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에서 차차차茶茶茶] “하늘 아래, 제일 먼저 찻잎을 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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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에서 차차차茶茶茶] “하늘 아래, 제일 먼저 찻잎을 땁니다”
  • 김남수
  • 승인 2023.04.26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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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상선암 보성 스님

명전차

쌍계사가 위치한 하동 화개는 우리나라에서 차가 제일 먼저 재배된 곳으로 알려졌다. 신라시대 흥덕왕 시기, 중국 사신으로 갔던 대렴(大廉)이 가져온 차종자(茶種子)를 왕의 명으로 지리산에 심은 것에서 우리나라 차의 시원을 찾는다. 진감국사가 ‘차나무를 들여왔다’고 하기도 한다. 
이런 연유에서인지 쌍계사 인근에는 많은 차밭이 있고 다원이 즐비하다. 섬진강을 따라, 지리산 자락으로 차밭이 조성돼 있다. 이곳에서 근 40년 차밭을 조성해 차를 만들어 온 상선암 보성 스님을 만났다. 

차가 좋기로 곡우(穀雨) 전 찻잎을 따는 우전차(雨前茶)를 이야기한다. 곡우가 4월 20일 전후인데, 상선암에서는 청명(淸明) 전 찻잎을 따는 명전차(明前茶)를 만든다. 

“명전차는 예부터 임금에게도 진상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청명이니 곡우니 하지만 날씨와 온도를 따져 찻잎을 따야하죠. 상선암에서는 3월 27일이나 28일부터 채취합니다. 광양이나 보성, 제주보다 빠를 거예요.”

하동 지역에서도 제일 빠르단다. 상선암 차밭은 꽤 높은 곳에 있다. 동서남북 사면이 산으로 에워 바람을 막아주고, 봄의 높은 햇살 덕분이란다. 냉해를 입기도 하지만, 그 시기에 새순이 나오는 차나무가 있단다. 대신 양은 많지 않다.

‘진짜 그러냐’고 재차 물었다. 스님은 “의심이 그렇게 많냐”며 명전차를 슬며시 내준다. 마시기 전에 향을 맡아 보니, 향이 진하다. “상선암에는 12월 초에 설중매 꽃이 핀다”고 덧붙인다. 꽃이 핀 설중매 사진을 올리면, 작년 거 아니냐는 질문도 많이 받는다고.

찻잎은 한 잎, 한 잎 조심스레 채취해야 한다. 

 

상선암 차

스님이 차를 다룬 지 40년이 넘었고, 이곳에 자리 잡은 시간도 그만큼 돼간다. 스님이 출가할 때만 해도 차를 마시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고. 하동에도 지금에나 차밭이 지천으로 있지만, 옛적에는 흔한 모습은 아니었다 한다. 선방에서 차를 마시는데, 스님 체질이 소음인이라 차에 예민하게 반응했단다. 

“차는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물이지만, 옛날부터 약용으로도 마셨죠. 그런데 차에 ‘냉기가 있다’, ‘공복에 마시지 마라’, 혹은 ‘너무 많이 마시지 마라’ 하는데, 차를 모르고 하는 소리죠. 차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차를 많이 마시면 피를 맑게 하고, 사람을 차분하게 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스님은 물을 마시지 않고, 종일 차만 마신다. 새벽에 일어나 공양 올리고, 공복에도 차를 마신다. ‘차가 냉하다’라는 선입견을 없애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 일반 음식은 목에서 열이 올라오는데, 차는 단전에서부터 올라온다고.

“찻잎은 기본적으로 냉합니다. 덖고 볶는 것이 차의 냉함을 처리하는 과정이죠. 채소나 과일, 곡물같이 자연에서 얻어지는 식품 중에 냉하지 않은 것이 있습니까? 공복에 뜨거운 물을 부어 그냥 마시면 돼요.”

스님은 또 “차를 마실 때 물로 차를 식히기도 하는데, 이것 역시 차를 잘 덖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냥 뜨거운 물에 우리면 돼요”라고 강조한다. 커피 자판기에서 커피를 빼듯이, 뜨거운 물을 내려 차를 우리면 된다고.

상선암 차밭에 매화나무를 비롯한 나무를 심었다. 냉해를 막아주고, 음양(陰陽)의 조화를 이루게 한다. 
4월 초, 상선암에서는 찻잎을 한창 따고 있었다. 이르면 청명(淸明) 전부터
채취한다. 

