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통 부림을 금한 붓다
신통력(神通力)은 일반적인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특별한 능력이다. 어느 종교이건 교주의 신통력을 강조하지 않은 경우는 없을 것이다. 불교는 신통력에 의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지만, 신통력에 관한 이야기가 의외로 많다. 다만 신통을 다른 종교처럼 강조하지는 않는 편이다. 불교가 신통을 강조하지 않는 것은 붓다가 제자들의 신통을 금지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불교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가 신의 은총이나 구원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편안케 하는 데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붓다가 제자들의 신통력 발휘를 금했던 이야기를 먼저 살펴보자.
라자가하의 한 부자가 갠지스강에 물놀이 갔다가 우연히 아주 귀한 붉은 전단향 나무를 얻게 되었다. 그는 그 전단향 나무로 발우를 만들었다. 참으로 고급스러운 발우를 보며 부자는 이 발우를 통해 진정으로 신통자재한 이가 누구인지 알아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키가 엄청나게 큰 대나무 꼭대기에 발우를 매달아놓고 널리 알렸다.
“신통자재한 이가 날아올라서 저 발우를 가져가십시오.”
이에 내로라하는 수행자들이 발우가 욕심나서라기보다는 신통력 1위를 빼앗길 수 없다는 생각에 부자의 집을 찾았다. 도덕부정론자 뿌라나 깟사빠, 숙명론자 막칼리 고살라, 단멸론자이자 유물론자 아지따 께사깜발린, 불멸론자 빠꾸다 깟짜야나, 회의론자 산자야 벨랏티뿟따가 도전했으나 어림도 없었다.
다섯 명의 대가들이 발우를 갖는 데 실패했다는 소식을 들은 자이나교의 니간타 나따뿟따는 신통에는 자신이 없어서 계책을 써서 발우를 차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제자들에게 말했다.
“내가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것처럼 뛰어오를 테니 너희들은 나를 붙잡고 ‘스승님, 그까짓 사소한 발우 하나를 위해 군중 앞에서 숨은 능력을 드러내야겠습니까?’라며 나를 바닥에 쓰러뜨리도록 해라.”
니간타 나따뿟따는 부자의 집에 가서 작전대로 했으나 부자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존자님, 직접 날아올라서 발우를 내려오시면 발우 이상을 드리겠습니다.”
목갈라나(목건련) 장로와 삔돌라 바라드와자 장로가 탁발을 나갔다가 사람들이 대화하는 소리를 들었다.
“한 부자가 전단향 발우를 큰 대나무 꼭대기에 매달아놓고는 세간에 도인(道人) 행세하는 사람 중에서 자신 있으신 분이 날아올라서 발우를 가져가라고 했다는구먼. 그런데 글쎄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대. 그러고 보면 이 세상에 도인은 한 명도 없을지도 몰라.”
이 대화를 통해 우리는 그 당시 사람들이 도인이란 ‘신통력이 센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통제일인 목갈라나가 신통력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 같은데, 진정한 고수는 함부로 나서지 않는다. 삔돌라가 목갈라나에게 “신통제일이신 존자님께서 발우를 가지시는 게 마땅한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지만, 목갈라나는 오히려 이렇게 말했다.
“삔돌라 스님, 당신도 아라한이니 한번 해보시지요.”
삔돌라 스님은 즉시 사선정에 들어갔다 나오더니, 둘레가 3요자나(1요자나는 약 12~14km로 소달구지가 하루에 갈 수 있는 거리)인 엄청나게 큰 바위를 가볍게 들어 올리고는 그 바위 위에 앉아 라자가하를 일곱 바퀴 돌았다. 엄청나게 큰 바위가 공중에서 구름처럼 움직이는 것을 본 사람들은 공포에 떨었다. 라자가하의 둘레가 3요자나였으니 사람들이 얼마나 놀랐을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저 바위가 떨어지면 우리 도시에 엄청난 재앙이 일어날 거야.”
사람들은 안전한 곳에 몸을 숨기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삔돌라 스님이 바위를 제자리로 보내고는 사뿐히 내려오자, 부자가 발우를 내려 네 가지 음식을 가득 담은 후 스님에게 올렸다.
이 소식이 붓다에게 전해지자 붓다가 삔돌라 스님을 꾸짖고는 대중들에게 말했다.
“비구들이여, 재가자들에게 신통을 보여서는 안 된다. 재가자들에게 신통을 보여주는 자는 계율을 범하는 것이다. 이 전단향 발우는 깨뜨려서 향으로 사용하도록 하여라. 앞으로 나무 발우는 사용하지 말라.”
‘간다의 망고나무’ 아래서
우리는 생각해보아야 한다. 붓다는 왜 제자들에게 신통을 부리는 것을 금했을까? 신통이 마음을 궁극적으로 평화롭게 하는 데, 곧 열반으로 가는 길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방해가 되기 때문이며, 또 불교에 입문한 대중들이 신통술에 집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붓다가 제자들에게 신통을 금지했다는 말을 들은 이교도들은 붓다의 승가를 제압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제자들에게 신통을 금지했다면 고따마도 신통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이교도들은 다음과 같이 소문을 냈다.
