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오백 당(堂)오백’이라는 표현은 제주도 신앙의 특징을 대표하는 말이다. ‘절에 가듯 당에 가고, 당에 가듯 절에 가는’ 비승비속(非僧非俗)적인 무불융합의 형태로, 민간신앙과의 공존과 융화라는 제주 불교의 특징을 잘 설명해준다.
현재까지도 전승되는 제주도 영등굿 속에는 생불, 전륜대왕, 지장 등 불교의 불보살들이 신으로서 기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는 제주 사람들이 경험을 통해 배우고 얻은 세계관이다. 제주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삶, 막힌 혈관 속의 문제를 풀어줌으로써 피를 흐르게 하는 ‘풀림’이 없다면 믿음이 될 수 없었다. 불교가 제주에 전래돼 무속과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하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산신기도
제주는 섬과 한라산이라는 지역적 특성상, 산신기도가 제주인들의 삶 속에 깊숙이 파고들어 독특한 신앙문화로 자리 잡았다. 한라산은 민족의 영산이다. 제주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이래 제주 사람들에게 한라산은 곧 제주도다. 역사, 자연, 전설까지도 한라산과 함께 공유한다. 그래서인지 한라산 주변으로 수많은 사찰이 있고, 대부분 사찰의 이름 앞에는 한라산이 붙는다. 산신신앙은 불교 세계 속으로 들어와 재물과 수명, 그리고 복덕을 관장하면서 도량을 수호하는 신으로 자리매김했다. 사찰에 따라 산신각 혹은 삼성각에 봉안되거나 대웅전 등에 탱화로 모셔졌으며, 대부분 사찰에서 산신기도를 봉행한다.
한라산 곳곳에는 화산활동으로 생긴 원뿔형의 작은 화산인 ‘오름’이 한라산을 외호신장하고 있으며, 품 안에 안기듯 솟아 있다. 오름 중에는 불교와 관련된 이름이 많다. 영실 부근에 자리해 존자암을 관장하는 불래오름, 그리고 성불오름, 법정악오름, 극락오름, 바리메오름 등 불교와 민간신앙의 터로 민초들의 삶에 자리해 왔다.
안택기도
제주에는 새해 정초만 되면 가정에서 스님을 모시고 불공하며, 1년 동안 집안의 안녕을 기원하는 안택기도가 아직도 행해지고 있다. 예로부터 무당이 하던 안택기도를 제주에서는 스님을 모시고 행하는 일이 많았다. 1702년 목사 이형상의 훼철 이후 200여 년의 무불(無佛)시대가 막을 내리고 1909년 안봉려관 스님이 관음사를 창건한 후, 제주도에 사찰과 승려가 늘어나고 불교를 신앙하는 것이 활성화되면서 기존의 신앙 양상이 불교식으로 바뀌어 갔다.
고려시대에는 왕실과, 조선시대에는 민간신앙과 불교가 만나 그 명맥을 유지했는데, 제주는 안택기도가 그 역할을 했다. 제주에서 진행되는 안택기도를 보면, 민간신앙이 다시 불교 양식으로 바뀌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민간신앙의 영역인 집안의 문전신, 조왕신, 토지신 등에 대한 제사를 스님이 봉행하는데, 불교 경전을 독송하는 점이 민간신앙과 차별된다.
용왕기도
제주도 사찰은 출가재일(음력 2월 8일)부터 열반재일(음력 2월 15일) 기간에 용왕기도를 겸해 방생법회를 봉행한다. 다른 지역과 구분되는 특징이다. 사찰 대부분은 음력 2월 초부터 보름까지 용왕기도를 봉행한 후, 인근 포구에서 방생법회를 하는 식이다. 해산물 증식과 어업인의 안녕, 수산업의 번창을 기원하는 영등굿과 유사하다. 영등굿은 음력 2월 초하루에서 보름 사이에 진행되는데, 사찰의 용왕기도 역시 비슷한 시기에 봉행한다. 제주의 다양한 당문화가 불교에 그대로 녹아들어 있음을 보여준다.
용왕기도는 물과 바람을 관장하는 용왕에게 의식을 올리는데, 한 해의 무사평안을 기원하는 행사로 자리 잡았다. 한때는 용왕기도 봉행 후 용왕에게 떡과 과일을 바다에 던지는 공양의식이 행해졌으나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다. 이를 대신해 생명존중의 마음을 담아 물고기를 살려주는 방생법회로 변화하고 있다.
