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는 신화의 땅이다. 제주를 대표하는 설문대할망, 탐라 개국 신화가 깃든 삼성혈이 가장 많이 알려졌다. 거대한 몸짓과 과장된 표현이 깃든 설문대할망은 제주도를 탄생시킨 여신이다. 한라산을 베개 삼아 누우면 다리가 제주시 앞바다 섬에 걸쳐진다. 어디선가 흙을 담아 제주도를 만들었고, 마지막 부은 것이 한라산이 됐다고도 한다.
또 한 명의 여신이 있으니 영등할망이다. 바다를 지켜주는 여신이다. 영등할망을 살피면 제주의 신화가 불교와 만나는 지점을 알 수 있다.
제주 바다 멀리 외눈배기섬이 있었다. 그들은 눈이 하나만 있고, 표류하는 어부를 잡아먹는 식인국 사람들이다. 한 고깃배가 풍랑을 만나 외눈배기섬으로 표류했다. 영등할망은 어부들에게 “가남보살 가남보살”을 부르게 하고, 그들은 영등할망의 도움으로 고향으로 오게 됐다. 어부들은 육지가 나타나자 안심하여 ‘가남보살’을 부르지 않았다. 재차 풍랑이 일어나고, 그들은 다시 외눈배기섬으로 돌아간다. 잡아먹힐 위기에 처한 어부들은 재차 영등할망의 도움으로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정작 영등할망은 외눈배기들에게 잡혀 죽임을 당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영등신화가 관음신앙과 연결된다는 것이다. 영등할망은 해수관음에 비교되며, 어부들이 부르는 ‘가남보살’은 ‘관세음보살’ 염불을 일컫는다. 표류하는 어부를 잡아먹는 외눈배기섬 사람들은 아귀(餓鬼)다. 배는 태산처럼 크지만 목구멍이 바늘구멍처럼 작아서 항상 배고픔과 갈증에 시달리는 아귀를 빗댔다.
어부들을 살리는 대신 외눈배기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 영등할망은 바람이 되어 제주를 찾는다. 매년 음력 2월 1일 제주를 찾아 음력 2월 15일 거처로 돌아간다. 신이 된 영등할망은 어부와 해녀들에게 풍요를 내린다. 그래서 제주인들은 음력 2월을 ‘영등달’이라고 한다. 영등할망이 돌아가기 전에는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지 않는다. 음력 2월에 영등굿을 하며 영등할망을 기린다.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 전수관
● 주소. 제주 제주시 사라봉동길 58
● 운영시간. 9:00~17:00(주말 휴무)
● 문의. 064-753-7812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은 어로와 농경의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과거 제주민들이 벌인 굿이다. ‘칠머리’는 건입동의 옛 이름이며 건입동의 본향당(本鄕堂, 마을을 수호하는 당신을 모신 곳)이 사라봉의 칠머리당이다. 과거 제주도에서는 음력 2월 초하루를 시작으로 보름 동안 제주 곳곳에서 영등굿을 성대하게 벌였다. 그중에서도 건입동의 ‘칠머리당’ 영등굿이 가장 크고 원래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 전수관에서 칠머리당 영등굿을 미디어아트와 사진 등으로 관람할 수 있다. 사라봉 칠머리당은 전수관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다.
영등할망신화공원
● 주소. 제주 제주시 한림읍 귀덕11길 19
● 문의. 064-728-7614
영등할망신화공원은 과거 제주 사람들이 해상 안전과 풍요를 가져다주는 신이라고 믿었던 영등할망, 영등할망의 바람주머니에 씨앗과 봄 꽃씨를 담아주는 신인 영등하르방, 영등할망이 오기까지 긴 겨울을 지키는 영등대왕 등이 있는 석상 공원이다. 공원은 귀덕포구에서 해변을 따라 걸어 들어가면 나오며, 현무암 돌길이 약 1km 정도 이어진다. 길을 걸으며 제주 신화에 빠져보자.
영등할망이 바람으로 오시는
복덕개 포구
제주의 옛 등대인 ‘도대불’
영등할망은 음력 2월 초하루 복덕개 포구를 통해 제주에 들어와 가장 먼저 한라산에 들른다. 이후 땅과 바다에 씨앗을 뿌린 후 우도 해안을 지나 돌아간다. 복덕개 포구에는 제주의 옛 등대인 도대불이 서 있다. 도대불은 전기불이 들어오기 전 현무암으로 축조한 것인데, 바다를 끼고 있는 마을의 필수 시설이었다. 영등할망신화공원에 새로 조성했다.
사진. 유동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