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공당 월주 대종사 추모특집] 날마다 새로운 삶을 창조하다(應無所住 而生其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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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공당 월주 대종사 추모특집] 날마다 새로운 삶을 창조하다(應無所住 而生其心)
  • 도법 스님
  • 승인 2021.09.0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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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 그대를 만나 | 「불광」과 월주 스님, 은사스님의 삶을 기리며, NGO와 월주 스님

마침내 이별의 자리에 섰습니다. 큰 슬픔이 가슴 가득 차오릅니다. 눈을 감고 고요한 침묵으로 떠올려 봅니다. 제 나이 열일곱 살이었습니다. 정월 보름 해제날이었습니다. 어머님의 안내를 받고 스님께 큰절을 올렸습니다. 그렇게 스님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55년이 흘렀습니다. 이제 더는 함께 할 수 없는 이별의 갈림길입니다. 말 그대로 백척간두의 순간입니다.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스님의 본뜻을. 제가 무슨 재주로 설명하겠습니까? 스님의 삶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한다고 합니다. 어젯밤, 밤을 꼬박 새웠습니다. 진솔하게 제 소견으로 보고 듣고 생각한 것을 풀어내었습니다. 스님에 대한 제 생각이고 제 이야기입니다.

“처염상정(處染常淨),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살리.”

아침 해처럼 처음 떠오르는 스님의 말씀입니다. 

“지금 여기 구정물이 가득한 연못 현장에서도 언제나 오염되지 않고 청정한 연꽃처럼 삶을 가꾸리.”

스님은 인적이 끊긴 깊고 조용하고 신성한 곳을 찾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당신이 두 발을 딛고 선 현장에 온몸으로 오롯하게 계셨습니다. 그곳에서 순간순간 오염되지 않은 한 걸음, 맑고 깨끗한 한 걸음을 내디디고 또 내디뎠습니다.

“천지여아동근 만물여아일체(天地與我同根 萬物與我一體)! 온 우주가 나와 더불어 한 뿌리요, 만물이 나와 더불어 한 몸이네.”

스님하면 저절로 떠오르는 말씀입니다. 지금 여기 나의 진면목인 우주도, 만물도, 모두 한몸, 한마음, 한생명임을 참되게 알고 확고부동하게 새기며 살리. 언제 어디에서나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스님은 늘 그 자리에서 고민하고 방황하고 갈등하고 모색하였습니다. 그리고 빗물이 냇물 되고 강물 되고 바다로 향해 흐르고 흘렀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귀일심원 요익중생(歸一心源 饒益衆生).” 한몸, 한마음, 한생명인 일심의 근원을 토대로 만나는 뭇 생명의 안락과 행복을 위해 기꺼이 정성을 다하리. 언제 어디에서나 한순간도 망각하지 않고.

스님은 늘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을 찾으려고 앉기도 하고 걷기도 하고 만나기도 하고 대화하기도 했습니다. 때론 경전을 펼치기도 하고 때론 신문방송을 보기도 하고, 반짝이는 눈빛으로 묻고 또 물었습니다. 그 걸음걸음들이 모이고 모여 고풍스러운 마을의 느티나무처럼 싱그러운 삶으로 펼쳐졌습니다.

그 세계관이, 그 정신이, 그 마음이 일상에선 차안(此岸)에서 화두 챙김으로, 마당에서 홀로 불전을 향한 예배로, 파카 만년필이 아닌 볼펜으로, 밥상에서 꼭꼭 잘 씹어 잡숨으로, 만나는 사람들에겐 따뜻한 인사로, 상좌들에겐 냉철함의 보살행 수행으로 드러났습니다.

그 세계관이, 그 정신이, 그 마음이 금산사에선 전북불교의 변화와 발전으로, 종단에선 정화불사로, 개혁불사로, 깨달음의 사회화불사를 추진하는 보살행 수행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세계관이, 그 정신이, 그 마음이 한국사회에선 민주화 운동으로, 남북평화통일교류로, IMF사태 극복으로, 종교화합과 인권·환경운동으로, 위안부 할머니를 돕는 보살행 수행으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21세기 지구촌 무대에선 사단법인 지구촌공생회를 창립하여 사람들을 고통과 불행으로 내모는 분쟁지역, 빈곤지역 기타 재난지역 등 손발이 닿을 수 있는 곳이면 그 어디도 마다하지 않고 걷고 또 걷는 보살행 수행으로 자신의 면목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보살행 수행으로 표현되는 당신의 삶 자체가 임종에 즈음하여 남기고 싶은 최후, 최고의 한마디라고 하였습니다. 말 그대로 앉는 것도 깨달음의 실천인 보살행 수행이요, 걷는 것도, 말하는 것도, 침묵하는 것도, 깨달음의 실천인 보살행 수행이었습니다.

제가 소박하게 이해하고 설명한 내용이 스님의 뜻과 스님의 말씀을 오염시키지는 않았는지 두렵습니다. 혹 문제가 있다면 스님께서 또는 함께하시는 대중께서 문수보살의 장군죽비로 경책해 주시길 청합니다.

다시 눈감고 살아온 이 순간까지의 세월을 떠올려 봅니다. 평소 도법은 스님의 말씀을 잘 듣지 않았습니다. 따뜻한 밥상 한 번, 용돈 한 번 올리지 않았습니다. 불효라고 말하면 그 첫 자리는 제 자리입니다. 뒤늦었지만 할 수만 있다면 스님께서 보여주신 깨달음의 실천인 보살행 수행을 내 삶으로 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그 첫 자리가 효도라면 제가 그 자리를 차지하겠습니다. 

스님, 걱정하지 마시고 편안히 가십시오. 거듭거듭 감사합니다. 또 다른 시절인연을 기약하며 이별의 큰절을 올립니다. 

상좌 도법 큰절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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