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었던 명절 연휴가 지나고 선선해진 날씨 탓에 한여름 열기로 피로했던 기분이 점차 풀리는 듯합니다. 네, 가을입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계절. 여러분은 이 귀한 시간, 어디론가 떠날 계획을 갖고 계신가요?
저는 하루 정도 시간을 내어 가까운 산사를 찾습니다. 붉고 노란 기운이 가득한 숲속, 가을바람 사이로 들려오는 풍경 소리와 코끝에 닿는 향 내음이 마음을 청아하게 해주지요. 그런데 산사엔 그것말고도 즐거운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누군가는 사찰을 ‘숲속의 박물관’이라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오랜 시간 동안 한 자리를 지켜온 산사엔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은 건축물과 불상, 불화 등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절집의 보물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속속들이 들여다보면 사찰 계단이나 석축, 절 마당에 세워진 돌기둥도 모두 보물입니다.
40여 년을 오직 길 위에서 우리 역사와 옛사람들의 문화를 읽어온 ‘찐’ 답사가 노승대 선생님과 떠나는 사찰 기행! 『사찰에 가면 문득 보이는 것들』에 소개된 불교의 진귀한 보물을 찾아볼까요?
1. 경주 남산 곳곳에 새겨진 불보살님을 따라 순례하기
전국 사찰은 물론 산과 들에서 더러 만날 수 있는 마애불. 재미있는 건 마애불이 있는 곳은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이전부터 치성을 올리던 기도터였다는 점입니다. 그 영험한 기운이 샘솟는 곳으로 떠나는 순례길, 가을의 경주 남산을 추천합니다.
남산엔 전국의 그 어떤 산보다 마애불이 가득합니다. 옛 선사시대부터 기도터였던 남산, 그 영험한 곳에 불국토를 꿈꾸던 신라인들이 암벽과 바위마다 마애불을 조성한 것이지요.
신라 때나 지금이나 사랑하는 이들의 건강과 안녕을 비는 마음은 같을 터, 경주 남산을 순례하며 곳곳에 자리한 불보살님께 간절히 기도해 보세요. 분명 가피가 따를 것입니다.
2. 손주의 손을 잡고 한바탕 보물찾기
양산 통도사는 신라시대 자장 율사께서 창건한 유서 깊은 고찰입니다. 그런데 사찰 전각 처마 밑을 유심히 보노라면 작은 항아리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고찰 안에, 그것도 부처님을 모신 전각에 항아리라니…. 하지만 그 속내를 알고 나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항아리의 정체는 ‘소금단지’입니다. 절집에 화마가 들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단옷날이 되면 통도사에서는 소금단지를 사찰 전각 곳곳에 항아리를 둡니다. 하나의 상징물이지요.
꼬마 손주를 데리고 통도사를 찾은 어머님, 아버님들이라면 절집을 지루해하는 아이와 손을 잡고 가람 곳곳에 숨겨진 항아리를 찾아보는 보물찾기를 해보는 건 어떨까요? 돌아가는 길에 항아리에 새겨진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면 아이에게도 뜻깊은 추억이 될 것입니다.
3. 알고 가면 더 즐거운 등산 데이트
계룡산 갑사에는 귀여운 조각 하나가 있습니다. 그게 뭐냐고요? ‘오리’입니다. 참 뜬금없는 조합입니다. 갑사 오리 조각은 ‘보장각’이라 불리는 전각 용마루에 살포시 앉아 있습니다. 통도사의 소금단지처럼 목조 건물에 취약한 화재를 막기 위해 조성한 상징물이지요. 그런데 하필 왜 이 전각 위에 오리를 둔 걸까요? 사실 이 전각은 월인석보 목판(보물)을 보관하기 위하여 새로 지은 건물로, 귀한 경전을 모신 탓에 특별히 화재를 방지하고자 하는 염원을 담아 오리를 올린 것입니다.
계룡산은 연중 등산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은 명산입니다. 만약 갑사 방향으로 드는 산길로 등산 데이트를 계획하고 계신다면 잠시 갑사에 들러 보장각과 오리 조각에 얽힌 이야기를 연인에게 들려줘 보세요. 점수 좀 따실지도 모르니까요.
4. 살아 있는 역사를 배우는 현장학습
합천 해인사는 잘 알려져 있듯 고려대장경(국보)이 자리한 고찰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소개할 보물은 다른 것인데요, 바로 대적광전 앞에 자리한 3기의 돌기둥이 그것입니다. 밤이 되면 숲속에 자리한 사찰이 더욱 어두워질테니 절 마당을 밝힐 조명이 필요했을 겁니다. 이 돌기둥들은 바로 사찰에서 쓰이던 조명의 역사를 알려주는 소중한 문화유산이지요.
1기의 노주석은 사각형의 판석 위에 불을 올려 어둠을 밝히려는 목적으로 쓰인 것입니다. 그리고 2기의 등롱대 역시 같은 형태로 쓰였는데, 다루기 쉬운 전기가 절집에 들어오면서 이 등롱대에 전기를 배선했던 흔적이 남아 사찰 조명의 역사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현장학습을 고민하고 있는 학부모님들이라면 박물관에 자리한 역사도 좋지만 지금도 그 자리에서 생생하게 지나온 길을 증언하는 유물을 아이들에게 소개해 주시는 건 어떨까요? 해인사 등롱대에 새겨진 다람쥐 조각을 발견하는 것도 큰 즐거움이 되어 줄 겁니다.
베티랑 답사가 노승대 선생님의 사찰 속 보물찾기 ‘마지막 라운드’, 『사찰에 가면 문득 보이는 것들』엔 사찰의 흔하고 오래된 것들에 담긴 의외의 사실을 아는 즐거움이 가득합니다. 앞서 두 권의 책을 통해 소개된 사찰에 사는 동식물과 도깨비, 삼신할미 같은 의외의 존재들(『사찰에 가면 도깨비도 살고 삼신할미도 산다』), 그리고 사천왕이나 금강역사 같은 신기한 존재들(『사찰 속 숨은 조연들』)에 이어 절집에 자리한 흔하고 오래된 것들에 숨겨진 옛 이야기! 이 가을날 여러분을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보물들에 담긴 사찰 역사문화 기행의 길로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