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된 어머니, 마야 왕비
한 종교를 창시한 성인의 어머니라면 당연히 극진한 존경을 받아야 할 것 같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는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기에 어린 시절을 온전히 어머니에게만 의지하며 보냈다. 아마도 어린 시절의 무함마드에게 많은 영향을 줬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어머니마저 무함마드가 6세 때 세상을 떠났기 때문인지 사실상 이슬람교에서 무함마드 어머니의 비중은 크지 않다. 또한 일부에서는 그녀가 유일신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천국에 가지 못했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해석상의 차이일 뿐이라고 해도 이슬람교에서는 무함마드 어머니의 위상이 높지 않음이 분명하다.
공자의 어머니는 공자가 17세가 될 때까지 비교적 오랜 시간 그를 양육했지만, 마찬가지로 유교 경전에서 자주 언급되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위치인 것도 아니다.
반면 기독교는 성모 마리아를 숭배하며, 특히 가톨릭의 경우는 불교의 관음보살과 비견될 정도로 독자적인 성모 신앙을 형성하고 있다. 어쩌면 불교는 이슬람교나 유교 및 그와 상반된 기독교에서의 성인의 어머니에 대한 위상, 그 중간쯤에서 부처님의 어머니 마야 왕비를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차이점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아마도 무함마드와 공자는 성인으로 존경을 받지만 결코 신은 아니었던 반면, 예수는 신이었다는 점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위대한 인간이라고 해서 그 어머니까지 위대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그런 위대한 인물을 낳고 훌륭하게 키워냈다는 점에서 존경을 받기도 하지만,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우리가 아는 위인 중에 사실상 그들의 어머니까지 기억하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다.
반면, 신을 잉태하고 낳는 것은 아무나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불교와 기독교에서의 어머니는 완벽한 존재여야만 했다. 비록 불교에서 부처님은 결코 신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 신이라는 개념이 기독교와 다를 뿐이다. 부처님은 평범한 인간이나 선지자의 능력을 완전히 넘어서는 존재라는 점에서 기독교에서의 예수 위상에 더 가깝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마야 왕비는 부처님을 출산한 지 7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4대 종교 성인들의 어머니 가운데 가장 이르다. 석가모니라는 위대한 분의 출산이 인간인 마야 왕비에게는 자칫 큰 부담이었을지 모른다. 신적인 존재의 어머니는 완벽해야 하는데, 출산 후 7일 만에 돌아가셨기에 불교경전의 해석자들은 이 문제를 무리 없이 설명하려고 많은 이론을 제시했다.(하지만 7일은 마야 왕비가 실질적으로 석가모니의 생애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 시간도 아니었다는 점에서 특별한 위상을 부여하기 어려운 상황일 수도 있다.)
특이한 것은 석가모니와 예수의 아버지는 오래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존숭의 대상까지는 되지 않는다. 모차르트의 아버지가 아들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잘 교육시켜 존경받는 것과 같이 언급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석가모니나 예수는 모두 동정녀, 즉 어머니가 아버지와의 관계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아니라 혼자서 낳은 아들이기에 사실상 아버지는 아버지가 아니다. 두 성인의 위대함은 스스로에서 나온 것이지 아버지의 교육에서 나온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통해 불교에서 마야 왕비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이 단지 부처님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라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부처님의 일대기를 기술한 경전에서는 부처님이 아직 태어나기 전 도솔천에 머무실 때 누구를 부모로 하여 태어날 것인가를 고민하는 장면에서 마야 왕비는 완벽한 여성이자 어머니로서 칭송된다[도판 1]. 즉 부처님의 어머니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부처님이 선택한 결과였고, 그 선택은 마야 왕비가 매우 훌륭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으며, 이는 결국 마야 왕비가 부처님이 이 세상에 내려오는 데 일종의 ‘포털(Portal, 문)’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원인이었다. 비록 마야 왕비는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이 점만으로도 불자들은 마야 왕비를 각별하게 생각할 이유가 있다. 마야 왕비는 부처님 세계와 우리들의 세상을 이어준 분이기 때문이다.
지혜로우며 수행하는 여인 마야 왕비
불교에서의 마야 왕비에 대한 이러한 존경은 문헌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과거 마야 왕비를 표현한 인도의 조각작품에서 그들의 인식을 간접적으로 읽어볼 수 있다. 가장 많이 묘사된 장면 중 하나는 부처님이 하얀 코끼리의 형태로 마야 왕비의 태에 드는 장면이다[도판 2].
여기서 마야 왕비는 상체를 드러낸 채 침대에 누워있고, 주변에는 호위하는 듯한 인물들이나 시녀들이 묘사돼 있다. 하늘에서는 코끼리가 마야 왕비의 옆구리를 향해 날아내려 오는 장면이 보인다. 이를 백상입태(白象入胎), 즉 ‘흰 코끼리가 태에 드는 장면’이라 부른다. 이런 경우 단순히 경전에 묘사된 내용을 충실히 반영해 표현하는 것만은 아니다. 예를 들어 인도 본토에서 만들어진 바흐후트 스투파의 돌울타리에 새겨진 <백상입태>와 파키스탄에서 발견되는 간다라 양식의 <백상입태> 장면은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도판 3].
간다라 양식이란 고대 그리스 미술 양식이 동쪽으로 전파되면서 만들어진 헬레니즘 양식과 도상을 많이 반영한 인도 북부 지역의 불교미술인데, 이 지역에서 묘사된 <백상입태> 장면은 왠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디오니소스 신과 아리아드네의 이야기를 묘사한 그림과 유사해 보인다. 테세우스에게 버림받고 낙소스섬에 홀로 버려진 아리아드네가 디오니소스 신의 선택을 받아 그의 부인이 되는 장면이다[도판 4].
