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 Understanding Our Mind: 50 Verses on Buddhist Psychology)
저작·역자 | 틱낫한 지음 | 윤서인 옮김 | 정가 | 21,0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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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 2022-12-02 | 분야 | 불교 |
책정보 |
판형_152*225mm|두께_22mm|352쪽|2도 |ISBN_979-11-92476-36-0 (03220) |
“틱낫한 스님의 책 가운데에서도 최고의 책!”
나와 당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유식오십송>
우리는 눈과 귀, 코, 혀, 몸으로 사물을 지각하고 정보를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그런데 동일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즐겁게 받아들이거나 괴롭게 만드는 건 결국 ‘마음’이다.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느냐에 따라 기쁨과 행복, 사랑과 같은 감정을 느낄 수도 있지만 분노, 혐오, 슬픔, 질투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결국 우리의 행복을 만드는 것도 마음이고, 괴로움을 만들어내는 것도 마음인 것이다.
이 책에서, 틱낫한 스님은 마음의 실체를 철저하게 분석한 유식불교를 바탕으로 마음의 속성과 작동 원리를 풀어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에는 괴로움을 만들어내는 씨앗도 있지만 행복과 평안에 다다를 수 있는 씨앗도 갖춰져 있다는 것, 그리고 모든 씨앗은 수행을 통해 변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결국 ‘어떤 삶을 살 것인가’는 나의 마음을 수행을 통해 변화시킬 것인지, 그대로 둘지에 달려 있다. 틱낫한 스님의 가르침을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나와 내 주변 사람을 넘어, 우리 모두가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지은이 틱낫한 (Thich Nhat Hanh)
1926년 베트남에서 태어났다. 열여섯 살 때인 1942년 베트남 후에(Hue)의 옛 왕국에서 조금 떨어진 뚜 히에우(Từ Hiếu) 사원으로 들어가 승려가 되었다. 1961년 미국으로 건너가 프린스턴대학교와 컬럼비아대학교에서 비교종교학을 공부했다. 이후 베트남 전쟁이 발발하자, 전 세계를 돌며 반전평화운동을 전개했다. 이 때문에 베트남 정부에서 귀국 금지 조치를 당했지만 1967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되기도 했다. 1982년 프랑스 서남쪽에 있는 보르도 근처에 플럼 빌리지(Plum Village)라는 작은 명상 공동체를 세웠다. 현재 이곳에는 200명이 넘는 비구와 비구니들이 수행하고 있고 일반인에게도 수련의 기회를 제공하는 세계적 명상 공동체가 되었다. 스님은 지난 2014년 가을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건강이 크게 악화됐다. 2018년 치료를 위해 태국을 방문한 후 플럼 빌리지로 돌아오지 않고 베트남으로 향했다. 하지만 스님은 이후 회복하지 못하고 지난 2022년 1월 21일(베트남 시각 기준) 세납 96세로 입적했다. 입적 소식이 전해지자 달라이 라마, 마티유 리카르 등 세계적 종교지도자는 물론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등 문화예술계 인사, 그리고 우리나라 문재인 전 대통령, 엘 고어 전 미국 부통령, 안토니오 구테헤스 UN 사무총장 등 정계인사들까지 추모 메시지를 내며 애도에 동참했다. 스님의 다비식은 2022년 1월 29일 베트남 뚜 히에우 사원에서 진행됐다. 코로나 유행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승려와 일반 신도 수만 명이 참여했으며 세계 각국에서는 온라인으로 다비식이 중계됐다. 다비 후 수습된 유골은 뚜 히에우 사원과 플럼 빌리지에 나눠 뿌려졌다.
옮긴이 윤서인
심리학을 전공하였으며,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같이 일하고 싶은 여자』, 『내가 나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지불된 어텐션』, 『가든 트래블』, 『공간의 위로』, 『분노를 다스리는 붓다의 가르침』, 『호흡하세요 그리고 미소지으세요』, 『스톤밸런싱』, 『마음의 숲을 걷다』 등이 있다.
