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역자 | 조용헌 | 정가 | 25,0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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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 2020-12-10 | 분야 | 인문 |
책정보 |
판형_180*224mm|두께_21mm 416쪽|4도|ISBN 978-89-7479-878-9 (03100) |
에너지가 바닥이라고 느낄 때
무언가 답답하고 화가 치솟을 때 영지로 가라!
왜 영지靈地를 순례하는가? 경제적 풍요를 누리면서 여행은 일상이 되었다. 관광여행에서 쉼과 즐거움을 주는 여행으로, 역사적 자취를 살피는 인문학 기행으로 변화되어 왔다. 그 다음은 어떤 여행인가? 사주명리학자이자 강호동양학자 조용헌은 영지로 떠나보라고 권한다. 영지란 어디인가? 바로 특별한 에너지와 기운이 스며 있는 장소를 말한다. 인체는 밖에서 채워야 하는 에너지가 있다. 바로 자연이 주는 기운이다. 휴대폰 배터리를 충전하듯 자연의 기운을 수시로 우리 몸과 마음에 채워줘야 하는 것이다. 좋은 기氣를 받으면 몸이 가벼워지고, 마음이 밝아지고, 정신이 맑아진다. 대자연과 일체가 되는 순간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욕심은 사라지고 기도가 이뤄지게 된다. 기도의 목표는 자기정화自己淨化에 있다. 자기정화는 ‘그냥 존재함’,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도록 한다. 그렇다면 영지는 어디인가? 이 책은, 40여 년간 문文, 사史, 철哲을 섭렵하며 한반도 곳곳의 영지와 명당을 순례해온 강호동양학자 조용헌 작가가 뽑은 특별한 영지를 소개한다. 선인, 도사, 종교인, 순례자, 민초들의 발길이 이어진 땅, 수천 년 대대로 이어져온 풍수지리적 특징과 더불어 땅에 얽힌 역사와 구전으로 전해지는 이야기까지, 227컷의 화보와 작가의 시원한 문체를 통해 느껴지는 기운은 마치 그 땅을 밟고 서 있는 듯 생생하다.
글 | 조용헌
강호동양학자, 사주명리학 연구가, 칼럼니스트.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감지하는 혜안을 지닌 이 시대의 이야기꾼. 강호江湖를 좋아하여 스무 살 무렵부터 한국은 물론 중국, 일본을 드나들며 수많은 기인, 달사, 학자들과 교류하고, 700여 개의 사찰과 고택을 답사했다.문文・사史・철哲・유儒・불佛・선仙・천문・지리・인사 등을 터득한 그의 학문 세계를 강호동양학이라 일컫는다. 미신으로만 여기던 사주명리학을 좋은 삶을 살기 위한 방편이자, 철학과 인문학으로 대접받는 첫 기단을 올린 장본인이다. 문필가로서의 그의 문장은 동양 산수화의 부벽준처럼 거칠 것 없이 시원하다는 평을 듣는다. 그간의 저서를 통해 그는 한국인의 ‘마음의 행로行路’를 이야기하고 있다. 아주 먼 과거에서 시작하여 미래로 이어지는 길을 안내하는 길잡이 역할이다. ‘독만권서讀萬卷書 행만리로行萬里路’, 많은 책을 읽고, 많은 여행을 통해 경험하고 실천함으로써 이치를 궁구하고, 마침내 무한한 대자연의 이치를 깨달아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게 그가 전하는 메시지이다. 주요 저서로는 《조용헌의 사주명리학 이야기》 《조용헌의 사찰기행》 《5백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 《방외지사》 《조용헌의 고수기행》 《동양학을 읽는 월요일》 《조용헌의 휴휴명당》 《동양학을 읽는 아침》 《조용헌의 인생독법》 등이 있다. 현재 〈주간조선〉에 ‘조용헌 박사의 영지순례’, 〈조선일보〉에 ‘조용헌 살롱’을 2004년부터 연재중이며, 건국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석좌교수로 있다.
그림 | 소석素石 구지회
남종화의 대가인 허백련의 필법을 스승 허의득 선생에게서 전수받았다. 형상보다는 그림에 담긴 뜻을 중요시하는 전통 문인화의 맥을 이으며, 산수화의 현대적 재해석에 몰두하고 있다. 산 물 꽃 풀 바위 새 곤충 개구리 등 자연에 자신을 투영시킨 그림은 시적이고 맑은 기운으로 다가온다.
