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불삼매 (念佛三昧)
정토교에 있어서 수행과 신앙을 분류하기는 애매모호한 점이 없지 않다. 특히 정토교는 다른 어떤 교학이나 수행보다도 쉽고 간편한 것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토교를 이행도(易行道)라고 하며, 다른 교학을 난행도(難行道) 라고 하는 것도 이와 같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정토교는 믿음이 그대로 수행일 수 있으며, 또한 믿음이 그대로 왕생일 수도 있다. 진실한 믿음은 환희의 마음으로 가득차며 이 환희심에서 자신도 모르게 감사의 마음이 용솟음 친다. 이럴때 깊은 마음 속에서 감사의 마음으로 ' 나무아미타불' 이 우러난다. 이러한 염불이야말로 진실된 염불이며 감사의 염불이다.
이 삼심 (三心) 이 합하였을 때 일심불란(一心不亂) 하게 염불이 된다. 이와같이 염불은 곧 신심의 표현이며 이 염불이 바로 왕생의 첩경이 된다. 그러기 때문에 정토교에서는 정토신앙과 정토수행을 구분짓기 어렵다. 그러나 구태여 구분하여 논한다면 정토수행은 다분히 자력적이고 관념적인 면만이 농후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토신앙을 수행화한 사람으로는 염불결사 (念佛結社) 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여산 (廬山), 혜원(慧遠 ; 334 ~ 416 ) 스님이 그 첫번째로 꼽히고 있다.
혜원스님은 일찍 도안 (道安 ) 스님의 문하에서 출가하여 ' 반야경 (般若經) 의 강의를 듣고 깨달은 바가 있었다. 그뒤 도안의 문하를 떠나 48세 때는 제자 10여 명과 더불어 여산에 들어갔다. 그는 여산에서 많은 경전을 번역 하였으며, 그로인하여 그의 명성은 널리 알려졌다. 그뒤 69세 되던 때에 유 유민 (劉遺民) 을 위시한 승속 123인과 더불어 여산의 동림사 (東林寺) 의 반야대에서 아미타상을 모시고 서방업 (西方業) 을 닦기 위하여 서원을 세우고 염불삼매를 닦았다. 이것을 가지고 소위 여산의 백련사 (白蓮社) 라고 한다. 이때 유 유민이 서문 (誓文) 을 짓고 결사에 동참한 결중 (結衆) 이 시 (詩) 를 지어서 모은 것을 ' 염불삼매시집 (念佛三昧詩集) 이라고 이름하였으며 혜원이 직접 서문을 쓰기도 하였다.
혜원은 여산에 들어가 결사를 하는 동안 30여 년을 산에서 나오지 않으면서 염불삼매와 저술에 전념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염불결사의 최초로 볼 수 있다. 혜원의 결사에 있어서 중심된 사상이 된 것은 '정토삼부경' 이 아니라 ' 반주삼매경 (般舟三昧經) ' 의 사상이 아닌가 한다. 혜원이 결사를 시작하던 해인 천흥 원년 (天興元年) (402) 은 구마라습이 장안에 와서 처음으로 ' 아미타경(阿彌陀經) ' 1권을 번역해 낸 해이기도 하다. 이때까진 아직도 '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 ' 은 번역되지 않았다.
그런데 혜원은 도안의 문하에서 반야경을 배우고 그곳에서 깨달음을 터득했다. 그러기 때문에 혜원이 아미타불 신앙에 귀의했다고 함은 ' 아미타경 ' 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단지 불명을 칭하는 실천이 아니고, 오직 마음을 서방아미타불에 전념함에 의하여 선정(禪定) 에 들고 정(定) 중에서 견불(見佛) 하며, 사후에는 정토에 왕생하고자 함에 더 관심이 있었을 것이다. 이와같은 사상은 ' 반주삼매경 '에서 강조하고 있는 사상이며, 혜원의 염불결사의 중심사상은 여기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혜원의 관심사는 무엇보다도 염불삼매와 정중견불(定中見佛) 에 있음을 그가 구마라습과의 문답이나 ' 염불삼매시집 서' 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그가 주장하는 바로는 ' 일체의 삼매라고 함은 생각을 전념하고 상(想) 을 공적(空寂) 하게 함에 있다. 마음을 전념함에 분산되지 않고 상념을 정지함에 정신이 밝아지며, 스스로 밝은지혜를 발휘하며 기(氣) 가 허(虛) 하게 되고 정신이 맑아지면 어떠한 미세한 도리에도 투철해 진다. 이와같은 삼매에는 여러가지가 있으나 그 가운데서도 염불삼매는 가장 공덕이 많으며 실행하기 쉬운 제일의 삼매라고 할 수 있다. 현묘(玄妙) 하고 공적한 도의 근원을 밝힌사람을 존경하여 여래라고 이름한다. 이 여래는 천지 우주의 신묘한 이법을 체득하여 변화의 도에 있어서 중생에 감응하여 출현한다.
