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를 향한 배

우리가 쓰는 관용어 가운데 “배 들어오면”이란 말이 있다. 현실은 팍팍하지만, 바라는 것을 가득 실은 배만 들어오면 모든 것이 잘되리라는 우스갯소리이다. 이는 배가 지닌 상징성 가운데 만선(滿船)의 풍요로움을 취한 셈이다. 

동서고금 막론하고 배는 미지의 이상세계를 향한 상징성을 지녔다. 망망대해 수평선 너머로 떠나는 배의 이미지가, 인간이 꿈꾸는 피안의 세계로 데려다 줄 이동 수단으로 여겨진 것이다. 무덤 속에 배를 그리거나 새긴 것 또한 죽은 자의 영혼을 실어 사후세계로 무사히 데려가기를 바라는 옛사람들의 주술적 염원이었다.

마을에서는 배가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의 행주형(行舟形) 지세를 최고의 입지로 꼽는다. 만선의 배가 드나드니 흥성한 부촌이요, 홍수에도 ‘구원의 배’가 되어 마을을 안전하게 지켜준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행주형 마을에는 어김없이 홍수 설화가 전승된다. 그런데 풍요와 구원을 보장받으려면 배가 순항할 수 있도록 돛대를 잘 세우는 일이 중요하다. 이에 솟대를 세워 돛대로 삼고 꼭대기에 오리를 앉혔다. 오리는 물갈퀴와 다리와 날개가 있으니 물·땅·하늘의 삼계(三界)에 자유자재하다고 본 것이다.

사찰의 법당 또한 거대한 ‘반야의 용선’이다. 불교에서는 피안의 정토에 도달하기 위한 길을 망망대해에 비유하면서, 그곳으로 인도하는 구원의 배를 반야용선(般若龍船)이라 설정한다. 극락정토는 반야의 지혜에 의지해 건널 수 있으며, 불법의 수호자이자 물을 상징하는 용이 배가 되어 험난한 파도를 헤쳐 나아간다고 여겼다. 사바세계가 ‘괴로움의 바다(苦海)’라면,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충만한 법당은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하는 배에 해당한다. 부처님의 말씀을 새기며 살아간다면 누구든 피안에 도달할 수 있으니, 서방정토는 사후만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실현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법당 앞면의 기둥머리에 조각한 커다란 용두(龍頭)는 불법을 수호하는 것이자, 법당이 반야용선임을 나타낸다. 민속적으로 표현하자면 법당은 용두를 뱃머리 삼아 항해하는 행주형의 공간인 셈이다. 구례 천은사에는 법당 뒤쪽에도 용미(龍尾)를 조각해 이러한 의미를 더욱 실감 나게 표현했다. 외벽에 반야용선을 그리는 것도, 법당 전체가 서방정토를 향하는 반야용선임을 나타내기 위해서다.

지혜의 배, 반야용선

반야용선을 그린 불화로 고려 말에 그려진 <미륵하생경변상도〉가 있다. 초기에 그려진 반야용선 모습인데, 이승에서 몸을 벗고 극락으로 가는 왕생자(往生者)만 승선한 모습이다. 이후에는 왕생자뿐 아니라 이들을 극락으로 이끄는 아미타불도 반야용선에 등장한다. 이어서 관음보살·지장보살이 함께하는 아미타삼존, 정토의 인도자 인로왕보살이 자리하게 된다. 따라서 반야용선은 인로왕보살이 선두에서 이끌고 지장보살이 선미(船尾)를 지키는 가운데, 아미타삼존이 중생과 함께하며 거센 파도를 헤쳐 가는 모습으로 즐겨 표현된다. 