∙ 서문
∙ 환영의 말
∙ 식의 성질에 대한 오십 게송
1부 아뢰야식
01 마음밭
02 온갖 종류의 씨앗
03 아무것도 잃지 않는다
04 종자 상속
05 별업 종자와 공업 종자
06 업 종자
07 습기(習氣)
08 인식의 경계
09 이숙과 해탈
10 변행 심소
11 삼법인
12 종자와 현행
13 인드라망
14 진실과 거짓
15 대원경지
2부 말나식
16 무명과 미혹
17 사량
18 자아의 표상
19 분별
20 말나식의 동반자
21 그림자가 형상을 따르듯
22 내려놓음
3부 의식
23 의식의 경계
24 인식
25 농부
26 무상(無想)
27 의식의 활동
4부 감각식
28 바다 위의 파도
29 현량
30 심소
5부 현실의 참모습
31 주관과 객관
32 견분, 상분, 자증분
33 태어남과 죽음
34 현행의 흐름
35 식(識)
36 오고 감이 없다
37 인(因)
38 연(緣)
39 참 마음
40 진여의 세계
6부 수행
41 수행의 길
42 꽃과 쓰레기
43 상의상관적 공존
44 바른 견해
45 알아차림
46 근본으로부터의 전변
47 지금 이 순간
48 수행 공동체
49 증득할 것이 없다
50 두려움 없음
∙ 후기_오십 게송의 출처
∙ 주석
“마음의 본성을 철저하게 분석한 책!”
우리 마음에는 괴로움의 씨앗과 행복의 씨앗이 있다
당신은 어느 씨앗에 물을 주겠는가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쓰는 표현 중에 ‘마음대로’라는 말이 있다. ‘마음대로 하라’든가, ‘내 마음대로 되면 좋겠다’ 같은 표현들 말이다. 이 ‘마음대로’라는 표현은 ‘하고 싶은(생각하는) 대로’의 의미이지만, 사실 ‘마음’이라는 단어의 뜻은 ‘생각’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 기억, 의지 등 ‘마음’이라는 단어에 포함되는 개념은 여러 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여러 가지 의미만큼이나 우리 마음은 복잡하고 어렵다. 그러다 보니 인간의 마음이 어떤 속성을 지니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변화하고 생겨나는지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지금까지 종교와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끊임없이 탐구되었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바로 마음의 구조와 작동원리 등을 철저히 분석한 불교의 유식학이다.
이 책은 4세기 인도의 승려이자 학자였던 세친(世親, Vasubanhu)이 저술한 『유식삼십송』과 『유식이십송』을 바탕으로 하여, 틱낫한 스님이 유식불교를 알기 쉽게 풀어낸 불교심리학 안내서다. 틱낫한 스님은 세친의 이 두 가지 저술부터 화엄경의 가르침까지 포용하여 50편의 게송을 새롭게 정리하여 ‘유식오십송’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리고 그 50편의 게송을 하나하나 살피면서 우리 마음의 속성과 작동 원리에 대해 명쾌하고도 깊이 있게 설명한다. 또한 마음의 속성과 작동 원리를 철저히 파헤침으로써 우리가 어째서 수행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수행을 하며, 수행이 우리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풀어내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은 ‘모든 수행의 바탕이 되는 기본서’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불교 공부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난해하기로 이름난 ‘유식불교’를 중심으로 마음을 풀어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그 내용이 결코 쉽지는 않다. 하지만 “한꺼번에 전부 읽으려 하지 말고, 천천히 한 게송과 해설을 충분히 흡수한 후에 다음 게송으로 넘어가라.”(「환영의 말」)고 한 틱낫한 스님의 당부처럼 차근차근 읽다 보면 내 마음을 어떻게 다루고, 수행해야 할지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햇빛이 비칠 때 모든 초목이 자라듯
알아차림을 할 때 마음속 씨앗이 변화한다
이 책에서, 틱낫한 스님은 우리 마음을 하나의 밭에 비유한다. 그리고 그 밭에는 다양한 씨앗이 이미 심겨 있기도 하고, 일상생활에서 말이나 행동, 생각에 따라 새로운 씨앗을 심기도 한다. 이렇게 마음밭에 있는 씨앗 가운데에는 기쁨과 희망, 행복의 씨앗도 있지만, 슬픔이나 두려움, 괴로움의 씨앗도 있다. 어떤 씨앗을 싹틔워 키워낼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친절한 말과 생각, 행동 등으로 행복의 씨앗에 물을 주면 행복의 씨앗이 자라지만, 그렇지 않은 말이나 생각, 행동 등으로 괴로움의 씨앗에 물을 주면 괴로움의 씨앗이 자라난다. 그러다가 특정 조건이 갖추어지면 그동안 키워낸 씨앗이 성숙하여 드러난다. 분노나 미움, 사랑과 연민과 같은 감정을 비롯하여, 어떤 의식이나 행동, 습관 등이 바로 그 결과다.
