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에서 고분(古墳, 옛 무덤)에 벽화를 그리기 시작한 시기는 대략 3~4세기로 본다. 정확한 축조 시기를 알 수 있는 가장 이른 시기의 고구려 벽화고분은 안악 3호분(357)이다. 안악 3호분이 세워진 4세기부터 668년 고구려가 멸망할 때까지 고구려 벽화고분에는 고구려인의 신앙생활과 사후 세계관이 담겨 있다.
안악 3호분에는 불교의 상징인 연꽃이, 고구려의 가장 마지막 벽화고분이라고 할 수 있는 강서대묘에는 불교의 비천(飛天)이 천장을 장식한다. 고구려인의 의식 세계 상당 부분을 차지했던 불교의 관념과 미술 세계가 고구려 벽화고분의 건축과 회화로 생생하게 남아 있다.
고구려 벽화고분에서 보이는 불교신앙을 중요 고분의 건축 구조와 회화 소재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안악 3호분
고구려 벽화고분은 고구려에 불교가 전래된 372년 이전부터 축조됐는데, 357년 세워진 황해남도 안악군에 위치한 안악 3호분에서 이미 불교적 요소들이 표현된다.
먼저, 안악 3호분의 불교적 요소는 무덤의 남자와 여자 주인공 그림에서 찾을 수 있다. 무덤 주인공인 남자[도판 1]와 여자가 서쪽 곁방의 후벽과 후벽에 맞닿은 남쪽 벽에 각각 그려졌다. 남자 주인공은 정면을 보고 앉아 있고, 여자 주인공은 남편을 향해 측면으로 앉아 있다.
중국 한대에 무덤 주인공의 정면 초상은 중국으로 전래된 불교 도상의 영향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한대의 낙산 마호1호 애묘(樂山 麻浩1號 崖墓)의 부처상, 묘전수(墓錢樹)와 동경(銅鏡)에 표현된 서왕모상 등은 초기 불교의 전파로 중국의 전통적인 신선 도상과 불교 도상이 혼합된 예다.
무덤의 남자 주인공은 정면을 보며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세 개의 다리가 있는 삼족(三足) 빙궤(憑机, 팔걸이 받침)에 기대어 앉았다. 안악 3호분 무덤 주인공 그림은 기본적으로는 중국의 한대 고분 미술의 정면 초상 도상을 따르고 있다. 또한 한대에 전래한 불교미술의 부처상과 유마거사 도상과의 연관성도 보여준다.
중국 한대의 벽화고분과 화상석 고분 가운데, 동한(東漢) 시기의 허베이성 안핑(平安) 벽화고분의 무덤 주인공은 안악 3호분과 거의 유사한 형태로 장방(帳房, 휘장을 두른 방) 아래 정면을 향해 앉은 모습이다. 이러한 삼각 구도 안에 정면으로 그려진 무덤 주인공 초상은 동한 시기 허베이성에서, 위진 시기 랴오닝성의 벽화고분을 거쳐, 고구려의 안악 3호분에 출현한다.
안악 3호분의 불교적 요소 또 한 가지는 도상의 자세다. 무덤 주인공이 한 손에 주미(부채)를 들고 몸 앞에 다리가 세 개 달린 삼족 빙궤를 놓고 기대어 앉아 있는데, 이러한 도상은 불교미술의 유마거사 도상에서 연원을 찾기도 한다. 이처럼 안악 3호분 벽화에서 가장 중요한 무덤 주인공의 초상에서 불교적 도상을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이후에 출현하는 고구려 벽화고분 무덤 주인공의 표현에 전반적으로 담기게 되는 불교적 색채를 예시한다.
또한 안악 3호분에는 불교의 상징인 연꽃이 다양하게 등장한다. 먼저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이 앉은 장방 위의 중앙과 양쪽 모서리에 연꽃이 장식됐다. 장방 위 중앙에는 다섯 잎에서 일곱 잎의 연꽃이, 장방의 양쪽 끝에는 세 잎의 연꽃, 또는 연봉오리가 그려졌다. 불교의 상징인 연꽃은 안악 3호분의 무덤 주인공 초상만이 아니라 무덤의 천장과 기둥 등 다양한 곳에 출현한다.
