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 창간 50주년] 새벽을 달리는 우리의 도반 - 우유배달 아줌마 윤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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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 창간 50주년] 새벽을 달리는 우리의 도반 - 우유배달 아줌마 윤현자
  • 권현주
  • 승인 2024.06.0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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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는 불광 ⑥ 1991~1993
오늘을 밝히는 등불들 | 글. 권현주

새벽 3시 30분의 이른 시간, 오늘도 서둘러 잠자리를 정리한 윤현자(44세) 씨는 식탁 한 모퉁이에 정좌하고 아침기도를 한다. 30~40분의 기도를 마친 4시 10분. 그는 곧바로 현관문을 나선다. 우유배달과 신문배달을 하기 위해서다.

칠흑 같은 어둠을 가로지르며 달려 나가는 그녀. 다행히도 오늘은 어제보다 한풀 꺾인 날씨라 200여 집의 우유배달과 다섯 동 신문 돌리기는 별 부담이 없을 성싶다.

그가 우유배달을 시작한 것은 올 3월의 일이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자기 용돈은 자기가 마련하기 위해 신문배달을 하겠다는 막내딸 아이가 대견스럽지만 새벽길이 위험하고 안쓰러워 말리다 못해 따라나선 것이 지금은 그의 몫이 되었다.

새벽 4시 10분부터 5시 30분까지 노원구 하계동 시영 아파트 5, 6단지에 우유를 그리고 곧바로 6시 10분까지 6단지 내 다섯 동에 신문배달을 한다. 아침 이 시간엔 고맙게도 큰딸아이(대학원생)가 어머님의 수고로움을 덜고자 함께 뛴 지도 몇 달째. 맏딸은 그녀에게 든든한 동반자가 되었다.

새벽일이 끝나는 대로 집으로 돌아와 다음날 우유 주문을 하길 20여 분, 그 일이 끝나면 아이들이 먹을 아침과 저녁거리를 준비하는 것으로 그녀는 아침의 일과를 마무리한다.

그녀가 사는 곳은 하계동 시영아파트다. 자상하고 근엄한 남편은 거듭 실패한 사업으로 이젠 경기도 이천 자그마한 터전에서 왕우렁이, 개 사육을 혼자하고 있고 대학원생인 큰딸, 대학 3년생인 아들, 대학 1년생인 막내딸은 그녀와 함께 서울에 있다.

네 식구의 빨래, 청소, 집안일을 마친 그녀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서둘러 집을 나선다. 오후 2시부터 9시까지 국민학생(초등학생-편집자 주) 과외지도를 하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을 꼭 써야 할 곳이 있기 때문이다. 집에서 가까운 노원역 사천왕사가 바로 그곳이다.

“고위 간부직에 있었던 남편은 정권교체의 시대적 상황에 따른 일로 제적을 당했지요. 그것이 ’79년의 일입니다. 그 사실을 아는 순간 저는 까마득한 절망으로 숨조차 쉬기 어려웠습니다. 어떻게 할지도 모르고, 그때 다리가 마비되어 걷지 못하는 일도 당했습니다. 그 충격을 지금까지 어떻게 버텨왔는지…. 그 뒤 있는 집 정리하여 의류업을 시작했지요. 10여 년 동안 그 일을 하게 되었지만 제가 큰 수술을 하는 바람에 도저히 가게 일을 지속할 수가 없었지요.”

그녀가 의류업을 하는 동안 남편은 두 차례 사업을 벌였지만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넉넉하게 살았을 때 아이들 교육상 시켜왔던 아르바이트는 이젠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인지 솔선하여 3남매 모두가 자기 용돈을 물론 학자금까지 마련하는 일이 되었다.

가족 모두가 어려운 생활을 계속하던 몇 해, 그녀에게 사천왕사는 마음의 평온을 안겨다 주는 일을 했다. 종교가 없었던 2년 전 어느 날 저녁, 독서실에서 공부하는 막내딸에게 도시락을 갖다주다 빌딩 속 지붕 위에 卍자 푯말에 끌려 어슴어슴 찾아 들어간 곳이 사천왕사였다. 귀 설었던 절 이름, 낯선 부처님의 모습…. 그녀에게 이젠 하루도 빠짐없이 꼭 들려야 하는 곳이 되어버렸다.