제천 신륵사 극락전 외벽에 나타난 반야용선도는 여러모로 인상적이다. 서방정토를 향해 나아가는 역동적인 여정과 함께, 극적 요소들이 화면을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용은 네 발을 드러낸 채 거센 파도를 헤치며 험한 바닷길을 내달리는 모습이 강조됐다. 배 앞의 인로왕보살이 가운데 관음보살과 선미의 지장보살과 함께 열심히 노를 젓는 실천적 행보를 보여주는데, 다른 그림에서 이분들은 보통 합장을 하고 있다. 

그림의 백미는 용선과 연결된 작은 나룻배다. 불보살이 있는 용선은 이미 가득 찼기에, 타지 못한 이들을 빽빽이 태운 작은 배를 별도로 그렸고, 밧줄로 이어 파도를 헤치며 나아가는 모습을 담았다. 중생을 남김없이 구하려는 긴박함을 표현했다. 정토를 향한 길이 얼마나 험난한지 느끼게 해주는 장면이다. 

또 하나의 반전은 반야용선에 탄 이들을 대부분 스님으로 그렸다는 점이다. 이는 반야용선이 단순히 구원의 배가 아닌, 지혜의 배임을 강조한다. 반야용선을 탄 대중이 가는 곳은 깨달음의 세계이기에, 수행 없이 극락왕생만 바라는 이에게 일침을 가하는 그림으로 새겨야 할 듯하다. 

기독교에도 ‘노아의 방주(方舟)’라는 구원의 배가 있다. 타락한 이들을 심판하고자 하나님이 대홍수를 내려 모든 생물이 전멸했지만, 선하고 정의로운 노아의 가족과 동물만이 방주에 타서 구원받은 것이다. 이처럼 구원의 배는 오직 선한 이들만이 탈 수 있다. 따라서 그림 앞에 선 이들은 대중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끌어 주는 종교적 장치라 하겠다. 

서방정토로 가는 배

반야용선은 염불에도 즐겨 등장한다. 『천수경』 ‘십원문(十願文)’에 등장하는 반야의 배는, 탐진치의 고통에서 벗어나 시비와 분별없는 본래면목으로 건너가는 참된 지혜의 배다. 

“자비로우신 관세음보살님께 귀의하오니 
반야의 배 빨리 타게 하소서.
고통의 바다 빨리 건너게 하소서.”

이러한 반야용선의 의미는 영가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천도재에서 극대화된다. 영가를 위한 스님의 염송에 빠짐없이 등장할 뿐 아니라, 입체적으로 만든 다양한 반야용선도 만날 수 있다. 대나무·한지·지화(종이꽃) 등으로 일회용 반야용선을 만들어 봉송 때 태우기도 하고, 영단(靈壇)에 상시 장엄물로 조성해 두기도 한다. 사바세계의 인연이 다한 영가를 피안의 정토로 인도하니 천도재에 더없이 적합한 조형물이기 때문이다. 

서울 흥천사 무량수전에는 영단 벽에 극락구품도(極樂九品圖)를 걸고, 그 앞에 등으로 커다란 반야용선을 조성해 불을 밝혀 뒀다. 용선의 선실에는 연꽃마다 소생하는 인물이 피어나는 연화화생(蓮華化生) 그림을 장식하고, 용의 머리와 꼬리에 각각 인로왕보살과 지장보살을 배치해 벽화 속 용선을 옮겨 놓은 듯하다. 그 앞에 위패와 영정을 봉안하니 영가의 환희로운 왕생을 입체적으로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부산의 한 사찰에서는 법당 천장에 레일을 설치해 두고, 봉송 때 위패를 실은 반야용선을 직접 이동시켜 서방정토에 도달했음을 뚜렷이 보여준다. 영단의 동쪽 편에서 반야용선을 올린 다음 서쪽 편으로 건너가게 함으로써 천도재의 공덕으로 이승에서 극락으로 나아갔음을 가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적광전 앞마당에 괘불(掛佛)을 모시고 봉행한 동해 삼화사 수륙재(水陸齋)에서는 여법하고 정교한 일회용 반야용선을 만날 수 있었다. 대나무와 철사로 틀을 짜서 한지를 두른 뒤, 용의 모습과 선실을 아름답게 채색한 대규모 반야용선이었다. 불보살과 성중에게 지극한 공양과 기도를 올리면 그 가피로 모든 영가와 유주무주 고혼(재주齋主가 있거나 없는 영가)을 천도하니, 영단 옆에 자리한 반야용선은 이들을 싣고 서방정토로 떠날 채비를 갖춘 셈이다.