“신통을 숨기는 것이 우리의 원칙입니다. 사문 고따마의 제자들은 하찮은 발우 하나 얻으려고 군중에게 신통을 과시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사문 고따마와 신통을 겨룰 것입니다.”
빔비사라 왕이 붓다에게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신통을 보이는 것을 금하셨다고 들었는데, 사실입니까?”
“예, 사실입니다”
“이교도들은 부처님과 신통을 겨루겠다고 떠벌리고 다닌답니다.”
“그렇다면 신통을 보이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신통을 금하지 않으셨습니까?”
“제자들에게는 금했지만, 그것이 제게는 해당하지 않습니다. 비유를 들어보겠습니다. 대왕이 신하들에게 대왕의 정원에 있는 과일을 따 먹지 말라고 했다고 합시다. 대왕은 그 과일을 드셔도 됩니까, 드시지 말아야 합니까?”
“저는 먹어도 됩니다.”
“바로 그와 같습니다. 제자들에게 신통을 금했지만, 저는 신통을 부릴 수 있습니다.”
붓다는 음력 6월 보름날 사왓티 성 근처에서 신통을 보이겠다고 선언했다.
붓다는 라자가하에서 탁발을 마치고 사왓티로 갔다. 많은 이교도도 사왓티에 모였다. 이교도들은 대형 천막을 치고 지붕은 푸른 연꽃으로 장식했다.
꼬살라국의 빠세나디 왕이 붓다에게 물었다.
“신통은 어디서 행하실 겁니까?”
“간다의 망고나무 아래서입니다.”
이 말이 이교도들에게 들어갔다.
“사문 고따마가 간다의 망고나무 아래서 신통을 행한다고 하더라.”
사실 당시 사왓티에는 ‘간다’라는 지역이 없었기 때문에 ‘간다의 망고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분명치 않았다. 이교도들은 사왓티의 망고나무를 모두 없애버리면 붓다가 당황하여 신통력을 쓰지 못하리라 생각하고, 사왓티와 사방 1요자나 안에 자라고 있는 모든 망고나무를 뽑아버렸다.
음력 6월 보름날이었다. 왕의 정원사(庭園師)인 간다는 먹음직스럽게 잘 익은 망고 하나를 발견했다. 간다는 그 망고를 왕에게 바칠까 망설이다가 왕보다는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왕에게 바치면 몇 푼 용돈이나 받겠지만, 부처님께 공양하면 세세생생 복덕이 될 것이다.’
붓다는 아난다가 만들어준 망고주스를 마시고 나서 망고 씨를 정원사 간다에게 주면서 말했다.
“여기에 이 망고 씨를 심어라.”
망고 씨를 심은 곳에서 붓다는 손을 씻었다. 그러자 망고나무가 순식간에 솟아올랐다. 거의 보이지 않을 때까지 자라오른 나무의 줄기에서 사방으로 가지가 뻗어 나왔다. 곧이어 꽃이 피고 열매가 맺기 시작하더니 곧 잘 익은 망고들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이 나무는 정원사 간다가 심었다고 해서 ‘간다의 망고나무’라고 불렸다.
인드라 신은 붓다를 위해 도리천의 목수 윗사깜마를 시켜 대형 천막을 만들고 푸른 연꽃과 칠보로 장식했다. 붓다는 천막 안에 임시 거처를 정하고 보배의자에 앉았다. 그리고는 공중에 보배 경행대를 만들어 한쪽 끝은 세계의 동쪽 가장자리에 걸치고 다른 쪽 끝은 세계의 서쪽 가장자리에 걸쳤다. 여러 나라에서 온 군중들로 주위가 가득 차자 붓다는 보배 경행대에 올랐다.
아쇼카 왕이 상카샤에 세운 석주의
윗부분에는 코끼리상이 남아있다.
오늘날 붓다의 신통력이 의미하는 것
붓다는 경행하면서 이른바 쌍신변(雙神變, yamaka-pāṭihāriya)의 신통을 보였다. 상반신에서 불이 나타나는가 하면, 하반신에서 물이 흐르고, 하반신에서 불이 나타나는가 하면 상반신에서 물이 흐르게 했다. 오른쪽 눈에서 불이, 왼쪽 눈에서 물이 흐르다가, 반대로 왼쪽 눈에서 불이, 오른쪽 눈에서 물이 흐르게 했다. 이렇게 몸의 모든 부위에서 물과 불이 교차하는 신비로운 모습을 연출했다. 몸의 각각 부분에서는 파란색, 노란색, 붉은색, 흰색, 초록색, 분홍색 등 여섯 색깔의 광명이 쏟아져나오게 했다.
붓다는 쌍신변을 나투면서 사이사이에 군중들에게 설법하다가 당신과 똑같은 분신을 만들어 분신으로 하여금 질문하게 하고 대답했다. 이 법문으로 군중들은 법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얻었다. 군중들이 법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얻었음을 확인한 붓다는 수미산 꼭대기의 도리천으로 갔다. 그곳에는 붓다를 위한 엄청나게 큰 홍옥보좌가 놓여 있었다. 붓다가 홍옥보좌에 결가부좌를 하고 앉자 그 큰 홍옥보좌가 가득 찼다.