서문 | 기운과 풍광, 인생 순례자를 달래주다
1장 신령의 땅 | 그곳에 가면 힘이 솟는다
오대산 적멸보궁 | 5만 불보살이 머무는 영지, 산 전체가 거대한 사찰
오대산 월정사와 상원사 | 명산에는 명인! 전국 도사들의 살롱
백양산 운문암 | 땅에도 맛집이 있다! 호남의 불교성지
오봉산 주사암 | 에너지 설설 끓는 그곳에서 신을 설득하다
대성산 정취암 | 정신세계로 들어가는 입구, 절벽 위 암자
계룡산 등운암 | 도사들의 영발 충전소
장락산 통일교 본부와 보리산 오하산방 | 종교인에게 영발을, 기업인에게 아이디어를 주는 쌍둥이 산
2장 치유의 땅 | 그곳에 가면 슬프지 않다
서산 간월암 | 분노가 일 때는 물속의 달을 보라
사자산 법흥사 | 자장 율사가 백골 옆에서 수행하던 돌무덤
철원 고석정 | 도망자 임꺽정의 발길 잡은 절경
운길산 수종사 | 동방의 절 중 제일가는 전망, 수종사에서 마음을 씻다
경주 문무대왕릉 | 문두루비법의 전설, 전국 최대 무당 굿터
팔공산 갓바위 | 누구나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는 부처님
한국의 십승지 | 난리가 나면 어디로 가서 목숨을 부지할 것인가
3장 구원의 땅 | 그곳에 가면 길이 보인다
도솔산 선운사 | 정화와 보은의 소금이 흐르는 땅
선운사 도솔암 | 조선 당취들의 아지트, 도솔암의 비밀
가야산 해인사 | 전설 속 보물 도장, 해인海印
지리산 영랑대 | 첩첩산중에 놓인 신라시대 인공도로
지리산 노고단과 오행사찰 | 한국 페미니즘의 시원, 삼신할머니
지리산 칠불사 | 시루떡처럼 켜켜이 쌓인 이야기의 보물창고
지리산 원통암 | 서산 대사를 키운 지리산의 심장부
지리산 삼신동 | 지리산 빗점골 나무집에서2 5년째 수행 중인 스님
덕유산 영각사 | 왜 이제 산에 왔니? 지금이라도 안 늦었다
2021년 문명 대전환의 시기에도 여전히
우리에겐 자연이 주는 영적 에너지가 필요하다
영지靈地란, 말 그대로 신비하고 신령스러운 땅을 일컫는다. 보통의 이론과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지만, 수천 년 이어져온 역사가 증명하는 땅이다. 한눈에도 수려하고 신비로운 풍광, 그리고 그 위에 세워진 사찰과 역사적 흔적들. 그곳에서 승려와 도사를 비롯한 정신수행자들은 우주의 흐름과 기운을 느끼고, 선비들은 인간됨과 마음의 결을 다듬었고, 민초들은 신산한 삶을 달래며 간절한 소원을 빌었다. 자연에 철저하게 기대어 살아야만 했던 그들은 자연에서 존재의 이유와 삶의 지혜를 온몸으로 체득하며 살았던 것이다. 자연이 곧 종교이자 지혜의 보고요, 치료사였던 셈이다.
오늘날의 우리는 어떠한가. 도시 문명이 발달하고 자연을 자원으로만 보면서 인간은 점점 자연으로부터 멀어져 왔다. 현대인들이 겪는 여러 정신적 문제들은 어쩌면 여기에서 기인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작가 조용헌은 사주명리학자로, 강호동양학이라는 독보적 분야를 개척하며 문필가로 활동해 오고 있다. 청년기에 도사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전국의 내로라하는 명산을 찾아다닌 그는 일찌감치 물아일체物我一體, 자연과 하나가 되는 순간에 인간 삶의 모든 괴로움이 떨어져나간다는 것을 체험으로 알고 있었다. 평범한 여행가가 아닌 칼럼니스트로서의 집필 활동은 바로 자연의 기운을 통해 지혜와 위로를 전해주기 위한 작가만의 방편이었다.
