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이 이다지도 힙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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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이 이다지도 힙하다니!
  • 송희원
  • 승인 2025.01.3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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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hip찔이 에디터의 요즘 불교]

고유한 개성이 있으면서도 트렌디(trendy)한 것들을 지칭할 때 흔히 ‘힙(hip)하다’라고 표현한다. 2030세대에게 힙하게 받아들여지는 요즘 불교를 소개한다. - 편집자 주 

불교 콘셉트를 모티브로 차용한 공간들이 요즘 ‘힙하다’. 그중에서도 ‘극락’이라는 콘셉트를 내세운, 힙스터라면 한 번쯤 방문할 법한 뮤직바 ‘모래내극락’과 카페 ‘극락왕생’을 찾았다. 

 

유행(流行)을 유행(遊行)한다

‘힙하다’는 영어 단어인 힙(hip)에 ‘-하다’를 붙인 말로, 세련되고 쿨한, 유니크한 멋스러움을 등을 표현할 때 흔히 ‘힙(hip)하다’라고 표현한다. 힙스터(Hipster)는 주류적인 문화와 대중과는 다른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자신만의 취향을 좇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근래에는 최신 유행, 즉 힙한 문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선도적으로 쫓는 사람들까지도 포괄하는 듯하다. 

대중매체에서 ‘요즘 불교가 힙하다’라는 표현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깨닫다’ 티셔츠와 같은 불교 굿즈가 SNS에 공유되면서 2030 방문객이 대거 몰린 ‘서울국제불교박람회’, 개그맨 윤성호의 부캐 ‘DJ 뉴진 스님’을 초청해 한바탕 축제로 열린 연등회, 채식·명상과 더불어 서핑·사찰 소개팅(‘나는 절로’) 등을 체험할 수 있는 템플스테이 등이 그렇다. 고리타분하다는 편견을 벗어나 “소유보다는 경험과 공유를 중시”하는 젊은 세대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힙찌질이 에디터, 힙한 요즘 불교를 직접 체험한다. 유행(流行)을 유행(遊行)한다. 이번 연재의 모토다. 

(*원래 ‘힙찔이’는 ‘힙합(Hip-hop)’과 ‘찌질이(찌질한 사람)’의 합성어로 힙합 문화를 잘못 이해한 찌질한 사람을 비하하는 말이지만, 여기에서는 ‘힙(hip)’한 문화를 공부해야만 아는 에디터라는 자조적인 용어로 사용했다.)

 

 

모래내극락

파라솔 아래에 각종 채소, 젓갈 등을 파는 가판대가 늘어선 서대문구 모래내시장 골목. 한 건물 2층 창가에 네온사인 간판이 붉은빛을 발하고 있다. DJ와 뮤지션들이 라이브 공연을 펼치는 문화공간이자 뮤직바 ‘모래내극락’이다. 

재래시장처럼 오래돼 외벽의 페인트가 다 떨어져 나간 건물 입구. 피서를 즐기는 듯한 부처님과 꽃무늬 가사를 걸친 부처님이 ‘極樂(극락)’이란 이름과 함께 간판으로 걸려 있다. 내부로 들어서면 화려한 미러볼 조명 아래로 DJ 부스와 무대가 있다. 마치 피서지를 연상케 하는 서프보드와 식물들이 불교 미술 소품과 함께 어우러져 곳곳을 장식한다. 

이곳은 밴드 CHS의 리더 최현석 모래내 극락 대표가 개인 작업실로 사용하던 공간이었다. 이벤트성으로 공연을 개최하다가 2023년 11월부터 정식으로 오픈해 음악적 깊이를 지닌 DJ들과 여러 분야의 뮤지션을 초청해 라이브 공연을 연다. 

Q __ 불교 콘셉트를 차용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A __ “모래내 극락은 특별히 불교 콘셉트의 인테리어를 의도하고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작업실로 출발했고, 창작의 고통이 가득한 공간이었죠. 작업실에 이름을 붙이고 싶었는데, 제게는 지옥처럼 느껴질 수 있는 이곳을 반어적으로 ‘극락’이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들에게도 ‘극락에 있다’라고 말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모두가 이곳을 ‘극락’이라 부르게 됐죠. 

불교 미술과 남국의 따뜻한 감성을 담아낸 공간인데, 개인적인 취향과 예술적 관심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형성됐죠. 특히 불교 미술과 다양한 종교적 예술에 관심이 많아 해외에서 수집한 소품들이 공간 곳곳을 채우고 있습니다. 로고 또한 직접 스케치하며 유머러스하고 친근한 부처님의 이미지를 만들어본 것이 계기가 돼 탄생했습니다.”

