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역자 |
얀 웨스터호프 지음, 강병화・유경 옮김 |
정가 | 30,0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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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 2024-10-17 | 분야 | 종교 |
책정보 | 600쪽 | 판형_152*225mm | 두께_2.8cm | ISBN 979-11-7261-088-3 (03220) |
불교를 공부하는 바람직한 출발점, 불교철학사
2,600년 불교 역사의 가장 찬란했던 황금시대를 만나다!
불교사의 명장면들로 그려 낸 인도 불교철학
불교에 대한 지혜로운 안목과 태도를 키우다!
불교를 공부하는 출발점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석가모니의 근본 가르침에 가까운 초기불교 공부에서 시작해야 할까, 아니면 우리에게 보다 익숙한 대승불교 공부에서 시작해야 할까. 만약 불교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고자 한다면 그 공부의 바람직한 출발점은 불교철학사 공부일 수 있다. 불교철학사를 공부하는 것은 복잡하게 얽혀 있고 때로는 서로 모순되어 보이기도 하는, ‘불교’라는 범주에 포괄되는 여러 가르침을 대하는 성숙한 안목과 태도를 키운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러한 안목과 태도를 갖춘 사람이라면 불교 공부라는 기나긴 여정을 통과하며 만나는 풍요로운 가르침의 세계를 제대로 만끽할 수 있다. 인도 불교 철학은 그러한 안목과 태도를 키워 주는 불교철학사 공부에 어울리는 책이다.
이 책은 아비달마 시기(서력 기원 초기 무렵)부터 다르마끼르띠의 활동 시기(7세기 무렵)까지의 인도 불교철학사, 즉 아비달마 불교・중관학파・유가행파・인명학파로 이어지는 사상적 흐름을 다룬다. 이 시기의 인도 불교는 이후에 아시아 각 지역에서 전개된 여러 ‘불교’들의 교리적 기반이 됨으로써 2,500년 불교철학사의 뼈대가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인도 불교 철학>은 이 시기의 불교철학사를 다룸에 있어서 분석적 관점과 역사적 관점을 동시에 구사한다. 그 결과 이 시기의 인도 불교가 제시한 여러 사유라는 ‘나무’, 그리고 학파 간의 논쟁 속에서 그 여러 사유의 여정들이 모여 이룬 하나의 격렬한 흐름으로서의 인도 불교철학사라는 ‘숲’을 어느 하나도 놓치지 않고 균형감 있게 설명한다.
이 책이 그려내는 인도 불교철학사는 원전 텍스트에 대한 충실한 분석에 기반하고 있으며, 인도 불교 각 분야에 대한 현대 서구 불교학의 근래 연구 성과들을 성실히 반영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이 책은 불교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가진 일반 독자들뿐만 아니라 불교 연구자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지은이_ 얀 웨스터호프(Jan Westerhoff)
캠브리지대와 런던대(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에서 수학했고, 옥스퍼드대와 더럼대에서 가르쳤으며, 현재는 옥스퍼드대 신학 및 종교학부에서 불교철학 교수로 있다. 분석철학, 인도철학, 불교철학 등의 분야에서 광범위한 연구를 수행하는 가운데 인도철학 및 불교철학의 기본 개념과 이론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시하고 있다. 연구 분야로는 불교철학과 심리철학, 인도철학에서의 논증론, 분석철학과 인도철학의 비교 등이 있다. 현대철학 분야에서 귀중한 학자 중 한 명으로 평가되며, 세계 불교학계를 주도하는 영국 최고의 불교학자로 인정을 받고 있다. 국제학술지인 <Journal of Indian Philosophy>와 <Philosophy East and West>의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Ontological Categories』, 『Nããjuna’s Madhyamaka』, 『The Dispeller of Disputes』, 『Twelve Examples of Illusion』, 『Reality』, 『The Non-Existence of the Real World』가 있다.
옮긴이_ 강병화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을 역임했고, 사단법인 가산불교문화연구원 상임연구원으로 재직하며 『가산불교대사림』 편찬에 참여했다. 옮긴 책으로 앤드류 올렌즈키의 『붓다 마인드』(공역), 단 자하비의 『자기와 타자-주관성·공감·수치심 연구』, 마크 시더리츠의 『철학으로서의 불교』, 얀 웨스터호프의 『인도 불교 철학』(공역)이 있으며, 스티븐 배철러의 『불교 이후』의 번역 출간을 앞두고 있다.