그렇다면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너무나도 명확하다. 마음이라는 밭에 긍정적인 씨앗을 더 많이 심어서 성숙할 수 있도록 돕고, 부정적인 씨앗은 더 이상 늘어나거나 드러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지닌 씨앗이 어떤 것인지 정체를 알아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알아차림이다. 분노나 미움, 질투나 시기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나 생각이 일어났을 때, 그 대신 알아차리고 받아들인다면 오래지 않아 그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만나게 되는 모든 것을 깊이 관찰할 수 있다면, 그래서 모든 것은 상호 의존하여 존재한다는 본성을 볼 수 있다면, 괴로움을 일으키는 어리석음(번뇌)과 곧 행복의 지혜(깨달음)는 서로 상반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기반이 동일하다는 것을 볼 때, 자신의 내면에 있는 깨달음의 본성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 저자의 말
읽는 동안 특정 단어나 구절이 이해되지 않더라도 지나치게 파고들지 않기를 바란다. 음악을 들을 때처럼,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드는 것처럼, 이 가르침을 당신 안으로 들여보내라. 이 오십 게송을 머리로만 배운다면 땅에 비닐을 덮는 격이 될 것이지만 이 가르침의 비[法雨]가 당신의 식(識)에 스며들 수 있게 한다면 이 오십 게송은 아비달마 불교 가르침 전부를 ‘요점만 간추려서’ 알려줄 것이다.
■ 추천의 말
∙ “틱낫한 스님의 책 가운데에서도 최고의 책!”
- 술락 시바락사(국제참여불교도네트워크 설립자)
∙ “마음의 본성을 철저하게 분석한 책”
-스티븐 배철러(불교철학자, 『어느불교무신론자의고백』 저자)
종자는 물리적·정신적 현상이 스스로 영속할 수 있도록 해준다. 봄에 꽃씨를 심으면 거기서 싹이 트고 자라서 가을쯤 꽃이 핀다. 그 꽃이 새로운 씨앗을 맺고 그 씨앗이 땅에 떨어져 묻혀 있다가 때가 되면 새싹을 틔우고 새 꽃을 피운다. 우리 마음은 밭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모든 종류의 씨앗이 뿌려진다. 연민의 씨앗과 기쁨과 희망의 씨앗, 슬픔의 씨앗과 두려움, 곤경의 씨앗 등…. 날마다 우리가 하는 말과 생각과 행동이 우리의 마음밭에 온갖 새로운 씨앗을 심는다. 그리고 이 씨앗에서 생겨나는 것들이 우리 삶의 재료가 된다.
- 본문 33쪽
어떤 사람을 만날 때 우리가 실제로 만나는 것은 자신의 습기다. 그리고 이 습기는 우리가 다른 것을 전혀 보지 못하게 방해한다. 그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그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받아서 부정적으로 대응했다고 하자. 이 경험을 토대로 그를 어떻게 대할지에 대한 습기가 생겨난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를 똑같은 방식으로 대하고, 갈수록 습기가 강해진다. 그를 만날 때마다 우리는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그가 처음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해도 우리는 달라지지 않는다. 습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의 실상을 인식하지 못한다.
- 본문 69~70쪽
몇 가지 습기는 바꾸기가 상당히 어렵다. 끊기 힘든 한 가지 습기가 흡연이다. 이 경우에는 알아차림이 중요하다. 담배를 피울 때마다 알아차림을 통해 자신이 담배를 피우고 있음을 자각한다. 이 습기에 대한 알아차림이 하루하루 깊어지고, 자신의 폐가 망가지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러면 자신의 폐와 건강과 사랑하는 사람들 간의 연결고리가 보이게 되고, 자신을 돌보는 것이 곧 사랑하는 이들을 돌보는 것임을 깨닫는다. 그러면 자신만이 아니라 그들을 위해 자기 몸을 돌볼 결심을 하게 된다. 알아차림 수행은 이런 종류의 통찰을 촉진한다.