물론 이 그리스 신화와 불교의 백상입태는 내용상 차이가 있다. 마야 왕비는 버림받은 것이 아니라, 남편인 왕에게 부탁해 홀로 지내면서 몸과 마음을 수양할 수 있는 시간을 허락받아 자발적으로 혼자가 된 것이었고, 남편(디오니소스)이 아니라 아들(싯다르타)로서의 신을 만나는 개념이다. 그러나 홀로 된 여인을 신이 선택한다는 점에서는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다. 아마도 인도에서는 마야 왕비를 아리아드네에 비견했던 것이 아닐까?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의 미궁에서 빠져나올 방법을 알려준 지혜로운 여인인 만큼 마야 왕비 역시 지혜롭다는 것을 이 도상을 통해 간접적으로 설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아기 부처의 탄생 장면인 <수하탄생>에서 마야 왕비는 서 있는 상태에서 손으로 나뭇가지를 잡고 옆구리로 출산하고 있는데, 그 옆에는 한 시녀가 마야 왕비를 돕는 것처럼 붙잡아 주고 있는 장면이 연출돼 있다[도판 5]. 그런데 막상 경전에서는 이렇게 도와주는 시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홀로 룸비니의 연못 주변을 걷다가 갑자기, 그것도 수월하게 출산했기 때문에 시녀가 옆에서 도와줄 틈도 없었다.
마침 그리스 신화 속 레토(Leto)가 아르테미스와 아폴론을 출산할 때의 서사구조가 <수하탄생>의 도상적 구조와 유사하다. 레토는 한 손으로 종려나무 가지를 붙잡고 무릎을 꿇은 채 아르테미스와 아폴론을 출산했다고 한다. 또한 레토는 아르테미스를 먼저 낳았고, 아르테미스는 곧바로 소녀로 성장해서 어머니가 자기 동생인 아폴론을 출산하는 것을 도왔다고 하는데, 어쩌면 <수하탄생> 장면 속 시녀는 레토의 출산을 돕는 아르테미스 모티프를 차용한 것이 아닐까 짐작한다.
마야 왕비가 무우수 가지를 손으로 붙잡고 출산한 것이나 다리를 꼬고 서 있는 모습도, 레토가 종려나무 가지를 잡고 무릎을 꿇은 채 출산한 것과 유사한 모티프였기에 아마도 이 장면을 마야 왕비의 출산 장면으로 차용해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레토는 여신 헤라의 각종 위협을 무릅쓰고 난관을 극복하며 제우스 사이에서 생긴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라는 신들을 출산해 여신이 된다. 마야 왕비 역시 많은 세속의 쾌락을 멀리하고 정숙한 여인으로서 부처를 출산함으로써 신의 반열에 들었음을 암시하기 위한 시각적 표현이라 하겠다.
도리천과 중생을 이어주는 마야 왕비
그리스 신화 속 아리아드네와 레토가 신의 반열에 들었다면, 마야 왕비는 죽음 이후 도리천에 환생한 것으로 불교 문헌들은 전하고 있다. 또한 석가모니는 사위성에서 기적을 선보인 후 곧바로 어머니가 계신 도리천에 올라 어머니 마야 왕비에게 설법했다고 한다[도판 6]. 무함마드의 어머니는 무함마드가 계시를 받기 이전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온전한 신앙을 미처 갖추지 못했다고 하는데, 그런 면에서 보면 마야 왕비도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시기 한참 전에 세상을 떠나 설법을 들을 수 없었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러나 마야 왕비는 사후에 도리천에서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깨우침을 얻어 더욱 완성된 존재로 거듭나게 된다는 차이가 있다.
나아가 단지 마야 왕비 한 사람만이 아니라 도리천의 수많은 천신도 함께 부처님의 설법을 듣게 된다. 결국 마야 왕비는 과거에 도솔천과 세상을 이어준 포털이 됐던 것처럼, 이번에는 도리천과 세상을 이어주는 포털이 된 셈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마야 왕비와 부처님 모자로서의 관계를 통해 우리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때로 자식들은 부모들에게 “왜 우리를 세상에 낳았냐”, “낳았으면 책임져라”라고 따질 수 있다. 그러나 부처님이 마야 왕비를 어머니로 선택하듯, 자식들 역시 그저 부모로 인해 떠밀려 태어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선택일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부모는 때로 자신들이 자식을 낳았다고 해서 자식들을 소유물로 생각하며 학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마치 부처님이 세상으로 나오기 위해 마야 왕비라는 분을 통했을 뿐, 부처님은 마야 왕비의 소유물도 숫도다나왕의 소유물도 아니었듯이 말이다.
부모는 세상에 나아가려는 또 다른 생명에게는 일종의 포털인 셈이다. 그렇다고 세상에 나왔다고 해서 각자의 역할, 즉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자식은 부모, 특히 어머니에게 큰 산고를 안기며 세상에 나온 것에 감사해야 하고, 부모는 마치 부처님이 사후에도 어머니를 생각하는 것처럼 자식들을 통해 오래 기억될 수 있음을 감사해야 한다. 부모와 자식은 상호 간에 존중하라는 것이 마야 왕비를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불교의 가르침이 아닐까.
주수완
불교미술사학자이자 우석대 경영학부 예술경영전공 조교수.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인도 및 실크로드에서 중국과 한국에 이르기까지 불교미술 도상의 발생과 진화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솔도파의 작은 거인들』, 『한국의 산사 세계의 유산』, 『불꽃 튀는 미술사』, 『미술사학자와 읽는 삼국유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