옮긴이_ 유경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천운으로 좋은 스승을 만나 불교에 입문할 수 있었다. 해인사로 출가했고, 현재 부산 정관 석탑사에 있다. 좋은 사람들과 불서를 번역하는 서원을 세웠다. 옮긴 책으로 얀 웨스터호프의 『인도 불교 철학』(공역)이 있다.
서론
1 인도의 불교철학: 항상 굴러가는 수레바퀴
2 게임으로서의 철학
3 게임을 결정하는 요인들
a. 논증
b. 성전
c. 명상수행
4 게임 내레이션: 재료를 구성하는 방법
5 게임의 원천
a. 불교철학의 기반
b. 논쟁
c. 주석
d. 학설강요서
6 게임에 대한 게임의 견해
아비달마
1 아비달마 개관
a. 논모
b. 문답 형식
c. 종합적 이론을 제공하기
2 진위 여부의 문제
3 아비달마 학파들
a. 대중부
b. 장로부: 남방 상좌부
c. 장로부: 뿌드갈라론
d. 장로부: 설일체유부
e. 장로부: 경량부
대승
1 대승의 흥기와 불교철학과의 관계
2 중관학파
3 반야의 가르침
a. 아비달마 프로젝트에 대한 비판
b. 환영주의 교리
c. 모순에 대한 명시적 수용
4 용수 사상의 핵심 주제
a. 용수와 아비달마 프로젝트에 대한 비판
b. 용수의 사상 속에 나타난 환영주의
c. 모순과 용수의 사상
5 주석가들
a. 불호
b. 청변
c. 월칭
6 위대한 종합자: 적호와 연화계
7 중관학파와 니야야
유가행파
1 유가행파 발전의 다섯 단계
a. 1단계: 초기 유가행파의 경전
b. 2단계와 3단계: 미륵과 무착
c. 4단계: 세친
d. 5단계: 후기 유가행파
2 불교 교리에 대한 증명
a. 재생
b. 타자의 마음
c. 찰나성
3 유가행파의 핵심 개념들
a. 유심
b. 알라야식과 여덟 유형의 의식
c. 삼성
d. 의식의 재귀성
e. 세 차례의 굴림
f. 여래장과 유가행파
4 유가행파의 철학을 형성한 요인들
a. 논증과 관련된 요인
b. 텍스트와 관련된 요인
c. 명상과 관련된 요인
5 유가행파와 다른 불교철학 학파
6 유가행파와 베단타
디그나가와 다르마끼르띠 학파
1 디그나가와 다르마끼르띠의 생애
2 인식론
3 추론
4 형이상학
5 언어
6 경전의 권위와 요가 수행자의 지각
a. 경전의 권위
b. 요가 수행자의 지각
7 디그나가와 다르마끼르띠 철학을 분류하는 방법
8 디그나가 및 다르마끼르띠 학파와 미망사와의 관계
a. 미망사의 인식론
b. 미망사의 언어철학
c. 미망사와 역사학, 역사
9 인도 불교철학의 종식
a. 적천
b. 아띠샤 디빵까라쉬리즈냐나
맺음말
참고문헌
역자 후기
만만하지 않은 불교 공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할까?
불교 신자인지의 여부를 떠나서, 불교에 관심이 있느냐의 여부를 떠나서,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불교에 대해 익숙하게 생각한다. 그들은 사찰의 분위기, 스님의 모습, 부처님 오신 날의 거리 풍경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또 ‘무상(無常)’이나 ‘공(空)’과 같은 불교 용어들을 낯설지 않게 받아들이고, 스스로 종종 입에 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불교에 대한 익숙함과는 별개로 불교의 가르침을 공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불교’라는 범주 안에 너무도 다양한 가르침이 있고, 심지어 그중에는 서로 모순되어 보이는 가르침도 많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불교 공부는 출발점을 찾기 어려운 공부일 뿐만 아니라. 간신히 출발점을 찾은 다음에도 혼란스러운 여정을 감당해야 하는 공부이다. 그래서 불교는 만만해 보일 수 있지만 불교 공부는 만만하지 않다.
불교 공부는 어디서 시작하는 것이 좋을까? 어떤 이들은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하는 초기불교야말로 불교의 근본이니 그것부터 공부하라고 이야기한다. 일리 있는 의견이지만 여기에는 아쉬운 점이 있다. 불교에 대한 배경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초기불교부터 공부한다면 아무래도 초기불교에 기울어진 관점을 갖게 되기 쉽고, 그러면 ‘불교’라는 범주에 포함되는 다양한 가르침을 열린 마음으로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상(無常), 공(空)이 불교의 전부가 아니다!