이윽고 봉송단계에 이르러 신도들은 위패와 반야용선, 지화와 금은전, 번과 기 등을 든 채 긴 행렬을 이루어 천왕문 밖 연화단으로 향했다. 수많은 대중이 연화단을 에워싸고 어산(魚山, 재에서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는 노래) 스님들의 발원이 이어지는 가운데, 모든 태울 거리를 쌓고 맨 위에 반야용선을 올렸다. “불! 법! 승!”을 외치며 불을 붙이니 불길은 삽시간에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고, 반야용선도 불에 타서 피안으로 사라졌다. 

무속의 씻김굿에서도 반야용선이 즐겨 등장한다. 망자를 저승으로 보낼 때 넋당석·신태집·신(神)광주리 등에 영혼을 싣게 되는데, 이때 반야용선이 적극적으로 차용되는 것이다. 특히 길닦음을 할 때면 유족들이 양쪽에서 ‘질베’를 팽팽하게 잡아당기고, 무당은 질베 위의 반야용선을 이리저리 밀면서 망자의 저승길을 닦아준다. 질베는 ‘길(질)’과 ‘천(베)’을 합한 말로 ‘극락줄’이라고도 부른다. 영가의 업을 씻기는 불교 관욕(灌浴)에서 ‘소창’이라 부르는 흰 무명천을 병풍에 거는 것과 겹쳐지는 대목이다. 

대표적인 무속신화 ‘바리공주’에도 불교의 섭리가 기반을 이룬다. 바리데기는 자신을 버린 돌아가신 아버지를 살리고자, 서천에서 약을 구하는 서천구약(西天救藥)의 험난한 행로를 떠난다. 가는 길에 만나는 지옥의 문을 하나씩 열어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하는 지극한 선업(善業)을 쌓으며 궁극의 목적에 도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서천(西天)은 망부(亡父)를 살릴 묘약이 있는 세계로 서방정토를 상징하며, 이때 저승으로 가는 망자들은 배를 타고 건너간다. 

자신의 급박한 처지에도 불구하고 고통받는 지옥 중생을 외면하지 않았던 바리데기의 보살심(菩薩心)이, 서방정토에 도달해 아버지를 살릴 수 있는 동력이 됐다. 이처럼 불교의 영향을 받은 바리공주 신화는 ‘고해를 건너는 구원의 배’의 참된 의미와 함께 서방정토를 향한 길이 어디서 어떻게 열리는지를 말해준다. 

반야용선을 탄 사람들

망자를 위한 천도재만이 아니라, 산 자를 위한 예수재에도 반야용선을 조성해 법당 안팎에 장엄한다. 예수재(預修齋)는 살아 있을 때 미리 닦아 극락왕생을 준비하는 의례이기 때문이다. 

몇 해 전, 밀양 광제사에서 반야용선을 타고 즐거워하는 이들을 만났다. 이들은 생전(生前)예수재에 동참한 신도들로, 마지막 회향 때 수레를 개조해 만든 반야용선에 탄 채 법성게(法性偈)를 염송하는 스님들과 함께 흥겹게 탑을 돌았다. 사찰에서는 이를 ‘용선작법(龍船作法)’이라 부른다. 큼지막한 용머리로 장식한 배의 앞쪽은 인로왕보살이 이끌고 뒤쪽은 지장보살이 따르며 네댓 명씩 용선을 타고 돌면, 나머지 신도들은 덩실덩실 춤을 췄다. 

