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 처음에는 사자(使者)가 와서 목에 밧줄을 묶어 몰고 감으로 몸과 마음에 커다란 괴로움을 당하고 아주 캄캄한 데로 끌려가나니 마치 강도에게 붙잡혀 끌려가는 것과 같느니라.”
- 『대보적경(大寶積經)』 중에서
불교 경전 속 ‘저승사자’
흔히 ‘저승사자’라고 하면 창백한 얼굴에 까만 옷을 입은 무서운 이미지가 떠오른다. 요즘은 드라마의 여파로 그 인식이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저승사자’는 공포의 대상이다.
저승사자는 왜 무섭게 그려지는 것일까? 아마도 저승사자가 죽음과 연관되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나 죽음의 순간 저승사자와 마주한다. 그러나 그렇기에 되도록 만나고 싶지 않은 존재가 바로 저승사자다. 하지만 인간에게 죽음이란 피할 수 없는, 반드시 겪어야 할 인생의 순리다. 누구나 편안히 생을 마감하고 좋은 곳에 가기를 원한다. 이러한 간절한 바람은 종교와 결합했을 때 더욱 구체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불교에서 나타나는 저승사자는 시왕(十王)신앙과 관련이 깊다. 시왕은 지옥에 주재하는 열 명의 왕을 말하는데,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염라대왕’이 바로 시왕 중 한 명이다. 저승사자는 시왕을 모시는 권속으로 염라대왕을 비롯한 시왕의 명에 따라 이승에 파견돼, 사람의 선악을 보고하고 죽은 자를 저승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존재다. 저승사자의 역할은 시왕신앙의 근거가 되는 불교 경전인 『예수시왕생칠경(預修十王生七經)』이 편찬되면서 더욱 명확해진다. 이 경전에는 저승사자의 모습이 묘사돼 있어 이를 토대로 불화 속 저승사자가 표현되기도 한다.
이외에도 저승사자가 언급된 불교 경전은 많다. 시왕신앙과 관련된 여러 경전에는 저승사자의 종류와 역할 등이 적혀있는데, 특히 예수재를 행할 때 바탕이 되는 의식집인 『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預修十王生七齋儀纂要)』에는 총 12개의 저승사자의 명칭이 기록돼 다양한 저승사자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른 경전에는 당시 사람들이 저승사자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 있다. 4세기 한역된 『불본행경(佛本行經)』에는 “염라대왕의 사자를 보자 무섭고 두려워 어쩔 줄 모르네”라고 했으며, 『불위승광천자설왕법경(佛爲勝光天子說王法經)』에서는 “염마(琰魔)의 사자는 몹시 두려운 자이므로 길고 긴 어둠 속에서 그를 거스를 수가 없게 됩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옛날부터 저승사자는 무섭고 두려운 존재로 여겨졌음을 알 수 있다.
사천왕의 권속이었던 저승사자
저승사자가 등장하는 가장 이른 시기의 불교 문헌은 4세기 한역된 『대루탄경(大樓炭經)』이다. 『대루탄경』은 8대 지옥과 사천왕이 머무는 도리천의 모습을 설한 경전이다. 그중 「니리품(泥犂品)」에는 염라왕이 죄인을 심문하는 모습과 지옥의 끔찍한 형벌 장면이 묘사됐으나 저승사자에 대한 언급은 보이지 않는다. 반면, 「도리천품(忉利天品)」에서는 사자가 사천왕의 권속으로 등장하는 내용이 실려 있어 흥미롭다.
“무엇이 매월 8일재(日齋)인가? 매달 8일재에는 사천왕이 사자(使者)들에게 이렇게 고한다. ‘너희들은 사천하(四天下)를 두루 순찰하면서 만백성을 자세히 살펴보되 세간에서 부모에게 효순하는 이가 있는지, 사문과 바라문 도인을 섬기는 이가 있는지, 장로를 공경하는 이가 있는지, 재계하여 도를 지키는 이가 있는지, 보시하는 이가 있는지, 이번 세상과 다음 세상을 믿는 이가 있는지를 알아 오라.’ 사자는 분부를 받고 사방으로 퍼져서 천하를 순찰한 뒤에 돌아와서 자세히 아뢴다.”