쌍신변의 신통술을 넋을 잃고 바라보던 사람들은 어느 순간 붓다가 보이지 않자 어리둥절했다. 군중들이 목갈라나 장로에게 묻자 장로는 직접 대답하지 않고 아누룻다 장로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천안제일 아누룻다가 말했다.
“부처님께서는 도리천의 홍옥보좌에서 이번 안거를 보내실 것입니다. 거기서 당신의 어머니 마야 왕비에게 아비담마를 설하신 후 안거를 마치면 내려오실 것입니다.”
도리천에서는 붓다의 어머니가 도솔천에서 내려와 붓다의 오른쪽에 앉았다. 수많은 천신이 붓다 주위에 몰려들었다. 이에 붓다가 아비담마를 설하기 시작했다.
“법에는 유익한 법과 해로운 법과 판단할 수 없는 법이 있습니다. (……)”
이렇게 붓다는 쉬지 않고 아비담마를 설했다. 탁발할 시간이 되면 분신을 창조해 탁발에서 돌아올 때까지 아비담마를 설하게 하고 당신은 히말라야로 갔다. 히말라야의 아노땃따 호수에서 이를 닦고 목욕했다. 북구로주(北俱盧洲, 수미산 북쪽에 있다는 대륙)로 가서 탁발하고 다시 아노땃따 호숫가로 돌아와 공양했다. 공양을 마치고 전단향 숲으로 가서 휴식을 취할 때 사리뿟따 장로가 붓다에게 왔다. 붓다는 사리뿟따에게 “오늘은 여기까지 설했느니라”라며 아비담마의 요점을 말해주었다.
해제날이 다가오자 목갈라나가 수미산 꼭대기에 올라 붓다에게 어디로 내려올 것인지 여쭈었다.
“목갈라나여, 앞으로 일주일 후에 상깟사 성문으로 내려갈 것이다. 나를 맞이하러 사왓티에서 상깟사까지 가는 군중들은
포살일에 법문 들으러 갈 때처럼 음식을 먹지 않아도 된다.”
해제날이 되자 인드라 신은 금, 루비, 은으로 세 개의 계단을 만들었다. 제일 아래 계단은 상깟사 성문에 놓이고, 제일 윗계단은 수미산 정상에 놓였다. 오른쪽은 인드라 신과 천신들이 사용할 금계단이고, 왼쪽은 브라흐마 신과 그의 권속들이 사용할 은계단이고, 가운데는 붓다가 사용할 루비계단이었다.
천상에서 내려오는 붓다를 향해 사리뿟따 장로는 삼배를 올리고 나서 말씀드렸다.
“부처님이시여, 모든 범천과 천신과 재가자가 부처님을 예찬하며 스스로 붓다가 되기를 서원하고 있습니다.”
붓다는 사리뿟따를 격려하고는 게송을 읊었다.
삼매와 통찰지를 닦은 현자는
해탈의 기쁨 속에 즐거워한다.
주의 깊게 알아차리며 바르게 깨달은 이를
천신들도 지극히 존경한다.
__ 『법구경』 제181송
이렇게 붓다는 당신 생애에 가장 화려한 신통을 보여주었다. 사왓티에서 시작된 붓다의 신통은 무려 3개월 동안 도리천에서 펼쳐지다가 상깟사에서 화려하게 마무리됐다.
붓다는 제자들에게 신통력을 행사하는 것을 금지했는데, 왜 당신은 엄청난 신통력을 행사했을까? 그 답은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다. 다만 대나무에 발우를 걸어놓고 이른바 도인들을 시험했던 부자의 사례를 통해 생각해볼 수 있다. 붓다는 당신의 가르침을 홍포하기 위해서는 우매한 민중들이 모두 수긍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선보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제자들에게는 왜 신통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했을까? 제자들이 신통력에 집착하다 보면 불교의 본질이 흐려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과거의 인간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신통력이 일상적으로 발휘되고 있다.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만나지 않고도 얼굴을 보고 대화할 수 있으며, 천신들처럼 하늘을 나는 기구를 타고 날아갈 수 있고, 서울에서 일어난 일을 전 세계 사람들이 동시에 바라볼 수 있으며, 버튼 하나로 태평양 한가운데 폭탄을 떨어뜨릴 수 있다. 빛의 속도로도 다녀올 수 없는 별 시리우스로 날아갔다 올 수 있는 신통력이 아니면 오늘날에는 신통력이 그다지 의미가 없을 수 있다. 더욱이 붓다 당시에 비하면 현대인들은 신통력에 현혹되지 않을 만큼 많은 교육을 받았다. 따라서 붓다의 가르침에 따라 우리는 신통력에 집착하지 않고 불교 본연의 목표인 해탈과 열반을 향해 정진해야 할 것이다.
동명 스님
중앙승가대 비구수행관장. 시인으로 20여 년 활동하다가 2010년 출가했다. 저서로는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제13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 산문 『인도신화기행』, 『나는 인도에서 붓다를 만났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