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음보살과 물
관음보살과 용의 관계를 설명하기에 앞서 우선 용은 물을 상징한다는 것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불교 이야기에 등장하는 용은 거의 인도에서의 나가(Nāga)를 번역한 것이었는데, 나가는 곧 뱀 중에서 가장 무섭다는 코브라의 왕이다. 또한 이 뱀은 물을 상징하는 동물이었다. 아마도 뱀의 구불거리는 모습이 마치 물이 출렁이는 모습과 닮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실 용을 탄 관음보살의 모습은 매우 친숙한 것이지만, 정확히 언제, 어디서 시작된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더군다나 무시무시한 용과 자비로운 관음보살은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어울리는 기묘한 관계로 보인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용을 탄 관음보살의 이미지는 주로 근현대 불교미술의 주제로 널리 알려졌기 때문에 혹자는 근현대기에 새로 만들어진 도상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일단 용을 타고 있는가 아닌가의 문제를 떠나 관음보살과 용의 관계만을 본다면, 그 시작은 보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우선 <수월관음도>[도판 1]에서 그 시원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수월(水月)은 물과 달을 상징하므로 여기서 우선 물과 관음의 연관성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여기서 물은 바다를 의미한다. 이 그림은 『화엄경』 「입법계품」에서 법을 구해 길을 떠난 선재동자가 인도 남쪽에 있는 포탈락가산에서 관음보살을 만나는 장면을 소재로 한 것인데, 동아시아에서는 이 장면을 바닷가에서 일어난 것으로 연출했기에 특히 ‘수월’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이다.
관음보살은 육지뿐 아니라 바다에서의 재난에서도 중생을 구제하는 분이다. 그래서 마치 등대처럼 바닷가 높은 곳에 앉아 바다로 나간 배들이 무사한지 살펴보는 분처럼 인식된 것 같다. ‘관세음(觀世音)’이란 말 자체가 이 세상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없는지, 사고를 당한 사람은 없는지 살피는 분이란 뜻이다. 그래서 <수월관음도>의 관음보살은 특히 바다로 나간 사람들을 보살피기 위해 바닷가 바위에 앉아 계신 것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풍긴다.
독룡에서 구원의 용으로
그런데 원래 용의 이미지는 뱃사람들을 구해주는 관음보살의 편이 아니라, 반대로 뱃사람들에게 사고의 원인이 되는 풍랑이나 폭풍을 일으키는 존재였다. 도갑사에 봉안됐었으나 지금은 일본 지온인(知恩院)에 소장된 <관음32응신도>[도판 2]는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만나는 다양한 환난의 종류를 그림으로 풀어놓았다. 그중에는 바다에서 폭풍이나 풍랑을 만나는 장면도 포함돼 있다. 이 그림 속 용들은 폭풍과 풍랑의 원인이 되는 존재로서 그려진 것이지 관음보살의 구원을 상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많은 불교 모티프가 그렇듯이 이렇게 나쁜 용들도 결국은 부처님이나 관음보살의 교화를 받아 착한 존재로 거듭난다. <관음32응신도>에서 사람들을 괴롭히던 존재가 교화된 이후에는 관음보살을 돕는 존재로 뒤바뀌게 된 것이다. 사실 용들이 폭풍과 풍랑을 일으키는 원인인 것 같지만 이 장면을 자세히 보면 용은 벼락신인 뇌신(雷神)이나 풍랑을 일으키는 나찰들을 태우고 다니며 조종당하는 존재로서 등장하고 있다. 그런 용을 관음이 교화시켜 데려가 버렸으니, 아마 이후에는 뇌신이나 나찰들은 모든 일을 직접 해야 했을 테니 상당히 고생했을 것이다.
교화된 용은 이제는 오히려 관음보살께 공양을 올리는 존재로 묘사됐다. 『삼국유사』 ‘낙산의 두 성인(洛山二大聖)’ 이야기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지금의 양양 낙산사 바닷가에서 용왕이 올라와 홍련암 아래의 바위 틈새 동굴에 머무는 관음보살께 공양을 드렸다. 의상대사가 그 순간을 기다렸다가 결국 관음보살을 친견했다. 관음과 용은 이때부터 우리나라에서 더욱 밀접한 연관을 가지게 된 듯하다.
