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하는 반가사유상
국립중앙박물관은 해마다 교체 전시하던 국립중앙박물관의 중요 전시품인 두 구의 반가상을 ‘사유의 방’을 만들어 이제는 나란히 함께 전시하고 있다. 과거에는 단지 좀 더 장식적이고 화려한 반가상과 단순하면서 수수한 반가상 정도로 구분됐지만, 이제는 나란히 비교되면서 그 차이점과 유사점이 더 잘 드러나 보인다. 느낌은 오지만 말로 표현하기는 어려운, 두 반가상 각각의 매력을 글로 풀어보려고 한다. 그 매력의 키워드는 물론 ‘사유’다. 시각 미술은 기본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을 묘사하지만, 예술가들은 그 보이는 것을 통해 오히려 ‘보이지 않는 것’을 표현하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사유’라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골똘히 생각할 때 사람들이 흔히 하게 되는 자세’를 통해 암시적으로 드러내려고 한 것이 반가(半跏)한 상태로 한 손으로 턱을 괴거나 얼굴에 갖다 댄 모습이다. 고대 서아시아에서부터 근대의 조각가 로댕에 이르기까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와 유사한 자세들이 ‘생각하기’의 대표적인 자세로 사용됐다는 것은 무척 흥미롭다.
‘사유’, 혹은 ‘생각하기’라는 단어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동적인 느낌보다는 정적인 느낌이다.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생각에 온 정신이 몰두해 있기 때문에 사유 이외의 육체적 움직임에는 신경을 쓸 수 없다. 그래서 반가사유상들은 대부분 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리고 이렇게 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기 위해서는 반가한 자세가 안정적이어야 한다. 불안정한 자세는 곧 흐트러질 것이고, 그 흐트러짐은 움직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최대한 안정적이어야 그 사유가 방해받지 않고 오래 지속되리라 기대하게 된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반가하고 턱을 괸 듯한 자세는 그 자체로서는 불안정한 자세다. 많은 종교 예술품이 좌우대칭을 추구하는데, 반가사유의 자세는 이미 비대칭적 성격이 강하다. 실제로 이러한 자세를 취해보면 그다지 안정적인 자세가 아님을 바로 알 수 있다. 잠시 생각하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오래 앉아 있기에는 불편한 자세다.
특히 일반적으로 선정에 든 부처를 묘사한 결가부좌한 자세와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불안정한 자세이면서도 안정감 있게, 정적인 느낌을 어떻게 줄 것인가’를 고민한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반가상 감상의 첫 번째 포인트다.
이처럼 생각하는 사람의 자세로 ‘생각 중’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시각화할 수는 있지만, 그다음 문제는 사유의 깊이와 방향이다. 생각에 몰두하는 듯한 자세가 ‘사유’를 눈에 보이는 것으로 만들어 줄 수는 있지만, 그 생각의 깊이와 방향은 단순히 자세만으로는 드러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나 사유하는 동안 몸은 멈춰 있을지라도 생각은 매우 역동적으로 흐르고 있다. 이 생각의 흐름, 사유의 진행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하는 것이 반가상 감상의 두 번째 포인트다.
이러한 관점에서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을 가득 채우고 있는 두 반가상을 살펴보면 조금 더 작가의 의도에 다가설 수 있다.
일월식보관 반가사유상
바라볼 때 왼쪽에 위치한 반가상은 원래 국보 78호로 불렸다. 그러나 이제는 국가지정문화재 번호를 사용하지 않고 국보·보물로만 부르기로 했기 때문에 78호라는 번호는 더는 사용하지 않는다. 그 대신 ‘일월식보관(日月飾寶冠) 반가사유상’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이 반가상이 쓰고 있는 보관에 ‘일월’, 즉 해와 달이 표현돼 있기 때문이다(사진 1).
