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될지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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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될지 모르지만
  • 백승권
  • 승인 2022.01.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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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를 많이 하다보니 저절로 알아지는 것들

인생의 점들은 이어진다

필자가 스스로 삶을 돌아보면 떠오르는 한마디가 있다. ‘앞으로 무엇이 될지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우리 모두 무엇이 되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대로 삶이 풀려나가지 않는다. 필자가 원하는 대로 무엇이 된 것 같지만, 삶을 되짚어보면, 노력만으로 가능하지 않고 전혀 예측하지 못한 행운의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실패가 꼭 노력이 부족한 탓은 아니고, 전화위복의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필자는 문학을 하기 위해 고등학교까지 그만뒀고 대학에 들어가 열심히 시를 썼다. 야학하면서 필자의 시가 현실의 삶과 동떨어진 존재론적 고민에 머물렀다는 사실을 깨닫고 운동권이 됐다. 그러나 운동을 더 열심히 하다 보니 문학을 내팽개쳤다. 아이러니한 일이고 문학 측면으로 보면 실패다. 

그래도 문학을 한 덕분에 신문사 논술 시험에 합격해 취직할 수 있었다. 기자 생활로 생계를 꾸려나갈 수단은 얻었지만 기사와 외부 원고를 쓰느라 문학과는 거리가 더 멀어졌다. 문학을 하면서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귀농했다. 희망과 달리 귀농으로 문학도 생계도 모두 어려운 지경이 됐다. 꿈도, 현실도 모두 잃어버린 실패한 인생으로 굳어지는 것 같았다. 

그 순간 운동을 하면서 맺은 인연이 필자를 청와대에 들어가게 했다. 문학 습작과 기사 작성 경험이 없었다면 대통령 메시지를 쓰는 중책을 수행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귀농 생활 동안 열심히 육체노동을 한 덕분에 청와대의 격무를 포기하지 않고 견뎌낼 수 있었다. 노동자, 농민, 서민의 삶을 경험했기 때문에 대통령의 메시지가 그들에게도 공감을 줄 수 있도록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청와대와 기자 시절 만났던 사람의 추천으로 글쓰기 강좌 기회가 찾아왔다. 영전해 가는 선배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글쓰기 강좌를 수락한 일, 마음의 이끌림에 따라 조계종 화쟁위원회 사무국장을 선택한 일이 40대 중반 이후 필자의 삶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들고 있다. 문학, 자퇴, 운동권, 기자, 귀농, 청와대, 조계종 이 모든 경험이 글쓰기 강사로 성공하는 데 큰 밑받침이 됐다. 인생은 희한하게 변화하고 이어진다.

 

행운과 주변의 도움에 공 돌리는 것

필자는 두 딸의 인생에 대해서도 이런 태도를 갖고 있다. 두 딸이 무엇이 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필자 역시 두 딸이 모든 사람이 선망하는 직업을 갖거나 위치에 이르기를 바란다. 학습지를 구독하고 학원을 등록하고 취미 강습을 받고 체험 활동에도 보냈다.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부모로서 할 수 있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시험을 잘 봐서 좋은 성적이 나오고 그 결과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꼭 부모와 자녀의 노력 때문에 이룬 결실이라고 볼 수는 없다. 아이의 특질이 현재의 입시, 진학 시스템과 운 좋게 맞아떨어진 결과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유럽이나 미국의 입시, 진학 시스템이라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무엇을 이뤘다면, 겉으로는 성공의 열매를 맺은 것 같아도 속으로는 실패의 씨앗이 자라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성공이 오롯이 제 노력의 결과라는 오만과 무지에 빠지면, 언제가 삶이 패착에 빠질 수밖에 없다. 뜻하지 않는 불운을 만나 실패를 경험하면 이를 받아들이지 못해 삶 전체가 망가지는 경우도 있다.

작든 크든 어떤 성취를 이뤘을 때 자신의 노력보다 행운과 주변의 도움에 공을 돌리는 것은 그래서 지혜로운 일이다. 스스로를 겸허하게 바라보면 자신을 둘러싼 상황을 냉철하게 평가할 수 있고, 이는 다음 단계 성공을 위한 필수 조건이 된다. 예측할 수 없는 실패를 만났을 때도 자책과 자학에 빠지지 않기 때문에 흔들림 없이 삶을 지속시키고 향상시킬 수 있다.           

