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말을 걸다] 김세경 ‘입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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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말을 걸다] 김세경 ‘입춘’
  • 동명 스님
  • 승인 2022.01.25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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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출가수행자인 동명 스님의 ‘시가 말을 걸다’를 매주 화요일마다 연재합니다. 원문은 다음카페 ‘생활불교전법회’, 네이버 밴드 ‘생활불교’에서 볼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입춘

땅이 일어선다
첫돌 지난 땅이
일어선다
겨우내 젖 물고 있더니
아장아장 걸어 보겠다고
지나는 바람의 치마폭 붙잡고
“섰다 섰다 섰다”
첫 발을 뗀다
누가 일러 주지 않아도
서야 할 때를 안다
참 신통하다
혹한을 딛고 일어서는
맨발 아기의 첫 인사
스물스물 발바닥이 가렵다

(김세경 시집, ‘23시, 버스 안에서 듣다’, 월간문학 출판부 2004)

[감상]
왜 입춘(立春)이라 했을까? 궁금했던 분 계시지 않으신지요? ‘들 입(入)’ 자를 쓰지 않고 ‘설 립(立)’ 자를 쓴 이유가 궁금하신 분 계실 것 같습니다.

출가 전 직장 다닐 때 사장님이 칠판에 입춘대길(入春大吉)이라 쓰신 적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바로 지적하면 무안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말씀드리지 않았지만, 입춘을 入春이라 생각하시는 분도 꽤 계실 것입니다. 봄이라는 계절로 들어간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이 시는 입춘에 ‘설 립(立)’ 자를 쓴 이유를 시적이면서도 재미있고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입춘은 한 아이가 일어서는 것처럼 봄이 일어서는 것입니다. 시인은 아예 누워 있던 “땅이 일어선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땅(계절, 또는 아이)이 “겨우내 젖 물고 있더니/ 아장아장 걸어보겠다고/ 지나는 바람의 치마폭 붙잡고” 일어섭니다. 세상(가족들)은 손뼉을 치면서 외칩니다.

“섰다 섰다 섰다”

그래서 ‘들 입(入)’ 자가 아니라 ‘설 립(立)’ 자가 되는 것입니다. 아이는 누가 일러 주지 않아도 서야 할 때를 알고 어느 날 벌떡 일어섭니다. 계절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일러 주지 않아도, 아직 찬바람이 기승을 부리는데도, 저 아래쪽에서부터 힘찬 기운을 밀어 올립니다. 세상이 얼어붙어 있어도 가지 끝의 겨울눈(winter bud)은 벌써 뜨겁습니다. 겨울눈에 눈이 내리면 금방 녹아버립니다.

입춘은 곧 “혹한을 딛고 일어서는/ 맨발 아기의 첫 인사”입니다. 그러므로 계절의 흐름으로 볼 때 진정한 새해는 입춘과 함께입니다.

절기와 명절 중에서 새해와 관계된 날은 네 가지나 됩니다. 첫째는 동지요, 둘째는 양력으로 새해 첫날, 셋째는 음력 정월 초하루인 설날, 넷째는 입춘입니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고 일리가 있지만, 계절의 흐름으로 보면 봄이라는 계절의 새 기운이 일어서는 입춘이야말로 새해 첫날에 가장 합당합니다. 천간/지지가 바뀌는 날도 입춘입니다. 우리는 양력 새해 첫날 편의상 임인년이 되었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입춘을 기해 임인년이 되었다고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진정한 새해 첫날이기도 한 입춘을 기해 정성껏 ‘신춘 기도’를 올립니다.

대문에는 이렇게 적어놓기도 합니다.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대문의 왼쪽 문에는 ‘룡(龍)’자를 오른쪽 문에는 ‘호(虎)’자를 붙이기도 합니다. 국태민안(國泰民安)이라 붙이기도 합니다.

입춘대길 건양다경을 기원합니다.

동명 스님
중앙승가대 비구수행관 관장. 1989년 계간 『문학과사회』를 통해 등단, 1994년 제13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인으로 20여 년 활동하다가 지난 2010년 출가했다. 저서로는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제13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나무 물고기』, 『고시원은 괜찮아요』, 『벼랑 위의 사랑』과 산문 『인도신화기행』, 『나는 인도에서 붓다를 만났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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