이러한 형식의 보관은 멀리 페르시아에서부터 유행하던 것이 동아시아로 전래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일월 모양의 장식 외에도 높게 솟은 산[山] 자 모양의 앞판과 그 주변으로 깃털처럼 펼쳐진 장식이 붙어 날렵한 느낌도 준다. 보살의 이마를 덮고 있는 보관의 아랫단에는 마치 이 보관을 감싸면서 뒤에서 묶어 고정해 주는 끈 같은 것이 보이는데, 뒤에서 묶지 않고 풀러 양쪽 어깨에 자연스럽게 흘러내리게 했다. 이러한 ‘느슨함’은 ‘반가부좌’의 콘셉트와 잘 어울린다. 반가부좌도 마찬가지로 결가부좌라는 완전한 모습에서 한쪽 다리를 내려 긴장을 푼 것인데, 보관 역시 묶었던 끈을 풀었으니 그만큼 느슨하고 편안해 보인다. 보살의 어깨에서는 좌우로 날개처럼 옷자락이 펼쳐지는데, 이 역시 보관에서 깃털처럼 펼쳐진 장식과 대응을 이룬다. 이 역시 반가상이 한층 날렵하게 보이도록 만들고 있다. 이러한 날렵함은 반가사유상의 전체적인 이미지, 즉 침묵 속 깊은 사유에 빠져 있는 정적인 분위기에 은은한 생동감을 불어넣어 준다.
이와 함께 어깨에서 흘러내린 옷자락은 무릎과 양쪽 팔꿈치를 휘감아 앉아 있는 자리 아래로 말려들어 가고 있다. 이 옷자락의 휘감기는 모습은 정적인 자세로 앉아있는 사유상에 미묘한 움직임을 부여한다. 이 옷자락의 흐름이 곧 사유의 흐름을 암시하는 것이다. 몸은 정지돼 있으나, 그 몸을 감싼 옷자락은 물 흐르듯이 표현함으로써 눈에는 보이지 않는 사유의 흐름을 손에 잡힐 듯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그 물의 흐름은 앉아 있는 대좌를 덮은 옷자락에서 절정을 이룬다. 마치 머리끝에서 무릎까지는 작은 시냇물이었던 것이 점차 큰 강이 되는가 싶더니 이내 대좌에서는 폭포처럼 흘러내리고 있다. 생각이 점차 깊어지고 사유의 속도가 답을 찾아감에 따라 점점 빨라지는 것을 암시한 듯하다.
삼산관 반가사유상
바라볼 때 오른쪽에 위치한 반가상은 일월식보관 반가사유상에 비해 훨씬 단순하다. 과거에는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으로 불렸지만, 번호가 없어진 지금은 ‘삼산관(三山冠) 반가사유상’으로 불린다. 산[山] 자 모양의 판이 여기에도 있는데, 높이가 낮고 둥글둥글한 산 모양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삼산’ 보관이란 이런 세 개의 둥근 산이 모인 형태라는 뜻이다. 단순하게 변화된 보관뿐 아니라 옷자락도 모두 생략돼 마치 옷을 입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일 정도다. 그렇다면 삼산관 사유상은 무엇으로 생각의 흐름을 나타내려고 했을까?
삼산관 사유상의 반가한 자세는 일월식보관 사유상의 자세와 조금 차이가 있다. 우선 일월식보관 사유상은 의자에 완전히 깊숙이 앉아 있어서 왼쪽에서 보면 왼발이 90도로 굽어 있다. 반면에 삼산관 사유상은 왼쪽에서 볼 때 깊이 앉은 것이 아니라 마치 반만 걸터앉은 것처럼 보인다. 90도보다 큰 둔각에 가깝게 무릎이 굽어 있다. 그뿐만 아니다. 일월식보관 사유상은 왼발 허벅지가 그다지 깊지 않기 때문에 마치 닭싸움할 때 한쪽 발을 들어 올린 것처럼 반가한 자세가 단단하지만, 삼산관 사유상은 허벅지가 매우 길다. 그래서 오른발이 왼쪽 무릎 끝에 간신히 걸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금방이라도 반가한 자세를 풀어버릴 것 같은 자세다.
게다가 정면에서 볼 때 오른발 아래로 펼쳐진 옷자락의 모습도 확연히 다르다. 일월식보관 사유상은 옷자락이 대좌를 완전히 덮고 있지만, 삼산관 사유상은 비스듬히 흘러내리면서 대좌가 일부 드러나 보인다. 때문에 아래가 좁고 위가 넓은 옷자락 형태를 보이고 있어 다소 불안정한 구도처럼 보인다. 일월식보관 사유상에서는 폭포처럼 격렬하지만 지속적인 옷자락이었으나, 삼산관 사유상에서는 파도처럼 일렁이는 불규칙한 물결로 바뀌었다.