열린 태도로 불교를 공부할 때 알게 되는 것들
불교는 2,500년에 걸친 오랜 세월 동안 아시아의 넓은 지역을 무대로 하여 성장하고 발전해 온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이다. 따라서 불교는 초기불교 혹은 대승불교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특정한 불교 학파의 가르침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은 더욱 아니다. 불교라는 장구한 드라마는 석가모니의 기본적 가르침들을 보다 논리적이고 정합성 있는 체계로 재구성하기 위한 노력을 씨실로, 그 기본적 가르침들을 고통스러운 중생의 삶과 결합시키기 위한 고민을 날실로 하여 촘촘히 짜여 있다. 불교란 단순히 ‘무상’이나 ‘공’에 대한 가르침이 아니라 이러한 노력과 고민을 포함하는 것이며, 또한 그러한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당하고자 했던 굳은 의지와 꺼지지 않는 생명력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불교를 공부하는 바람직한 출발점은 ‘불교’라는 범주로 포괄되는 여러 가르침이 석가모니 이래로 어떤 배경과 문제의식에서 어떻게 흥기하고 발전하고 쇠퇴해 갔는지를 찬찬히 살펴보는 것일 수 있다. 불교의 가르침은 문자로 전해지는 가르침만으로 온전히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불교의 역사를 추동한 노력과 고민, 의지와 생명력에 비추어 고찰될 때 비로소 온전히 이해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불교 공부라는 기나긴 여정을 불교철학의 역사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할 때, 우리는 그 여정에서 만나게 될 여러 가지 생경한 ‘불교’들에 대해 진지하고도 편견 없는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 개방적인 태도에 입각한 불교 공부는 불교로부터 보다 많은 것을 배우고, 궁극적으로 삶을 보다 지혜로운 방향으로 이끌어 간다.
광대한 사유의 지평이 열리다
불교철학사의 최절정기를 다룬 책!
인도 불교 철학은 이런 이유에서 주목해야 할 책이다. 원서의 제목 그대로 이 책은 ‘인도’ 불교철학의 ‘황금시대’, 즉 석가모니가 남긴 가르침을 정리한 아비달마 텍스트들의 집필이 이루어진 시기(서력 기원 초기 무렵)부터 인명학의 거장인 다르마끼르띠가 활동하던 시기(서기 6~7세기)까지 인도라는 시공간을 무대로 활동한 주요 불교 학파의 사상을 차례로 살펴본다. 물론 불교 전체의 무대가 되는 시공간은 이 책에서 다루는 제한된 시공간보다 훨씬 더 광대하다. 하지만 그 광대한 시공간에서 명멸했던 복잡다양한 불교철학들도 결국에는 이 책에서 다루는 제한된 시공간에서 활동했던 몇몇 불교 학파들의 가르침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책은 불교의 모든 시공간을 빠짐없이 다루지는 않지만 ‘인도 불교철학의 황금시대’에 집중함으로써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얻고자 한다.
인도 불교 철학은 불교철학의 역사에 대한 책으로서 아비달마・중관학파・유가행파・인명학파의 가르침 가운데 중요한 사유를 선별하여 충실하게 소개한다. 1장 ‘아비달마’에서는 아비달마 전통의 성립 배경이 되는 논모(論母, mātṛkā)에 대해서 살펴보고, 설일체유부와 경량부 등 주요 부파의 특징적인 사유들을 차례차례 다룬다. 2장 ‘대승’에서는 대승불교의 기원, 반야 사상, 용수의 철학을 주로 다룬 다음, 불호・청변・월칭・적호・연화계 등 용수의 뒤를 이어 중관학파의 맥을 이은 주요 학자의 사상까지 살펴본다. 3장 ‘유가행파’에서는 유가행파의 발전을 다섯 단계로 나누어 살펴본 후, 찰나멸론・유심론・알라야식론・삼성설・자증설 등 유가행파의 근간을 이루는 사유들을 설명한다. 4장 ‘디그나가와 다르마끼르띠 학파’에서는 이들이 전개한 인식론과 논리학의 개요를 살펴보는 것은 물론, 디그나가와 다르마끼르띠의 학파 귀속 문제와 같은 흥미로운 주제까지 아울러 다룬다.