염불삼매에 들게되면 마음이 황홀하여 분별지를 잊게 되며 모든 사물에 감응하여 빛나게 된다. 마음이 밝아져 만물의 모습이 그 마음 가운데 분명히 나타나게 된다. 이와같이 되면 범부의 이목으로는 들을 수도 볼 수도 없는 것을 듣게 되고 보게 된다. 이리하여 깊이 이르러 티끌없는 맑은 거울과 같은 삼매의 모습은 심령(心靈) 의 근원과 일치하게 된다. 이 일치된 마음은 밝고 청정하게 되며 자연히 깨달음에 도달한다. 이때 마음속으로부터 현묘한 음성이 들리며 모든 번뇌는 소멸되고 모든 의혹은 다 사라지며 무척 상쾌한 기분이 들게 된다.' 고 한다.
이는 염불삼매에 들었을 때 부처님을 보고 감오(感悟) 한 경지를 말한 것이다. 이같은 경지는 다겁의 번뇌에 찌들린 무지한 범부라도 쉽게 들 수 있으며, 뿌리 깊은 번뇌를 끊어 버릴 수 있는 방법이다. 이와같은 방법으로 백련결사의 대중은 법당에 모여 마음을 깨끗이 하고 옷을 바르게 하여 아미타상 앞에서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염불삼매를 닦았다. 그러나 혜원은 염불삼매법에 대하여 ' 반주 삼매경의' 의 염불장(念佛章) 을 읽고 의문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이 의문에 대하여 그는 구마라습에게 질문한다.
이때 구마라습은 상세히 염불삼매법을 지도해 주었던 일이 있다. 여기에서 혜원의 의문 중 첫번째는 몽중(夢中) 의 견불(見佛)과 정중(定中)의 견불에 대한 점과, 둘째는 정중의 견불이 진불(眞佛)인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하여 구마라습은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견불삼매(見佛三昧)에는 3가지가 있다. 첫째는 보살의 천안이나 천이를 얻어 시방부처님의 가까이에 가서 부처님을 뵙고 무답으로 그 의문을 해결하는 방법, 둘째는 신통이 없더라도 항상 아미타불 등 제불을 염하는 수행을 통하여 마음을 한 곳에 모으면 부처님을 만날 수 있으며 그때 부처님에게 물어보는 방법, 셋째는 불을 염하는 법을 배워 번뇌를 떠나던, 떠나지 못하던 간에 불상을 보던가 생신의 불을 보던가 삼세제불을 보고자 하는 염불법을 말하고 있다.
이상의 3가지 방법은 모두 염불삼매법에 해당하는 것이다. 첫째의 방법은 신통력에 의하여 견불하므로 상급에 속한다. 둘째는 신통력은 없으나 반주삼매의 수행력에 의하여 견불하므로 중급에 속하며 셋째는 이외의 모든 자는 하급에 속한다고 하였다. 다음으로 꿈 속에서 부처님을 친견하는 것과 선정 가운데서 부처님을 친견함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 모든 욕심을 떠나지 못한 정력(定力)이라도 마음을 한 곳으로 집중하면 제불을 친견할 수 있기 때문에 이는 불도를 구하는데 있어서 근본이 된다. 그러나 이를 믿지 아니하고 선정을 닦지 않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생각하기를 신통을 얻지 못하고는 멀리 있는 제불을 친견할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경전에서 꿈에 비유함은 <夢中見佛, 夢佛授記> 우리가 꿈을 꿀 때는 멀리 있는 곳도 단숨에 갈수 있으며 멀리 있는 물건도 볼 수 있기때문에 꿈에 비유함에 지나지 않는다. 반주삼매에 들면 이와같이 정력으로 멀리 타방의 제불을 친견할 수 있다. 정중의 견불은 본래 억상분별(憶想分別)에 의하는 것이지만, 그것을 보는 경계는 허망한 것이 아니다. 여기에서 몽중의 견불은 하나의 비유에 불과하다. 즉 꿈으로 비유한 것은 정중의 견불에 대하여 이해를 돕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꾸는 꿈은 허망 하지만 정중에 부처님을 친견함은 허망한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이로써 첫번째의 의문의 대답은 명확해 진다. 즉 염불삼매에서 견불은 몽중의 견불이 아니라 정중의 견불을 설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또 둘째번의 질문에 대해서는 정중에 본 부처님은 삼매의 정력에 의하여 멀리 서방정토의 현재 불인 아미타불을 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맑은 거울에 자신의 모습이 비치는 것과 같이 나타나므로 가불(假佛)이라고 할 수 없다고 한다. 여기에서 혜원은 염불삼매에 대하여 확신을 얻으며 모든 결사의 대중과 더불어 염불삼매를 열심히 닦기 시작하게 된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은 견불삼매를 증득하였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유 유민의 예를 보면, 그는 청정히 계율을 지키며 전념 좌선하기를 반년 동안 하여 선정 중에서 부처님을 친견하였으며 노상에서도 만나게 된다. 