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움직이게 만드는 감정은 무엇일까요? 호기심입니다. 사전적인 의미는 ‘새롭고 신기한 것을 좋아하거나 모르는 것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입니다. 사랑의 시작도 어찌보면 호기심일지 모릅니다. 무언가를 향한 호기심은 질문을 시작합니다. ‘저 사람은 누군데 이렇게 신경이 쓰이지? 지금 뭐하고 있을까? 뭘 좋아할까?…’ 그리고 행동으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근황을 물어보거나 연락처를 수소문해서 만남까지 이뤄지기도 합니다.
원서 제목이 ‘Being Human and a Buddha Too’인 책을 편집하면서 편집자에게 강한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직역하면 ‘우리는 인간이자 붓다인 존재’라는 건데, 과연 그럴까? 사실 편집자에겐 너무도 익숙한 문장이기도 했습니다. “당신이 부처님(붓다)입니다”라는 말은 적잖이 들어왔습니다. 호기심은 질문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 붓다일까? 그렇다면 어떻게 붓다를 이루고 어떻게 붓다로 살 것인가?
이 책의 한국어판 『나는 어떻게 붓다가 되는가』의 저자 앤 캐롤린 클라인 역시 강한 호기심이 일으킨 질문에서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미국 라이스대학 종교학과 교수이자 티베트 불교 센터인 던 마운틴(Dawn Mountain)의 창립 교사이고, 1996년 티베트에서 우연히 아좀 페일로 린포체를 만나 족첸을 배웠으며, 10여 년 후 라마(스승)로서 자격을 인정받았지만 말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당시 구할 수 있었던 선(禪)에 관한 몇 권의 책은 나를 매료시켰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이미 깨어 있거나 이미 붓다라는 구절을 읽었을 때, 나는 책을 내려놓았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그저 불가능해 보였다. 거울을 들여다보았지만 거기엔 붓다가 없었다. 그런데도 호기심은 점점 커졌다.”
저자는 불교에 대해 ‘안다고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느끼는 것’을 연결해 나갔습니다. 그 과정의 중심에는 바로 족첸이 있었습니다. 선(禪)과 맥락을 같이 하는 족첸은 티베트 불교에서 최고 정점에 있는 마음 훈련입니다. 티베트어 ‘족(dzog)’은 완전하다·완벽하다·전체적이며 모든 것을 포함한다는 의미이며, ‘첸(chen)’은 위대하다는 의미입니다. 한마디로 ‘위대한 완성’ 정도의 뜻입니다.
우리가 붓다가 되는 일은 정말 꿈만 같은 일일까요? 우리가 인생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깨달음은 무엇을 포함하고, 이 깨달음이 바로 지금 우리 상황과 어떻게 연결될까요? 깨달음이 삶과 밀접하다면, 우리는 인간일까 아니면 붓다일까요? 깨달음은 말할 것도 없고, 붓다가 되는 것은 신비롭고 우리와 거리가 먼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티베트 불교 수행의 정점으로 알려진 족첸에서는 정반대입니다. 깨달음과 붓다는 일상적이고 우리와 아주 가까운 이야기라고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나는 어떻게 붓다가 되는가』는 그 물음에 관한 답을 찾는 여정입니다.
저자는 종교학자로서의 합리적인 이성과 족첸 수행 지도자로서 풍부한 경험을 토대로 족첸을 설명합니다. 족첸 수행자들에게 기본 가르침인 무상, 행복의 우연성과 죽음의 여러 조건에 관한 성찰 등 족첸 스승인 롱첸파(1308~1364)의 일곱 가지 마음 훈련부터 직메 링파(1730~1798, 롱첸파의 환생)가 전수한 롱첸 닝틱 사이클의 마음 훈련을 다룹니다. 여기에 족첸 전승을 잇는 아좀 페일로 린포체(1971~)의 족첸 해설까지 소개합니다. 다시 말해 롱첸파의 일곱 가지 마음 훈련과 이를 정제한 직메 링파의 다섯 가지 핵심 수행 그리고 이 모두를 간략히 정리한 아좀 페일로 린포체의 설명이 이 책의 골자입니다.
사실 ‘우리에게 이미 내재된 본성’으로 깨어나기 위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나는 어떻게 붓다가 되는가』의 시작과 끝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일상적인 마음은 평생 의지하는 강력한 습관, 즉 ‘자기 경향성’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맛보고 느끼며 배우는 모든 감정적 지식적 경험과 습관들이 마음을 규정하고 ‘나’라고 하는 허울 없는 강력한 실체를 만듭니다. 술이 좋아 자주 마셨으면, 그 경험이 쌓여 계속 술을 찾고, 술에 의지하는 경향성이 생길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이런 자기 경향성은 알코올 중독자라는 정체성, 즉 ‘나’를 만듭니다. 이 같은 설명은 서울대 강성용 교수의 『인생의 괴로움과 깨달음』에서 강조한 것과 결이 같았습니다. 이런 종류의 자기 경향성들은 불성이라고 부르는 ‘참나’를 가리는 ‘가면’이라고 합니다. 족첸 수행은 이런 자기 경향성 혹은 마음의 관성을 모르던 우리의 무지를 드러내고 습관을 재배치해서 삶을 바꿀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어떤가요? 오랜 시간 티베트 불교를 지탱해온 가장 명료한 지혜이자 마음 훈련이라고 불리는 족첸에 호기심이 생기지 않나요? 속시원한 해답은 이 책 『나는 어떻게 붓다가 되는가』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