 

스님의 제다

차의 제다는 찻잎을 따는 순간부터라 이야기하지만, 이름난 곳은 차나무를 재배 관리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열이면 열이 다 다른 것’이 제다(製茶)다. 사찰에서는 ‘여법하게 다룬다’ 해서 법제(法制)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상선암은 차만 재배하지 않는다. 차나무 사이에 매화나무가 있고, 갖가지 식물이 차밭 주변에 있다. 

“매화와 함께 있으면 매화 향이 스며들기도 하고, 나무 밑이나 바위 아래 차나무는 냉해를 덜 입어요. 야생에서 저절로 키우면 스스로 강해져, 냉해를 입어 잎이 꼬시라져도 새잎이 나옵니다.”

찻잎을 따고 덖고 말리는 4월이 제일 바쁘지만, 차 농사는 연중무휴다. 풀을 베야 하고 일이 많다. 당연히 찻잎은 한 잎, 한 잎 조심스레 채취해야 한다. 다음은 덖음. 스님은 한 번만 덖는다. 

“300도 중반에서 400도,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불이 강해도 문제, 약해도 문제가 됩니다. 불이 약하면 차의 기가 빠져요. 당연히 태우지 말아야겠죠? 고온에서 골고루 하면 한 번만 덖으면 돼요. 밥을 잘 지었는데, 또 뜸 들일 필요 없잖아요?”

스님은 무쇠솥에 덖고 가스를 연료로 사용한다. 무쇠솥 두께가 밑은 4~5cm, 위는 2cm다. 온도를 일정하게 맞추기 위해서다. 덖을 때 모든 찻잎을 
뒤집어야 한다. 

“삼겹살 열 조각 굽는데, 아홉 조각만 뒤집고 한 조각은 뒤집지 않으면 그게 되겠어요?”

차를 비비는 유념(揉捻)은 잎을 조심스레 다뤄야 한다. 기계로 유념하면 차의 맑은 기가 약해지고, 나중에 ‘감칠맛’이 떨어진다고. 덖은 것을 건조하는 일은 수분을 제거하고, 맛과 향을 내는 중요한 과정 중 하나다. 잎을 채취한 당일에 이 모든 과정을 마쳐야 한다. 

“간혹 차에서 풋내가 나는 경우가 있는데, 차를 잘 다루지 않은 거예요. 맑고 감칠 맛 나는 것이 우리나라 차의 특성입니다. 중국이나 일본의 차가 따라올 수 없는 맛이죠. 녹차 한 잎에 스무 번 이상 손이 가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햇차인지 묵은 차인지 몰라요. 1년이 지나도 맛이 균일해야 하죠.”

찻잎은 무쇠솥에서 덖는다.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솥의 두께를 밑으로 4~5cm, 위로는 2cm로 조성했다.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물, 차

매일 아침, 예불은 부처님 전에 차를 올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차로 밥을 짓기도 하고, 시시때때로 차를 마신다. 스님만의 건강 유지 비결이다. 차를 마시는 것을 다선일미(茶禪一味)라 하는데, 스님에게는 만드는 과정이 그렇다. 

“육법공양(六法供養) 중 차가 으뜸이죠? 차 한잔 올리는 것에 부처님의 진리가 들어 있습니다. 차 문화는 기본적으로 절집 문화입니다. 옛날에는 사찰에 다 차밭이 있었죠. 요즘은 일반 사회에서 이끌어 가고 있어 안타깝죠.”

‘차가 냉하다’는 등 차에 대한 선입견을 깨기 위해 처음에는 여러 발품을 팔았다. 지금은 많이 알려져 여러 곳에서 다양한 문의가 온다고. 스님은 이렇게 모은 수익금을 사회에 회향한다. 해마다 수천 포기의 김장김치를 서울 영등포 쪽방촌 등지에 보낸다. 무료급식소나 인연 닿는 곳에 보내기 시작한 것이 25년. 인터뷰 마지막으로 차와 커피에 대해 한마디 부탁했다.

“커피는 예민하고 날카로운 맛입니다. 차는 온화하고 부드럽게 하는 맛이죠. 그리고 요즘은 커피 마시는 것도 엄청나게 복잡하죠? 차는 뜨거운 물을 붓기만 해도 돼요. ‘뭐다 뭐다’ 해서 복잡하게 말하는데, 우리나라 차는 그런 거 없어도 됩니다. 커피는 하루에 한두 잔 먹으라 하죠? 종일 마실 수 있는 것이 차입니다.”

‘종일 내내 차를 마셔도 된다’라는 이야기를 인터뷰 내내 10번 넘게 들은 듯하다. 보성 스님이 ‘차에 대해 어떤 고민을 했는지’ 알려주는 한편, 상선암 차 맛을 짐작하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사진. 유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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