그는 사천왕사의 회보 만드는 일을 거들고 있다. 함께 정진하는 도반의 가정을 취재하고 지면에 발표하는 신심 다지는 일은 물론 손이 필요한 곳이라면 부엌일, 법당 일, 방석 정리하는 일 등을 신바람 나게 몸을 움직인다. 부처님 품 안에 조금이라도 더 머물고 싶은 그녀의 마음이다. 그곳에서 삶의 힘을 충전하면 오후 2시부터 9시까지 4명의 아이를 거뜬히 가르칠 수 있고 파김치가 되지 않는 한 다시금 부처님 얼굴 한 번 더 보고 집으로 달려간다.

“불법을 알게 된 이후. 저는 정말 행복합니다. 내 생활의 버팀목이 부처님이지요. 처음에는 속이 많이도 아팠습니다. 제 성격상 밖으로 드러내 보이지도 못하고 삭히고 삭히고 그러기를 몇 년, 이젠 평온합니다.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렸어요. 내 마음이 맑으면 법계(法界)가 맑다, 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새벽 우유배달, 신문배달이 예전처럼 창피하지가 않아요.”

그녀가 부처님 한 번 더 친견하고 돌아온 저녁 시간은 9시 30분. 식사하고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며 하루를 정리하면 11시. 내일을 뛰기 위해 잠자리에 든다.

그녀의 한 달 수입은 125만 원 정도이다. 신문배달로 15만 원, 우유배달로 45만 원, 그나마 우유 신청하는 집이 떨어지면 40만 원. 그리고 과외비 65만 원을 합친 액수다. 이 돈으로 생활비, 학비, 전세금 올릴 때 빌려 쓴 이잣돈을 내면 항상 태부족이다.

이천에서 혼자 생활하는 남편은 서울 가족을 위해 생활비를 보태 줄 형편은 못 되고 아이들은 모자라는 몫을 아르바이트로 감당하고 있다. 그러다가도 아이들은 힘든 생활에 지쳐 짜증을 낼 때도 더러 있다. 잘 참아주고 오히려 그에게 삶의 자극을 주었던 아이들의 이런 통곡은 그에게는 가장 힘든 고통이다. 이럴 땐 부처님께 달려가 몇 시간이고 앉아 있다 돌아오는 그이다.

주말이 되면 윤현자 씨는 더욱 바빠진다. 아침 9시에 집을 나서 남편에게 달려간다. 밀린 빨래며, 청소, 반찬거리를 준비해 놓아야 2주일 동안 그가 비워둘 자리를 메꿀 수 있다. 남편과 떨어져 산 지가 벌써 4년째다. 그런 남편에게 그녀는 웃음을 잃지 않는다. 거듭 실패하는 사업인데도 다음 사업을 벌일 땐 군소리 없이 돈을 마련해 주었고, 힘이 되어 주었다. 그런 아내에게는 신앙이라는 커다란 은혜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음을 이젠 남편도 안다. 내려올 때마다 한두 권씩 갖다주는 불교 서적을 언제부터인가 남편은 읽고 있는 모양이다.

‘욕심부리지 않으면 된다. 원래가 없었다. 처음으로 돌아가자. 원래 내 것이 아닌데…. 신문 돌리는 일, 우유배달이 힘겹고 부끄럽지가 않다. 중고등학생을 가르쳐야 하는 사람이 코흘리개와 씨름하는 일도 자존심이 상하지 않는다. 작은 아파트에서 갖춰진 살림도 없이 사는 모습이 나 자신에게도 이웃에게도 창피하지가 않다.’ 그녀가 부처님과의 만남으로 얻어진 크나큰 깨침이었다.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을 만큼 경제적인 여유가 있으면 더 바랄 것 없고, 아이들과 남편이 내 마음 편안하듯 욕심 안 부리고 살았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그에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는 말한다. 

“손이 닿는 대로 내 힘닿는 대로 절 일하며 사천왕사에 모인 도반들과 함께 정진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기쁨입니다. 지혜로운 사람만이 마음을 다스린다고 합니다. 이제서야 그 마음 닦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겠습니다.”

 

*1993년 1월호(통권 219호)에 실린 권현주 기자의 윤현자 씨의 인터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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