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생요집(往生要集)』 「문답요간」 ‘왕생계위(往生階位)’ 편에서는 왕생자의 구품 계위(階位, 계층)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그중 흥미로운 대목은 단연 하품의 삼생(상생上生·중생中生·하생下生)에 관한 내용이다. 하품의 삼생에는 별다른 계위가 없고, 단지 번뇌에 계박돼 악업을 짓는 사람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아주 직설적인 질문이 오가는데, 본문 문답 속에서 ‘우리 중생은 바로 이 하품의 삼생이 맞다’라고 단언하고 있다. 심지어 경에서 말한 상삼품(上三品)도 어찌 반드시 높은 위(位)라고 고집하겠느냐고, 여러 스승이 지나치게 높이 판별한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얘기까지 하고 있다. 이는 구품의 위계에 대한 부담이나, 수행에 대한 압박감을 해체하기 위한 교의적 배려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극락을 우리 곁으로 가까이 데려다 놓는 느낌이다.
수시로 계를 범하고, 악행을 하는 우리 ‘악업중생’들이 자신의 업은 돌아보지 않고 사후 극락에 가기를 원하는 것은 실현 가능할까? 불교에서는 악업중생의 발원에 대해서도 답을 준비해 두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사실, 계를 범하는 것은 굳이 악업중생이 아니라 해도 보통의 인간들이라면 매일 저지르고 있는 것 아닐까. 하루의 피로를 풀고 사회적 인연의 연대를 이어주는 음주, 무심코 입에서 나오는 질투와 차별의 언어, 자본주의 사회에서 투자와 투기의 경계, (마음뿐이라 할지라도) 멋진 이성에 대한 탐심 등등. 이를 의식하든 안 하든 이러한 것들은 수시로 우리들의 마음속을 넘나드는 범계와 욕망의 경계에서 미심쩍은 업으로 축적돼 간다. 늘 인간의 곁에 서서 주시하는 명계의 사자들을 의식한다면 한 번쯤 사후 ‘좋은 곳’에 가는 방법을 제시하는 문헌의 내용들도 새겨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① 조그만 선행이라도 행하면
먼저 『지장보살본원경(地藏菩薩本願經)』 「분신집회품(分身集會品)」에서는 지장보살이 세존을 뵙고 ‘바라옵건대 후세의 악업중생을 위해 염려하지 마시라’라고 세 번을 아뢰는 내용이 등장한다. 세존은 지장보살에게 아직도 조복되지 못한 자들이 업에 따라 과보를 받아서 지옥도에 떨어져 고통을 받게 되면 미륵불이 세상에 나오는 그 시점까지 중생의 해탈을 위해 노력할 것을 부촉(맡겨 부탁함)한다. 이러한 세존의 수기에 대해 지장보살은 악업중생이라도 터럭 한 개, 물 한 방울, 모래 한 알, 티끌 한 개, 털끝만큼이라도 선을 행하면 그들이 해탈할 수 있게 제도하겠다고 답을 한다.
그러니 세존께서는 후세 악업중생에 대해서는 요만큼도 걱정하지 말라고 지장보살이 당당하게 서원을 발하는 장면을 읽다 보면, 세존 아닌 우리 중생들에게 안심하라고 다독이는 느낌을 받게 된다. 수백, 수천만 억의 화신들을 거느리며 고통받는 중생 하나라도 더 건지겠다는 저 지장보살의 원력에 대한 믿음만으로도 구제의 확신을 받는 느낌이랄까? 다만, 지장보살이 요구하는 구제의 조건을 채우기 위해서는 사바세계의 보살 화신들의 눈에 띌 수 있도록 아주 조그만 선행이라도 하는 정도의 성의는 보여야 할 듯하다. 늘 우리 주변에서 약자의 모습으로 나타나 자비의 선행을 행할 기회를 주려 노력하는 지장보살의 화신들에게 말이다.