(……)
행복도 습기가 될 수 있다. 걷기 명상을 하면서 우리가 내딛는 걸음걸음은 평화와 기쁨을 가져온다. 걷기 명상을 처음 시작할 때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아직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아주 당연하게 평화와 기쁨을 느끼기 시작한다. 우리는 의아해한다. “나는 왜 그렇게 항상 서둘렀을까?” 걷기 명상을 할 때나 어떤 식으로든 몸을 움직일 때 알아차리는 것이 편안해지면 이것이 유익한 습기가 된다.
- 본문 71~72쪽
분노할 때 우리는 괴롭다. 우리는 분노를 표출하면 얼마간 편안해질 거라고 믿는다. 일부 심리치료사들은 내담자에게 “자신의 분노와 만나라.” 또는 “분노를 몸 밖으로 꺼내라.”라고 조언한다. 내담자를 방에 들여보내서 베개를 마구 때리게 하는 치료법도 있다. 이것이 다른 사람을 실제로 때리지 않고 분노를 안전하게 표출하는 방법이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분노를 표출하는 행위는 분노를 몇 배나 강화한다. 베개를 때릴 때마다 우리는 분노를 시연하고 자신의 분노 종자가 쑥쑥 자라게 돕고 있는 것이다. 내 생각에 그것은 현명한 치료법이 아니라 위험한 치료법이다. 베개를 후려치면서 이미 현행한 분노를 표출하는 동안, 이와 동시에 아뢰야식 속 분노 종자를 강화하기 때문이다.
이 말이 분노를 억제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자신의 분노를 알아보고 포용하고 그대로 놔두는 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면 알아차림을 통해 분노와 접촉해서 그것을 변화시킬 수 있다. 분노로 인해 베개를 때리는 행위는 자신의 분노와 접촉하는 게 아니라, 분노가 자신을 제압하도록 방치하는 것이다. 사실은 베개와도 접촉하지 못한다. 베개와 진실로 접촉했다면 그것이 베개라는 것을 분명히 알 테고, 그러면 베개를 그렇게 때리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 본문 111쪽
때때로 우리는 자신의 견해에 집착한 나머지, 진실이 찾아와 문을 두드려도 그것을 집안에 들여놓지 않는다. 자기 견해에 대한 이런 맹목적인 믿음(광신)은 수행의 적이다. 자신의 지식을 맹목적으로 믿어서는 결코 안 된다. 한 차원 높은 진실과 마주친 순간에 기존의 견해를 버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견해에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수행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어떤 견해든지, 아무리 뛰어나고 숭고한 견해라고 해도, 심지어 불교에 대한 믿음조차 덫이 될 수 있다. 당신의 가르침이 뱀과 같다고 하신 붓다의 말씀을 기억하라. 그 가르침을 바르게 받아들이는 법을 모르면 그것에 집착하게 된다. 뱀에 물린다.
- 본문 159쪽
아뢰야식은 자주 땅으로 비유된다. 꽃과 열매를 낳을 씨앗이 뿌려진 밭 말이다. 의식은 농부다.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고 땅을 돌본다. 이런 이유로 이 게송은 의식이 종자를 이숙(성숙)시키는 업을 일으킨다고 말한다. 의식은 우리를 지옥으로 이끌 수도 있고, 해탈로 이끌 수도 있다. 지옥과 해탈은 해당 종자가 성숙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의식은 업종자를 처음 뿌리는 작업을 하고 그 종자를 익히는 작업도 한다. 의식이 사과 씨앗을 심으면 우리는 사과를 키운다.
농부(의식)는 땅을 믿어야 한다. 지혜와 연민의 열매를 낳는 것은 땅이기 때문이다. 또한 농부는 아뢰야식 속 선업 종자를 알아보고 밤낮으로 그 종자에 물을 주고 성장을 도와야 한다. 밭(아뢰야식)은 종자를 키우고 그 과보를 내어준다. 깨달음과 지혜와 자비의 꽃은 마음밭의 선물이다. 농부는 그 꽃이 성장할 기회를 얻도록 마음밭을 잘 돌봐야 한다.