2021년, 인류 문명의 대전환이 이뤄지는 시기라는 전망이 쏟아진다. 그 틈에서 우리는 많은 것들을 새롭게 경험하면서 한편으로는 혼란과 불안, 무력감에 빠져들고 있다. 특히 코로나 바이러스로 개인이 고립되다시피 하면서 혼자서 감내해야 하는 시간들이 길어지고 있다. 저자는 이 시국을 우려한다. 사람은 바깥 즉 자연에서 공급받아야만 하는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물, 바람, 숲, 흙, 햇빛, 달빛 등 이런 순수한 자연의 에너지를 공급받아야만, 몸과 마음의 기운이 원활히 돌아가고, 바른 생각과 바른 판단으로 삶을 조화롭게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한국인들은 분노조절 장애가 조금씩 있다. 분노조절이 안 되어 일을 망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는 영지를 순례할 필요가 있다. 영지는 분노를 삭혀주는 효과가 있다. 긴장하고 경직된 에너지, 에어air를 빼준다. ‘인법지人法地 지법천地法天’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는다는 뜻이다. 땅을 본받는다는 것은 땅의 기운을 흡수한다는 의미이다. 명당에서 올라오는 금빛 찬란한 기운, 이 기운이 척추뼈를 타고 올라와 머리를 거쳐 얼굴의 양미간으로 흘러내려 오는 맛을 느끼면 분노는 좀 사그라든다. 세상에는 인간의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대자연의 에너지가 분명 있다. 이 대자연의 에너지를 맛보는 삶과 맛보지 못하는 삶은 차이가 있다. 그 차이는 얼마나 너그러워지느냐에 있다. 나와 타인, 세상사에 대한 너그러움 말이다.” (저자의 말 중에서)
오대산, 계룡산, 지리산, 팔공산, 가야산, 덕유산, 대성산…
우리가 알면서도 몰랐던 한반도의 영지
영지란, 달리 말하면 명당明堂이다. 명明은 태양과 달이며, 아침과 저녁, 따듯함과 차가움, 열정이자 이성이다. 양쪽의 기운이 균형을 이루는 땅에서 특별한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 신라말기 도선 국사는 전국에 3,600군데의 명당이 있다고 설파한 바 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 자체가 명당이자 영지라는 말이다. 지난 40여 년 동안 중국과 일본, 유럽 등 전 세계의 명산을 찾아다녔던 저자는 국내 영지와 명당도 해외에 뒤지지 않음을 체험했다.
저자가 말하는 영지의 기준은 첫째, 지리적으로 강한 기운이 온몸에 전해진다. 둘째, 풍수지리적으로 절묘한 위치에 자리한다. 셋째, 풍광이 매우 뛰어나다. 넷째, 기록과 구전으로 신비로운 전설이 전해온다. 다섯째 큰스님이나 대학자 등 역사적 인물이 태어나거나 머물렀다. 여섯째 승려와 도사, 선비, 민초들의 수많은 발길이 끊이지 않는 기도처이다. 일곱째 유서 깊은 사찰이 자리한다(고대의 영지 터에 불교가 들어와 자리잡음). 여덟째 풍부한 사료와 문학, 이야기가 켜켜이 쌓여 있다.
그 가운데 저자와 인연이 있고, 이야기와 역사적 자취가 남아 있는 영지를 이 책에 우선 소개한다. 영지의 첫 번째 기준이 되는 ‘터의 기감’을 보통 사람들이 느끼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면에서 흥미로운 이야기와 사료로써 영지를 만난 다음, 현장에서 느끼는 감은 더욱 생생하게 다가올 것이다. 오대산 적멸보궁, 계룡산 등운암, 가야산 해인사, 팔공산 갓바위, 덕유산 영각사, 대성산 정취암, 경주 문무대왕수중릉 등, 책에서 소개하는 영지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익숙한 산, 단순한 지명으로만 알고 있었던 곳에 숨은 이야기들에서 신선한 감동과 함께 옛 사람들의 치열한 삶과 지혜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산의 풍수와 기운을 느끼고 이야기 등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산이 나와 맞을지 자연스럽게 짐작해 보게 된다.