② 불정존승다라니를 수지하라
다음으로, 『불정존승다라니경(佛頂尊勝陀羅尼經)』에서는 세존이 제석천에게 모든 죄업의 장애를 없애고, 모든 악도의 고통을 부수는 공능이 있는 ‘정제일체악도불정존승다라니(淨除一切惡道佛頂尊勝陀羅尼)’를 모든 세계에 널리 알릴 것을 부촉하는 내용이 나온다. 악도에 떨어져 고통받는 중생들을 위해 지옥문을 부수어 구제하고, 생사해에 빠져 고난을 겪는 중생들을 해탈시키는 한 수행법으로서 불정존승다라니를 수지할 것을 알리라 한 것이다.
세존은 제석천에게 이 불정존승다라니를 부촉하면서 이를 선주천자(善住天子)에게 줘서 늘 다라니를 독송하고, 마음 깊이 새기며, 기억하고 받들 것을 당부한다. 남섬부주의 모든 중생이 널리 받아들이게 하기 위한 과정으로서 천신들의 다라니 수행을 요구한 것이다. 이 불정존승다라니를 늘 받아 지니고, 외는 일상의 수행을 통해 악업중생이 구제를 얻고 해탈하게 되리라는 인식은 다라니의 주력(呪力)에 대한 의심 없는 믿음과 직결된다.
그렇다면 세존은 왜 다라니신앙의 메신저로서 제석천을 택했던 것일까? 그 배경에는 동아시아 대승불교의 제석천신앙과 연결되는 육재일(六齋日), 십재일(十齋日) 등의 실천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제석천의 권속인 사천왕과 그 천자들이 주기적으로 남섬부주를 순행하며 인간의 선악을 살펴, 사후의 심판에 이를 적용한다는 믿음으로 인해 동아시아의 불교도들은 재일마다 채식과 금욕, 선행을 실천했던 것이다. 결국 늘 자신의 선악을 살피는 법안(法眼)의 존재를 인식하는 순간부터 중생은 스스로의 악업을 의식하며 다라니를 외고, 재일을 지키면서 절대적인 원력에 의지했으리라 생각된다.
③ 밀교의 진언과 작단법에 의지해라
다음으로 밀교의 작단법과 다라니의 주력에 의지해 정토왕생을 구하는 수행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무량수여래관행공양의궤(無量壽如來觀行供養儀軌)』 같은 문헌에서는 말법세계 악업중생을 위해 금강수보살(金剛手菩薩)이 정토왕생을 구하는 의궤와 다라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자세한 작단법은 생략한다) 수행자는 매일 기도하면서, “모든 유정중생의 본성은 청정하지만, 모든 외부의 오염에 의해 덮여서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보리를 잃고 헤매며 생사에 빠져서 무량한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을 사유하며 관(觀)할 것을 권한다.
이 문헌에서는 밀교 작단법 외에도 진언, 관법이 수행법으로 제시되고 있다. 정토왕생신앙을 실천하면서도 밀교의 진언과 작단법을 거쳐 본성을 관조하는 반야의 관법까지 아우른다.
④ 대승의 반야바라밀법을 닦아라
다음은 대승의 반야바라밀법을 닦는 것이다. 『대승이취육바라밀다경(大乘理趣六波羅蜜多經)』에서는 석존이수트라[素咀纜], 비나야(毘奈耶), 아비달마(阿毘達磨), 대승반야바라밀다(大乘般若波羅蜜多), 총지문(總持門) 등의 교문(敎門)을 통해 중생이 암흑에서 벗어나 해탈을 얻기를 원하는 법문이 등장한다.