이처럼 일월식보관 사유상에서 매우 탄탄했던 반가의 지속적인 사유 자세는 삼산관 사유상으로 와서 마치 곧 해체될 듯한 사유의 자세로 바뀌었다. 비유해서 말하자면, 일월식보관 사유상은 진득하게 앉아서 공부하는 모범생 스타일이고, 삼산관 사유상은 엉덩이가 들썩들썩하는 산만한 학생인 셈이다. 깊은 사색이라면 모름지기 일월식보관 사유상의 자세가 더 어울린다. 그런데 왜 삼산관 사유상은 이렇게 불안정한 자세를 취하는 걸까?
생각이 끝난 순간
일월식보관 사유상이 정적인 몸에 동적인 옷자락을 지녔다면, 삼산관 사유상은 옷자락 없이 자세 그 자체로 정적인 것과 동적인 것을 함께 담아낸다. 다만 그 동적인 순간을 나타내는 시점이 다르다. 일월식보관 사유상의 운동감은 몸의 운동이 아니라 사유의 운동이다. 즉, 사유가 한참 진행 중인 상황이다. 그러나 삼산관 사유상은 다르다. 이 사유상에서 정적인 부분은 현재가 아니라 과거다. 방금 전까지는 정적인 자세로 진득하게 앉아 사유했으나 이제는 마치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유가 아닌 것이 아니다. 이 움직임은 이제 막 사유가 끝났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사유 그 자체로는 큰 의미가 없다. 사유가 의미 있는 것은 답을 찾는 과정일 때다. 그러나 오늘날 사유와 참선이란 잠시 쉬어가는 의미 정도로만 다가온다. 머리를 잠시 비우는 것이 목적처럼 돼 버렸다. 그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답을 찾아야 한다. 부처님은 우리 모두가 이미 부처라고 가르치셨지만, 참선을 통해 우리가 부처임을 찾으려는 불자는 많지 않다. 그저 쉬는 것이다. 더 치열해져야 한다. 답을 찾는 흉내만 내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답을 찾아야 한다. 최소한 답을 찾기 위해 더 치열하게 사색해야 한다. 그것이 이 삼산관 사유상이 우리에게 건네는 말이다.
기존의 사유상들이 사유의 진행형을 표현했던 것에 반해 삼산관 사유상은 이제는 답을 찾고 막 사유를 마치려고 하는 순간을 묘사했다. 마치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에서 부력의 원리를 발견하고는 너무 기쁜 나머지 벌거벗은 것도 잊은 채 “유레카!” 하며 밖으로 뛰쳐나왔을 때의 순간과 같은 것이다. 얼굴에 비친 미소를 보자. 일월식보관 사유상의 미소는 은은하다. 한 단계 한 단계 사유의 단계를 밟아 나가며 느끼는 희열을 표현한 것이다. 반면에 삼산관 사유상의 미소는 더 직접적으로 표면에 드러나 있다. 답을 찾은 것이다. 정확히는 답을 찾은 그 순간인 것이다. 그래서 더 깊은 곳에서 막 표면으로 떠오른 미소를 하고 있다.
모든 미술은 공간의 미술이다. 공간은 그래도 눈에 보이지만, 문제는 시간이다. 보이지는 않지만 미술은 모두 각자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 일월식보관 사유상은 시간의 등속도 운동을 보여준다면, 삼산관 사유상은 등가속도 운동의 포물선 그래프를 보여준다. 특히나 이런 포물선은 사유상의 오른발이 그리는 강한 포물선 운동을 통해 더 강하게 다가온다.
그렇다고 일월식보관 사유상이 삼산관 사유상보다 한 수 아래라는 것은 아니다. 연구자들은 일월식보관 사유상이 삼산관 사유상보다 앞서 만들어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삼산관 사유상은 우리나라 반가사유상의 흐름에서 정점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선구적인 일월식보관 사유상이 없었다면 삼산관 사유상도 탄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유의 진행 없이는 사유에 대한 답도 찾을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주수완
불교미술사학자이자 우석대 경영학부 예술경영전공 교수.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인도와 실크로드에서 중국과 한국에 이르기까지 불교미술 도상의 발생과 진화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솔도파의 작은 거인들』, 『한국의 산사 세계의 유산』, 『불꽃 튀는 미술사』, 『미술사학자와 읽는 삼국유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