충실한 원전 번역, 최신 연구 성과 반영
전문가와 일반 독자를 모두 만족시키는 완성도 높은 책
인도 불교 철학은 여러 사유를 설명하는 데 주된 목적이 있지 않음에도 본격적인 개론서보다도 이를 더 잘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여느 개론서처럼 각기 다른 불교 학파에 귀속되는 여러 사유를 그 자체의 논리에 입각하여 평면적으로 소개하는 전략을 취하지 않는다. 대신 불교철학사의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 각각의 사유들이 가진 문제의식과 그 의식적 지향들을 고스란히 살려냄으로써 보다 입체적으로 그것들을 설명한다. 이러한 전략 덕분에 이 책은 불교철학서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개론서로서의 역할까지 충실하게 수행한다. 이 책은 인도 불교 주요 학파들의 사유를 소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불교의 여러 논점을 대하는 모범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데까지 나아간다. 불교철학과 여타 인도철학과의 관계, 대승과 중관・유식의 관계, 대승비불설, 불교의 비과학적・비역사적 측면, 세친이나 다르마끼르띠 등 여러 논사의 학파 귀속 문제 등 논쟁적인 주제에 대해 사려 깊고도 인상적인 의견을 제시한다.
인도 불교 철학의 또 다른 미덕은 학술서를 연상시키는 학문적 접근 방식이다. 이 책은 2차 문헌에 대한 분석뿐만 아니라 1차 문헌에 대한 분석에도 크게 의지하고 있다. 저자는 산스크리트나 티베트어로 된 여러 원전 텍스트를 풍부하게 인용하며, 인용한 구절의 원문을 각주를 통해 성실하게 제시한다. 이에 더해 역자는 저자가 인용한 원전 텍스트 구절에 대한 한역(漢譯) 구절까지 꼼꼼하게 찾아서 추가적으로 제시한다. 서구 불교학계의 최근 연구 성과들을 널리 참조하고 있다는 점 또한 이 책의 장점이다. 그 결과 이 책은 여러 주제 분야에 걸쳐 신선한 설명을 제시하는 것은 물론, 해당 분야의 근래 연구 동향에 대한 대략적인 윤곽까지 그려 준다. 27페이지에 달하는 참고문헌 목록 역시 인도 불교 각 분야에 대한 고전적 연구뿐만 아니라 주목할 만한 최근 연구들까지 널리 아우르고 있다. 이런 면에서 이 책은 불교에 관심 있는 진지한 일반 독자들뿐만 아니라 불교 연구자들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일 것이다.
인도 불교철학의 맥락에서 볼 때, 불교철학의 설명 틀뿐만 아니라 내용까지도 비불교 학파와의 상호작용에 의해 중요한 방식으로 영향을 받은 수많은 사례가 있다. 그렇다면 불교 전통 내의 논증 교류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불교도들이 고전 인도철학의 다른 학파의 주창자들과 벌인 논쟁에 초점을 맞추는 일도 중요하다. _ 39쪽
불설(佛說)이 될 수 있는 핵심 자격 기준은 이론적으로 연대를 산정할 수 있는 역사적 붓다의 발화라는 ‘딱딱한’ 기준이 아니라, 적절한 의미에서 붓다의 여타 가르침들과 ‘같은 말씀의’ 가르침이라는 ‘부드러운’ 기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어떤 텍스트를 정전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역사적인 것에서 해석학적인 것으로 바꾼다. 우리는 이제 붓다가 실제로 그것을 말했느냐의 여부 대신에, 어떤 텍스트가 (올바르게 이해되었을 때) 그 동일한 것을 의미하는지에 관심을 갖게 된다. _ 74쪽
아비달마는 (불교 사상 전반과 마찬가지로) 단순히 논증 중심의 철학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되며, 서로 잘 어울리는 일련의 붓다의 가르침들 안에 위치하는 동시에, 그 가르침 가운데 일부를 구성하는 기법들에서 비롯되는 명상 경험들도 고려하는 개념적 기획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_ 103쪽
이처럼 여러 면에서 대중부는 대승과 유사하다. 중요한 점은 대중부는 당연히 대승이 아니었고, 대승이 동의하지 않는 다양한 입장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후대 대승 학파의 주요 입장 가운데 얼마나 많은 부분이 대중부의 테제에 이미 존재했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불교철학의 발전이 자율적인 사상가들의 독창적인 혁신에 의해 이루어졌던 것이 아니라, 강조되는 개념의 점진적 변화, 즉 때가 무르익으면 매우 독특한 철학적 입장으로 이어지게 되는 변화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반드시 불교 전통의 연속성에 근거를 두고 진행되었으며, 이를 통해 자신들의 주장이 불설로서의 정통성을 갖는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_ 117쪽