산마다 암자마다 다 기운이 다르다. 풍광이 다른 것은 당연하지만 그 터에서 올라오는 땅 기운이 다르다는 것이 중요하다. 비유하면 비타민 같은 터가 있고, 단백질이 올라오는 터가 있고, 어떤 터는 칼슘에 해당한다. 칼슘이 부족할 때는 칼슘이 많은 터에 가서 몇 년 살다 보면 보충이 된다. 타이밍마다 부족한 기운이 다를 수 있다. 공부의 정도에 따라 요청되는 에너지도 다 다르다. 특히 사람의 기질에 따라 다르기도 하다. 성질이 급한 사람들은 물이 감아 돌거나 호수가 앞에 보이는 수기水氣가 풍부한 터에서 살면 자연히 완급 조절이 된다. 반대로 내성적이면서 조용한 성격의 사람들은 바위가 험하게 돌출된 도량에서 살다 보면 또한 보강이 된다. (본문 60쪽)
영지는 처음부터 영지가 아니다
영지에 사찰이 자리한 이유
영지는 단 한 순간에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랜 세월, 고인古人들의 답사와 체험, 기도 효험 등, 다양한 사고思考와 사건이 무수한 시간 동안 축적된 뒤에 비로소 결정되는 것이다. 영지가 영험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수만 년 전부터 우리 땅에는 이러한 축적의 시간이 있었다. 그 자리에 고대 토착신앙이 뿌리를 내렸고, 이어 도교와 불교가 들어오면서 자연스럽게 흡수되었다. 산신각과 석문石門 등 사찰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도교와 토착신앙의 흔적은 이 때문이다. 이는 진실에 어긋나지 않는 한 어떤 사상이나 주의도 수용하며 더 좋은 것으로 발전시키는 불교의 포용성이 드러나는 단면이기도 하다.
논리와 이성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 앞에서 인간은 절망하지 않고 자연에 기대어 신을 불렀고 그렇게 온갖 난관을 극복해 왔다. 자연스럽게 저자는 불교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특히 지리산 편에서는 ‘당취黨聚’ 이야기를 심도 깊게 파헤친다. 당취는 조선시대 승려들의 비밀 결사結社 조직을 일컫는 용어로, 서민들을 착취하는 양반이나 부자, 벼슬아치들을 응징하는 조직이었다. 임진왜란(1592~1598년) 당시 주요 전투에서는 서산 대사를 중심으로 한 승군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지리산을 거점으로 활동한 당취들의 흔적을 오랫동안 좇아온 저자는, 깨달음을 구하고 살생을 금하는 수행자들이 왜 칼을 들 수밖에 없었는지를 밝혀낸다. 이밖에도 자장, 한암, 탄허, 청화, 초의, 검단 스님들의 칼끝같은 수행과 결기를 통해 영지가 불교를 만나면서 영적 기운이 더 한층 깊어졌음을 알 수 있다. 영지는 홀로 영지일 수 없다. 더 좋은 삶,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이들의 정성어린 기도와 무수한 행行이 있기 때문에 영지로 거듭난 것이다.
“기도는 대자연과 일체가 되는 마음이다.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고, 과도했던 자기 욕심을 내려놓는 일이기도 하다. 기도의 목표와 초점은 저마다의 체질과 환경마다 다를 수 있지만, 자기정화自己淨化라는 측면에서 보면 일치한다. 이러한 자기정화가 자연스럽게 일어나게 해주는 땅이 영지이다. 처음에는 먹고 마시고 즐기는 여행을 하지만, 좀 더 성숙해진 뒤에는 영지순례를 하며 스스로 깨치는 자득지미自得之味의 맛을 느껴보는 것이 한 차원 발전한 여행이다.” (저자의 말 중에서)
강호동양학자 조용헌이 직접 답사하고 체험한
치유와 구원의 땅 23곳, 227컷의 화보로 만나다
40여 년 전국의 명산을 누빈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새롭게 영지를 답사했다. 전에 가 본 곳이라도 대부분 다시 방문했다. 지리산 영랑대의 경우 해발 1,700미터 정상까지 15kg짜리 배낭을 메고 왕복했다. 찬 부슬비를 맞으며 온몸의 기운을 소진한 강행군이었다. 생생한 현장감을 살리고, 더불어 그 사이 달라진 작가 자신의 생각을 새롭게 정리하기 위해서이다. 덕분에 지리산 영랑대의 경우, 신라시대 화랑들이 이곳에서 어떤 마음으로 훈련을 받았는지, 왜 하필 이 깊은 산속에서 야영을 했는지 감춰진 사실들을 밝혀냈다. 또 지리산 빗점골에서 25년째 작은 오두막에서 수행하는 스님을 만나 한담을 나누며 “한 곳에 집중하면 그것이 도道”라는 이치를 구하기도 했다. 멋진 풍광과 기운, 그리고 그 속에서 만나는 여러 인연들로 작가는 삶의 허무함과 고달픔을 달랜다고 고백한다.