출처 모래내극락(morenesukha) 홈페이지

Q __ 방문자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처음 방문하는 분들은 낙후된 재래시장과 주변 환경 때문에 예상하지 못했던 반전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극락의 문을 여는 순간, 완전히 다른 세상에 들어선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하더군요. 특히 해외에서 방문하는 분들은 공간에 담긴 독특한 미적 감각과 문화적 깊이에 매우 감탄하며, 종종 긍정적인 피드백과 함께 뜻깊은 대화를 나누곤 합니다. 이처럼 극락은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문화적 쉼터’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Q __ 평소 불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A __ “불교는 ‘쉼’과 ‘명상’을 떠올리게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불교 신자이신 부모님과 함께 조용하고 고즈넉한 사찰을 방문했던 기억이 지금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종교적인 의미를 넘어, 불교는 제게 자연 속에서 잠시 호흡을 고르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공간을 상징합니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많은 이들이 느끼는 불교의 매력과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Q __ 불교 콘셉트의 공간들에 대해 ‘힙하다’라고 반응하는 이유는 뭘까요? 

A __ “불교의 핵심 가치는 ‘자연스러움’과 ‘비강요’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특성은 대한민국을 넘어 현대 세계 사회에서 점점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가치들과 잘 맞닿아 있습니다. 사찰을 비롯한 불교적 공간은 단순한 종교적 장소가 아니라, 일상의 고단함에서 잠시 벗어나 쉴 수 있는 쉼터의 기능을 하며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인상을 주죠.

다만, 이러한 흐름이 지나치게 상업화되거나 유행으로 소비된다면 본래의 자연스러움이 희석될 위험이 있습니다. 그저 조용히 흐르며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불교적인 본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Q __ 앞으로 이곳이 어떤 공간이 됐으면 하나요?

A __ “흐름을 쫓기보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깊이 있게 풀어내는 팀들이 모래내극락 무대를 채우고 있어요. 이런 독창성과 진정성이 이곳의 정체성이자 매력이죠. 모래내극락은 트렌드를 제시하는 콘텐츠들뿐만 아니라, 신진 뮤지션들과 협업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자 합니다. 단순히 음악을 소비하는 공간을 넘어, 문화와 철학, 예술이 어우러진 창조적 실험장이 되고자 합니다. 그래서 예술적 교류와 문화적 대화가 끊임없이 이뤄지는 플랫폼으로 자리 잡길 희망합니다. 지금도 다양한 아티스트들과의 협업과 해외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어, 이곳을 통해 대한민국의 독창적 문화가 더 널리 알려지길 바랍니다.”

 

카페 극락왕생

영등포구 문래동 철공소 골목 지하 1층 주차장 한편에 입구에서부터 현란한 네온사인 불빛을 뿜어내는 극락왕생카페가 있다. 래퍼 송민호와 뉴진 스님도 다녀가 힙플레이스로 소문났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곳에 방문객들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어디에도 없는 독특하고 유일무이한 콘셉트 때문이다. 

산타 모자를 쓴 불두가 일렬로 놓인 복도를 지나 문을 열자, 힙합 음악이 BGM으로 흘러나온다. 공간 중앙에는 불단 위 거대한 석상이 공간을 차지하고, 벽면에는 탱화와 함께 ‘Nothing better than 極樂’이라고 적힌 포스터들이 붙어 있다. 레트로한 괘종시계, 유선 전화기와 함께 미니어처 불상, 염주 등 불교 소품들이 군데군데 놓였다. 메뉴들도 왕생밀크티, 극락떼 등 극락 콘셉트에 충실하다. 부부가 운영하는 이 공간은 한 방문자의 리뷰처럼 “힙함과 경건함이 공존”하는 극락세계였다. 

Q __ 불교 콘셉트를 차용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A __ “외할머니가 불자셨습니다. 처음에는 ‘극락왕생’이라는 콘셉트만 가지고 막연하게 어두운 공간을 찾았어요. 마침 다방이었다가 공장이었다가 공실로 있던 이 공간을 알게 됐죠. 이곳이 지하이다 보니까 어둡고 습해요. 석굴암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해서 중앙에 석상을 놓고, 이 공간과 어울리는 소품들을 하나씩 채워갔어요. 소품은 저희가 구매한 것도 있고 외할머니가 갖고 계셨던 것도 있어요. 탱화나 불상들은 무슨 의미를 가지고 배치했다기보다 저희의 감각으로 공간에 어울리게 매치했어요.”

 

Q __ 방문자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A __ “오픈하고 나서 얼마 안 됐을 때 촬영을 와서 입소문을 많이 탔어요. 불교 콘셉트의 카페이다 보니까 초창기에는 스님들의 방문도 많았어요. 젊은 사람뿐만 아니라 가족 단위 방문객들도 많이 와요. 어르신들이 보기에는 인테리어가 약간 혼잡스럽다고 여길 법한데, 독특하다고 많이 좋아하세요. 한 번은 먼저 방문한 딸이 불자인 어머니께 추천해서 방문한 적도 있어요. 

