님의 <살아있는 금강경> 법문 영상 번역을 의뢰받았다. 그때 『금강경』을 처음 접하고 ‘지금 사업을 할 때가 아니구나, 지혜와 힘을 기르는 게 먼저다’라고 느꼈다고. 번역일이 끝나자마자 사업은 친구들에게 넘기고 귀국해 2006년 1월 출가했다.
출가 인연은 그전부터 있었다. 1999년 숭산 스님이 미국에서 처음 설립한 관음선종의 본사 ‘프로비던스 젠 센터’를 방문했고, 그해 여름방학 때 한국에서 우연히 현각 스님을 만났다. 그때의 인연으로 수덕사에서 행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 뒤로 6년 동안 해인사 강원과 율원을 졸업하고 외국인 템플스테이 지도법사 소임을 봤다. 이후 2011년부터 소백산 양백정사에서 봉철 스님을 시봉하고, 스님의 마지막을 간병했다.
봉철 스님이 물려주신 양백정사 주지 소임을 보며 두문불출 천일기도를 하던 어느 날, 홍대에 건물을 소유한 한 신도를 만났고 건물 임대를 결심했다.
“타이밍이 딱 맞아떨어졌어요. 한류에 힘입어 한창 잘되던 게스트하우스였는데 코로나 때문에 손님 발길이 뚝 끊겼던 거죠. 외국 청년과 한국 청년들이 제일 좋아하는 데가 홍대니까 ‘오케이 여기다’ 해서 천일기도를 마친 날 계약하고 바로 공사를 시작했어요. 뜻이 닿은 스님들과 청년들도 하나둘 모였고요. 여기서 게스트하우스를 하며 명상을 비롯한 재밌는 프로그램들을 많이 만들어보자 생각했죠.”
처음 마주한 게스트하우스는 흡사 ‘게토(ghetto)’를 연상하게 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직접 인테리어 공사에 나섰다. 스님들과 재가자 청년들이 벽을 깨고, 페인트칠하고, 당근마켓에서 산 중고가구로 공간을 채워갔다. 2021년 9월에 시작한 공사는 꼬박 1년이 걸렸다. 그렇게 탄생한 저스트비 공간에는 건축을 전공한 준한 스님의 미적 감각이 곳곳에 배어 있다.
건물 1층에 들어서면 리셉션과 함께 대형 티테이블이 손님을 맞이한다. 이곳에서 한 명씩 돌아가며 ‘티텐더(Tea Tender)’ 소임을 본다. 1층 ‘중생공양제불공양’ 현액을 지나 지하 1층 공양간에 가면 즉흥 연주를 할 수 있는 악기가 있다. 2층부터 3층까지는 싱글룸(15개)과 다인캡슐(38개) 게스트하우스가 있고, 4층은 사무실이자 스님과 스태프 숙소, 5층에는 법당과 다도 공간이 있다.
“저스트비의 모토는 ‘중생공양 제불공양(衆生供養 諸佛供養)’이에요. 여기 오는 모든 사람에게 공양 올리는 마음으로 섬기는 거죠. 이곳과 인연 되는 사람들이 모두 다 부처님이거든요. 이게 저희가 가장 중요하게 지키는 마음가짐이죠.”
재미없으면 재미없잖아요
“고기, 술 그리고 섹스요!”
“저스트비에서 특별히 금기시되는 게 있나요?”란 질문에 나온 준한 스님의 대답이었다. 맞다. 고기를 먹어서도, 술을 마셔서도, 섹스를 해서도 안 되는 곳이긴 한데, 그걸 저렇게 천진하게 말하는 스님이라니!
준한 스님과는 앞서 인연이 있었다. 월간 「불광」 576호(2022년 10월호) <새기고 염원하다, 팔만대장경> 특집에서 스님이 해인사 장경판전을 청소한 경험을 에세이로 썼고, 재밌다는 독자들의 반응이 쏟아졌다. 15년도 더 지난 일일 텐데도 스님의 글에서는 생기가 느껴졌고, 유머가 녹아 있었다. 그래서였다. 새로 시작한 신행·수행 단체 연재 꼭지의 가장 첫 번째 게스트를 준한 스님으로 정한 건.