또 어떤 때는 부처님이 허공 중에 출현하기도 하며 온천지를 밝게 비추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와같은 혜원의 정토수행법은 칭명염불이 아니라 선정 가운데서 견불함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이러한 수행법은 두 가지의 의미를 갖게 된다. 그 첫째는 다른 어떤 수행법보다도 쉽다는 것이다. 아미타불상 앞에서 좌선을 하고 선정에 들면 다른 망상이나 잡념이 적어지며 쉽게 깊은 선정에 들 수 있으며 깊은 선정에서 부처님을 친견하여 모든 의심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이와같은 선정에 드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범부로써 번뇌를 떠나지 못했기에 사후에 왕생극락의 보장을 미리 받을 수 있음이다. 즉 생전에는 염불삼매를 닦으므로 쉽게 견불할 수 있으며, 사후에는 정토에 왕생할 수 있기에 다른 어떠한 수행보다도 쉬우며 공덕이 많다고 한다. 이러한 염불삼매는 혜원 이후로 중국에서는 당, 송으로 오면서 크게 성행하게 된다. 또 우리나라에도 삼국시대 때부터 전래되었던 것 같다.
신라시대에는 혜숙스님이 창건한 미타사에서 염불결사를 맺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 후에도 건봉사에서는 만일염불결사를 조직하였으며 이러한 염불결사는 근래에까지 전승되어 오고 있다. 특히 만일결사는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결사이기도 하다. 지난 호에서 말했듯이 중국이나 일본의 염불신앙이 염불의 숫자를 중요시하는 수량염불(數量念佛) 인데 반하여 우리 나라에서는 신라 때부터 염불의 숫자보다는 염불의 일수를 중요시 하고 있다. 이는 신라때 결성된 만일염불결사의 영향이 아닌가 한다. 염불의 일수를 중요시하는 일수염불(日數念佛) 은 결사염불의 영향인 듯하며 이는 수량염불이 정토신앙을 중요시 여기는데 반하여 일수염불은 정토수행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정토사상은 정토신앙 중심인 청명염불보다도 다분히 관념적이고 수행적인 염불삼매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외에도 정토수행으로는 천태(天台) 에서 행하고 있는 상행삼매(常行三昧) 와 선종에서 중요시 하는 염불선(念佛禪) 이 있다. 상행삼매란 천태대사의 주장으로 90일 동안 서서 ' 나무아미타불 ' 을 염하며 관하는 수행법이다. 또 염불선이란 ' 아미타불 ' 을 화두의 일종으로 생각하고 ' 미타 ' 공안을 참구하는 방법이다. 즉 ' 아미타불을 부르는 이 주인공은 누구인가 ' ' 누가 아미타불을 부르는가 ' '아미타불은 어디에서 부르는가 ' '아미타불의 나이는 얼마인가 ' 등으로 의심하고 참구하는 방법이다.
이 염불선의 창시자는 5 조 홍인대사 ( 五祖弘忍大師) 이다. 그는 . 수심요론( 修心要論) 에서 좌선하는 사람들은 ' 관무량수경 '을 참고하여 선정에 들어갈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체계화 시킨 사람은 법안종(法眼宗) 의 영명연수(永明延壽 ; 904 ~ 975 ) 선사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법안종의 선정쌍수 (禪淨雙修) 법은 고려 광종때 우리 나라에 전래되어 선종을 표방하고 있는 조계종에서 염불을 중요시하며 선과 염불을 겸행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염불선은 자성미타 유심정토 (自性彌陀 唯心淨土) 를 말하며 자성을 참구한다.
이상으로서 정토교에 있어서 수행법을 대략 살펴보았다. 정토의 수행법은 정토의 신앙과는 다르게 관념적이고 유심적인 면이 많기 때문에 순수한 정토문 (淨土門 ) 이라기 보다는 성도문 (聖道門 ) 적인 정토문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 정토교는 외형적으로는 다분히 신앙적인 칭명염불을 많이 행하고 있으나 실질적으로 정토교학은 관념적인 면이 많으며 정토 신앙보다는 정토수행을 강조하고 있는 듯 하다. 특히 그 중에서 법안종의 염불선이 중국에서는 사라졌으나 그 종맥은 오늘날 한국 불교에 뿌리깊게 심어져 있어 각 사원에서 많이 행해지고 있다. (정토사 주지 . 동국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