모든 것은 무상하다는 뜻이 모든 것은 (또는 사실상 그 어떤 것도) 찰나적이라는 뜻을 수반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또 von Rospatt(1995: 14)은 “찰나성 이론이 불교의 시작이나 심지어 붓다 자신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없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지적한다. 많은 불교 개념과 마찬가지로, 찰나성 이론도 붓다 자신의 가르침에 존재하는 개념적 씨앗에서 비롯된 열매로 생각하는 것이 가장 좋다. _ 166쪽
용수의 태도는 아비달마의 가르침을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일과는 거리가 멀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그는 아비달마의 주제 목록(mātṛkā) 중 하나를 면밀히 학습할 것을 명시적으로 권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아비달마의 교리를 그냥 거부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아비달마 교리라는 것도 결국은 초기 불교 붓다의 경전에 담긴 가르침을 체계화하고, 해설하며, 발전시키려는 시도라서, 용수가 이러한 설명 중 일부(심지어는 매우 핵심적인 설명)를 잘못된 것으로 간주했다는 것이 그 전부를 거부했으리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_ 228쪽
불교 철학자들은 새로운 학파를 창설하기 위해 자신들의 논서를 지은 것이 아니며, 논서의 작성 이후로도 자신들을 주요 주창자로 간주하지 않았다. 이러한 학파적 정체성은 역사적 사후 약방문식으로 거꾸로 투사된 것으로, 이는 시간적으로 인접한 일련의 사상가들의 견해 사이에 서로 유사한 면이 있다고 보고 이를 강조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러한 학파들은 종종 상당한 시간에 걸쳐 발전했으며, 그 견해들도 그에 따라 발전했다. 특정 학파에 속하는 모든 저자의 모든 저술에 공통적으로 존재하고, 그럼으로써 그 학파의 지적 정체성을 구성하는 고정된 테제 집합 같은 것은 없다. _ 322-323쪽
초기 유가행파의 저자들은 물질적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세친의 『유식이십론』을 예로 들어보면, 그가 물질은 존재하지 않고 오직 마음만 존재한다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대목을 찾아볼 수 없다. 원자론의 불가능성에 대한 그의 논증조차도 “‘오직 마음만’으로 이루어진 초월적 실재에 대한 형이상학적 주장”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으며, 단지 지각을 넘어서는 무언가의 존재에 관한 “판단을 중지하라는 실천적 명령”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_ 359쪽
불교 개념과 브라만교 개념 사이의 영향 관계는 복잡했으며, 일방적이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아뜨만 개념이 중심에 놓인 이론들에 의지하는, 성공하고 잘 발달된 역사적 및 지적 맥락이 이미 불교의 가르침에 존재하던 특정 아이디어의 발전을 가져오고, 그 결과 여래장의 가르침 같은 것을 낳았다는 것도 사실일 수 있지만, 불교의 가르침 내에도 고전 인도 사상의 발전을 촉발한 진술들이 있었을 가능성 또한 높다. _ 380쪽
인도의 불교철학을 학파로 구분하는 것은 기껏해야 복잡한 논쟁의 장 사이로 어떤 개념적 참호를 팔 수 있게 해주는 해석학적 장치로 이해해야지, 인도 사상가들 스스로가 곧이곧대로 따랐을 어떤 교리적 충성심의 체계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앞에서 언급한 바 있다. 이는 특히 디그나가와 다르마끼르띠의 경우에서 두드러진다. 현대의 연구자들은 이를 두고 ‘논리-인식론 학파’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고대 인도에서는 이 학파에 이름이 없었으며 (‘pramāṇavāda’라는 용어는 현대에 만들어졌다), 또 디그나가, 다르마끼르띠, 그 추종자들이 스스로를 다른 학파와 구별되는 특정 불교 사상 학파의 일원으로 여겼는지 여부는 매우 불분명하다. 이들은 분명 별도의 계통을 형성하지 않았으며, (적어도 자신들의 관점에서 고려할 때) 교리적으로 구별되는지조차 불분명하다. _ 494-49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