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대화엄사] 도시로 나온 화엄, 빛고을포교원과 해동용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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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대화엄사] 도시로 나온 화엄, 빛고을포교원과 해동용궁사
  • 이준엽
  • 승인 2024.09.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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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 그린 빛의 세상, 지리산 대화엄사] 하늘을 나는 거북鷰, 양 날개 펴고 대중 속으로

백제 성왕이 임금에 오른 지 22년째 되던 해(544년)였다. 서쪽의 머나먼 땅 천축국에서 연기조사가 하늘을 나는 거북(연鷰, 용 머리에 날개가 있는 거북)을 타고 해동 지리산으로 날아왔다. 연기조사가 동쪽으로 온 까닭은 얽히고설켜 살아가는 중생들에게 ‘부처님 세상’을 설하기 위함이었다. 

연기조사는 연을 타고 지리산 골짝을 누비며 민초를 찾아 나섰다. “세상 만물은 어느 것 하나도 홀로 존재하지 않고, 서로 의존하며 관계지어 있다”며 더불어 모두가 안락한 ‘화엄(華嚴)’을 노래했다. 『화엄사 사적』에 전하는 지리산 대화엄사 창건 이야기다.

화엄사가 산문을 연 지 1,500년이 흘렀다. 연기조사 후학들은 불국정토를 펼치기 위해 끊임없이 ‘찾아가는 화엄’을 펼쳤다. 근래 들어 연기조사 후예들이 연을 타고 지리산 산사를 벗어나 도심으로 향하고 있다. 국토 중앙 지리산에 자리한 화엄사가 동·서 최대 도시인 부산과 광주에 포교거점을 마련한 것이다. 그 형상이 마치 하늘을 나는 거북(연)이 날개를 활짝 편듯하다. 21세기 화엄사가 펼치는 ‘연익진(鷰翼陣) 포교’다.

 

광주-화엄사빛고을포교원

광주 빛고을포교원 주지 연성 스님. 사진 빛고을포교원

2021년 11월, 화엄사가 빛고을 광주(光州)에 ‘화엄사빛고을포교원’을 개원했다. 전 화엄사 주지 원응당 종원 대종사가 도심포교를 발원하고 광주에 부지를 매입한 지 30년 만에 이룬 대 불사다.

“화엄사빛고을포교원이란 명칭이 말하듯, 광주에 자리한 화엄사 전각의 하나입니다. 지리산 큰 절까지 가지 않아도 화엄사에서 수행하듯, 새벽예불은 물론 기도하고 공부하며 정진하는 도심 속 화엄사입니다.”

주지 연성 스님은 “산사의 사찰이 수행자 중심이라면 도심 속 포교원은 재가불자를 위한 수행 공간”이라고 강조한다. 스님은 “도심 포교원이기에 불자뿐 아니라 환경 및 공익사업, 다문화사업 등 대 시민사업에도 관심을 가지고 지역민과 소통에 힘쓰고 있다”고 덧붙인다.

주지 연성 스님은 화엄사를 대표하는 MZ세대 스님이다. 10대 시절 화엄사에 들어와 초등학교부터 학창 시절을 절에서 보냈다. “밖에서 미운 오리 새끼여도 절에서는 백조”라는 노스님의 격려에 어린 나이에 출가했다. 19세에 비구계를 받던 날 ‘차원 높은 수행자가 될 것’을 발원했다. 그리고 첫 번째 주지 소임으로 화엄사빛고을포교원의 초대 주지를 맡게 됐다. 

‘바른신행, 젊은불교’를 주창하는 연성 스님은 우선적으로 불교 교육에 힘썼다. 빛고을불교대학을 개설하고 지역민을 위한 문화강좌를 열었다. 젊은 불교를 위해 포교원 가까이에 있는 호남대학교를 찾아 교수, 교직원, 학생이 함께하는 연합불교동아리를 조직했다.  