영지는 신령한 땅이다. 성스러운 장소이다.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느껴지는 곳이다. 수록된 227컷의 사진과 화보을 보는 것만으로도 영지의 신령함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길 때 우리는 지금 이 순간, 나의 존재 이유와 삶의 진가를 비로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대여, 머리 위로 별을 바라볼 수 있으면 아직 좋은 날이다.”
저자의 말
한국의 영지는 기운도 좋지만 그 풍광 또한 일품이다. 아름다운 풍광은 그 자체로 사람을 치유하고 달래주는 효과가 있다. 만사가 시들하고 허무하고 분노심이 들고, 세상 헛살았다는 느낌이 들 때는 장엄한 풍광을 마주해야 한다. 인간의 언어로는 치유가 안 되는 부분은 장엄한 풍광이 치유해준다. 대자연이 인간을 달래준다. 땅에서 올라오는 기운도 강하지만, 영지 주변을 둘러싼 풍광 또한 아름답다. 기운과 풍광. 이 두 가지 요소가 인간에게 감동을 준다. 순례자의 고달픔을 보상해주고도 남는 그 무엇이다. 우리네 인생, 다 순례자가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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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중에서
적멸보궁의 용안수 뿐만 아니라 서대 수정암의 우통수, 동대 관음암의 청계수, 남대 지장암의 총명수, 북대 미륵암의 감로수, 중대 사자암의 옥계수까지 오대산의 샘물은 모두 일급이다. 참고로 지리산 화엄사 뒤로 가면 봉천암鳳泉庵이 있는데 이 봉천암에도 영험한 샘물이 있고, 샘물 이름이 봉안수鳳眼水이다. 봉황의 눈에서 나오는 샘물이라는 뜻이다. 적멸보궁의 용안수는 용의 눈에서 나오는 샘물이다. 적멸보궁의 법당에 앉아 보면 바로 기운이 올라오는 것을 느낀다. 쩌릿쩌릿한 기운이 척추를 타고 올라온다. 올라온 기운은 머리 쪽으로 올라간다. 양 미간 사이에서 빛이 발한다. 약간 누런색 빛도 올라오다가 핑크빛으로 변하기도 한다. 명당에서 올라오는 에너지는 찌릿한 감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색깔로도 감지된다. 색깔은 대체적으로 황금색, 흰색, 분홍색 정도다. 영험하다는 기도터에 가서 이런 기운을 느껴야지 영지가 확실히 있기는 있구나 하는 신심을 가진다. (32쪽, ‘오대산 적멸보궁’ 중에서)
전남 장성군에 있는 백양사는 절 뒤쪽에 약간 흰색을 띤 거대한 암벽이 서 있는데, 이 암벽을 백학봉白鶴峰이라고 부른다. 멀리서 보면 커다란 백학이 앉아 있는 모습이다. 사람을 압도하는 백학이다. 산꾼들이 말하는 호남정맥의 끝자락이다. 끝자락에 명당이 많다. 마지막 자리에 기운이 뭉치기 때문이다. 백양사 뒤쪽 산길로 가파른 고갯길을 올라가면 운문암이 나온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 공부하기 좋은 이름난 수행터로 북쪽에서는 금강산 마하연을, 남쪽에서는 백양사 운문암을 양대 도량으로 꼽았다. (62쪽, ‘백양산 운문암’ 중에서)
고려시대까지만 하더라도 불교 사찰에는 주술만을 전문적으로 연마한 주금사呪噤師가 있었다고 기록에 나온다. 논리와 이성으로 해결이 안 되는 일은 그 시대마다 주금사를 동원하곤 하였다. 주술의 전통은 고대부터 신라로 이어져 현재까지 이어져 온다. 주술 전통의 유적지 가운데 하나가 바로 주사암이다. 더군다나 이 암자의 법당에는 아직도 정신세계의 신장이 머무르고 있으니, 효험이 마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정성을 기울이면 감응이 있기 마련이다. (86쪽, ‘오봉산 주사암’ 중에서)
