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진언(眞言), ‘옴(Om, 唵)’
올라갈 수 없으면 내려와야 하는 것이 순리이기에 성모(聖母)‘쪼모랑마’의 품안에서 꿈결같이 이틀을 보내고 일정에 쫓겨 고산병으로 거의 초죽음이 된 일행을 독려하여 하산길을 서둘렀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은 하계(下界)로 향하지만 마음만은 그곳에 두고 왔기에 틈틈이 고개 돌려 바라보면 여신은 억겁의 시간 속에서 그래 왔듯이 그렇게 구름 속에 들어 있었다.
하산길은 속칭 약초의 골짜기로 이어졌다. 길가에는 쐐기풀이 군락을 이루며 흐드러지게 퍼져 있었다. 12세기 티벳이 배출한 걸출한 밀교성자이며 시인이었던 밀라레빠는 고행을 수행방법으로 택하여 저 쐐기풀을 먹으며 이곳에서 토굴생활을 하였다. 그래서 그의 몸은 푸른색으로 변하였기에 지금에 전하는 그의 초상화는 거의 푸른색으로 채색되어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도대체 ‘도(道)’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길래 옛부터 수많은 수행자가 일신의 안온함을 버리고 고행길을 택하여 영혼에의 그리움을 추구한 것인가?
아마 저기 쯤이 그의 팔대제자 중의 하나인 ‘시와외래빠’를 만났다던 시냇가 일까(?)하는 억지 추측을 해 보면서 내려오는 하산길은 날씨 또한 쾌청하다. 하늘은 맑고 푸르러 마치 잉크를 뿌려 놓은 것 같다. 그 하늘 아래 그 푸르른 초원 위에 어디에선가 맑고 아름다워서 인간의 목소리 같지 않았다던 그의 목소리가, 그의 노래소리가 들려온다.
“흰 구름은 일년 내내 봉우리 위에 맴돌고 넓은 초원은 왼편 기슭에 펼쳐졌네/ 설산 봉우리들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강물은 굽이쳐 약초 골짜기 곁으로 흘러가네/ 나 수행자 밀라레빠는 큰 소망을 품고 조용한 곳에 혼자 남아 명상에 전념하네.”
반나절 만에 세워 두웠던 차에 올라 고갯길을 올라 다시 히말라야의 전망대인 빵라 고개를 오른다. 고개 마루턱에서 바라보니 여신은 구름의 천의를 벗기 시작하는 참이다. 마지막 작별의 인사인 듯하다. 슬픈 듯한 이별의 아쉬움이었다. 이윽고 드러나는 여신의 나신은 눈이 부셔 차마 맨눈으로는 마주 바라볼 수조차 없다.
무의식 간에 ‘옴(Om)’이란 진언이 다문 입에서 성대를 울리며 온 몸으로 퍼져 나간다. 수행자 싯달타가 깨달음을 얻어 세존이 된 후 제 일성(一聲)이 바로 ‘옴’이었다고 한다.
최초의 진언, ‘옴(Om, 唵)’ 이었다. 나도 모르게 튀어 나왔던 소리가 바로….
헤르만 헤세(Herman Hesse)는 싯달타(Siddhartha)라는 단편에서 그때의 정경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어느덧 싯달타는 언어 중의 언어, ‘옴’을 소리 없이 말할 줄 알게 되어 호흡과 더불어 그 말을 통일된 혼으로 소리없이 들이쉬고 내쉬었다.그의 이마는 명철하게 사고하는 정신의 광채로 에워싸여 있었다. 어느덧 그는 자기 본성의 깊은 곳에서 불멸하는 아트만(Atman)을, 우주와 합일된 존재를 깨달았던 것이다.”
그리고 헤세는 이어서 이런 게송을 남겼다.
“옴(Om)은 활, 영혼은 화살.
범(梵, Brahman)은 우리가 필연코 맞춰야 할 화살의 과녁” 이라고….
그래, 이젠 옴(Om)을 삼켜 가슴에 묻어두고 또 다른 화살 - 영혼에의 목마름을 채워줄 샘터를 찾아 여신과 헤어져야만 한다.카레 슈(Goodbye), 쪼모랑마!
초원에의 기상, 말타기 축제
무거운 짐이 되었던 일본팀을 국경마을 장무에서 네팔로 무사히 보내면서 임시 가이드로서의 소임을 다하고 홀가분한 기분이 되어 라사로 돌아 오던 도중에 국도변에서 좀 떨어진 마을에서 열린다는 말타기 축제 소식을 접하게 되어 내친김에 달려갔다.
기마민족의 후예인 티벳인은 옛부터의 전통대로 말타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일년에 한 차례 각 지역별로 모여 말타기 축제를 겸한 민족단합대회를 연다.
‘다마제’ 또는 ‘다총제’라고 불리는 이행사는 유명한 민족서사시 ‘게사르왕전’에서 시작되었는데, 민족의 영웅게사르가 말타기에서 우승하여 왕으로 추대된 일화에서 유래하고 있다.
내가 만난 다마제는 대평원에서 열리는 것처럼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퍽이나 인상적인 축제이기에 지면이 허락하는데까지 간략히 묘사하여 독자들을 티베트 초원으로 초대하고자 한다.
삭막하던 대지가 여름철이 되어 푸른 초원으로 변하고 이름모를 꽃들이 간간이 피어나면 가가호호에서는 한 집안에서 한 명씩 청년(12~21세)이 선발되어 말과 함께 훈련에 들어간다. 그러다가 행사 전날에는 전가족이 한껏 멋을 낸 의복과 치장을 하고 행사장에 모여 장막을 치고 전야제를 치르고 내일을 준비한다.
이윽고 날이 밝으면 전 부락민들이 사원에 모여 향을 사루며 부락의 번영과 축제의 원만함을 기원하고 또 라마승에게 공양을 올리기도 한다. 그 다음에 말을 타고 부락을 한 바퀴 돌고 출발점에 모여 경기를 시작한다. 말들이 달리기 시작하면 일렬로 도열한 부락민들은 박수와 괴성으로 응원하며 흥을 돋운다.
경기내용은 대개 말을 타고 빨리 달리기, 마상곡예, 물건 집어 올리기, 활쏘기 총쏘기 등등을 하는데 때로는 위태로워 보이지만 능숙한 솜씨로 위기를 모면한다. 이렇게 며칠간 벌어지는 축제를 통하여 티벳인들은 기마민족의 후예로서의 기상을 키우고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는 계기로 삼는다. 한편으로 멀리 떨어져 살던 친인척을 만나 그간의 안부를 묻거나 한편에 벌어진 즉흥 시장에서 필요한 물건을 구하기도 하고, 물물교환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 밤이 되면 별이 쏟아지는 하늘 아래서 모닥불을 피워 놓고 차를 마시고 술을 들이키면서 원을 그리며 춤을 추기도 하고, 악기에 맞추어 초원정가(草原情歌)를 목놓아 부른다.
세상의 지붕 위에서 벌어지는 아름다운 축제!
참으로 멋스럽지 않는가?
옴 마니 반메 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