광주 하남동에 위치한 빛고을포교원 전경. 사진 유동영

도심 포교원의 특성상 주지 업무의 대부분은 ‘만남’이다. 법회를 통한 대중과의 만남에서 시도 때도 없이 이어지는 신행 상담에 이르기까지 ‘만남’이 계속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역불교를 위한 대외업무도 중요한 소임이다. 동련 광주지부 회장을 비롯해 호남대불교동아리 지도법사, 광주불교연합회 임원, 빛고을나눔나무 운영위원 등 수많은 직함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만남은 인연입니다. 순간의 인연이 평생을 좌우하기도 합니다. 상담은 도심 포교원에서 특별하고 중요한 포교이기에 다양한 이들과 만남을 갖고 있습니다. 짧은 차담일지라도 부처님과의 평생 인연이 될 수 있습니다.”

연성 스님은 불교 행사에 꼭 가족이 함께 참여하기를 권한다. 내년에는 재일법회뿐 아니라 직능별법회, 일요법회를 활성화할 예정이다.

빛고을포교원이 자리한 광주 하남지구는 한반도 서남권에서 가장 큰 산업단지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서 쏟아져 나오는 젊은이와 외국인 노동자까지 더해 광주를 대표하는 신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빛고을포교원은 대지 895m2에 지하 1층, 지상 4층의 현대식 건물이다. 1층 종무소와 주차장, 2층 삼천불을 모신 대웅전, 3층 약사전과 시민선방, 문화교실 등 다양한 신행 공간과 4층에 요사채를 갖추고 있다. 도심 속 포교 가람에 걸맞게 외형과 내부 시설은 현대적이지만 곳곳에 전통사찰 양식을 곁들여 한국불교의 전통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지하에 자리한 후원(공양간)은 도심 속 카페를 방불케 한다. 지상까지 연결된 화계마당은 대중공양과 차를 마시며 쉴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인기가 높다.

“불자는 물론 출가자가 급감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수 없습니다. 벌떡 일어나 대중이 힘들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 나서야 합니다. 그래서 빛고을포교원의 화두는 ‘뭐라도 하자’입니다.”

 

부산-해동 용궁사

부산 해동용궁사 주지 덕림 스님. 사진 이준엽

해동용궁사를 찾았을 때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무더위가 한창인 7월 말이었다. 숨조차 쉬기 힘든 이 더위에 누가 사찰 참배를 하랴 싶었다. 땅끝 부산의 해동용궁사는 달랐다. 펄펄 끓는 주차장부터 도량까지 사람들의 발길에 치여 멈춰서기를 반복했다. 

부산 불교 종갓집 범어사, 단위사찰로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삼광사와 더불어 동해 아름다운 사찰 해동용궁사는 부산을 대표하는 3대 사찰임이 틀림없었다.

“해동용궁사를 찾는 이가 연간 600만 명이 넘습니다. 한분 한분이 모두 소중한 ‘참 생명’입니다. 이들에게 부처님과 더 좋은 인연을 맺어주기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한번 맺은 인연이 계속 이어지도록 혼신을 다하고 있습니다.”

사시예불을 마치고 법당을 나서는 주지 덕림 스님은 “해동용궁사 참배객은 내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다”고 소개한다. 

도량 입구에서부터 석조 12지신상, 포대화상, 황금돼지 형제, 승천하는 용 등 전통사찰과 달리 특별한 전각과 상징물이 눈에 띄었던 연유다. 세계인의 근기에 따라 부처님과 인연 맺도록 하다 보니 해외에 온 듯하다. 그렇지만 부산을 찾는 이들이 가장 먼저 해동용궁사로 발길을 돌리는 것은, 동해 바닷가 기암절벽 위에 펼쳐진 아름다운 기도도량이기 때문이다.

창건은 1376년(고려 우왕 2) 공민왕 왕사였던 나옹화상이 토굴을 짓고 정진하면서 도량이 열렸다고 전한다. 이후 지역민과 뱃사람들의 안식처가 되어 명맥을 이어왔다. 조선시대에는 원앙대, 시랑대로 불리며 계룡단에서 용왕에 기우제를 지내던 용왕신앙의 성지로 자리 잡았다. 경내에 자리한 용왕단과 감로약수가 그 중심이다. 

세월의 흐름 속에 흥망성쇠를 거듭하다가 1935년 운강화상이 중창했고, 1974년 정암 스님이 도량을 크게 일신했다. 

