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배가 갈두항 근처에서 멈추고 검정소가 경전을 이운했다고 했다. 갈두항에서 미황사까지 경로가 궁금해 알 만한 사람들에게 물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와 다른 경로를 추측하거나 구전을 말해줬다. 패총을 발굴 중인 군곡리 경로가 하나고, 달마산 동쪽 신홍리 바다가 다른 하나다. 전해오는 설화처럼 미황사가 목적지가 아니라 소가 멈춘 자리라고만 하면 달마산을 넘는 신홍마을 경로가 더 가능성이 커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여러 사람을 만나며 궁금증이 풀렸다. 정확히는 궁금하지 않게 됐다는 게 맞다. 모종을 심는 농부, 물고기를 낚는 어부, 옹기를 굽는 예인, 막걸리 잔을 돌리는 동네 어르신 등, 이들이 모두 달마산과 미황사 품 안에 있는 한 모습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미황사라는 필터를 거쳐 나온 해남.
2023년 6월, 해남군은 장흥의 강태회 조각가가 다듬은 갈산마을 당할머니를 땅끝탑 옆에 모셨다. 당할머니는 영험했다. 영광 앞바다에 조기가 많이 잡히던 때에는 경상도 배들이 물살이 거센 이곳을 지날 때 제물을 올리며 무사 항해를 빌었다. 수많은 기도를 들어줘야 하는 할머니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당집 근처 나무에도 손을 대지 않았다.
어란진항에서 몇 가지 묻기 위해 주유 중인 한 사람을 만났다. 해남과 연고가 없는 귀촌 10년 차 농부이자 어부였다. 그는 크레인 배들이 정박해 있는 것은 올해 김양식 일을 지난 4월에 마쳤기 때문이고, 주변 보이는 섬들 대부분은 완도에 속한다는 것도 말해줬다. 그는 종종 마을 사람들과 막걸리 잔을 나무며 호형호제한다고 했다.
휴일 이른 시간 미황사 도량에 『금강경』 독송 소리가 울렸다. 끊김이 없고 낭랑한 소리여서 음원을 내보내는 것이라 여겼다. 임시 법당에 와보니 주지 스님 염불이었다. 얼마 전 49재를 마친 젊은 망자를 위해서였다. 극락왕생을 비는 스님의 소리가 무거웠다.
보물로 지정된 응진당 안에는 부처님을 위시해 16나한과 2위의 제석천 및 2위의 명부 사자상을 모셨다. 부처님은 색난 스님이 새긴 천은사 응진전 부처님과 닮았다. 벽에는 탱화 대신 녹색 칠 바탕에 먹으로 존상을 그렸다. 부처님 머리 위에는 용을 새긴 조각을 장식했다. 대웅보전 불사 덕에 눈높이로 응진당을 볼 수 있다.
대웅보전 불사를 위해 지은 임시 건물은 수 킬로 떨어진 군곡리에서도 한눈에 들어온다. 건물의 크기는 새로운 대웅보전에 들이는 시간과 정성을 말해주는 것이어서, 누구도 완성 시기를 정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대웅보전 외 전각과 요사채 등 구석구석 변하지 않은 모습 그대로다.
대웅보전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3,600여 개의 부재들이 나왔다. 해체한 부재들을 보관하기 위해 두 동의 가건물을 더 지었고, 성격에 따라 나눠 보관 중이다. 천불도 등 도상들은 미술 복원전문가들이 훼손을 막기 위해 중성 종이와 잘 붙지 않는 접착제를 이용해 감쌌다.
무엇인가를 하루 종일 들여다보면 볼 때마다 다른 것을 안다. 빛이 급하게 달라지는 일출과 일몰 시간에는 더 그렇다. 그 시간에는 빛의 명암만이 아니라 색도 초 단위로 바뀌기 때문이다. 응진당이 노을을 보기 위한 최고의 위치로 알려져 있었으나 가건물에 막혀 있어서 만하당에서 보아야 한다. 템플스테이 참가자라면 달마선원 전망을 부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스님들의 염불과 말문을 닫는 도량과 노을은 서로 다른 길로 미황사에 오른 이들에게 새로운 하나를 안길 것이다. 천 년 동안의 해남처럼.
글・사진. 유동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