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앎, 존재와 마음, 그리고 과학
서양철학의 다섯 가지 화두를 중심으로 풀어낸
미네소타주립대 홍창성 교수의 서양철학 강의!
고등학생 시절 철학 교과 시간, 발음하기도 어려운 여러 서양 철학자들의 이름과 그들의 난해한 주장을 단 몇 줄 개념으로 익히던 때가 있었다.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에 헤매다가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 억지로 외우고, 중간고사를 치르고 나면 잊게 되는 이토록 가벼운 철학이라니! 다 커서 서양철학의 그 깊은 맛을 욕망하여도 관련 도서를 집어 들기 힘든 이유는 그런 경험 때문인지 모르겠다.
역사상 위대한 철학자들의 사유가 인류 문명의 단단한 토대가 되어 왔음은 인정한다. 하지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철학은 난해한 학문이란 인상이 강하다. 그런 철학을 우리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철학, 즉 philosophy는 ‘사랑하다’라는 의미인 ‘philein’과 ‘지혜’라는 의미인 ‘sophos’의 결합으로 ‘지혜에 대한 사랑’이란 뜻이다. 그럼 지혜란 무엇인가? 그것과 유사한 ‘지식’의 개념을 가져오면 이렇게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지식이 충만하다고 해서 반드시 지혜롭진 않다. 그 지식을 잘 활용해야만 지혜롭다.” 결국 지혜란 실천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고로 ‘지혜에 대한 사랑’으로서 철학은 앎의 실천으로 나아가 ‘더 좋고 옳은 삶에 대한 사랑’이란 뜻을 포함한다.
그렇다면 철학을 공부하는 것은 역사상 중요한 철학자들과 그들의 주장을 단순히 ‘아는 것’에 머물러선 안 된다. 철학의 문제에 대한 깊은 이해와 주제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형성하며 우리 스스로도 ‘철학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2019년, 미국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불교철학 강의의 면면을 지면에 옮겨 많은 인문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홍창성 교수가 이번에는 자신의 주전공인 ‘서양철학’ 강의를 들고나왔다. 대학 강단에서 교편을 잡기 시작한 1998년부터 지금까지, 수천 명의 미국인 대학생들이 수강한 그의 서양철학개론은 특별하다.
그동안 우리가 접해 온 서양철학개론은 대부분 유명 철학자들의 주장을 시대별로 소개해 왔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 방식은 자칫 몇몇 철학자들의 이름만 기억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와 달리 홍창성 교수의 강의는 서양철학의 중요한 주제를 중심으로 강의를 펼친다는 데 특징이 있다. 그리하여 독자들은 서양철학의 ‘화두’에 관한 열띤 논쟁을 검토하게 되며, 나아가 그 주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스스로 형성한다.
홍창성 교수의 서양철학 강의에서 다루는 다섯 가지 주제는 ‘삶’(도덕철학)과 ‘앎’(인식론), ‘존재’(형이상학)와 ‘마음’(심리철학), 그리고 ‘과학’(과학철학)이다. 이전 저서(『미네소타주립대학 불교철학 강의』)와 마찬가지로 현지 강의실의 면면을 옮겨 온 이 책은 지적이고 깊이 있지만, 다양한 비유와 예시, 위트 있고 친절한 설명, 그리고 우리들의 가려운 부분을 해소시켜 주는 현지 학생들의 질문과 저자와의 토론 내용이 담겨 있어 ‘인문학 좀 한다’ 하는 독자는 물론 ‘서양철학 초보’인 독자들에게도 사유의 즐거움을 한껏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철학자들의 심오한 통찰과 예리한 비판적 사고를 발견하고, 철학의 주요 주제에 관한 논쟁에 직접 참여하게 되는 깊이 있고, 지적인 시간. 철학이 무엇인지 모르면서도 철학을 배우겠다고 강의실에 들어와 앉은 학생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홍창성 교수의 강의는 생각의 근육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