정암 스님은 지리산 화엄사에서 도광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전국의 선지식을 찾아다니던 중 이곳을 인연 터라 여기고 바랑을 풀었다. 기도정진을 이어가던 어느 날 해수관음보살이 용을 타고 하늘로 오르는 꿈을 꿨다. 이후 해동용궁사라 사명을 바꾸고 중창불사를 펼쳤다.

부산을 대표하는 3대 사찰 중 하나인 해동용궁사. 사진 유동영 

2021년, 시절인연이 익어져 제19교구 화엄사 말사로 등록했다.

“요즘 사람들의 트렌드는 ‘뷰(view)’가 좋아야 합니다. 해동용궁사는 도량 곳곳에서 최고의 풍광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비 오고, 눈 내리고, 태풍이 불면 날씨에 따라 운치가 더합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이 곧 내 마음임을 알아차렸다면 해동용궁사 참배를 잘한 것입니다.”

덕림 스님의 탯자리는 남도의 작은 섬이다. 어려서부터 섬을 벗어나는 꿈을 꿨고, 가출하듯 섬을 나와 도시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다. 수많은 일을 전전하다가 목공예 일을 하게 됐다. 주로 불상을 조성했다. 그런데 목공예 일은 좋았지만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무리 혼신을 다해도 편안한 얼굴이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생명이 있는 부처님을 조성할 수 있을까? 결국 그 마음을 찾고자 삭발염의했다. 

덕림 스님은 출가 후 봉암사 선방을 시작으로 오직 마음찾기에 전념했다. 선방에서 안거를 거듭하면서 조금씩 몸을 조복 받게 됐다. 수행납자로 이력이 붙고 부처님 밥 먹은 빚을 갚기 위해 대중 속으로 나왔다. 2년 전, 덕림 스님은 해동용궁사 주지 소임을 맡아 숙원사업인 도량 부지 문제를 정리했다. 전통사찰 등록을 마치고 목조보살좌상의 보물 지정을 위해 힘쓰고 있다.

“제가 하는 일은 도량 곳곳을 유유자적하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화두를 놓치지 않는 수행자지만 참배객이 많아 사고 위험을 미리 예방하기 위함입니다. 아울러 외국인들에게는 스님이 먼저 말을 건네고 함께 차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큰 추억이 됩니다. 한국의 전통사찰과 불교문화, 나아가 한국문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곧 포교입니다.”

덕림 스님은 일요일마다 점심때 국수와 떡국 나눔을 한다. 도량에서 나눔을 실천하고 외국인에게 한국 음식을 맛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뿐만 아니라 참배객들이 올린 공양미는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모두 지역의 복지시설에 보낸다. 부처님오신날이나 특별한 행사가 있으면 수시로 종단은 물론 지역 청소년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격려한다.

요즘 들어 덕림 스님은 해동용궁사가 한국불교의 세계화를 주도하는 도량이 되기를 꿈꾸고 있다. 도량 곳곳에 AI 스님, AI 포교사를 두어 외국인 참배객들의 질문에 답하고, 한국불교를 알리며, 부처님 말씀을 전한다는 복안이다. 

광주 화엄사빛고을포교원과 부산 해동용궁사는 조계종 제19교구 화엄사 말사다. 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은 ‘화엄사 미래 1,000년은 도심포교에 있다’고 선언하고 도심포교를 주도하고 있다. 

“화엄사 보제루에 ‘화장(華藏)’이라는 현판이 있습니다. 수많은 꽃이 모여 장엄하는 화엄장 세상을 말합니다. 연기조사가 연을 타고 중생을 찾아 나섰듯이 화엄사 대중은 향후 1,000년도 중생 꽃을 찾아가 화엄세계를 꽃피우겠습니다.” 

바닷가 기암절벽 위에 세워진 기도도량 해동용궁사에서 바라본 동해 바다. 사진 유동영

 

이준엽
동국대 대학원에서 불교미술문화재를 수료했다. 법보신문, 현대불교신문 기자를 거쳐 현재 대불련 전북지부 지부장, 불교신문 광주전남 지사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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