「도리천품」에서 ‘사자’는 8일재(日齋)에 사천왕이 만백성의 선업과 악업을 살펴보기 위해 세상으로 파견하는 자이며, 이는 시왕의 권속으로서 등장하는 사자의 성격과 유사하다. 이외에도 『장아함경(長阿含經)』과 『불설사천왕경(佛說四天王經)』 그리고 『기세인본경(起世因本經)』 등의 경전에서도 사천왕의 권속으로 사자가 등장한다. 모두 8일에 사천왕의 명을 받고 파견돼 온 세상에 행해지는 선악을 사천왕에게 보고하면 왕이 그것을 듣고 기뻐하거나 슬퍼하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이를 통해 초기에는 ‘사자’가 사천왕의 권속으로서 인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돈황 막고굴 제9굴 서측에 그려진 <비사문천왕(毗沙門天王)>이나 하라호토에서 출토된 12세기 작품인 <비사문천상(毘沙門天像)>에는 ‘사자’가 표현돼 있어 이를 더욱 뒷받침해 준다. 따라서 사자는 초기에 주로 사천왕의 권속으로 등장했다가 『예수시왕생칠경』이 간행되고, 시왕신앙이 유행하면서 시왕의 권속으로 완전히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사람이 세상에 있을 때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고 사문과 도인을 공경하지 않으며 인의(仁義)를 행하지 않아 쓸만한 마음이 없으며, 경을 배우지 않고 뒷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죽어 그 혼이 염라왕의 지옥에 떨어진다. 그러면 그 일을 주관하는 이가 곧 데리고 가서 왕에게 그 죄를 아뢴다.”
- 『불설염라왕오천사자경(佛說閻羅王五天使者經)』 중에서
한편 저승사자에게 주어진 임무 중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 4세기에 한역된 『오고장구경(五苦章句經)』에는 염라대왕이 ‘다섯 사자’를 세상에 보내어 두루 다니게 했는데, 여기서 다섯 사자는 어머니, 노인, 병든 사람, 죽은 사람, 범죄를 의미한다. 즉 염라대왕은 노인의 초라한 모습을 보게 하고, 병든 자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게 하고, 죽은 자를 통해 세상의 허망함을 보여줌으로써 세상 사람들이 죄를 짓지 않도록 이들 다섯 사자를 보냈으나, 사람들은 이를 미처 깨닫지 못하고 죄를 지어 지옥으로 끌려와 벌을 받게 됐다는 내용이다.
지옥에 떨어진 죄인을 염라대왕에게 이끌고 가는 임무를 맡음과 동시에 염라대왕이 사람들에게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죄를 짓는 것을 경고하기 위해 보낸 ‘사자’인 것이다.
검은 옷과 검은 말, 저승사자의 상징?
“흑의(黑衣)에 흑번(黑幡)을 들고 흑마(黑馬)를 탄 사자(使者)를 망자의 집에 파견하여 무슨 공덕을 지었는지 이름을 확인한 다음, 도첩에 따라 죄인을 가려 뽑아 놓아주며 본래의 서원을 어기지 않고 있습니다.”
- 『예수시왕생칠경』 중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검은 옷을 입은 저승사자의 모습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그 해답은 불교 경전에서 찾을 수 있다.