안악 3호분에는 말각조정(삼각 고임천장)이라는 고구려 특유의 천장 구조가 앞방, 널방, 서쪽과 동쪽의 곁방에 사용됐다. 말각조정은 방형(사각형)의 벽면 위에 평행 고임으로 몇 단을 올리고, 그 위에 네 모서리에 삼각형 모양으로 돌을 얹어 네 모서리를 줄여나가는 방식으로 쌓는 구조다. 후기 벽화고분인 강서대묘에 이르기까지 고구려 벽화고분에서 자주 채용되는 천장 형식이다.
말각조정의 중앙에는 여덟 잎의 연화문(연꽃 모양 문양)이 정면으로 그려져 연꽃이 만개한 하늘 세계를 보여준다[도판 2]. 또한, 널방을 둘러싼 기둥머리에도 측면 연화문이 귀면문(괴수의 얼굴 문양)과 함께 장식됐다.
초기의 안악 3호분부터 출현한 연화문은 고구려 벽화고분의 대표적인 문양으로, 대다수의 고구려 벽화고분에 인물들의 생활풍속 장면과 천상 세계의 배경으로 그려진다. 또 인물이나 풍속이 없는 장식문양이 중심인 벽화고분에도 중심 문양으로 애용되면서 고구려인의 장의(葬儀)미술이 가진 불교적 색채를 짙게 드러낸다.
덕흥리 고분
안악 3호분에 이어 408년에 축조된 덕흥리 벽화고분(평안남도 남포시 소재)에는 앞방에서 뒷방으로 연결되는 통로의 입구 위쪽 천장에 글이 쓰여 있다[도판 3]. 여기서 무덤 주인공은 진(鎭)이며 석가문불(釋迦文佛)의 제자임을 밝히고 있다.
덕흥리 벽화고분의 무덤 주인공은 무덤의 앞방과 뒷방에 두 번 출현한다. 먼저 앞방 뒷벽에는 안악 3호분과 유사한 삼각 구도의 초상으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뒷방의 동측 벽에는 연꽃이 피어나는 연못과 칠보 공양의 장면이 그려졌다[도판 4]. 칠보수(七寶樹)나 칠보에 예를 드리는 의식도로, 아미타삼부경(阿彌陀三部經) 중 무량수경(無量壽經)의 정토 장엄과 관련된 내용이다. 무덤 주인공이 아미타정토에 왕생하기를 기원하는 의식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불교신앙은 안악 3호분에서 장방이나 천장을 장식하는 연화 문양으로 표현된다. 그러던 것이 덕흥리 벽화고분에서는 더 적극적으로 문자와 그림으로 표출되고 있다.
장천 1호분
압록강 변에 있는 장천 1호분은 무덤 주인공의 불교신앙을 보다 선명하게 보여 준다. 앞방과 뒷방으로 구성됐는데, 뒷방에는 인물이 없고 연화문만으로 장식돼 있다. 앞방에서 뒷방으로 넘어가는 통로의 입구인 앞방 뒷벽 천장에 광배를 뒤에 두고 통견(通肩, 옷이 불상의 양쪽 어깨를 모두 덮은 모습)에 선정인을 한 부처님이 앉아 있다[도판 5]. 양쪽으로는 사자 두 마리가 대좌 위에 앉아 있다. 한쪽에는 이제 막 사원에 도착한 무덤 주인공 부부가, 반대편에는 부처님 앞에 오체투지를 하고 경배를 올리는 부부가 묘사됐다.
장천 1호분의 불상은 한국 뚝섬 출토 불상과 중국 간쑤성 병령사석굴 169굴의 벽화와 유사하다. 모두 통견에 선정인 수인을 하고 있다. 또한 대좌 양쪽의 사자 표현은 하버드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불상과 흡사해 간다라 양식의 초기 불상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장천 1호분의 비천상은 운강 석굴 6굴, 7굴, 12굴 등과 문수산 천불동 등에 묘사된 비천상과 유사해 5세기경의 중국불교 석굴 미술과의 연관성을 찾아볼 수 있다.
부처님과 무덤의 주인공인 부부의 그림은 현실에서 예불을 올리고 공양하는 모습으로 보기도 하지만, 미륵상생경에 의거해 무덤 주인공 부부가 도솔천에 왕생하기를 바라는 염원을 그린 것으로 보기도 한다.