화천사 오석불
제주시 회천동 화천사 대웅전 뒤편에 독특한 ‘오석불’이 자리한다. 다섯 개의 석불이 각각 다른 표정을 짓고 있는데, 투박하면서도 인심 좋은 제주 사람 얼굴로 표현됐다. 절에 모셔진 오석불께는 아기를 점지해 달라고 비는 기자(祈子) 불공이 행해진다. 석불이 있는 동회천 마을에서도 매년 정월 초정일(初丁日), 석불단 앞에서 석불제를 지내고 있다. 기원의 내용은 같으나 형식은 유교식이다. 제물로 육류를 사용하지 않는 불교식 마을제를 지낸다. 화천사 오석불을 ‘민간신앙 속의 미륵이 사찰 안으로 들어와 석불로 변한 것’으로 보고 있다. 불교와 민간신앙의 습합을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다.
돌미륵
토속신앙인 당문화에 불교적인 색채가 덧붙여져 제주만의 독특한 유물이 탄생한다. 돌미륵(돌미럭)이 그것이다. 돌은 제주인의 삶 속에 다양한 방식으로 깊숙하게 자리 잡혀 있다. 돌 문화는 하나의 신앙으로도 발전해 나가면서 생명과 영력을 부여받았다. 제주 민중들은 이를 ‘돌미럭’이라 불렀다. 본디 ‘미륵 신앙은 미래의 부처인 미륵불이 현세에 나타나 고통과 죄악이 없는 광명된 세상을 이룬다’는 불교 신앙의 한 형태다. 즉, ‘먼 장래에 미륵불이 나타나 부처님이 미처 구제하지 못한 중생을 모두 구제한다’는 미래에 대한 유토피아적 이상향을 제시한다.
그렇지만 제주의 신화를 살펴보면 미륵불은 민중들에게 무병장수와 복을 가져다준다.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인이 미륵돌을 찾아와 빌면 득남을 시켜줬고, 가난한 어부와 해녀들에게는 해산물을 많이 잡게 해줌으로써 ‘풍요다산’의 영험을 주는 마을 수호신이 됐다.
마을 수호신이 된 미륵은 가난한 현실 속에서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민중들의 마음,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민중들의 소박한 꿈을 이뤄주기 위해 도래한 것이다. 제주의 돌미륵은 풍요와 다산의 해신으로, 가난한 민중의 꿈을 이뤄주는 ‘미륵’으로 마을에 모셔지게 됐다.
제주의 돌법당
사찰과 비슷한 수의 신당이 있지만, 사찰이 신당을 포함하는 경우도 매우 많다. 육지에도 비슷한 양상이 있지만, 제주의 경우 훨씬 더 빈번하며 더 넓게는 무속신앙과 포개진다.
제주시 도남동 보현사에는 육지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제주만의 돌법당이 있다. 대웅전 벽체를 제주에서 나는 돌로 조성했는데, 민간 건축의 구조를 사찰 건축 안으로 수용한 것이다. 제주도의 특수한 상황을 반영해 만든 건물로, 앞으로도 보존해야 하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창건 당시 지붕은 기와였지만 후에 바뀌었다. 향후 보수를 할 경우, 벽체와 나무 부재를 보존하면서 지붕을 전통 기와로 조성하면, 제주도 건축의 특성이 가미된 전통 사찰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한다.
제주도는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섬이다. 돌과 바람이 있는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제주 민초들은 땅속 박혀 있는 돌을 캐내며 농경지를 넓혀갔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민초들은 위로받을 믿음이 필요했다. 그들은 돌에 영험을 부여했고, 그 돌은 미륵불이 됐다. 다산(多産)의 희망과 생활의 풍요를 기원하는 기자신앙(祈子信仰)이 저변에 깊이 뿌리내렸다. 다른 지방의 불교와 비교해 무속신앙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제주만의 이유였다.
글·사진. 이병철
이병철
2002년 제주불교신문에 입사했고, 2018년부터 BBS제주불교방송에 입사해 현재 BBS제주불교방송 방송부장으로 재직 중이다. 제주만의 독특한 불교 역사와 문화를 공유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