하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의상대사는 이미 용과 인연이 깊다. 당나라 유학 중에 만난 선묘(善妙)라는 여인이 의상 스님을 사모하다 못해 결국 용이 되어 스님이 바다를 건너는 것부터 부석사를 창건하는 일까지 도왔다는 이야기가 있으니 어지간한 인연이 아니다. 어쩌면 의상 스님이 관음보살을 친견할 수 있도록 마침 용왕이 동해에서 올라온 것도 용으로 변한 선묘의 아름다움을 보고 용왕의 마음이 움직였던 것인지도 모른다.
다만 이런 이야기는 『삼국유사』에서만 나오는 이야기인데 고려시대에 그려진 <수월관음도>를 보면 실제로 관음보살의 발 아래편에 용왕과 용녀 등의 무리가 그려진 것이 보인다[도판 3].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수월관음도>는 『화엄경』 「입법계품」에서 선재동자가 관음보살을 친견하는 장면을 그린 작품인데, 여기에는 용왕이 등장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고려시대의 <수월관음도>에 용왕이 그려진 것은 『화엄경』 「입법계품」을 소재로 하면서도 여기에 『삼국유사』에 보이는 ‘의상대사의 양양 낙산사 관음친견’ 이야기를 은근하게 넣어둔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에서도 드물게 <수월관음도>에 용이 삽입된 경우는 볼 수 있지만, 용왕으로서 공양을 드리는 장면은 고려불화만의 특징으로 보아도 좋을 듯하다.
이후 조선시대에 원통전(관음전)에 주존으로 모시기 위해 조성된 관음보살상의 좌우에는 선재동자와 함께 동해용왕의 상이 함께 모셔지는 것이 하나의 법식이 됐다[도판 4]. 이러한 현상은 『삼국유사』의 ‘의상대사 관음친견’ 설화의 영향으로 풀이된다.
이렇게 공양드리는 용이 결국에는 관음의 탈것으로 변화하는 과정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아마도 관음보살이 바다에 빠져 있는 이에게 달려갈 때 용은 유용한 탈것이었을 것이다. 물론 용이 없어도 관음보살이 바다로 가는 데 문제는 없겠지만, 바다에서 건진 뱃사람들을 데려오기 위해서는 용과 같은 탈것이 필요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원래 인도에서부터 신들은 각자 탈것이 있었다. 대표적인 예로 시바신은 흰 소를 타고 다닌다는 등의 이야기가 있다. 이후 문수보살은 푸른 사자, 보현보살은 흰 코끼리 등 불교의 보살들도 각자 탈것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그런 연장선상에서 관음보살의 탈것으로 점차 용이 정착된 것이 아닌가 추정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기룡관음도(騎龍觀音圖)>, 즉 용을 타고 있는 관음보살의 그림이 탄생했다. 관음보살과 용 인연 설화의 진원지라고 할 수 있는 낙산사 홍련암에는 이렇게 용을 타고 있는 <백의관음도> 벽화가 그려져 있다. 이 벽화는 근래에 그려진 것이지만, 이런 도상은 이미 18세기에 직지사 대웅전 벽면에 그려지고 있었다[도판 5]. 현재 남아 있는 작품은 많지 않지만, 아마도 이 벽화의 원숙한 표현을 보면 이보다 더 오래전에 이미 기룡관음의 도상이 성립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관음보살뿐 아니라 동자로 보이는 인물도 함께 용을 타고 있는데, 아마도 선재동자를 그린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 장면은 용왕이 등장하는 고려식 <수월관음도>의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다.