다행스럽게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이나 직업을 얻었다 쳐도 그것은 자녀 인생의 첫 번째 자물쇠를 연 것에 불과하다. 요즘엔 한 직업이나 직장을 유지하는 기간이 대략 5년 내외라고 한다. 

자녀는 힘들게 첫 번째 자물쇠를 연 지 5년 만에 새로운 자물쇠를 열어야 한다. 직업으로만 따져도 대여섯 번의 자물쇠를 열어야 한다. 직업뿐만 아니라 결혼, 출산, 육아, 은퇴, 이별, 죽음, 커뮤니티 등 수없이 새로운 열쇠를 준비해야 한다. 

 

읽기 쓰기 말하기는 인생의 마스터키

이화여대 최재천 석좌교수는 칼럼 ‘곁쇠 교육(조선일보, 2016. 1. 12.)’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생 100세 시대를 살아갈 지금 청년 세대는 평생 직종을 적어도 대여섯 번이나 바꾸며 살 것이란다. 대학에서 취업 관련 수업이나 듣고 스펙이나 쌓아본들 기껏해야 첫 직장을 얻는 데나 도움이 될 뿐이다. 첫 직장의 문이나 열어주는 평범한 열쇠가 아니라 평생 여러 직장의 문에 꽂아볼 수 있는 곁쇠가 필요하다. 하버드, 예일, 옥스퍼드 등 세계적 명문 대학들은 왜 사회 변화와 산업 수요에 맞춰 학과를 개편하기는커녕 수백 년 동안 변함없이 인문학과 기초과학 위주로만 가르치고 있을까? 인문학과 기초과학의 기반만 쌓으면 언제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할 수 있다는 걸 그 대학들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자물쇠를 열 수 있는 것을 ‘마스터키(master key)’라 부른다. 우리 말로 ‘곁쇠’라고 한다. 최 교수는 인문학과 기초과학을 곁쇠라고 봤다. 필자는 최 교수의 주장에 크게 공감하면서 더 본질적인 ‘곁쇠’는 읽고 말하고 쓰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인문학과 기초과학을 공부하는 것은 교양적 지식을 축적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생각하고 표현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상대의 말과 글을 잘 이해하고 말과 글을 통해 상대를 설득하는 능력, 공감과 동의를 이끌어 내는 능력이 인생의 마스터키다.

한 분야의 확고한 전문가가 됐을 때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그냥 과학자와 글을 잘 쓰는 과학자가 걸어가는 길은 어떻게 다를까? 그냥 과학자는 과학계 내부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미칠 뿐 일반 대중들의 삶과는 분리될 수밖에 없다. 글을 잘 쓰는 과학자는 과학계 내부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에게도 넓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요즘 글도 잘 쓰는 과학자들이 TV 교양이나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활약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김상욱, 이정모, 정재승, 이명현, 이종필 등이 그런 대표적 인사다. 글쓰기가 이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주고 이들은 그 기회를 통해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과거 같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몇 년 전인가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 연구원들을 대상으로 글쓰기 워크숍을 한 적이 있다. 교육 담당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연구원들이 왜 글쓰기 강의를 듣나요? 여긴 연구논문 쓰는 곳이 아니라 제품 개발하는 곳이잖아요.”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자신의 연구 분야를 대중에게 쉽게 설명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연구를 할 수 있고 그래야 좋은 제품도 개발할 수 있다, 이게 제 회사 사장님 지론이에요.” 

워크숍을 진행해보니 정말 재밌는 글들이 많이 쏟아졌다. 그 가운데 오디오 전문 연구원의 글이 지금도 인상 깊게 남아 있다. 차량 진동과 소음을 전제로 최적의 청음 환경을 만들기 위해 주파수 이퀄라이저 설정, 음역대별 스피커의 위치 등을 설명하는데 아주 흥미로웠던 기억이 난다. 

무엇이 될지 알 수 없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는 선택할 수 있다. 읽고 말하고 쓰는 능력, 인생의 마스터키를 갖고 삶을 살 것인가? 엉뚱한 일에 시간과 노력을 다 써버려 마스터키 없이 삶을 살 것인가? 아직도 우리의 선택은 늦지 않았다. 당신이 부모라면 자녀에게 한 가지 분명한 선물을 건넬 수 있다.  

 

백승권
글쓰기 컨설팅 전문업체 커뮤니케이션컨설팅앤클리닉 대표로 업무용 글쓰기 강사로 활동 중이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 조계종 화쟁위원회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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