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자 출가수행자인 동명 스님의 ‘시가 말을 걸다’를 매주 화요일마다 연재합니다. 원문은 다음카페 ‘생활불교전법회’, 네이버 밴드 ‘생활불교’에서 볼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눈물
_박영근
한강 다리 막 건너가는 전철에
강물을 바라보는
웬 비구니 스님이
물빛엔 듯
햇빛엔 듯
얼굴에 미소 한볼 건져올리는데
내 마음에
알 수도 없는 곳에서
눈물이 솟는데
내 안에도
나도 몰래
나를 키우고
나를 살리는 것 있다는데
나 태어나기 전에도
죽은 후에도
애틋한 노을 너머
바람 불고
강물 흐르고
꽃 피는 나무에
물고기들 뛰어오르고
애기풀들 제 맑은 눈물로 피어나는 속에
내가 있다는데
전철을 나와
지하도 어둑한 계단에
동전 하나
걷어차고
저를 밟고 지나간 발길도 잊었다는 듯
구석에서 먼지를 쓰고 있는데
슬픔도 없이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는데
(박영근 시집 ‘지금도 그 별은 눈뜨는가’, 창비 1997)
[감상]
전철이 한강다리를 막 건너가고 있습니다. 웬 비구니 스님이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고는 말없이 강물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시인은 그 모습을 보고 갑자기 알 수도 없는 곳에서 만들어진 눈물이 왈칵 솟아올랐습니다.
시인은 생각해봅니다. “내 안에도/ 나도 몰래/ 나를 키우고/ 나를 살리는 것” 있는 것일까? 그것이 무엇일까? “나 태어나기 전에도/ 죽은 후에도” 있는 그것, 그것이 무엇일까? 그것이 바로 ‘나’라는데, 나는 누구인가?
“애틋한 노을 너머
바람 불고
강물 흐르고
꽃 피는 나무에
물고기들 뛰어오르고
애기풀들 제 맑은 눈물로 피어나는 속에
내가 있다는데”
그 ‘나’가 도대체 누구인가? 시인의 마음속에는 출가수행자의 싹이 움트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필 강물 바라보는 비구니 스님의 미소를 보고, ‘내 안의 나’를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놀랍네요. 시인은 벌써 답을 알고 있습니다. 그 ‘나’는 애틋한 노을 너머, 바람 불고 강물 흐르고 꽃 피는 나무에, 물고기들 뛰어오르고 애기풀들 제 맑은 눈물로 피어나는 속에 이미 있음을 알고 있네요. 그보다 더 적절하고 아름다운 답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또 하나의 내가 있었습니다. 전철을 나오니 지하도 어둑한 계단에 동전 하나가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는 그 뒤에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내가 있었습니다. 그 ‘나’는 “저를 밟고 지나간 발길도 잊었다는 듯/ 구석에서 먼지를 쓰고” 앉아서, “슬픔도 없이/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슬픔도 없이’, 또는 슬픔이란 무엇인지 잊어버렸다는 표정으로, 그야말로 ‘물끄러미’, ‘나는 너야’라는 듯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누구일까요?
동명 스님
중앙승가대 비구수행관 관장. 1989년 계간 『문학과사회』를 통해 등단, 1994년 제13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인으로 20여 년 활동하다가 지난 2010년 출가했다. 저서로는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제13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나무 물고기』, 『고시원은 괜찮아요』, 『벼랑 위의 사랑』과 산문 『인도신화기행』, 『나는 인도에서 붓다를 만났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