저희 둘 다 불자가 아니라 불교인들이 봤을 때 이 공간을 안 좋게 보진 않을까 걱정도 많았는데, 스님들도 종종 오셔서 사진도 많이 찍고 매장 분위기를 즐기시더라고요. 불교는 다른 종교와는 달리 포용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대중적인 종교가 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한 것 같아요.” 

출처 @geukrak_coffee

Q __ SNS에 힙한 카페라는 반응이 많습니다. 

A __ “젊은 친구들은 이런 불교 콘셉트 카페에 대해서 무척 흥미로워해요. 이곳이 지하 주차장에 있다 보니까 어두워요.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밖이랑 전혀 다르고 독특한 분위기에 많이들 놀라세요. 마치 극락처럼 현실이랑 약간 동떨어진 느낌이라고 하더라고요. 극락처럼 바깥세상과 단절돼 모든 생각과 걱정을 잊게 해주는 공간인 거죠. <극락왕생>을 부른 뉴진 스님도 서울불교박람회도 그렇고 불교가 요즘 젊은이들한테 다가가는 활동을 많이 하잖아요. 그래서 이런 콘셉트가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가는 것 같아요.”

 

Q __ 불교 콘셉트 때문에 운영하는 데 애로 사항은 없나요?

A __ “너무 불교를 희화한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어요. 크리스마스 시즌일 때 산타 모자를 불상에 씌웠어요. 저는 천주교인데, 크리스마스가 되면 종교 대통합이라고 해서 신부님과 스님들이 함께 행사도 하잖아요. 조계사에 크리스마스 트리도 설치하고요. 불교가 요즘 대중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려고 노력을 많이 해서 이 정도까지는 괜찮겠지 하고 했는데, 인터넷에 ‘이건 좀 아니지 않나’ 하는 글들이 종종 올라오긴 해요. 그래서 소품 하나를 놓고 메뉴 하나를 개발할 때도 최대한 조심히 신중하게 하려고 해요.”

 

Q __ 앞으로 이곳이 어떤 공간이 됐으면 하나요?

A __ “학업이나 직장 생활 등 밖에서 힘든 일을 겪은 분들이 이곳에서 말 그대로 극락같이 느끼고 쉬어가는 공간이 됐으면 해요.”

 

엄근진 불교에서 힙한 불교로

이번 유행(遊行)에서 두 공간의 공통점을 두 가지 발견할 수 있었다. 

하나, 모래내극락과 극락왕생 두 공간 모두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분위기를 가진 힙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정작 두 공간의 운영자들은 인터뷰 동안 ‘힙하다’라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자신들이 원하는 공간을 취향에 맞춰 자유롭게 꾸몄더니, 그게 호응받으며 ‘힙하다’라고 불렸을 뿐이다. 

비주류에서 시작했지만, 대중매체와 SNS에 공유되고 마케팅 수단이 되면서 ‘힙’은 ‘핫’하게 되고 유니크한 것에서 트렌드가 돼 버린다. “원래 힙스터의 의미와 달리 몰개성적이다”라고 비판받는 이유다. 그래서일까. 힙스터는 정작 자신을 힙스터로 규정하지 않는다. 

또 한 가지, 두 공간의 운영자들 모두 ‘불교’를 종교적인 관점이 아닌 문화적인 관점에서 바라봤다. 그리고 불교의 장점으로 ‘포용력’을 꼽았다. 

요즘 불교는 엄근진(엄숙하고 근엄하고 진지한) 불교에서 힙한 불교로 대중들에게 한층 편안하게 다가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권위와 신앙의 의미가 탈각한 불상을 단순히 인테리어의 요소로 배치하기도 한다. 여기에 성상을 모독하느니 하는(물론 정말 그런 경우는 지양돼야겠지만) 논의는 어찌 보면 권위적이고 구태의연한 해석이 아닐까. 이는 과거에는 신앙의 대상이었던 불상이 현대에는 예술적인 작품으로 사람들에게 감상되는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반가사유상’처럼 어쩔 수 없는 시대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발터 벤야민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사물을 공간적으로 또 인간적으로 자신에게 좀 더 ‘가까이 끌어오려고’ 하는 것은 오늘날 대중이 지닌 열렬한 관심사이며 모든 주어진 것의 일회성을 그것의 복제를 수용함으로써 극복하는 경향이 바로 그 관심을 나타낸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기존의 불교가 종교의 시선에서 포교의 대상으로 대중을 바라봤다면, 이제는 대중들이 먼저 불교를 종교가 아닌 문화로 체험하는 시대다. 우스갯소리이긴 하지만 이런 힙한 불교에 자주 노출되다 보면, 내 안의 불성과 불교에 대한 감수성을 깨우는 계기가 될지도 모를 일 아닌가.  

 

사진. 송희원, 류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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