자신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자리에서 마음껏 즐거워할 수 있는 이러한 축제성은 죽음을 대하는 우리의 전통을 그대로 드러낸다. 죽음을 대비한 수의(壽衣)를 만들 때 슬픔이나 엄숙함은 찾아볼 수 없고, 작은 잔치처럼 떠들썩한 분위기가 연출되니 서구인의 관점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모습이다. 
한편 광제사처럼 동참재자를 반야용선에 직접 태우는 일련의 예수재가 남쪽 지역을 중심으로 전승되고 있어 흥미롭다. 망자를 위한 천도재에서 고인의 위패를 반야용선에 실으니, 산 자를 위한 예수재에서는 동참재자가 직접 타는 것이 합당하다.

1980년대 거제도 어느 사찰의 예수재를 기록한 김희균의 글에서도 이 같은 축제성을 살필 수 있다. 당시 노인들은 “죽을 때 즐겁게 죽어야 저승길이 순탄하며 이생에 다시 온다”며 덩실덩실 춤판이 벌어졌고, ‘저승에 다녀오는 형식’으로 가마에 한 사람씩 타고 마당을 한 바퀴씩 돌았다고 한다. 이때의 가마는 형태와 무관하게 반야용선을 뜻하니, 마당을 돌아 저승에 다녀옴으로써 극락으로 가는 길을 미리 준비한 셈이다. 

그런데 광제사에서 설판재자·중판재자들의 경우 부처님과 왕만 탈 수 있다는 일인용 가마 연(輦)을 타도록 했으나, 이들 또한 반야용선을 더 선호해 모두 반야용선으로 통일했다고 한다. 한국 불자들에게 반야용선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반야용선을 타는 의식은 경남에 전승되는 ‘산 오구굿’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산 오구굿은 망자를 위한 오구굿을 살아 있을 때 치르는 것으로, 예수재의 영향을 받아 생겨난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절차는 오구굿과 유사해 큰굿의 열두거리를 모두 행한다. 산 오구굿의 구조를 보면 신들을 청해 축원한 다음 영혼을 천도하고, 이를 축하하는 놀이마당을 거쳐 돈을 들여 굿을 하며 소원을 비는 주인인 기주(祈主)의 극락왕생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게 된다.

산 오구굿에서는 서로 다른 반야용선이 두 차례에 걸쳐 등장한다. 먼저 굿의 핵심에 해당하는 영산맞이를 할 때면, 종이로 만든 반야용선에 망자의 위패를 실어 질베 위에 올려놓고 좌우로 밀면서 길을 닦아준다. 이어서 굿의 마지막에 행하는 마당밟이에서는 기주를 가마에 태운 채, 모든 이들이 나와서 악기를 연주하고 마당을 돌며 함께 춤을 춘다. 이를 ‘극락춤’이라 하여 무사히 극락왕생이 이루어졌음을 축하하는 것이다. 

이처럼 예수재나 산 오구굿에서 동참자들을 태우는 운송 수단이 연이든 단순한 가마든, 모두 관념적인 반야용선을 상징하고 있다. 의례 절차를 한 단계씩 거쳐 극락으로 가는 배를 탔으니, 사후를 축복하는 환희로운 축제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반야용선은 경전과 염불문의 텍스트에서 뛰쳐나와 사찰벽화의 독자적인 모티브로 그려지더니, 입체적 조형물로 조성되는가 하면 마침내 동참자들을 직접 태우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민간의 심성과 불교의 역동적인 만남 속에서, 반야용선이 지닌 신앙적 의미를 돌아보게 된다. 

사진. 유동영

구미래 
불교민속연구소 소장이자 문화재위원, 조계종 성보보존위원회 위원이다. 불교민속 전공으로 안동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저서로 『공양간의 수행자들』, 『한국불교의 일생의례』, 『한국인의 죽음과 사십구재』, 『존엄한 죽음의 문화사』, 『종교와 의례공간』(공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