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은중경)
1. 아기를 가지시고 수호하신 은혜
2. 해산할 때 고통 받으신 은혜
3. 자식을 낳고 근심을 잊으신 은혜
4. 쓴 것은 삼키고 단 것을 뱉어서 먹이신 은혜
5. 마른 자리는 아기를 눕히고 젖은 자리로 나아가신 은혜
6 젖을 먹여 기른 은혜
7. 부정한 것을 깨끗이 씻어 주신 은혜
8. 자식이 먼 길 떠나면 염려하고 생각하신 은혜
9. 자식을 위해 나쁜 일을 감히 하신 은혜
10. 끝 없이 사랑 하신 은혜
용주사의 유래
부처님의 법이 세법(世法)을 여의지 않은 만큼 효(孝)에 대한 부처님의 설법은 실로 간곡하고 완전하다. 그런데 불교에 있어서의 효법문(孝法門)의 본산(本山)이라 할 도량이 있으니 바로 용주사이다. 자칫 흐려져 가기 쉬운 오늘의 효심에 끊임없이 새로운 감동을 주고 있는 효의 본산 용주사---- 수원에서 남쪽으로 국도(國道)를 따라 약 7km 지점에 병점이 나온다. 병점역에서 서쪽으로 2km에 나지막한 산이 있으니 이 산이 화산(華山 : 花山)이다. 이 산기슭에 대한불교 조계종 2교구 본사인 용주사와 근처에 융건능(隆健陵)이 있다. 용주사와 융건능은 오늘의 용주사가 있기까지 깊은 관계가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창건 연기
원래 이 사찰은 신라 46대 문성왕 6년(844년)에 염거(廉居)스님이 창건하고, 고려 4대 광종(光宗) 23년(972년)에 혜거국사(惠居國師)가 중창하였다. 갈양사(葛陽寺)가 있던 터였다. 언제 폐사되었는지 알 수 없고, 그 후 조선조에 들어와 22대 정조(正祖)가 비명에 죽은 그의 부친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명복을 기원하여 이 사찰을 짓고 원찰(願刹)로 삼은 것이다.
정조는 자신이 어렸을 때, 부친인 장헌세자(莊獻世子 : 思悼世子)가 비운의 죽음을 당한 것을 직접 목격 하였으며 늘 아버지의 죽음을 애통하게 여기던 중 장흥 보림사(寶林寺)의 보경(寶鏡)스님으로부터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에 대한 법문을 듣고 크게 감화를 받았다. 그래서 양주에 있는 영우원(永祐園 : 莊獻世子墓)을 이곳 화산으로 옮기고 융릉(隆陵)이라 하고, 보경스님을 8도도화주(八道都化主)로 삼아 전 국민으로부터 8만 6천 냥의 시주를 모아서 4년의 공사 끝에 사찰을 재 창건한 것이다. 영조의 꿈에 용이 여의주를 물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하여 용주사라 명명(命名)하였다 한다.
사도세자 사건
조선조 21대 영조(英祖)는 정성왕후(貞聖王后) 서씨(徐氏)와 계비(繼妃) 김씨에게는 소행이 없었고, 영빈(瑛嬪) 이씨 소생으로 효장세자와 장헌세자 있었고 효장은 요절하고 장헌이 세자가 되었다.
장헌세자는 기풍이 영위(英偉)하고 호탕하여 학문과 기예가 뛰어나고 효성이 지극하였지만 병명을 알 수 없는 악질(요즈음으로 말하면 정신질환), 영조 25년(1749년)부터 대리청정(代理聽政)하면서 궁궐 내에서 내시, 기녀(妓女) 등을 희롱하는 등 광적(狂的)인 비행을 저질러 행실이 좋지 않았다. 거기다가 영조임금 모르게 영조 37년(1761년) 관서지방(평안도)을 순행하였다 하여 당시 영조의 총애를 받고 있는 빈 문숙의(嬪 文淑儀)와 반대파의 신하들이 10여 가지의 죄목을 들어 참소(譖訴)함으로써 왕의 노여움은 더욱 가중하였다.
영조38년(1762년 5월) 영조는 세자를 폐하여 서인(庶人)을 만들고 뒤주에 9일간 가두어 음식을 주지 않은 채 굶겨 죽였던 것이다.
후일 영조는 세자에 대한 가혹한 처벌행위를 후회하고 사도(思悼)라는 시호를 내렸다. 영조가 죽으니 왕위는 세손인 사도세자의 아들에게 물려졌다. 이 분이 22대 정조(正祖0인 것이다.
이 사도세자에 대한 이야기는 사도세자 부인인 혜경궁 홍씨가 환갑때 쓴 한중록(恨中錄)이 유명하다.
문화재(文化財)
경내에 들어서면 7층 석탑이 있는데 갈양사의 옛 탑이라고 추측하고 있을 뿐이며 대웅전의 후불탱화는 영조 시대의 화가 김 홍도의 그림이다. 이 사찰의 범종(梵鐘)은 국보 120호로서 고려시대 작품이다. 국보로 지정 되어있는 범종 셋 가운데 하나로 국보 범종은 봉덕사 신종, 상원사 동종, 용주사 범종이다. 그리고 용주사하면 정조의 효성을 나타낸 부모은중경 경판을 빼놓을 수 없다. 김 홍도의 그림과 채 제공(蔡濟恭)의 글씨로 부모의 10가지 은혜를 그림으로 섬세하게 조각하였으며 동판 7장, 석판 24장, 목판 54장으로 되어 있다.
최근(1980년 3월)에 부모은중경에 있는 부모의 10가지 은혜를 그림과 함께 쉽게 한 글로 풀이한 부모은중탑이 대웅전의 왼편에 세워져 많은 참배객에게 효심을 배울 수 있게 하였다. 그 밖에 용주사를 지을 때 정조가 부처님께 바친 금동향로와 중국 소주(蘇州)산 품인 비단에 채 제공의 글씨로 쓰여진 상량문이 이 사찰의 자랑거리이다.
인근의 융건능(隆健陵)은 사적 제 206호이다. 융능은 사도세자와 그 비인 혜경궁 홍씨의 능이며 건능은 정조의 능으로서 두 능을 합해서 융건능이라고 하고 주위의 송림이 좋다.
정조가 행차하는데 송충이가 너무 많아 소나무가 죽자 정조는 송충이를 탓하며 비운에 가신 아버님을 너희까지 괴롭히는구나 하니 송충이가 없어졌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