부처님 위로는 하늘로부터 날아 내려오는 비천(飛天)들이 여러 구 출현하고, 천장 모서리에는 연꽃에서 태어난 주인공 부부로 보이는 인물의 얼굴이 두광(頭光)과 함께 그려졌다. 연꽃에서 태어나기를 염원하는 연화화생(蓮華化生) 그림이다. 고구려 벽화고분의 연화화생(蓮華化生) 그림은 악기를 연주하는 기악천(伎樂天)이 등장하는 삼실총(三室塚)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도판 6].
앞방의 천장 좌우 면에는 부처님을 향하여 각각 4구씩의 보살상이 그려졌다. 장천 1호분의 보살상은 머리에 쓴 관의 모습이나 천의, 다리를 벌리고 선 형태 등이 중앙아시아의 키질 석굴의 보살상과 같은 인도·이란풍 보살상과 가깝다.
감신총과 매산리 사신총
안악 3호분처럼 무덤 주인공을 불교적으로 표현한 벽화로 감신총(龕神塚)과 매산리 사신총(四神塚)이 있다. 감신총은 앞방과 뒷방으로 구성됐는데, 앞방의 서쪽과 동쪽 벽면에 벽을 얕게 파낸 감실(龕室)이 있다. 각 감에는 인물의 정면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동쪽 감에는 무덤 주인공이 안악 3호분과 비슷하게 정면을 바라보고 연꽃 위에 앉아 있다. 맞은편의 서쪽 감에도 정면으로 앉은 인물이 있고, 역삼각형 형태의 병풍 앞에 적색의 두루마기를 입고서 두 손을 가슴 앞에 올리며 연꽃 위에 앉아 있다[도판 7].
감신총 동감과 서감 인물의 뒤에 보이는 역삼각형 형태로 묘사된 병풍은 중국 간쑤성 돈황 석굴 275굴과 아프가니스탄 바미안 석굴의 53m 부처상의 감의 보살상에서도 관찰된다.
아쉽게도 얼굴 부분의 벽화가 박락됐으나, 서쪽 감의 인물 그림은 연화대좌에 앉아 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있어 불상의 수인과 비슷하고, 불상의 법의와 유사한 형태의 복식을 입었다. 맞은 편 동쪽 감의 무덤 주인공이 숭배하던 신적인 존재, 이를테면 불상일 가능성이 있다.
동쪽 감의 무덤 주인공과 서쪽 감의 인물은 모두 연화대좌 위에 앉아 있어 불상의 연화좌와 연결되며, 연꽃 위에 묘사된 인물상은 고구려 벽화에 보이는 연화화생의 상징으로 볼 수 있다.
매산리 사신총에도 불상의 영향을 받은 무덤 주인공 초상을 찾아볼 수 있다. 하나의 방만 있는 외방 무덤으로, 무덤 뒷벽에 무덤의 남자 주인공과 3명의 부인이 나란히 앉아 있다[도판 8]. 통견의 법의를 입은 듯한 남자 주인공의 어깨와 허리에 화염이 솟아나 있는데, 간다라 조각의 영향을 받은 중국 초기 불상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은 부인들의 어깨 양옆으로도 날개와 같은 화염이 솟아 있다. 불교신앙의 영향을 받아 불상과 흡사한 존재로 신격화된 무덤 주인공의 그림이다.
행렬도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여러 행렬도가 등장하는데, 무용총, 대안리 1호분, 안악 1호분, 장천 1호분, 옥도리 벽화고분 등이 대표적이다. 불교적 성격을 가진 행렬도는 쌍영총과 안악 2호분이 있다.
쌍영총(雙楹塚)은 앞방과 뒷방으로 구성된 무덤의 내부 통로에 두 개의 기둥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두 기둥의 머리와 아랫부분에는 연꽃 장식이 있다. 중국 산시성 운강석굴이나 간쑤성 맥적산석굴에서 보듯이 석굴사원의 입구에 열주(列柱, 줄지어 선 기둥)를 세운 형식을 연상하게 한다[도판 9].