『시왕경(十王經)』으로 불리는 『예수시왕생칠경』은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죽음 이후의 세계인 명부(冥府)의 모습과 역할을 확립시킨 경전이다. 저승세계의 심판관인 열 명의 시왕을 중심으로 한 명부신앙의 근간이 되는 경전이다. 검은 옷을 입고 검은 깃발을 든 저승사자가 검은 말을 타고 망자의 이름과 생전의 공덕을 확인하는 내용이 이 경전에 적혀 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저승사자의 모습이다. 이러한 저승사자의 모습은 돈황에서 출토된 《시왕경경권화(十王經經卷畵)》에 그대로 표현됐다. 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 《시왕경경권화》에는 검은색 말을 타고, 검은 옷을 입고, 검정색 깃발을 들고 있는 저승사자의 모습이 표현돼 경전의 내용을 충실히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저승사자가 검은 깃발과 검은 옷을 착용하고 있지만, 검은 말이 아닌 얼룩무늬의 말을 타고 있는 사례도 있다. 대영박물관 소장 《시왕경회권(十王經會卷)》의 흰색과 검은색 세로줄 무늬가 그려진 옷을 입은 저승사자처럼 복식에서 약간 차이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차이는 『시왕경』을 토대로 기본형식은 유지하되 약간의 변용을 가미한 표현기법의 차이로 보인다.
형형색색의 옷을 입은 저승사자
우리가 흔히 사찰에서 마주하는 저승사자의 모습은 앞에서 살펴본 경전의 내용과는 사뭇 다르다. 우리나라 사찰의 지장시왕도(地藏十王圖)나 시왕도(十王圖), 현왕도(現王圖) 등의 명부계 불화에서 저승사자는 검은 옷이 아닌 형형색색의 옷을 입고, 손에는 깃발이 아닌 두루마리를 들고 있다. 말의 생김새도 검정, 흰색, 점박이 등 다양하다. 이러한 내용을 볼 때 저승사자의 모습은 무조건 경전의 내용을 근거로 그려지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왜 그럴까? 저승사자에게 이끌려 명부에 도착한 망자는 살아생전 자신이 지은 죄에 따라 지옥의 심판을 받는다. 이러한 사후 관념으로 인해 산 사람이든 죽은 사람이든 지옥의 끔찍한 형벌을 피하기 위해서는, 살아 있을 때 공덕을 쌓고 수행하는 것을 중시하는 불교 의식이 자리 잡는다. 예수재를 비롯한 영산재, 수륙재 등의 불교 의식이 그것이다.
의식에서는 시왕뿐만 아니라 시왕의 권속들도 함께 모시는데, 저승사자를 그린 그림과 함께 사자단(使者壇)을 따로 마련해 사자에게도 재(齋)를 올린다. 그중 수륙재 의식집인 『천지명양수륙의문(天地冥陽水陸儀文)』에는 우리가 아는 모습과는 다르게 저승사자를 묘사하고 있다.
“사대사자(四大使者)가 정돈된 무지개같이 아름다운 옷을 입고 밝게 빛나는 보검을 등에 메고, 서운(瑞運)을 탄 모습으로 사람의 선악을 아뢴다.”
『천지명양수륙의문』에 묘사된 다채로운 모습의 저승사자는 우리나라 사찰에서 볼 수 있는 불화 속 저승사자의 형태와 매우 유사하다. 『시왕경』에 표현된 검은 옷을 입은 저승사자가 아닌, 불교 의식을 행하기 위해 의식집에 근거해 화려한 옷을 입은 저승사자의 형상으로 전각에 봉안된 것으로 보인다.
예수재 같이 내세에 극락왕생하기를 바라는 모든 의식에서 저승사자를 불러 모시는 것은 자신의 죄를 감하고 형벌을 피하기 위해서다. 이는 저승사자에 대한 두려움의 표현이며, 저승사자에게 주어진 막중한 임무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옛날 사람들은 “저승사자를 붉은 눈에 무기를 들고, 죽은 자를 밧줄에 묶어 어둠 속에 끌고 가니, 강도에게 잡혀 끌려가는 것과 같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망자를 잘못 데려온 탓에 왕에게 혼나는 엉성한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마주치고 싶지 않지만 마주치게 될 존재에 대해 조금이라도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한 조상들의 재치가 아니었을까.
이지은
우리나라 명부신앙을 주제로 한 불화에 관심을 가지고 『조선시대 명부계 불화의 使者 圖像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국립부여박물관 학예연구실 연구원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