만약 악업중생이 있다면 이 법문을 듣고 나서 바로 악을 버리고 선을 닦고, 성내기를 잘하는 자는 인욕을 배우고, 게으른 중생은 바로 정진하고, 산란한 중생은 고요해지고, 어리석은 중생은 이 법을 들으면 바로 지혜를 발해 회심하면서 여러 선을 닦을 것을 권한다. 석존은 위에서 열거한 다섯 가지 교문 중에 어느 한 가지만을 특정하지 않고 모두 중생에게 감로의 법이 되어 정토왕생의 길을 열어주는 법보임을 역설하고 있다. 결국 육바라밀을 수행하는 과정에 있어서 대승의 교문 모두가 악업중생들까지 진실한 열반으로 이끌어주는 인도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⑤ 불보살을 마음에 모셔라
다음은 아미타불의 본원에 온 마음으로 귀의하는 것이다. 『사명존자교행록(四明尊者教行録)』에서는 불타는 살아 있는 이들의 불타이니, 살아 있음은 불타 안에서 사는 것이라는 명제를 던지고 있다. 그러므로 중생의 마음 안에 계신 제불이 진리를 깨닫는 것이고, 제불의 마음속에서 중생이 그때그때 새롭게 업을 짓는 것이 된다. 살아 있다는 것은 일시적으로 생의 세계에 속하는 것이고, 불타를 모시면 바로 불타에 속하게 된다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삼계가 모두 부처이며, 그 안의 중생은 모두 부처의 자식이라는 선언에서 중생은 구제의 의심을 내려놓게 된다. 의혹과 번뇌를 지니고 사는 중생이라도 불보살을 마음에 모시고, 그 원력을 마음에 지니면 정토왕생이 가능해지게 되는 것이다.
⑥ 참회염불 하라
마지막으로 『왕생요집』 권중 대문(大文) 제5 조념방법(助念方法) ‘참회중죄(懺悔重罪)’ 편에서는 번뇌와 미혹으로 금계를 범한다면 하루가 지나기 전에 참회해야 한다고 권하고 있다. 참회법은 개인의 기질에 맞는 방식으로 수행하면 되는데, 다음의 구절을 새기며 죄의 종류에 따라서 자비의 광명을 간청하며, 아미타불에 예경하고 참회할 것을 이르고 있다.
보시의 빛을 발하시어 인색함의 죄를 멸하소서.
지계의 빛을 발하시어 파계의 죄를 멸하소서.
인욕의 빛을 발하시어 성냄의 죄를 멸하소서.
정진의 빛을 발하시어 게으름의 죄를 멸하소서.
선정의 빛을 발하시어 산란함의 죄를 멸하소서.
지혜의 빛을 발하시어 어리석음과 미혹의 죄를 멸하소서.
이렇게 1일 혹은 7일간 하면 수십만 겁의 번뇌와 무거운 장애가 제거된다고 설명하는 것도 뭔가 좀 미심쩍은지, 또 다른 안을 제시하고 있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이라도(!) 좌선 입정하고, 마음속에 부처님 미간의 흰 터럭에서 나오는 빛에 집중하여 산란한 생각이 없는 상태로 고요함을 유지하면 아주아주 오래된 생사의 죄까지 지우게 된다고 역설한다. 이는 과보의 진리가 분명한 무량수불국이지만, 임종할 때 참회염불을 하면 업장을 전변시켜 바로 왕생할 수 있게 된다는 천태지의의 기본 교의와 통하는 설명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불교문헌 안에서 현재와 미래세 악업중생들을 위해 제시하고 있는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극락에 가는 법들을 유형 별로 정리해봤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받은 느낌은 각종 교의에서 불교신앙을 가진 이들에게 극락 가는 법을 아주 넓고, 쉽고, 다양하게 열어뒀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참회’와 ‘귀의’는 전 문화권의 종교에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수행법이기도 하다. 의심 없이 순일(純一)한 믿음으로 불타의 원력에 자신을 맡기고, 매일매일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그중 하나만이라도 경문의 교의에 대조하며 살피는 것, 이것만으로도 극락행의 조건이 팔 할은 채워지지 않을까 한다.
김성순
서울대 종교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전남대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로 ‘동아시아불교 종교문화 비교연구: 고중세 시대 불교의례와 물질연구’ 관련 주제로 글을 발표한다.