앞방에는 사신도가 그려져 있고, 뒷방 뒷벽에는 부부가 나란히 앉은 그림이 있다. 뒷방의 동쪽 벽에는 무덤의 여자 주인이 승려가 인도하는 행렬을 가족들과 따라가는 행렬도가 있다[도판 10, 11].
쌍영총의 행렬도는 중국의 불교적 장송 의례의 영향으로 향로를 들고 행렬하는 행향(行香) 의식으로 본다. 여자 시종이 든 물체가 향로보다는 등(燈)의 형태에 가까워 법화경, 화엄경 등에 기록된 등 공양의식으로 보인다. 여자 주인공이 승려와 아들들과 함께 등을 들고 남편의 극락왕생을 위한 의식을 행하는 장면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행렬 맨 앞에는 키 작은 여자 시종이 머리에 향로 또는 등을 들고 앞장서 가고, 그 뒤에 석장(지팡이)을 든 승려가, 다음으로는 고운 자수 장식을 한 두루마기를 입은 여자 주인공이 공양을 드리러 가는 모습이다.
쌍영총의 행렬도는 중국의 불교적 장송 의례의 영향으로 향로를 들고 행렬하는 행향(行香) 의식으로 본다. 여자 시종이 든 물체가 향로보다는 등(燈)의 형태에 가까워 법화경, 화엄경 등에 기록된 등 공양의식으로 보인다. 여자 주인공이 승려와 아들들과 함께 등을 들고 남편의 극락왕생을 위한 의식을 행하는 장면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안악 2호분은 하나의 방만 있는 외방무덤으로 작은 감이 있는 동쪽 벽면에 2단으로 행렬이 그려졌다. 하단에는 연꽃이 핀 가지를 손에 들고 긴 두루마기를 입고 앞으로 걸어 나가는 세 명의 인물이 있다[도판 12]. 상단에는 이들 인물 위에 꽃이 담긴 쟁반을 손에 들고 긴 날개옷을 뒤로 날리며 날아가는 두 구의 비천이 있다. 남벽 입구에도 두 구의 비천이 등장한다.
위진남북조·수·당대 불교 석굴 벽화에 많이 그려진, 비천이 공양자들 또는 조문객들과 같이 행렬하는 모습이다. 날개옷을 뒤로 길게 늘어뜨리면서 우아하게 날고 있는 비천의 형상은 중국의 북조-수·당대 돈황석굴 벽화의 비천을 연상하게 한다.
고구려 벽화고분의 무덤 주인공은 엄격한 초상화 형식 외에도 연회와 곡예, 수렵 등을 즐기는 장면에도 종종 등장한다. 연회하는 모습 가운데에 무덤 주인공이 표현된 예로는 무용총(舞踊塚)을 들 수 있다. 무용총 무덤의 주인공 그림을 보면, 옆얼굴을 보이며 다리가 높은 의자에 앉아 있다. 주인공이 약간 피부색이 검게 묘사된 외국에서 온 듯한 승려 두 명을 맞아 풍성하게 음식을 차려놓고 접대하는 장면이다. 외국에서 고구려로 온 승려를 맞는 기록적 성격의 무덤 주인공 그림이다[도판 13].
삼실총 제1실 서벽의 양쪽에 그려진 보살형 문지기 상은, 쓰고 있는 관 형태와 어깨와 팔에 두른 천의 형식이 신장성 키질 제171굴(417~435) 보살상, 쿰투라 제2굴 주실 천장 보살상, 간쑤성 무위의 천제산 제4굴 중심주 공양 보살과 유사해 중앙아시아 계통의 보살상이 삼실총 축조 당시에 고구려에 유입된 것을 알 수 있다.
무덤의 문지기
대부분의 고구려 벽화고분에는 ‘죽은 자의 영혼과 육신이 머무는 공간’이라는 무덤의 상징성으로 인해 무덤을 지키는 문지기가 등장한다. 문지기는 전통 복식을 입은 것이 일반적이지만, 얼굴 생김새나 복식에서 이국적인 문지기 상도 등장한다. 고구려 벽화고분의 이국적인 문지기 상은 중앙아시아와 중국 불교미술의 도상과 모본이 유입돼 혼용된 예다.
