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해도 3·1절은 어김없이 찾아와 보신각 종소리가 온 장안에 울려 퍼져, 독립만세 소리가 전국을 뒤흔들었던 그 날의 감격을 되새기게 하였다. 금년에는 특히 타종인의 한 사람으로 만해 한용운스님의 유일한 혈육인 한영숙(韓英淑)여사가 참여하여 타종의식을 뜻깊게 하였거니와,1919년 당일 보신각에서 멀지 않은 파고다공원에서 만세삼창을 선창하였던 한용운스님이고 보면, 따님이 치는 종소리를 지하에서나마 반겨하지 않으셨을까?
은은히, 그러나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종소리, 그것은 단순한 물체의 울림소리 그 이상이다. 거기에는 수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고, 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응어리져 있으며, 영원한 무언의 진리가 담겨져 있다. 그러기에 종 또한 단순히 시간을 알리는 기구가 아니다. 그것은 심오한 뜻을 지닌 신비스러운 존재다.
보신각의 종소리는 온 겨레의 한결같은 자주독립의 염원이고, 성당이나 교회의 종소리는 사랑과 구원의 메아리이며, 절에는 울리는 범종 소리는 자비와 해탈을 상징하는 무언의 음향이다. 찰스 램이 그의 시 ‘제야’에서 종소리를 여러 종류의 소리 가운데 천상에 가장 가까운 음악이라 한 것도 바로 그런 의미이며, 알프렛 테니슨의 시 ‘신년송’에서 종소리를 통하여 기독교적 박애와 평등을 갈구하고 있는 것도 같은 뜻이다.
그러나 종소리는 아무래도 불교적 의취가 강하다. 종 그 자체가 불교에서는 신비스러운 신기(神器)이며, 영험스러운 신앙의 대상이고, 중생의 번뇌를 깨우쳐 주는 법기(法器)이다. 호랑이한테 물린 상처가 절의 종소리를 듣기만 하면 나았다는 신라 때의 이야기나, 오랜 실패 끝에 어린 딸을 쇳물가마에 넣은 후에야 종만들기에 성공하였다는 봉덕사 에밀레종의 전설은 종이 얼마 큼 불교에서 신성시 되는가를 말해주는 이야기다.
춘원(春園)의 시 ‘쇠북’은 그런 의미를 잘 시화하고 있다.
첫 닭 울이에 쇠북을 치네/듣는 이도 없는 쇠북을 치네/간 밤의 번뇌에 가위 눌린 중생의/꿈을 깨라고 쇠북을 치네/ 해가 기울 때 쇠북을 치네/듣는 이도 없는 쇠북을 치네/왼 종일 번뇌에 시달린 중생의/마음을 쉬라고 저년 북을 치네/끝없는 중생의 다함 없는 번뇌여/내치는 북소리 끊일 줄 없어라.
한 없는 중생의 끝 없는 번뇌를 끊고 고통을 여의어 깨달음을 이루라는 종소리의 의미가 잘 나타나 있다. 여기서의 종소리는 곧 지혜의 설법(說法)이다.
이에 비하여 조지훈의 ‘고사(古事)’ 2는 종소리의 의미를 선적(禪的)으로 고양시켜 한결 차원을 높이고 있다.
··· (전략) 한나절 조찰히 구르던 여흘 물소리 그치고
비인 골에 은은히 울려오는 낮종소리 바람도 잠자는 언덕에서
복사꽃잎은 종소리에 새삼 놀라 떨어지노니
····· (후략)
또 그의 ‘범종’은 종소리를 부단히 영속되는 진리의 실체로 파악하면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초월적인 생명의 소리로 묘사하고 있다.
······ (전략)
웅 웅 웅 웅 웅 ····/33천을 날아 오른다. 아득한 것/종소리 우에 꽃 방석을/깔고 앉아 웃음짓는 사람아/죽은 자가 깨어서 말하는 시간/산 자는 죽음의 신비에 젖은/이 탱 하니 비인 새벽의/공간을/조용히 흔드는/종소리/너 향기로운/과실이여
이 시에서 종소리는 물상화(物象化) 시각화(視覺化) 후각화(嗅覺化)되어 있다. 종소리를 무르익고 향기로운 과실로 나타냄으로써‘완숙한 소리’ ‘원만한 소리’ 임을 말하고 그것이 33천을 날아올라 온 법계에 충만하며, 하염없는 부처님의 웃음을 통하여 삶과 죽음이 하나임을 일깨우는 법음(法音)으로 온 중생의 마음을 울리고 있다. 서산대사의 ‘온 법계가 한 절(불국토)이며, 하늘과 땅이 한 종소리(法界一 也 天地一鍾也)’라는 말과 같은 의미라 할 수 있다.
여명을 가르고 새벽 하늘을 울려 퍼지는 새벽 종소리, 조용한 산골짜기를 타고 은은히 퍼져가는 저녁 종소리, 문명의 공해와 소음에 찌든 현대인의 마음을 일깨우는 한줄기의 거룩한 원음(圓音)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