직접 만난 스님은 글보다 훨씬 더 재밌는 분이었다. 저스트비에 “재밌는” 청년들이 모이는 이유는 아마도 “재밌는” 스님 때문이리라. 스님은 청년들이 저스트비에 찾아오는 이유를 뭐라고 생각할까?
“‘홍대라는 위치’ 플러스 ‘열려 있는 청년들’ 플러스 ‘스님들 마인드’ 때문인 것 같아요. 스님이야말로 불교의 얼굴이잖아요. 젊은 세대에게 ‘스님은 가르치는 사람’이란 마인드로 접근하면 금방 따분해해요. 요즘 셀럽들이 많이 하니까 명상이 트렌드가 됐잖아요. 템플스테이도 마찬가지고요. 이렇게 불교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열리는 친구들을 좀 더 깊이 있는 체험으로 인도하지 못한다면, 그건 스님들의 직무 유기겠죠. ‘웃음’과 서로에 대한 ‘리스펙(respect)’, 즉 존경이 필요해요. 무엇보다 일단 재밌어야 해요. 재미없으면 재미없잖아요(웃음).”
저스트비는 대가족이다. 함께하는 도반 스님 7명, 자원봉사를 하는 상주/비상주 스태프가 20명 가까이 된다. 뉴질랜드 교포인 한 청년 스태프는 저스트비의 구성원들을 “extended family(확장된 가족)”라고 불렀다. 한 폴란드 청년은 에어비앤비 첫 게스트로 와서 이곳이 좋아 숙박을 계속 연장하다가 게스트 스태프가 됐다. 디자인을 전공한 한 청년은 저스트비의 브랜딩을 맡았다.
준한 스님은 “공사 때부터 스님들과 청년들이 저스트비에서 함께 먹고 자고 울고 웃고 하기를 1년 넘게 했다”며 “여기야말로 살아 있는 승가”라고 강조했다.
“이곳은 청년들이 주인이에요. 스님들은 전면에 나서지 않고 서포트해주는 역할을 하고자 해요. 저스트비라는 브랜드는 청년들이 영리로 운영하고, 홍대선원은 스님들이 비영리로 운영하는 구조예요. 청년들이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명상과 예불은 스님들이 맡아서 해요. 한 건물 안에서 두 팀이 ‘콜라보’하며 하나의 팀으로 결합해 움직이죠. ”
Just Be ○△□!
저스트비의 로고는 봉철 스님이 쓴 붓글씨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의 ‘是(시)’ 자에서 따왔다. ‘Just Be’만으로는 완성된 문장이 될 수 없다. ‘be’ 동사 뒤에 ‘here and now’를 붙이면 지금 여기 이 자리에 존재하자가 되고, ‘tea’를 붙이면 내가 곧 마시는 차가 된다. ‘myself’를 붙여도 되고, 그 무엇을 갖다 놓아도 된다.
저스트비 뒤에 붙을 그 수많은 가능성의 단어들처럼 “이곳을 거점으로 구상하는 계획이 많다”고 말하는 준한 스님의 얼굴이 기대감으로 반짝였다.
“앞으로 이곳이 전 세계 청년들이 자유롭게 네트워킹하는 허브가 됐으면 해요. 이곳에서 만나 명상하고 놀다가 창업할 수도 있겠죠. 예능 프로그램 <1박2일>처럼 전국 천년고찰 찾아다니며 ‘스님과 절 맞장뜨기’ 같은 재밌는 영상 콘텐츠를 만들어도 좋겠네요. 아! 기가 막힌 계획이 하나 더 있어요. 간월암이 있는 간월도에 썸 타거나 솔로인 청년들이 가서 함께 요가하고, 석양을 보면서 ‘사랑이 이뤄지게 해주세요’ 같은 소원을 비는 거예요. 그리곤 다 같이 동해안의 절로 이동해서 새벽 예불을 드리고 해를 맞이하는 거죠. 그럼 막 사랑이 싹트겠죠?(웃음)
이거 외에도 계획이 많긴 한데, 집착은 없어요. 제가 건축 공부를 했지만 건축설계도 없이, 경영 공부를 했지만 사업계획서도 없이 저스트비를 시작했거든요. 살면서 계획대로 된 경우는 거의 없었더라고요(웃음).”
사진. 홍대선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