- 본문 190~191쪽
『화엄경』은 한 티끌 속에 우주가 있고 우주 속에 한 티끌이 있다고 가르친다. 그렇다면 한없이 작은 티끌과 한없이 큰 우주가 똑같은 성질을 지닐 것이다. 한 개의 원자, 한 개의 나뭇잎, 한 개의 수증기 속에 온 우주를 파악하는 데 필요한 정보가 전부 들어 있다. 원자 한 개의 진실을 발견할 때 우리는 온 우주의 진실을 발견한다. 바닷물 한 방울을 이해할 때 온 바다를 이해한다. 조약돌 한 개를 충분히 깊이 관찰할 때 우주를 본다.
나뭇잎 한 장을 깊이 관찰하면 해와 구름이 보인다. 우리 몸을 깊이 관찰하면 우주가 보이고, 우주에 존재하는 일체 만물이 보인다. 단 한 개만 깊이 관찰해도 우리는 전부를 이해한다. 누메논(noumenon)과 현상, 진리계와 현상계는 항상 더불어 존재한다. 그 세계들은 분리된 두 개의 세계가 아니다. 우리의 체세포 각각에 모든 선대 조상과 모든 후대 자손이 들어 있다. 우리 안의 각 종자와 심소와 식에 온 우주와 모든 공간과 모든 시간이 들어 있다. 이것을 발견하겠다고 멀리 떠날 필요가 없다. 이것을 통찰하겠다고 수많은 명상 주제를 참구할 필요도 없다. 어떤 심소든지, 불선 심소든 선 심소든, 한 가지 심소의 실상을 깊이 관찰하고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면 완전한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 한 가지만 밝게 이해해도 존재하는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
- 본문 232~233쪽
화살을 맞은 적이 있는 새는 활을 볼 때마다 겁을 먹는다. 활 모양과 비슷한 나뭇가지에 앉지도 못한다. 어릴 적에 큰 상처를 입었다면 그때 우리가 받아 심은 괴로움 종자가 오늘도 여전히 우리와 함께 있다. 우리가 현재를 살아가는 방식이 이 괴로움 종자에 기반한다. 과거의 종자가 의식에 날마다 현행하지만 우리는 그것에 알아차림의 빛을 비춘 적이 없기 때문에 그 존재를 알지 못한다. 알아차림이 있다면 그 종자가 돋아날 때마다 그것을 알아볼 수 있다. “아, 너구나! 나는 너를 알아.” 이렇게 알아보는 것만으로도 그것이 우리에게 가하는 힘이 약간 줄어든다. 괴로움 종자는 하나의 세력이다. 알아차림도 하나의 세력이다. 이 두 세력이 만날 때 괴로움 종자가 변화한다. 그 종자를 알아차림과 접하게 해주면 종자가 바뀐다.
- 본문 301쪽
번뇌가 곧 깨달음이다. 우리는 평화롭게 생사의 파도를 타고 넘을 수 있다. 두려움 없는 미소를 띤 채 자비의 배를 타고 미혹의 바다를 건널 수 있다. 연기의 눈으로 우리는 쓰레기 속에서 꽃을 보고 꽃 속에서 쓰레기를 본다. 다름 아닌 괴로움을 딛고, 번뇌를 딛고 우리는 깨달음과 행복을 관조할 수 있다. 연꽃은 다름 아닌 진흙탕 속에서 자라고 꽃을 피운다.
보살은 제법의 불생불멸성을, 실상을 꿰뚫어 본 이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살은 언제나 두려움이 없다. 자유자재하므로 보살은 괴로워하는 중생을 온갖 방편으로 구제할 수 있다. 우리가 부처가 될 수 있는 이유는 괴로움과 번뇌의 세계에서 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세계의 참모습을 체득할 때 우리는 두려움 없이 자유자재하게 생사의 파도를 타고 넘으면서 고해에 빠진 중생을 도울 수 있다.
- 본문 33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