직지사 대웅전 <기룡관음도>와 같은 도상은 언제부터 성립됐을까? 마침 국립진주박물관에서 열렸던 《한국 채색화의 흐름》 특별전에 고려시대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기룡보살도>[도판 6] 한 점이 전시됐다. 비록 보관에 화불이 없어 관음보살임을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용을 탄 보살이라는 점에서 기룡관음도상의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작품이라 할 만하다. 손에는 금강저를 들고 있는데 원래 금강저는 인도의 신 인드라(제석천)가 벼락을 내릴 때 썼던 무기이니, 이제는 그 무기를 보살이 들음으로써 자연재해가 통제되고 있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나아가 비록 화불은 없지만 용을 타고 다니는 다른 보살의 존재는 알려진 바가 없으므로, 이 그림 속 용을 탄 보살도 관음보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최근 현대불화에서 그려지는 대부분의 <기룡관음도>는 그 원조를 따져보면, 일본의 근대기 화가 하라다 나오지로(原田直次郎, 1863~1899)의 1890년 작 <기룡관음도>[도판 7]를 참조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적 불화라는 점에서 이 작품은 중요하다. 아마도 이 그림도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국립진주박물관에서 만난 고려 <기룡보살도>에 다다를 것이다. 그러나 우리 문화 속에 있는 고려·조선시대의 기룡관음도상을 보다 더 적극적이고 직접적으로 반영한 이 시대의 기룡관음도가 나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구원의 용에서 극락왕생의 용으로
앞서 물에 빠진 뱃사람들을 건져 올려 뭍으로 데리고 나오기 위해 관음보살이 용을 데리고 다닌다고 언급했는데, 그 역할은 이후에 더욱 확대됐다. 즉, 물에서 뭍으로 옮겨오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예 피안에서 차안으로, 속세에서 극락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관음보살과 용의 개념으로 발전한 것이다. 여기서는 용이 ‘반야용선(般若龍船)’이라는 배로 등장하지만, 그것이 실제 나무로 만든 배인지, 아니면 용이 더 많은 사람을 태우기 위해 배처럼 변신한 것인지는 다소 모호하다. 그러나 너무도 생동감 있는 뱃머리의 용과 꼬리를 보면 아마도 후자에 더 가깝지 않나 생각하게 된다[도판 8].
나아가 반야용선은 결국 ‘반야바라밀’을 의미한다. ‘반야(쁘라즈냐)’는 ‘지혜’, ‘바라밀(파라미타)’은 ‘건너다’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강이나 바다를 건너기 위해서는 옛날에는 배를 타는 수밖에 없었으므로 용선이라는 배 자체가 곧 ‘건넌다’는 의미를 시각화한 셈이다. 따라서 용선은 용의 여러 역할 중에서 배처럼 사람들을 건네준다는 의미를 강조한 것이지 정말로 한 척의 배라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현대인들에게 용은 왕을 상징하기도 하는 신성한 동물이지만, 의외로 『삼국유사』 등에 보이는 삼국시대의 용은 그저 특이한 짐승에 불과했고, 점차 선한 영향력의 용왕과 나쁜 영향력의 독룡으로 구분되기 시작했다. 결국 모두 특별한 자연현상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시도였다고 볼 수 있다.
서양에서의 용은 대부분 악한 존재로 표현되는 데 반해, 이처럼 동양에서는 신성한 동물로 변화한 것은 아마도 용이 관음보살에 의해 교화돼 나중에는 관음보살의 탈것이 됐다고 하는 불교의 영향이 아닌가 생각된다. 모든 것에는 다 나름의 이유가 있으니 있는 그대로를 보라고 가르쳤던 불교는 결국 악천후와 같은 자연을 바라보는 중생의 시각마저도 바꾸어 놓았음을 기룡관음도상이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주수완
불교미술사학자이자 우석대 경영학부 예술경영전공 교수.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인도와 실크로드에서 중국과 한국에 이르기까지 불교미술 도상의 발생과 진화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솔도파의 작은 거인들』, 『한국의 산사 세계의 유산』, 『불꽃 튀는 미술사』, 『미술사학자와 읽는 삼국유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