정취암의 보이지 않는 특징은 이 암자가 기대고 있는 산 이름이 둔철산屯鐵山이라는 점이다. 철이 많은 산이라는 뜻이다. 고대 가야는 철기로 유명했다. 가야 지역에서 철이 많이 생산되었다. 그래서 가야 지역이었던 경남의 합천, 산청, 경북 청도 지역 일대에는 철을 캐고 철을 다루었던 지명들이 남아 있다. 야로冶爐라는 지명도 그런 예이다. ‘둔철屯鐵’이라는 지명도 철 냄새가 강하게 난다. 철이란 무엇인가? 전쟁무기 만드는 데에만 유용한 게 아니다. 도 닦는 데에도 아주 유용하다. 도 닦는 데 있어서는 철이 단백질에 해당한다. 철분이 많은 암반은 뇌를 혹사하는 정신노동자에게는 거의 링거 주사와 같다. (101쪽, ‘대성산 정취암’ 중에서)
내면 세계로 의식을 집중한 상태, 즉 고요함을 어떻게 얻을 것인가. 결국엔 자기 마음이 중요하지만, 고요한 마음으로 들어가기 위한 전 단계의 외부적 환경이 필요하다. 일종의 무대 장치라고 할까. 마음을 고요하게 가라앉혀주는 환경이 갖춰져야 한다. 그 환경 중 하나가 달빛이 바다나 호수에 비치는 풍경이다. 달은 밤이 되어야 떠오른다. 밤은 컴컴하다. 어둠은 인간 의식에 영향을 미친다. 밖이 보이지 않으므로 안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보름날 간월암에서 천수만 바닷물에 비치는 달빛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마음이 고요해진다. (151쪽, ‘서산 간월암’ 중에서)
땅의 기운도 아니고 신령계의 도움에도 해당이 안 되는 상황이 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풍광의 도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영지는 훌륭한 풍광을 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장엄하고 아름다운 자연 풍광은 사람의 마음을 정화해주는 효과가 있다. 인법지人法地 즉 사람은 땅에서 배우고, 지법천地法天 즉 땅은 하늘로부터 배우고, 천법도天法道 즉 하늘은 도에서 배운다. 도법자연道法自然이다. 도는 자연으로부터 배운다. 도법자연이 핵심이다. 자연은 그만큼 위대한 존재이다. 말 없는 가르침을 우리에게 항상 주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을 치유해주는 장엄한 자연 광경은 어떤 것이 있는가. 바로 강물을 보는 것이다. (196쪽, ‘운길산 수종사’ 중에서)
해인이라는 이름 자체가 난해한 의미를 품고 있다. ‘바다의 도장’이 무슨 뜻이란 말인가. 구전으로 전해져 오는 수십 종류의 해인설화에 의하면 ‘해인’은 바다 밑의 용궁에서 용왕이 쓰던 도장으로서, 보물 중의 보물이었다. 우연한 계기로 육지에 올라오게 된 해인을 ‘식食’ 자에 찍으면 먹을 것이 나오고, ‘주酒’ 자에 찍으면 술이 나온다고 여겼다. ‘금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 하는 만사형통 도장이었던 것이다. 설화에서는 합천의 해인사海印寺도 해인의 신통력으로 순식간에 만든 절이었기 때문에 해인사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이 해인은 팔만대장경 속에 보관되어 있다고 믿었다. (286쪽, ‘가야산 해인사’ 중에서)
주지스님과 인사하고 영각사 정문을 나서는데 앞으로 날카로운 바위 봉우리가 보인다. “투구봉라고 부릅니다”라고 스님이 답한다. 산꾼들은 이 암봉을 칼날봉이라고 부른다. 투구봉을 시작으로 해서 월봉, 거망산, 황석산의 1천 미터급 영봉들이 용의 등줄기처럼 계속해서 이어진다. 온통 신령스런 영봉들로 둘러쌓인 함양 영각사. 그 영봉들에 깃들어 있는 산신령이 나에게 말을 건다. “왜 이제야 산에 왔니? 지금이라도 안 늦었다.” (407쪽, ‘덕유산 영각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