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이렇게 이야기하면 어떨까? ‘과학은 유교가 진실임을 입증합니다. 유교의 경전인 《주역(周易)》에는 만물의 근원이 음과 양이라고 나와 있는데요. 분자생물학자들은 DNA가 두 가닥의 사슬이 꼬여 있는 이중나선임을 밝혀냈거든요!’ 다른 사람은 이렇게 응수한다.
‘과학은 기독교가 진실임을 입증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혼돈으로부터 우주 만물을 질서 있게 창조하셨다고 나와 있는데요. 물리학자들은 우주 전체가 단순하고 보편적인 물리 법칙에 의해 작동함을 밝혀냈거든요!’ 불교에 호의적인 독자 여러분은 물론 고개를 가로저을 것이다. 수천 년 전에 성립된 기성 종교의 교리 가운데 일부가 현대 과학이 발견한 사실과 우연히 부합한다고 해서 그 종교의 무게가 더해지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대다수 저명한 과학자가 우주 만물을 관통하는 자연법칙이 있음을 인정하면서 기독교의 창조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에는 어떠한 논리적 모순도 없다.1) (몇몇 기독교 신자는 ‘아니, 어떻게 과학자들은 하나님의 창조 설계가 보편적인 자연법칙을 통해 드러남을 한사코 외면하는 거지?’ 하고 답답해하겠지만, 다행히 이 글은 그런 분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흥미롭게도, 불교의 핵심 사상이 현대 과학에 의해 뒷받침되므로 불교는 다른 종교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주장이 최근 들어 서구 학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주도하는 지식인은 《불교는 왜 진실인가》를 쓴 과학저술가 로버트 라이트(Robert Wright), 《나는 착각일 뿐이다》를 쓴 신경과학자이자 철학자 샘 해리스(Sam Harris), 《불교 이후》를 쓴 불교학자 스티븐 배철러(Stephen Batchelor) 등이다.
‘불교 예외주의(Buddhist exceptionalism)’를 주장하는 이들에 따르면, 불교는 그 본성이 합리적이고 실증적이라는 점에서 다른 종교보다 더 우월하다. 불교는 만물을 창조한 신을 무조건 따르는 종교라기보다는, 각자의 마음에 대한 실증적 관찰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치료법, 생활 방식, 혹은 ‘마음 과학’이다.
해리스는 불교의 가르침은 인간 의식의 본성에대한 실증적인 연구 결과를 탐구자가 상세히 적은 보고서나 실험실 매뉴얼로 보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고 말했다. 불교 예외주의는 속 편하고 경솔한 믿음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도 해리스는 몇몇 동양 전통은 예외적으로 실증적이고 예외적으로 현명하므로, 지지자들이 주장하는 예외주의를 누릴 자격이 있다 고 맞선다.
불교의 자연적인 측면이 진화생물학과 심리학의 많은 증거에 의해 지지된다는 의미에서 불교는 진실일까? 로버트 라이트는 윤회처럼 불교의 초자연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책에서 논의하지 않는다고 양해를 구했지만, 자연적 불교와 초자연적 불교를 구분하는 라이트의 접근이 과연 타당한지는 의문이다.
예컨대, 철학자 이반 톰슨(Evan Thompson)은 어떤 사건이 아무 이유 없이 일어나는 우연(偶然)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불교의 교리는 우연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우연의 역할을 진지하게 탐구하는 물리학, 생물학, 화학 등 현대 자연과학과 크게 어긋남을 지적한다.
모든 사건에는 원인이 있다는 자연적 불교의 가르침이 자연과학에 의해 부정된다는 의미에서, 불교는 진실이 아닌 걸까? 보다 근본적으로, 수천 년 전의 농업 사회라는 시대적 한계라는 틀 안에서 여러 사람이 쓴 종교 경전에 나온 내용 가운데 일부가 현대의 자연과학이 이룩한 발견과 우연히 부합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