특히, 5세기 고구려 벽화고분에는 불교미술의 영향을 받아 보살과 사천왕을 닮은 문지기 상이 나타난다. 삼실총은 생활 풍속도가 그려진 제1실을 제외하고, 제2실과 제3실에는 갑옷을 입은 무사형 문지기, 불교의 보살형 문지기, 역사형 문지기 등이 각 벽면에 한 명씩 그려졌다. 고구려 영토 확장기의 갑옷을 입은 ‘갑주 무사형 문지기 상’과 불교미술에서 온 ‘보살형 문지기 상’ 등이다[도판 14].
삼실총의 보살형 문지기 상은 머리에 쓴 관장식과 어깨에 두른 천의에서 불교미술의 영향이 역력하다. 쌍영총과 통구 사신총의 문지기 상은 불교의 사천왕상처럼 표현돼 불교 석굴의 사천왕상 도상이 고구려 벽화고분에 도입된 것을 보여준다.
비천(飛天)
고구려 후기의 벽화고분에도 불교에 관한 관심과 불교적 내세로의 전환을 꿈꾸는 고구려인들의 내세관이 반영된다. 외방무덤인 강서대묘 천장의 두 번째 평행 고임 단에는 4면에 불교의 비천과 도교의 신선이 그려졌다. 유명한 현무가 그려진 벽의 위쪽 두 번째 평행 고임 단에는 4구의 비천이 악기를 연주하며 하늘을 날고 있다. 두 번째 평행 고임의 나머지 세 벽에는 도교의 신선들이 악기를 연주하며 용과 같은 신성한 동물을 타고 하늘 세계를 날고 있다.
강서대묘 외에도 오회분 4호분과 5호분에도 불교식 기악천과 비천이 출현한다. 중국 허난성 공현 석굴 제1~5호굴 천장과 용문석굴 연화동 천장의 비천과 유사하다. 장천 1호분과 삼실총에서부터 강서대묘에 이르기까지 고구려 벽화고분의 비천 형태는 중국불교 석굴의 비천과 양식적 발달을 같이 하고 있다.
중국 간쑤성 돈황석굴, 허난성 용문 석굴, 공현 석굴에는 공양인 행렬도가 석굴의 벽화의 하단 또는 석굴 내부 앞 벽에 조각돼 있거나 그려진다. 용문 석굴의 공양인과 유사한 모습의 천인상이, 오회분 4호분 벽면의 사방연속무늬 연꽃 위에 서 있는 자세로 여러 명 출현한다[도판 15]. 또한, 승려 형상의 인물 한 명이 연꽃 위에 앉아 태극의 괘를 그리는 형상도 있다.
고구려 벽화고분은 후기로 가면 인물 생활 풍속도가 사라지고, 사신도를 배경으로 사방에 연속된 무늬를 깔고 그 내부에 연꽃 대좌를 그린다. 그 위로 공양하는 사람과 승려를 그려, 고구려인의 불교신앙이 내세의 천상 존재들에게 투영된다.
고구려 벽화고분의 불교적 요소에 대한 연구는 1959년 고 김원룡 교수의 논문에서부터 시작됐다. 한국에서 본격적인 미술사 연구가 시작된 1960년대부터 고구려 벽화에 등장하는 불교적 요소의 기원이 폭넓게 조명돼 왔다. 연화문에서부터 시작한 고구려 벽화고분의 불교적 요소는, 중국의 위진남북조 시대에 북방 이민족 국가들과의 교류를 배경으로 불상·보살상과 비천, 연화화생, 화염문, 공양인 행렬도 등으로 확대된다.
고구려 벽화고분의 불교적 요소들은 고구려인들의 불교적 내세관과 불교미술의 다양한 변용으로 벽화고분을 보다 화려하고 다채롭게 가꿔온 중요한 미술 문화 자산이다.
● 이 글에 사용된 사진의 출처는 『조선유적유물도감』과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발간한 『천상의 문양예술 고구려 고분벽화』입니다.
박아림
숙명여자대 미술대학 회화과·대학원 미술사학과 교수, 한국 및 동양회화사를 전공했다. 저서로는 『고구려 고분벽화 유라시아 문화를 품다』, 『넓고 깊게 보는 중국미술 당(唐)』, 『유라시아 초원 문화의 정수 몽골 미술』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