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 둘 뚝뚝 떨어져 포도를 딩구는 가로수 잎 하늘거리는 코스모스의 차가운 표정, 가을도 이제 깊숙이 접어든다. 불붙는 것 같은 단풍 혹은 붉게 혹은 누렇게 왕성한 가을의 정열을 마지막 불사르는가.
하지만 이 가을의 타오르는 단풍이 아무래도 깊이 잇는 새 삶을 향한 준비인 듯 화려한 새 출발의 장식인 듯이도 보인다.
밖으로만 뿜어 댔던 성장의 열기를 다소곳이 안으로 거둬들이고 뿌리 속에 간직하며 새 연륜을 새기면서 새 성장의 설계에 잠겨 드는 것, 역시 왕성한 성장에는 땅 속 깊숙이 간직한 힘의 축적과 든든한 뿌리가 선재하는 것, 생각을 거두어 깊은 상념에 젖게 하는 것도 역시 가을의 탓이리라.
아름다운 단풍의 속 사성을 이 가슴에도 고이게 하고 새기고 싶다. 새 삶을 향한 생성의 힘과 꿈과 기쁨을 조용히 만상을 거두는 이 가을을 시작으로 하여 침묵 덮인 눈 속에서 익히고 영글게 하고 싶다.
♠ 지난 10월 10일은 불광법회 창립기념법회가 있었다. 올해로 만 10주년이 된다고 한다. 10년 전 서울 종로 대각사에서 30명으로 출발한 법회는 그동안 소리 없이 성장하면서 우리 불교계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켜 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회원도 적잖이 늘었고 법회장소도 마련하여 오늘의 우리 불교 포교도량으로서는 손꼽히는 법회로 성장했다.
우리나라 포교에 대한 관심과 포교를 주로 하는 법회의 성장세는 불론 불광법회만이 아니다. 전국적으로 포교운동이 왕성하게 퍼지고,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 오늘의 실정, 다만 불광법회에 관심 가질만한 점이 있다면 수행중심의 모임이라고 할까.
즉 생활을 수행과 함께 하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하후 활동을 하고 밤에 잠이 들 때까지 수행을 생각한다. 부처님을 생각하고 크신 진리의 은혜를 생각하고 내 생명· 내 환경에 넘치고 있는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감사한다. 그 속에서 예경하고 독경염불하고 발원한다. 공양하고 찬탄하고 수순하고 회향한다. 일상생활에서 믿음과 수행을 힘쓰고 생활로써 믿음을 행하는 것이다. 이 점은 생활 전체를 믿음 속에 용해시키는 것으로 흔히들 말하지만 실인즉, 참으로 귀한 수행이다. 생활 속에서 부처님 은혜를 생각하고 감사하며 정진한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가.
거기에는 기쁨과 밝음과 성취가 항상 함께하는 것이다. 만약 불자라고 하면서 생활과 수행이 따로 있거나 일과수행에 실천이 없다면 그 불심종자는 마른 모래에 묻힌 종자일 수밖에 없다. 성장하지도 못하고 빛을 발하지도 못한다.
또 한 가지는 이웃과 함께하는 수행이다. 나의 존재가 홀로 존재하는 유리된 존재가 아니라 법으로서 모두가 함께한 존재인 까닭에 우리의 기쁨, 우리의 성장은 모두의 것이고 서로 돕는데서 진가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함께 모여서 독경학소 발원한다. 서로 돕고 힘이 되어 정진하며 생활을 열어간다. 온 이웃과 함께 진정한 믿음의 우정을 나누며 함께 닦아가는 것이다. 그중에서 어려운 이웃을 돕고 고난을 당하여 아픔을 나누며 배운 것만큼 가르침을 전해준다.
자칫 개인 위주의 믿음, 개인 완성을 향한 수행이기 쉬운 종래의 불교 수행은 확실히 무엇인가 한 가지를 놓치고 있었다. 이 점을 불광법회는 행하도록 힘쓰고 있는 것이다.
수행 중심의 모임, 원래부터 인간의 삶이 그런 것이고 그러해야 했을 것이다. 특히 불자모임은 그런 것이었다. 불광법회가 불자모임의 공도를 가고자 하는 것일 뿐 새로운 것은 못된다 하겠지만 힘써 실천하는 데에 우리의 관심이 간다.
불광법회 창립 10주년이 우리 불교의 새로운 힘으로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